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의 벽을 넘지 못한 의뢰인
당사자는 9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였기에 그 아들들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다투고자 하는 상대방은 당사자의 손자. 노부부는 “1가구 2주택” 과세를 피하기 위하여 손자에게 단독주택의 등기를 넘겨줬다. 이는 노부부가 여생을 보내기 위해 공들여 꾸민 전원주택이었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이, 2년이 지나자 손자는 말을 바꾸었다. 맡겨놓은 주택이 아니라 증여받은 주택이라는 것이다.
아들들은 손자를 상대로 주택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손자는 강력한 무기를 두 개나 쥐고 있었다. 첫째, 등기부등본에 “증여”라고 적혀 있다. 둘째, 할머니가 작성해준 “증여계약서”가 있었다. 등기만으로도 강력한데 계약서까지 있으니 어찌하겠는가? 1심 변호사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판결문에 흔히 인용되는 판례는 다음과 같다.
부동산등기는 그것이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로부터 적법한 등기원인에 의하여 마쳐진 것으로 추정되고, 타인에게 명의를 신탁하여 등기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명의신탁 사실에 대하여 증명할 책임을 진다.
쉽게 말하자면 등기가 있으면 그 등기대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등기가 잘못되었다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증거를 대야 한다. 증거가 없으면 등기가 옳다.
그러나 본 변호사가 뒤집은 항소심 판결에서는, 똑같은 판례를 인용하면서도 명의신탁의 존재 및 손자의 소유권 반환 의무를 인정하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중적(二重的) 명의신탁
사실, 본 사안에는 복잡한 사실관계가 있었다. 명의신탁이 두 번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해당 주택의 진정한 소유자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명의를 맡겨 두었다. 참고로 부부간의 명의신탁은 특별한 사유 없는 한 유효하다.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법) 제8조 제2호: 부부간의 명의 신탁은 조세 포탈, 강제집행의 면탈, 또는 법령상 제한의 회피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유효하다.
그리고 할머니가 다시 손자에게 명의를 맡김으로써, 두 번의 명의신탁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부부의 경우와는 달리, 할머니가 손자에게 명의신탁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두 번째 명의신탁은 무효고, 소유권은 여전히 ‘할머니’에게 있는 것이다.
문제는 두 번째 명의신탁이 명의신탁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었던 땅문서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명의를 넘겨주면서도 “땅문서”는 넘겨주지 않았다. 우리가 소위 땅문서, 집문서라고 부르는 것의 정식 명칭은 “등기권리증”이다. 하지만 실은, 땅문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땅의 소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등기를 가지고 있어야 소유자가 된다.
내막은 이러하다. 1960년 민법이 개정되면서 소유자를 정하는 기준이 바뀌었다. 1960년보다 전에는 ‘문서’를 가진 사람이 소유자였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땅문서가 위조된다면? 누군가 땅문서를 훔친다면? 땅문서가 불타 없어진다면?
이에 1960년 개정 민법에서는 ‘등기’를 가진 사람을 소유자로 하였다. 등기란 것은 관공서가 보관하는 문서다. 그 문서에 소유자로 등록이 되면 소유권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훔치거나, 위조하거나, 소실될 위험이 적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노인 분들은 ‘땅문서를 가지고 있으면 내 땅이 된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할아버지께서도 땅문서를 가지고 있으니 안전할 것이라고 잘못 믿었던 것이다.
어떤 변호사들은 이 대목에서 “땅문서 가지고 있어 봤자 소용 없어요. 법이 바뀌었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응을 하는 변호사는 실력 있는 변호사라고 보기 어렵다. 변호사는 주어진 사실관계를 의뢰인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해야 한다.
본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땅문서를 넘기지 않았다는 것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땅의 소유권을 줄 의사가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손자도 그런 의사를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재판부가 인정한 첫 번째 논거였다.
그 집은 어떤 집이었나?
해당 주택은 노부부가 여생을 보내던 장소였다. 본인들이 직접 거주할 주택의 소유권을 손자에게 넘긴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이 사건에는 한 가지 사실관계가 더 있었다. 해당 손자는 이 사건 당사자인 할머니의 소생이 아니라, 다른 할머니의 소생이었다. 그렇다면 할머니께서 자기 핏줄도 아닌 손자에게, 자신이 여생을 보낼 주택을 넘겨줄 리 없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해당 주택에 관한 공과금도 당사자 할머니의 아들들이 부담하고 있었다. 남의 주택의 공과금을 자기 돈으로 내줄 사람은 없지 않은가? 아들들은 그 주택이 어머니의 것이라고 믿었기에 공과금을 내드렸을 것이다.
나아가 아들들은 수백만 원 상당의 취득세와 재산세까지 부담하였다. 이처럼 부모님을 잘 부양하고자 했던 아들들의 마음은 승소로 보답 받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증언
연로하셨던 할아버지는 소송 중 돌아가셨다. 다만 그 전에 직접 법정에 출두하여 손자에게 명의를 맡긴 경위를 명료한 정신으로 진술하셨고, 재판부는 이를 증거로 채택했다.
소송 중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속인들이 그 지위를 이어받기 때문이다.
등기의 강력한 추정력을 깨트리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960년 민법 개정 이후로는 등기를 가진 사람이 소유권을 가진다. 바꿔 말하자면 국가가 “앞으로는 등기를 가진 사람이 소유자다.”라는 원칙을 강력하게 천명한 것이기에, 등기된 내용을 뒤집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 것이다.
하지만 ‘어렵다’는 것과 ‘불가능하다’는 것은 다르다.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스승으로 삼았던 분께서 해주셨던 말이 있다. “어려운 소송을 많이 해야 실력이 는다. 이길 수 있는 소송만 하는 변호사는 도태된다.”
누군가는 ‘실력 없음’을 ‘양심’으로 포장한다. “양심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이 소송은 못 이깁니다. 못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어쩌면 양심적인 변호사가 아니라, 실력과 자신이 없는 변호사일 수 있다. 어려운 싸움, 질 수도 있는 싸움 앞에서는 물러서겠다는 말과도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호사는 결론을 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론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등기가 절대적이고, 계약서가 절대적이기에 질 것 같은가? 1심에서도 졌으니 또 질 것 같은가? 무수한 변호사들이 이를 이유로 의뢰인의 사건을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지 않았고 오히려 역전승을 거두었다.
질 것 같다는 생각은 패배 의식이고, 이기는 소송만 하겠다는 생각은 안일한 자세다. 모두가 진다고 한 소송을 이기는 것이 진정한 실력이고, 그러한 결과야말로 진정으로 보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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