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근로자가 손해배상을 검토할 때 흔히 가해자 개인만을 상대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이미 퇴사했거나 배상할 재산이 없는 경우에도, 회사를 상대로 별도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따로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이 회사에 지운 조사·보호·징계 의무, 민법이 정한 사용자책임과 근로계약상 보호의무가 그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가해자 개인의 책임과는 별개로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체적 근거와, 반대로 회사 책임이 부정되는 예외적인 경우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가해자 개인 책임과 회사 책임이 별개인 이유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입은 근로자가 손해배상을 구할 때 상대방은 가해자 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가해자 개인의 불법행위책임(민법 제750조)과 회사의 책임은 성립 근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배상능력이 없거나 소재가 불분명해도 회사를 상대로 별도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 책임은 그 개인이 고의·과실로 위법하게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데서 나오는 반면, 회사 책임은 크게 두 갈래로 갈립니다. 피용자를 관리·감독하는 지위에서 발생하는 사용자책임과, 근로계약 자체에서 회사가 부담하는 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한 데서 발생하는 책임입니다.
이 구분이 실무에서 중요한 이유는 실익 때문입니다. 가해자가 이미 퇴사했거나 재산이 없어 배상을 받기 어려운 경우에도, 회사가 별도의 책임 원인을 갖고 있다면 피해자는 회사를 상대로 청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해자의 형사처벌 여부와 회사의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서로 독립적이어서, 가해자가 형사합의를 했다거나 불송치·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사정만으로 회사의 책임이 자동으로 소멸하지도 않습니다. 아래에서는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두 가지 법적 근거, 즉 근로기준법상 조치의무와 민법상 사용자책임·보호의무를 각각 살펴보겠습니다.
가해자의 불법행위책임과 회사의 책임은 발생 근거가 다른 별개의 청구원인이어서, 가해자에게 배상능력이 없어도 회사만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제76조의3 — 회사에 지워진 법정 조치의무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합니다. 이 조문 자체는 행위규범이지만, 뒤이은 제76조의3이 회사에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부과한다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신고를 접수하거나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하면 지체 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객관적 조사를 실시해야 하고(제2항), 조사 기간에는 피해근로자등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근무장소 변경·유급휴가 명령 등 보호조치를 해야 합니다(제3항).
조사 결과 괴롭힘 사실이 확인되면 피해근로자가 요청할 경우 근무장소 변경·배치전환·유급휴가 명령 등 조치를 해야 하고(제4항), 행위자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징계나 근무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하되 그 전에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제5항). 회사가 이 의무들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단순한 행정 위반에 그치지 않고, 손해배상 청구에서 회사의 과실을 뒷받침하는 핵심 사정이 됩니다. 피해자가 신고했는데도 회사가 조사를 미루거나 형식적으로만 진행했다면, 회사가 괴롭힘을 인지했음에도 방지 조치를 게을리했다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뒤에서 볼 사용자책임의 사무집행 관련성 판단이나 보호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회사에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신고 접수·인지 시 지체 없는 객관적 조사 (제76조의3 제2항)
조사 기간 중 피해근로자 의사에 반하지 않는 보호조치 (제3항)
조사 결과 확인 시 피해자 요청에 따른 근무장소 변경·배치전환 (제4항)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 조치, 조치 전 피해근로자 의견 청취 (제5항)
신고·피해근로자에 대한 해고 등 불리한 처우 금지 (제6항)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이 정한 조사·보호·징계 의무를 회사가 이행하지 않았다면, 그 자체가 손해배상 청구에서 회사의 과실을 뒷받침하는 사정이 된다.
민법 제756조 사용자책임 — '사무집행 관련성'을 넓게 보는 외형이론
회사에 물을 수 있는 두 번째 근거는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책임입니다. 타인을 사용하여 사무에 종사하게 한 자는 피용자가 그 사무집행에 관하여 제3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조문인데, 대법원은 여기서 '사무집행에 관하여'의 의미를 폭넓게 해석해 왔습니다. 대법원 1998. 2. 10. 선고 95다39533 판결은 피용자의 불법행위가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업활동이나 사무집행 행위 또는 그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면,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와 무관하게 사무집행에 관한 행위로 본다는 이른바 외형이론을 확립했습니다. 외형상 사무집행 관련성이 있는지는 피용자 본래 직무와 문제된 행위의 관련 정도, 그리고 사용자가 손해 발생의 위험을 만들었거나 이를 방지할 조치를 게을리한 정도를 함께 고려해 판단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에 이 법리를 적용하면, 가해자가 상급자로서 업무지시·평가·인사상 권한을 이용해 괴롭힘을 저질렀다면 사무집행 관련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예를 들어 팀장이 업무 배분에서 특정 직원만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근무평가 권한을 이용해 부당하게 낮은 평가를 반복하거나, 회사 업무용 메신저나 회의 자리를 이용해 공개적으로 모욕을 준 경우라면, 그 행위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벌어진 것으로서 외형상 사무집행과 관련된 행위로 평가되기 쉽습니다. 반대로 사적인 자리에서 개인적 감정으로 벌어진 다툼처럼 업무와 무관한 행위는 사무집행 관련성이 부정될 여지가 큽니다.
가해자가 업무지시·평가 등 직장 내 권한을 이용해 괴롭힘을 저질렀다면, 그 행위가 사적 감정에서 비롯됐더라도 외형상 사무집행에 관한 행위로 평가되어 회사가 사용자책임을 질 수 있다.
회사 자신의 책임 — 근로계약상 보호의무 위반
사용자책임이 가해자의 행위를 매개로 회사에 책임을 묻는 구조라면, 보호의무 위반 책임은 회사 자신의 의무 불이행을 근거로 합니다. 대법원은 같은 95다39533 판결에서 사용자는 근로계약에 따르는 신의칙상의 부수적 의무로서 근로자의 인격을 존중·보호하고, 근로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손해를 입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며 쾌적한 근로환경을 제공할 보호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의무를 다하지 않아 근로자에게 손해가 발생하면 회사는 민법 제390조에 따른 채무불이행책임을 집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이 시행된 지금은 이 보호의무의 구체적 내용이 법률에 명문화되어 있다는 점이 실무상 큰 차이를 만듭니다. 과거에는 회사가 '괴롭힘 사실을 몰랐다'거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항변이 어느 정도 통할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신고나 인지 이후 조사·보호조치·징계까지 법이 정한 절차가 있으므로 회사가 이를 이행하지 않은 사실 자체가 보호의무 위반의 근거가 됩니다. 회사가 괴롭힘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거나 실제로 신고를 받고도 방치했다면, 근로자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뿐 아니라 치료비, 퇴직으로 인한 일실수입까지 손해배상 범위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회사 책임이 부정되는 경우 — 예외와 한계
회사 책임이 언제나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95다39533 판결은 가해자의 성희롱 행위가 그의 사무집행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그 행위가 은밀하고 개인적으로 이루어져 피해자도 이를 공개하지 않아 회사로서는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볼 수 없는 경우에는, 회사가 고용계약상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업무와 무관하고 회사가 인지할 가능성조차 없었던 순수히 사적인 가해행위까지 회사에 책임을 지우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예외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시행 이후 그 폭이 좁아졌다고 봐야 합니다. 피해자가 신고했거나 회사가 어떤 경위로든 괴롭힘 정황을 인지한 이상 '몰랐다'는 항변은 더 이상 통하기 어렵고, 그 순간부터 조사·보호조치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피해자가 신고나 문제 제기를 전혀 하지 않아 회사가 실제로 인지할 방법이 없었던 사안이라면, 사후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더라도 회사의 예견가능성이나 인지가능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무적으로는 괴롭힘을 겪는 즉시 사내 신고 절차를 이용하거나 서면으로 문제를 제기해 회사의 인지 시점을 명확히 남겨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업무와 무관한 순수 사적 가해행위이고 회사가 알 수 없었던 경우 — 책임 부정 여지
피해자의 신고·문제제기 이후에도 회사가 방치한 경우 — 인지·예견가능성 인정, 책임 인정 방향
신고 이력, 이메일·사내 게시판 문제제기 기록이 회사의 인지 시점을 입증하는 핵심 자료
손해배상 청구를 뒷받침하는 증거와 절차
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가 받아들여지려면 괴롭힘 사실과 회사의 인지·방치 사실을 함께 입증해야 합니다. 괴롭힘 정황을 보여주는 자료로는 업무용 메신저·이메일 캡처, 녹취, 동료 진술서, 인사평가·전보 기록의 부당성을 뒷받침하는 자료 등이 있습니다. 회사의 인지·방치를 입증하는 자료로는 사내 신고서 접수증, 고충처리 절차 진행 기록, 조사보고서, 회사가 별다른 조치 없이 시간을 끌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메일이나 공문이 중요합니다.
정신적 피해가 우울증·불안장애 등으로 이어졌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서와 치료 기록이 위자료 산정과 치료비 청구의 근거가 되고, 괴롭힘으로 인한 퇴사·휴직으로 소득이 줄었다면 그 기간의 급여명세서가 일실수입 산정에 쓰입니다.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휴업급여 등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회사를 상대로 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와는 별개의 절차이며, 산재보험에서 받은 금액은 손해배상액 산정 시 일정 범위에서 공제·조정될 뿐 손해배상 청구 자체를 막지는 않습니다.
손해배상 청구는 민사조정이나 소송 외에도 노동위원회의 조정·화해 절차를 함께 활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회사가 조사·보호조치 의무를 이행한 정황이 일부라도 있다면, 그 이행 정도가 손해배상액을 다투는 데 쟁점이 되므로, 피해자로서는 회사가 실제로 어떤 조치를 언제 취했는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해두는 것이 소송 준비에 큰 도움이 됩니다.
과태료와 민사상 손해배상은 별개다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행정제재도 함께 규정합니다. 제116조 제1항은 사용자 자신이 직접 제76조의2를 위반해 괴롭힘 행위를 한 경우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정하고, 제2항은 제76조의3에서 정한 조사의무·보호조치의무·징계의무·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한 자에게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정합니다.
이 과태료는 고용노동부가 부과·징수하는 행정제재일 뿐, 피해자가 직접 받는 손해배상과는 전혀 다른 절차입니다. 회사가 과태료를 냈다고 해서 피해자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 소멸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과태료 부과 여부가 손해배상 소송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해 근로감독관의 조사가 이루어지면, 그 조사 과정에서 나온 사실확인 자료가 손해배상 소송에서 유용한 증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무적으로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전에 회사를 상대로 내용증명을 보내 신고·조사 경과와 요구사항을 명확히 정리해두는 방법도 활용됩니다. 회사가 이에 응하지 않거나 형식적인 답변만 내놓는다면, 그 자체가 조사·보호조치를 게을리했다는 정황으로 소송에서 다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사안이 중대해 형사처벌 대상이 될 만한 행위(폭행·모욕·강요 등)가 섞여 있다면 고소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병행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가해자가 이미 퇴사했는데도 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회사의 사용자책임이나 보호의무 위반 책임은 가해자 개인의 재직 여부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성립하는 별개의 청구원인이므로, 가해자가 퇴사하거나 소재가 불분명해도 회사를 상대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Q. 회사에 신고했는데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나요?
A. 조사를 게을리한 사실 자체가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위반이자 회사의 보호의무 위반을 뒷받침하는 사정이 되지만,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그로 인해 정신적 고통이나 재산적 손해가 실제로 발생했다는 점도 함께 인정되어야 합니다.
Q. 괴롭힘 가해자가 상급자가 아니라 동료인 경우에도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지위뿐 아니라 관계의 우위도 포함하므로 동료 사이의 괴롭힘도 대상이 되고, 신고·인지 이후 회사가 조사·보호조치를 게을리했다면 가해자가 상급자인지 동료인지와 무관하게 회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Q. 사적인 술자리에서 벌어진 괴롭힘도 회사 책임을 물을 수 있나요?
A. 사무집행 관련성이 낮아지므로 쉽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그 자리가 사실상 업무의 연장으로 평가되거나 이후 업무상 불이익으로 이어졌다면 회사 책임이 인정될 여지가 있습니다.
Q. 정신과 진단서가 없으면 손해배상 청구가 어려운가요?
A. 진단서가 없어도 청구 자체는 가능하지만, 정신적 고통의 정도를 뒷받침할 자료가 부족하면 위자료 산정에 불리할 수 있어 증상이 있다면 초기에 진료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Q. 산재로 인정받으면 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는 할 수 없나요?
A.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보상과 회사를 상대로 한 민사상 손해배상은 별개의 절차입니다. 산재보험에서 받은 급여는 손해배상액 산정에서 일정 범위 공제될 뿐이며, 위자료 등 산재보험이 보상하지 않는 항목은 별도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맺음말
직장 내 괴롭힘 손해배상은 가해자 개인만을 상대로 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근로기준법이 회사에 지운 조사·보호·징계 의무, 민법이 정한 사용자책임과 근로계약상 보호의무는 가해자의 불법행위책임과 별개로 회사를 상대로 한 청구의 독자적인 근거가 됩니다. 다만 그 책임이 인정되려면 가해행위가 업무와 관련되어 있거나, 회사가 괴롭힘을 인지했음에도 방치했다는 사정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수원·경기남부 지역 사업장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후 회사가 형식적인 조치만 취하고 넘어가는 사례가 드물지 않습니다. 신고 시점과 회사의 대응 경과를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이후 손해배상 청구의 성패를 가르는 만큼, 초기 단계부터 증거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시길 권합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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