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패소하여 찾아온 의뢰인
의뢰인을 처음 봤을 때의 눈빛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매일같이 격무에 시달려 온 고액 연봉자 특유의 멍한 눈빛, 그 속에 억울함이 한 점 들어서 있었다.
흙수저에서 출발한 의뢰인은 소위 ‘여의도 증권맨’으로 활약하며 자수성가 했다. 그의 순 자산은 무려 80억 원. 반면 그의 아내는 혼인 기간 전반에 걸쳐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하지만 이혼 소송 1심 판결은 그의 재산을 절반 이하로 깎아버렸다. 이유인즉슨, 재산 분할 비율 50:50, 그런 와중에 아내의 특유 재산으로는 ‘토지’가, 의뢰인의 특유 재산으로는 ‘빚’이 인정되어버린 것. 결과적으로 공동 자산은 반반이지만 아내가 가져갈 재산이 더 많아져 버렸다.
의뢰인의 1심 변호사는 지나치게 점잖기만 했다. 반면, 상대방 변호사는 정도와 편법을 가리지 않고 표독스럽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1심에서의 참상을 설명하기에 부족했다.
아무리 15년 이상이라 해도, 50:50이 맞나?
의뢰인의 혼인 기간은 15년 이상이었다. 재판부는 그러한 이유만으로 의뢰인의 재산을 ‘반갈’ 해버렸다.
하지만 본 변호사가 분석한 결과 의뢰인의 재산은 ‘지나치게 정직했다.’ 아주 러프하게 설명하자면, 의뢰인은 10억을 벌어서 10억짜리 아파트를 샀다. 이후 20억을 벌어서 20억짜리 아파트를 샀다. 그리고 두 아파트의 시세가 상승하여, 순 자산 80억이 되었다. 물론 아파트 이외에도 엄청나게 다양한 재산이 있었지만.
거기서 더 뺄 것도, 더 넣을 것도 없었다. 의뢰인의 아내는 보탠 것이 없었다. 보탠 것이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시식 알바를 나가서 용돈을 번 적이 있습니다.”라는 주장을 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도 50:50이 맞나?
우리나라의 이상한 재산 분할 제도
재산 분할 제도는 1990년 민법 개정을 통해 도입되었다. 당시에는 여성에 대한 ‘축출 이혼’, 즉 재산을 전혀 주지 않고 내쫓는 것이 문제가 되었고, 이를 방지하는 취지였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그 제도는 이상하게 작동하고 있다.
첫째, 법원이 재산에 대한 기여도를 하나하나 꼼꼼히 보지 않고, 대충 50:50이니 60:40이니로 ‘퉁 쳤던’ 것이다. 특히 혼인 기간이 10년이 넘으면 거의 눈을 감고 50:50을 내려버렸다. 물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누가 얼마나 재산에 기여했는지 하나하나 계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둘째, 법원은 가사 노동의 가치를 지나치게 고평가했다. 남편이 혼자 돈을 벌었어도 아내가 10년 이상 가사 노동을 했으면 재산을 50:50으로 갈랐다. 기준표가 마련되어 있는 양육비의 경우와는 달리, 기준을 마련하려는 노력조차 없다.
이는 모순적인 결과를 낳는데, 100억 원을 가진 자산가와 혼인한 사모님의 가사 노동 가치는 10년에 50억 원이고, 재산이 1억 원인 직장인과 혼인한 여성의 가사 노동 가치는 10년에 5,000만 원인 셈이 된다. 가사 도우미를 마음껏 고용할 수 있는 여성의 삶은 연봉 5억 원이고, 온갖 고생을 한 여성은 연봉 500만 원이 된다면 옳은가?
다른 부작용도 있다. 배우자가 유책함에도 불구하고 재산 분할은 50:50으로 인정되는 상황이 그러하다. 물론 유책과 재산 분할은 다른 문제이며, 이는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 같다.
그런데 당신이 10년의 결혼생활 동안 100억 원을 모았다고 하자. 이때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 그러면 배우자가 당신에게 줄 위자료는 3천만 원이고, 당신이 배우자에게 줘야 할 재산 분할금은 50억 원이다. 바람을 피운 것은 배우자인데, 당신은 49억 7천만 원을 내고 이혼해야 한다. 물론 그런 짓을 하지 않는 배우자를 만나면 되겠지만,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49억 7천만 원짜리 스위치를 쥐고 있다면 불안하지 않을까?
결국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재산과 소득 수준이 비슷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우리나라 법원은 ‘같은 계급끼리만 결혼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이바지한 셈이다.
소송을 흙탕물에서 건져내다.
소송은 이미 진흙탕 싸움이 되어 있었다. 상대방 변호사는 서면에 노골적인 비난을 적시하며 소송을 감정적 대립으로 이끌어갔다. 상대방 변호사는 정말 나쁘고 표독한 사람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상대방은 전관 출신의 노련한 변호사였으며, 사무장을 쓰지 않고 본인이 직접 서면을 쓰시는 듯했다. 상대방은 소송을 정석대로 끌고 가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듯 소송을 흙탕물로 만들어서, 유의미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의뢰인은 1심 변호사가 ‘파이팅이 부족해서’ 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상대방과 진흙탕에서 함께, 파이팅 넘치게 싸우면 본질은 더 흐려질 것이고, 이는 우리에게 불리하다.
상대방 변호사가 서면에서 사용한 부적절한 표현을 낱낱이 모아서, 목록으로 만들어 내 첫 서면에 적시했다. 그리고 변호사라면 이러한 표현을 삼가하고 사실과 논리에 근거하여 주장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변론을 시작했다.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진 상대방 변호사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의뢰인이 벌어들인 돈, 이를 바탕으로 부동산을 구매한 시점, 이후의 가액 상승분을 판사님이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했다.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의뢰인의 재산은 의뢰인의 벌어 들인 돈과 너무나도 정직하게 일치했다. 80억 원의 재산은 의뢰인이 증권사 성과급으로 번 것이지 부인이 시식 코너 알바로 번 것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50:50의 벽을 깨트리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10년 이상이면 50%”라는 굳건한 공식을 깨트리는 판결을 선고했다. 1심 판결을 뒤집는 데에 성공했고, 숨 가쁘게 달려온 의뢰인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었다.
이 소송에서는 재산 분할의 눈금을 한 칸이라도 더 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1%를 더 이길 때마다 8천만 원씩이다. 단 1%만 이겨도 1심, 2심의 변호사 보수를 모두 보상 받고도 남는다. 5%는 4억 원이며, 10%는 8억 원이다. 그렇기에 항소심 업어치기 한판 승의 경제적 실익은 수억 원에 달했다.
이처럼 1%, 1%가 큰 소송일수록 유능한 변호사가 필요하다. 변호사가 눈금 하나를 먹을 때마다 수 천만 원의 이익이 생기기 때문이다. 변호사 또한 의뢰인을 위하여 극력으로 싸워야 한다. 바둑판에 돌을 놓는 한 수, 한 수마다 의뢰인의 막대한 피땀이 서려 있다.
나는 대형로펌의 이혼전문팀에서 가정법원 판사 출신의 선배님께 가르침을 받았다. 솔직히 이혼, 상속 등 가사 실무를 처음 배울 때는 쉽지 않았다. 이혼 사건 하나에는 민사, 형사, 가사 등 모든 분야의 법리가 오묘하게 뒤섞여 있다. 그러니만큼 변호사의 역량과 아이디어에 따라 펼칠 수 있는 전략도 무궁무진하다.
이전 직장에서 에이스로 인정받으며 퇴사를 했고, 직접 로펌을 차렸다. 이전에는 재산 가액이 100억 원에 달하는 이혼, 상속 사건을 맡을 때 바닷속 깊은 곳에 있는 것처럼 중압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가슴 뛰는 흥미로움을 느낀다. 어떤 전략으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지 궁리하느라 밤을 새기도 한다.
변호사에게 법원과 판례는 저항할 수 없는 거인과 같은 존재다. “10년 이상은 50%”라는 법원의 경향성 앞에 지레 포기부터 하는 변호사들도 많다. 하지만 판례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법원 실무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결론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의뢰인의 사건을 한 번 맡았다면, 골리앗 앞에 선 다윗처럼 돌을 던져서라도 끝까지 싸워야 한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