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있다지만, 나에게도 사정이 있습니다.
요즘 유튜브 댓글들을 보면 국민의 법 감정이라는 것도 변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옛날에는 빌린 돈을 받으러 온 ‘빚쟁이’들을 아주 나쁘게 보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빌린 돈 받으러 온 사람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착취하는 불한당으로 그려지고는 했다.
하지만 근래에는 이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다.
“빌린 돈을 안 갚는 사람이 더 나쁘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빌린 돈 안 갚는 사람을 미화하더라.”라는 반응도 상당히 보인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넓게 보자면, 보증금이라는 것도 일종의 ‘빌린 돈’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전세’ 문화는 일종의 사금융이다.
“나는 집을 빌려줄 테니, 너는 돈을 빌려줘.” 집주인은 그렇게 빌린 목돈을 굴려서 이윤을 창출한다.
이러한 제도에 있어서는 중요한 신뢰가 지켜져야 한다.
첫째, 빌려준 돈을 갑자기 돌려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목돈을 굴리고 있던 집주인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될 수 있다. 둘째, 그대신 약속한 날이 되면 집주인은 반드시 돈을 돌려줘야 한다.
보증금이 내 주머니에 들어오기까지
그런데 처음 본 사람을 믿고 목돈을 턱턱 맡기다 보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임대차보증금 반환 청구는 변호사라면 누구나 수없이 해보았을 사건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잘 된 케이스와 잘못된 케이스가 있다.
한시가 급합니다. 하루빨리 보증금 전액을 되찾게 해주세요.
보증금 반환 청구는 쉽다. 요건만 갖추면 거의 무조건 이긴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다. 법원에서 승소한다고 해서 그날로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법원은 “판결문”이라는 종이 한 장을 보내줄 뿐이다. 돈은 알아서 돌려받아야 한다.
패소자가 “나는 돈이 없소”하고 드러누우면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승소한 사람은 패소자의 재산을 직접 찾고 자신의 비용으로 집행을 진행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몇 달, 몇 년이 지나도록 돈을 돌려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결과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변호사
의뢰인은 수억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했다. 임대인은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인데, “당신의 보증금을 드리기 위해 다른 부동산을 매물로 내놨습니다. 팔려서 돈이 들어오면 보증금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의뢰인은 그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거의 1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임대인에게 잘 협조하면 임대인이 돈을 구해다 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대응일 수 있다.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돈이 없다는 것은 딱한 사정이지만, 그런 사정을 내가 왜 봐줘야 하는가?”
돈을 갚지 않는 사람의 사정을 봐주면, 돈이 돌아올까? 내 경험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몰아붙여야 돈이 돌아온다. 의뢰인에게 냉정하고 철저하게 대응할 것을 설득했다.
사실, 누구인지 모를 임대인에 대한 악의는 없다. 변호사는 고용된 총잡이일 뿐이다.
임대인 편이 되면 임대인 편에서 인정사정 없이 싸울 것이다.
돈이 없다고? I don’t think so.
부동산 여러 채를 가진 사람에게 그 정도의 현금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팔려고 내놓았다는 부동산에 가압류를 걸어버렸다. 임대인은 그 부동산이 팔리면 여러 방면으로 현금을 융통하려 했을 것이니, 그걸 잡아버리면 숨통이 막힐 것이다.
가압류 걸린 부동산을 살 사람은 없다. 물론, 가압류에는 ‘처분금지효’가 없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에 가압류가 걸렸다는 사실은 그 사람 자체를 신용할 수 없게 만든다.
소송은 아무리 짧아도 통상 3~4개월 이상 걸린다.
1) 재판부가 배당되는 데에 한달이 걸린다.
2) 그 재판부가 사건을 파악하고 첫 재판을 여는 데에 다시 한 달이 걸린다.
3) 첫 재판에서 당사자들이 ‘할 말’을 모두 하고 더 할 말이 없게 되엇다면, 재판부가 숙고하여 선고하는 데에 또 한 달이 걸린다.
4) 만약, 첫 재판에서 당사자들이 할 말을 다하지 못하여 두 번째, 세 번째 재판이 열린다면, 한 번을 다시 열 때마다 1개월이 추가된다.
그러나 의뢰인은 3~4개월을 기다릴 수 없었다. 그렇기에 본 변호사는 임대인의 숨구멍을 막아버린 것이다. 오히려 임대인이 1개월도 참지 못하도록. 며칠 지나지 않아 임대인은 ‘조정’을 신청했다.
조정 절차를 통한 빠른 해결
조정장에 나온 임대인은 “이자라도 깎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미 승기를 쥔 입장에서 이자를 깎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지만, 앞서 말했듯 변호사는 의뢰인의 뜻에 따르는 사람이다. 의뢰인에게 전화하여 임대인의 의사를 전달하였고, 의뢰인은 이자를 500만 원 정도만 받겠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의뢰인에게 수억 원 + 500만 원이 입금되었다. 그렇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의뢰인은 “이렇게 빨리 보증금을 돌려받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라며 기뻐했다.
사실, 이런 사건에서 소장을 쓰는 것은 로스쿨 1학년도 할 수 있다. 아니, Chat GPT도 할 수 있다. 너무 쉽다.
1) 임대차계약을 했다. 2) 보증금을 입금했다. 3) 임대차계약이 끝났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두고 법조인들은 “보증금반환청구의 요건사실”이라면서 어려운 척을 하는 것이다.
그것만 놓고 본다면 변호사의 쓸모란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의 진가는 1) 실제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느냐, 2) 얼마나 빨리 돌려받느냐에서 드러난다.
비전문가가 소송을 진행한다면, 혹은 무능한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긴다면 “판결문”이라는 종이 쪼가리 하나를 받을 뿐,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
변호사는 ‘소송’이라는 길을 수도 없이 다녀본 결과 그 길에 매우 익숙해진 길잡이와 같은 존재여야 한다. 단순히 소장만 쓰면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어떤 변수들이 발생하는지, 그 변수에 따라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지, 빠르고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한 지름길이 무엇인지 훤히 알고 있어야 한다.
돈이 한 번 다른 사람 주머니에 들어가고 나면, 이를 꺼내오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돈이 억 단위일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1,000만 원을 돌려받아야 하는 상황’은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작은 부상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1억 원을 돌려받아야 하는 상황’은 수술이 필요한 부상과도 같다.
좋은 집도의, 유능한 길잡이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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