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기업 기술자료 요구, 상생협력법상 정당한 사유와 거부 요건
위탁기업 기술자료 요구, 상생협력법상 정당한 사유와 거부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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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기업 기술자료 요구, 상생협력법상 정당한 사유와 거부 요건 

강대현 변호사

협력업체가 위탁기업으로부터 갑자기 도면이나 소스코드, 생산공정 자료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난감해집니다. 거래 관계를 생각하면 거절하기 어렵지만, 넘긴 자료가 어디로 흘러가 경쟁사 제품에 그대로 반영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런 자료 요구가 이원화나 원가 절감을 명목으로 이뤄진 뒤, 넘긴 도면이 경쟁 협력업체에 전달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적발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상생협력법이 위탁기업의 기술자료 요구를 어떤 요건 아래에서만 허용하는지, 협력업체가 자료를 넘기기 전에 무엇을 확인하고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정리합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상생협력법상 '기술자료'와 위탁기업·수탁기업의 정의

위탁기업이 협력업체에 요구하는 자료가 모두 법이 말하는 '기술자료'는 아닙니다. 상생협력법 제2조는 기술자료를 물품등의 제조방법, 생산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료라고 정의합니다. 설계도면, 생산공정 매뉴얼, 소스코드, 원가산정 자료, 노하우가 담긴 데이터베이스 등이 여기 해당합니다. 단순한 견적서나 이미 공개된 카탈로그 정보는 이 정의에 포섭되지 않습니다. 어떤 자료가 기술자료에 해당하는지가 먼저 정리돼야, 그 이후에 살펴볼 요구·유용 금지 규정이 실제로 적용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상생협력법이 규율하는 관계는 '위탁기업'과 '수탁기업'입니다. 위탁기업은 제조·용역·건설 등을 다른 기업에 맡기는 발주자 쪽이고, 수탁기업은 그 위탁을 받아 실제로 물품을 만들거나 용역을 수행하는 협력업체입니다. 이름은 하도급법의 원사업자·수급사업자와 비슷하지만 적용 범위는 다릅니다 — 상생협력법은 대기업·중견기업이 중소기업에 위탁하는 관계 전반을 폭넓게 포섭하며, 하도급법상 하도급거래의 정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위탁 관계까지도 규율 대상에 넣을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뒤에서 실제 사례로 다시 짚어보겠습니다.

상생협력법상 기술자료는 도면·매뉴얼·소스코드처럼 영업활동에 유용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진 자료를 말하며, 단순 견적서나 공개정보는 해당하지 않는다.

정당한 사유 없는 기술자료 요구 금지 — 요건과 서면교부

상생협력법 제25조는 위탁기업이 정당한 사유 없이 수탁기업에게 기술자료의 제공을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여기서 정당한 사유는 위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기술자료가 절차적·기술적으로 불가피하게 필요한 경우로 좁게 해석됩니다. 단순히 협력업체 관리나 이원화 검토, 원가 절감 목적만으로는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위탁기업이 '품질관리를 위해서'라거나 '공정 개선을 위해서'라는 말만으로 자료를 요구한다면, 그 목적이 왜 해당 자료 없이는 달성될 수 없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당한 사유가 있더라도 요구 절차를 지켜야 합니다. 위탁기업은 요구하려는 기술자료의 명칭과 범위, 요구 목적, 비밀유지에 관한 사항, 권리귀속 관계, 자료 제공의 대가, 요구일과 인도일, 인도방법 등을 적은 서면을 수탁기업에게 미리 교부해야 합니다. 구두로 요청하거나 이메일 한 줄로 자료를 보내달라는 식으로 요구하면 이 서면교부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 됩니다. 뒤에서 살펴볼 실제 사례처럼 이 서면을 교부하지 않은 사실만으로도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됩니다 — 실제로 자료를 유용했는지와 무관하게, 절차 위반 자체가 별도의 위반행위로 다뤄진다는 점이 실무에서 자주 간과됩니다.

정당한 사유는 위탁 목적 달성에 절차적·기술적으로 불가피한 경우로 좁게 해석되며, 그 사유는 반드시 서면으로 수탁기업에 미리 교부돼야 한다.

요구 범위의 한계 — 최소한의 범위 원칙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라도 위탁기업이 요구할 수 있는 기술자료의 범위는 무제한이 아닙니다.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서는 요구는 그 자체로 위법합니다. 예컨대 특정 부품의 불량 원인을 확인하려는 목적이라면 그 부품과 관련된 공정 로그나 검사 성적서 정도가 필요 범위에 해당할 수 있지만, 이를 넘어 제품 전체의 설계도면이나 소스코드 전체를 요구한다면 최소범위 원칙을 벗어난 것입니다.

실무에서는 수탁기업이 이 범위를 스스로 따져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위탁기업이 요구서면에 목적을 적어 보냈다면, 수탁기업은 그 목적과 요구 자료의 범위가 실제로 대응되는지를 먼저 검토해야 합니다. 목적은 좁게 적으면서 요구 범위는 넓게 잡는 경우, 그 불일치 자체가 정당한 사유 부존재를 뒷받침하는 정황이 됩니다. 필요하다면 요구서면에 기재된 목적을 벗어나는 부분만 제외하고 일부 자료만 제공하겠다고 서면으로 회신해 기록을 남기는 것도 방법입니다.

  • 요구 목적과 요구 범위가 논리적으로 대응하는지 먼저 대조

  • 목적 달성에 불필요한 부수 자료(전체 소스코드, 원가 상세 내역 등)는 별도 요청 시 재검토

  • 범위를 넘는 요구에는 서면으로 축소 제공 의사를 회신해 기록 남기기

비밀유지계약 체결 의무

상생협력법은 위탁기업과 수탁기업이 기술자료를 제공할 때 그 비밀유지에 관한 계약을 서면으로 체결하도록 의무화합니다. 이 계약에는 자료의 사용 목적과 범위, 보관 및 파기 방법, 제3자 제공 금지, 위탁 종료 후 반환·폐기 의무 같은 내용이 담겨야 실질적인 보호 장치로 기능합니다. 계약서 없이 구두로 비밀은 지키겠다는 약속만 받아둔 상태에서 자료를 넘기면, 나중에 유출이 확인돼도 계약 위반을 근거로 대응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 기술자료를 요구·수령하면 그 자체로 상생협력법 위반이 되어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됩니다. 뒤에서 살펴볼 실제 사례에서도 서면 미교부와 함께 비밀유지계약 미체결이 함께 지적됐습니다. 수탁기업 입장에서는 위탁기업이 비밀유지계약 체결을 미루면서 자료부터 달라고 하는 경우, 계약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자료 제공을 유보하겠다고 명확히 밝혀두는 것이 이후 분쟁에서 유리한 근거가 됩니다.

기술자료를 제공하기 전 서면 비밀유지계약을 먼저 요구하는 것은 협력업체의 권리이며, 계약 체결 전 자료 제공을 유보해도 위탁 거절로 취급되지 않는다.

기술자료 유용 금지 — 요구 이후의 별도 규제

정당한 사유가 있어 적법하게 기술자료를 받았더라도, 그 이후의 사용 방식은 별도로 규제됩니다. 상생협력법은 위탁기업이 제공받은 기술자료를 애초 요구 목적 범위를 벗어나 자기 또는 제3자를 위해 사용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요구 단계의 적법성과 사용 단계의 적법성은 서로 다른 문제이며, 요구가 정당했다고 해서 이후 사용까지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실무에서 가장 자주 문제되는 유형은 구매 단가를 낮추기 위해 협력업체를 이원화하면서, 기존 협력업체가 제공한 도면을 참고해 유사한 도면을 만들어 경쟁 협력업체에 넘기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유용된 자료가 경쟁사로 흘러가면 원래 자료를 제공한 협력업체는 기술 경쟁력을 잃고, 해당 위탁기업과의 거래 자체도 위태로워집니다. 상생협력법은 이런 기술자료 유용행위에 대해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을 두어, 단순 원상회복을 넘어서는 제재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기술자료를 적법하게 받았어도 요구 목적 범위를 벗어나 쓰거나 제3자에게 넘기면 별도의 유용행위이며, 이에 대해서는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상생협력법과 하도급법의 관계 — 최근 집행 사례로 본 경향

기술자료 보호 규정은 상생협력법과 하도급법 양쪽에 비슷하게 마련돼 있어 혼동하기 쉽습니다. 하도급법은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사이의 하도급거래로 정의되는 관계에 적용되고, 상생협력법은 위탁기업과 수탁기업 사이의 제조위탁·용역위탁 등 관계 전반에 적용됩니다. 하도급법이 정한 하도급거래의 정의 요건을 충족하는 거래에는 통상 하도급법이 우선 적용되고, 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위탁 관계에서는 상생협력법이 보호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다룬 사례들도 이 구도를 보여줍니다. 2026년 8월 공정위는 경동나비엔이 협력업체가 제출한 온도센서 도면을 참고해 만든 자체 도면을 경쟁업체에 제공한 행위 등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5억원을 부과했고, 2026년 6월에는 우진산전이 기술자료를 요구하며 법정 서면을 교부하지 않고 비밀유지계약도 체결하지 않은 데 대해 과징금 1억 2,600만원을 부과받았습니다. 두 사건 모두 하도급법 적용 사안으로 처리됐지만, 문제된 행위의 패턴 — 서면 미교부, 비밀유지계약 누락, 유용 후 경쟁사 제공 — 은 상생협력법이 규율하는 위탁 관계에서도 그대로 반복됩니다. 어느 법이 적용되는 거래인지와 별개로, 위탁기업이 지켜야 할 절차의 핵심은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도급법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위탁 거래라도 기술자료 요구·유용 문제는 상생협력법으로 규율되며, 최근 공정위 사례들이 보여주는 위반 패턴은 두 법 모두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수탁기업의 대응 — 거부·조건부 제공·임치제도·분쟁조정

정당한 사유 없이 자료를 요구받았다면, 수탁기업은 우선 요구서면을 요청해 그 목적과 근거를 명확히 밝히도록 요구할 수 있습니다. 서면 자체가 오지 않거나 목적이 모호하다면 이는 그 자체로 정당한 사유 결여를 뒷받침하는 정황이 됩니다. 자료 제공을 거부한다고 해서 위탁 계약 자체가 곧바로 해지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근거 없는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쪽이 나중에 유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스스로 방어 근거를 없애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자료를 아예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비밀유지계약 선체결과 목적범위 명시를 조건으로 내걸고 제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상생협력법이 마련한 기술자료 임치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실질적인 방어 수단이 됩니다. 수탁기업이 자신의 기술자료를 지정된 임치기관에 미리 맡겨두면, 이후 분쟁이 생겼을 때 그 임치물의 내용대로 자신이 기술을 개발했다는 사실이 추정되는 효과가 있고, 위탁기업은 수탁기업의 파산·폐업 등 사전에 합의된 사유가 아닌 이상 임치기관으로부터 그 자료를 넘겨받을 수 없습니다. 이미 분쟁이 발생했다면 소송에 앞서 분쟁조정 절차를 신청해 비교적 신속하게 시정을 구하는 방법도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 요구서면 미비 시 목적·범위 명시를 먼저 요청

  • 제공 조건으로 비밀유지계약 선체결 요구

  • 기술자료 임치제도로 개발사실 추정효과 확보

  • 유용 정황 확인 시 분쟁조정 신청으로 신속 대응

위반 시 제재와 손해배상 — 위탁기업의 리스크

상생협력법을 위반한 위탁기업에게는 여러 층위의 제재가 따릅니다. 정당한 사유 없는 요구나 요구서면 미교부, 비밀유지계약 미체결 같은 절차 위반에는 과태료가 부과되고,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시정명령과 함께 그 명칭과 위반 요지가 공표될 수 있습니다.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로 더 무거운 형사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위탁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입니다.

기술자료를 유용한 경우에는 앞서 본 대로 손해액의 최대 5배에 이르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까지 질 수 있습니다. 손해액 산정이 어려운 사안에서는 법원이 합리적인 실시료나 침해자가 얻은 부정이득액을 기준으로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도 있어, 수탁기업이 구체적인 손해 규모를 낱낱이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상이 거부되지는 않습니다. 위탁기업 입장에서 보면, 자료 요구 단계에서부터 정당한 사유를 서면으로 남기고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해두는 절차 준수가 결국 이런 무거운 리스크를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위탁기업이 기술자료를 요구하면 무조건 거부할 수 있나요?

A. 무조건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위탁 목적 달성에 절차적·기술적으로 불가피한 정당한 사유가 있고 그 내용이 서면으로 교부됐다면 협조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그 사유와 요구 범위가 실제로 대응하는지는 수탁기업이 먼저 검토할 수 있습니다.

Q. 비밀유지계약 없이 자료부터 요구하면 어떻게 하나요?

A. 비밀유지계약 체결은 상생협력법상 위탁기업의 의무이므로, 계약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자료 제공을 보류하겠다는 뜻을 서면으로 밝혀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를 무시하고 자료를 요구·수령하면 그 자체로 위탁기업의 위반 사유가 됩니다.

Q. 기술자료 임치제도는 어떤 경우에 도움이 되나요?

A. 분쟁이 생겼을 때 누가 먼저 그 기술을 개발했는지를 다투는 상황에서 특히 유용합니다. 미리 임치해 둔 자료는 그 내용대로 개발했다는 사실을 추정받을 수 있어, 입증 부담을 상당히 줄여줍니다.

Q. 이미 유용된 것 같은데 손해액을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A. 손해액 입증이 성질상 극히 곤란한 경우 법원이 여러 사정을 고려해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액수를 스스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상 청구 자체가 막히지는 않습니다.

Q. 하도급법 적용 대상이 아닌 거래인데도 보호받을 수 있나요?

A. 하도급법상 하도급거래 정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위탁기업과 수탁기업 사이의 위탁 관계라면 상생협력법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두 법의 적용 대상이 겹치는 경우도 있어, 구체적인 거래 형태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요구서면을 받았는데 목적이 모호하게만 적혀 있습니다.

A. 목적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은 서면은 정당한 사유 요건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목적을 더 구체적으로 밝혀달라고 서면으로 요청하고, 그 회신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이후 대응에 도움이 됩니다.

맺음말

위탁기업의 기술자료 요구에 무조건 응하거나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둘 다 정답이 아닙니다. 정당한 사유가 절차적·기술적 불가피성으로 좁게 인정된다는 점, 요구는 최소한의 범위로 제한된다는 점, 비밀유지계약 체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하나씩 확인하는 것이 협력업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어입니다.

자료를 이미 넘긴 뒤에 유용 정황이 드러났다면 손해액의 최대 5배에 이르는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규정이 마련돼 있는 만큼, 요구서면·비밀유지계약·거래 기록을 평소에 잘 보관해두는 것이 실제 분쟁에서 결정적인 근거가 됩니다. 시흥 시화·정왕이나 이천 부발처럼 협력업체가 밀집한 산업단지에서 위탁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이라면, 요구서면을 받은 시점에 그 정당성부터 짚어보고 대응 방향을 정하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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