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건설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공사를 다 마치고도 원청(원사업자)이 부도나 폐업으로 사라져 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하도급업체 상담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제가 상담한 하수급인분들 중 상당수는 “원청이 부도났으니 발주자한테 그냥 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으로 발주자 사무실에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응을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막상 발주자는 “우리는 원청하고만 계약했다”, “원청한테 이미 다 지급했다”며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고, 그제서야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최근 대법원은 발주자에 대한 하도급대금 직접지급청구권이 인정되는지를 판단할 때, 수급사업자의 직접지급 요청 의사표시가 발주자에게 도달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시점에 원청이 정말 ‘지급불능’ 상태였는지를 엄격하게 따지고 있습니다. 원청이 부도가 났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청구권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래에서는 원청이 부도났을 때 발주자에게 하도급대금을 직접 청구할 수 있는 법적 요건과, 실무에서 놓치기 쉬운 함정들을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원청 부도만으로 발주자에 대한 직접지급청구권이 당연히 생기지는 않습니다
발주자와 하수급인 사이엔 원래 계약관계가 없고, 법이 정한 예외 사유가 있어야만 직접 청구가 가능합니다.
하도급 구조에서 계약은 발주자-원사업자(원청), 원사업자-수급사업자(하수급인) 이렇게 두 단계로 각각 체결됩니다. 발주자와 하수급인 사이에는 원칙적으로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으므로, 하수급인은 원청에게만 대금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럼에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제14조와 건설산업기본법 제35조는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발주자가 하수급인에게 직접 대금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계약 상대성의 원칙에 대한 법정 예외인 셈입니다. 하도급법 제14조 제1항 제1호는 그 사유 중 하나로 “원사업자의 지급정지·파산,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사유가 있거나 사업에 관한 허가·인가·면허·등록 등이 취소되어 원사업자가 하도급대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 경우로서 수급사업자가 하도급대금의 직접 지급을 요청한 때”를 들고 있고, 건설산업기본법 제35조 제2항 제4호도 사실상 같은 내용을 정하고 있습니다.
즉 “원청이 부도났다”는 사정은 이 예외 사유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지, 그 자체로 청구권을 자동으로 발생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요건을 갖추어 직접 지급을 요청해야 비로소 청구권이 생깁니다.
원청 부도는 직접지급청구권이 열릴 수 있는 문을 여는 사정일 뿐, 그 문을 통과하려면 법이 정한 요건을 갖춰 요청해야 합니다.
2. 지급불능 상태와 직접지급 요청의 도달, 두 가지가 함께 갖춰져야 합니다
어음 한 장이 부도난 사실만으로는, 원청이 정말 돈을 못 주는 상태였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실무에서 가장 많이 오해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원청 어음이 부도났다더라”는 소문만 듣고 발주자에게 직접지급을 요청하면 당연히 받아들여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법원은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합니다.
대법원은 하도급법상 “지급할 수 없게 된 경우”, 즉 지급불능의 의미와 그 판단 기준 시점에 관해 다음과 같이 판시했습니다.
수급사업자가 발주자에 대하여 하도급대금의 직접지급을 구할 수 있는 권리가 발생하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수급사업자의 직접지급 요청의 의사표시가 발주자에게 도달한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여기서 ‘지급할 수 없게 된 경우’ 즉 지급불능이라 함은 채무자가 변제능력이 부족하여 즉시 변제하여야 할 채무를 일반적·계속적으로 변제할 수 없는 객관적 상태를 말한다(대법원 2018. 8. 1. 선고 2018다23278 판결).
이 사건에서는 원청이 하수급인에게 자금을 대신 지급해 준 사정이 있었는데도, 그것이 정산 약정에 따른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 지급불능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아 원심이 파기됐습니다. 대법원 2009. 3. 12. 선고 2008다65839 판결이 확립한 지급불능 개념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입니다. 부도어음 한 장, 공사 중단 소문 정도로는 부족하고, 원청이 계속적·일반적으로 채무를 갚을 수 없는 객관적 상태였음을 하수급인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또한 위 판결은 원청이 하수급인을 대신해 발주자에게 직접지급을 요청한 경우, 그 요청이 하수급인 본인의 요청에 따른 것임을 발주자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어야 효력이 생긴다고도 밝혔습니다. 요청 서류에는 반드시 하수급인 명의와 계좌, 하도급계약 내용이 명확히 드러나야 합니다.
지급정지·파산 등으로 정말 못 받는 객관적 상태인지, 그리고 그 요청이 발주자에게 도달했는지, 이 두 가지가 함께 갖춰져야 직접지급청구권이 발생합니다.
3. 직접지급받을 수 있는 금액은 발주자에게 아직 남아 있는 공사대금 범위로 제한됩니다
발주자가 원청에게 이미 지급해버린 돈까지 하수급인에게 다시 줄 의무는 없습니다.
직접지급청구권이 인정되더라도, 하수급인이 원청과의 하도급계약금액 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도급법 제14조 제4항은 “발주자가 해당 수급사업자에게 하도급대금을 직접 지급할 때에 발주자가 원사업자에게 이미 지급한 하도급금액은 빼고 지급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35조 제1항도 “발주자의 수급인에 대한 대금 지급채무는 하수급인에게 지급한 한도에서 소멸한 것으로 본다”고 정해 같은 취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발주자 수중에 아직 원청에게 지급하지 않은 공사대금이 남아 있어야 그 범위 안에서만 하수급인에게 직접 지급될 수 있습니다. 발주자가 이미 원청에게 기성금을 전부 지급해버렸다면, 하수급인이 아무리 직접지급 요건을 갖춰 요청해도 실제로 받을 돈이 남아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요청 시점도 결정적입니다. 직접지급청구권은 요청의 의사표시가 발주자에게 도달한 시점을 기준으로 발생·소멸 관계가 확정되므로, 그 시점 이후 발주자가 원청에게 지급한 부분에는 하수급인의 권리가 미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원청 부도 소식을 듣고도 “설마 발주자가 알아서 챙겨주겠지”라며 미루는 사이, 발주자가 정상적인 기성 지급 절차에 따라 원청 계좌로 돈을 내보내 버리면 직접지급받을 재원 자체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발주자에게 아직 남아 있는 공사대금이 있어야 하고, 그 범위와 시점은 요청이 도달한 순간을 기준으로 정해집니다.
4. 요청 시점과 지급보증 여부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달라집니다
지급보증서를 못 받았다면, 그 자체도 별도의 직접지급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하도급법과 건설산업기본법은 지급불능 사유 외에도 여러 직접지급 사유를 나란히 두고 있습니다. 원청이 하도급대금을 2회분 이상 지급하지 않은 경우(하도급법 제14조 제1항 제3호, 건설산업기본법 제35조 제2항 제3호), 발주자·원청·하수급인 3자가 직접지급에 합의한 경우, 그리고 원청이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하도급법 제14조 제1항 제4호, 건설산업기본법 제35조 제2항 제5호)도 그중 하나입니다.
실무적으로 원청이 부도 직전이라면 지급보증서를 애초에 발급하지 않았거나, 발급했더라도 보증기관에 대한 별도 청구가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지급불능 사유 하나만 붙들고 있기보다, 계약 체결 당시 지급보증서가 교부됐는지, 대금 지급이 이미 2회 이상 밀렸는지까지 함께 확인하면 청구할 수 있는 근거와 상대방(발주자·보증기관)의 폭이 넓어집니다.
다만 어느 사유로 청구하든 공통적으로, 요청이 늦어질수록 발주자 수중에 남아 있는 재원은 줄어들고 입증 자료(원청의 재무 상태, 미지급 내역)를 모으기도 어려워집니다. 원청의 부도·연체 정황을 인지한 즉시 자료부터 확보하는 것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5. 직접지급 청구는 내용증명부터 소송까지, 이렇게 진행됩니다
직접지급 요청서가 발주자에게 도달한 시점을 증거로 남기는 것이 사건 전체의 승패를 가릅니다.
원청 부도로 하도급대금을 받지 못했다면 통상 ①하도급계약서·기성확인서·미지급 내역을 정리해 하도급대금 직접지급 요청서를 내용증명으로 발주자에게 발송하고(도달 시점이 청구권 발생 기준이므로 발송이 아니라 ‘도달’ 확인이 필수) → ②발주자에게 하수급인이 시공한 부분의 확인·정산자료 협조를 요청하며(하도급법 제14조 제5항, 건설산업기본법 제35조 제6항) → ③발주자가 응하지 않거나 금액에 다툼이 있으면 관할법원(발주자·현장 소재지가 수원권역이라면 수원지방법원)에 하도급대금 직접지급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 ④승소 확정 후에도 임의로 이행하지 않으면 발주자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채권압류 절차로 이어집니다.
원청이 부도 소식을 접했다면, 감정적으로 발주자를 찾아가기 전에 아래 순서로 자료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원청의 부도·폐업이 언제, 어떤 형태로 확정됐는지(부도어음 발생일, 폐업신고일, 회생·파산절차 개시 여부)부터 시점을 특정합니다.
발주자와 원청 사이의 도급계약서, 그리고 원청과의 하도급계약서·기성확인서를 대조해 발주자 수중에 아직 남아 있는 공사대금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서가 발급돼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면 보증기관에 대한 청구를 병행할 수 있는지 함께 검토합니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도급대금 직접지급 분쟁에 전문성 있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면, 발주자를 상대로 한 직접지급청구와 함께 필요하다면 공정거래위원회에 하도급법 위반으로 신고하는 방안까지 병행해 검토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원청 부도 소식은 대개 소문으로 먼저 들려오다 보니, “설마 발주자가 알아서 챙겨주겠지”, “오래 거래한 원청인데 어떻게든 정리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금을 받지 못한 하수급인 입장에서는 감정적으로 발주자를 찾아가기보다, 원청의 지급불능 상태를 뒷받침할 자료와 직접지급 요청서의 도달 증거를 신속히 확보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요청이 하루라도 늦어지면 발주자 수중의 재원 자체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직접지급 요청을 받은 발주자 입장에서도 요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섣불리 지급했다가는, 정작 지급불능 요건을 못 갖춘 요청이었다는 점이 나중에 드러나면 원청과의 관계에서 이중지급 위험을 떠안을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저는 하도급대금 직접지급을 요청하는 하수급인 쪽과, 그 요청에 대응해야 하는 발주자·원청 쪽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요건 충족 여부와 자료 정리 방식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원청 부도 소식을 듣는 순간이 바로 자료를 챙겨야 할 시점입니다. 늦기 전에,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원청이 부도났다는 소문만 확인되면 바로 발주자에게 직접지급을 요청할 수 있나요?
A. 소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법원은 요청이 발주자에게 도달한 시점에 원청이 변제능력 부족으로 채무를 일반적·계속적으로 갚을 수 없는 객관적 상태였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므로, 부도어음·폐업신고·미지급 내역 등 구체적 증빙을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Q. 하도급계약서가 없어도 직접지급을 요청할 수 있나요?
A. 계약서가 없다면 입증이 어려워집니다. 시공 범위와 대금을 특정할 수 있는 견적서, 문자·메신저 대화, 기성확인서, 계좌 이체 내역 등 대체 자료를 최대한 모아 하도급관계와 미지급 금액을 소명해야 합니다.
Q. 발주자가 이미 원청에게 공사대금을 전부 지급했다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A. 하도급법 제14조 제4항에 따라 발주자가 원청에게 이미 지급한 금액은 직접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다만 지급 시점이 직접지급 요청 도달 이후였는지, 정상적인 기성 지급 절차를 거친 것인지는 다툼의 여지가 있어 확인이 필요합니다.
Q. 원청이 회생절차에 들어간 경우에도 직접지급을 요청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회생절차 개시는 지급정지·파산에 준하는 사유로 볼 수 있어 직접지급 요건 판단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회생절차에서 하수급인의 채권이 어떻게 취급되는지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Q. 직접지급 요청은 반드시 내용증명으로 해야 하나요?
A. 법이 반드시 서면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청의 의사표시가 발주자에게 도달한 시점이 청구권 발생 기준이 되므로 도달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내용증명 방식이 실무상 사실상 필수입니다.
Q. 발주자가 민간 시행사인 경우에도 하도급법이 적용되나요?
A. 적용됩니다. 하도급법 제14조는 발주자가 공공기관인지 민간인지를 구분하지 않고 지급정지·파산 등 사유를 정하고 있어, 민간 발주 공사에서도 요건만 갖추면 직접지급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Q. 직접지급 요청 후에도 발주자가 계속 미루면 어떻게 하나요?
A. 관할법원에 하도급대금 직접지급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 판결을 받고 강제집행 절차로 나아갈 수 있고, 발주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정황이 있다면 공정거래위원회에 하도급법 위반으로 신고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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