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로부터 갑자기 “조사를 받아야 하니 출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으면, 우선 혼자 출석해 무슨 일인지 들어본 뒤 문제가 커지면 변호사를 선임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형사사건에서 최초 피의자신문은 단순히 수사기관에 자신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는 자리가 아닙니다. 첫 조사에서 이루어진 진술은 수사기록에 남고, 이후 수사기관이 사건을 바라보는 방향과 추가 수사의 범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억울하다는 생각만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조사에 출석하여 기억나는 대로 답변하면 유리한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거나 객관적인 자료와 다른 진술을 하여 오히려 불필요한 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첫째, 출석요구를 받았다면 혐의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경찰로부터 출석요구를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경찰이 처음 제시한 날짜에 곧바로 출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변호인 선임이나 자료 확인 등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담당 수사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합리적인 범위에서 출석일 조정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요구를 계속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피의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거나 응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체포영장이 신청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석일을 협의하면서 다음 사항을 가능한 범위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피의자인지 참고인인지
어떤 범죄혐의에 관한 조사인지
고소·고발 사건인지 수사기관이 자체적으로 인지한 사건인지
문제 되는 행위의 대략적인 일시와 내용
준비하거나 지참해야 할 자료가 있는지
고소사건에서는 피의자에게 연락하기 전 고소인 조사와 자료 검토가 상당 부분 진행됐을 수 있습니다. 피의자에게는 첫 조사이지만 수사기관은 이미 고소인의 진술과 제출자료를 토대로 질문을 준비한 상태일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따라서 “일단 가서 무슨 일인지 들어보자”거나 “경찰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떠보자”는 생각만으로 출석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조사 전에 혐의사실을 최대한 파악하고 어떤 사실관계에 관해 질문받게 될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둘째, 첫 조사 전 사실관계와 증거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피의자의 진술은 수사의 방향과 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특히 사기·횡령·배임처럼 범행 당시의 의사와 인식이 중요한 사건이나, 성범죄처럼 당사자의 진술과 사건 전후 정황이 중요한 사건에서는 어떤 질문에 어떤 취지로 답변했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조사 당시 기억에 의존해 답변했다가 이후 계좌거래 내역,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대화, CCTV 등 객관적인 자료와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사실이 확인되면 단순한 기억의 착오였더라도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사 전에는 다음 사항을 준비해야 합니다.
사건 경위를 시간순으로 정리하기
계약서·메신저·계좌 내역 등 객관적인 자료 확인하기
자신의 기억과 객관적인 자료가 일치하는지 대조하기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실과 불확실한 사실 구분하기
유리한 자료와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자료 함께 검토하기
예상 질문과 핵심 쟁점 정리하기
변호인의 조력은 조사 당일 피의자 옆에 앉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조사 전에 혐의사실과 증거관계를 분석하고, 어떤 부분을 설명하며 어떤 자료를 제출할지 준비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한번 이루어진 진술을 번복하면 설명이 필요합니다
첫 조사에서 잘못 진술했다고 해서 이후 이를 정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추가 조사에서 진술을 바로잡거나 변호인 의견서를 통해 사실관계를 보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자연스럽게 “처음에는 이렇게 진술했는데 왜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졌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특히 범죄 성립을 좌우하는 핵심 사실에 관한 진술이 반복적으로 변경되면 단순한 기억의 착오가 아니라 객관적인 증거를 확인한 뒤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첫 조사시 말을 많이 하거나 수사관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것보다 다음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은 추측하여 답하지 않기
확인이 필요한 부분은 자료를 확인한 뒤 답변하겠다고 밝히기
질문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다시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기
진술조서가 자신의 답변 취지와 일치하는지 꼼꼼하게 확인하기
사실과 다른 표현이 기재됐다면 수정이나 추가 기재를 요구하기
필요한 경우 개별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하거나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부분을 진술하고 어떤 부분에 대해 진술을 유보할지는 사건의 내용과 확보된 증거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넷째, 첫 조사는 향후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입니다
변호인이 조사에 참여하는 이유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수사관의 질문을 통해 수사관이 무엇을 의심하고 있고 어떤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보이는지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수사관이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사실, 특정한 일시와 장소를 전제로 하는 질문, 피의자가 예상하지 못한 거래나 대화에 관한 질문은 수사의 방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변호인은 조사 과정에서 다음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부당하거나 유도하는 질문에 이의 제기
피의자에게 필요한 법률적 조언 제공
질문과 답변의 취지가 조서에 정확히 기재되는지 확인
수사기관의 혐의구조와 확보 증거 분석
추가 조사와 자료 제출의 필요성 검토
조사 후 변호인 의견서와 방어자료 준비
따라서 첫 조사는 단순히 질문에 답하고 끝나는 절차가 아니라, 이후 증거 제출과 변호인 의견서 및 추가 조사 대응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건에 첫 조사부터 변호인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고 혼자 경찰 조사를 받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사건이 단순하고 사실관계에 다툼이 거의 없다면 첫 조사부터 변호인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건은 첫 조사 전부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필요성이 큽니다.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사건
사실관계와 자금 흐름이 복잡한 사건
상대방과 진술이 엇갈리는 사건
압수수색이나 디지털포렌식이 이루어진 사건
성범죄·사기·횡령·배임 등 진술의 의미가 중요한 사건
구속 가능성이 있거나 피해 규모가 큰 사건
직장이나 자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
실무에서는 첫 조사를 마친 뒤 “질문의 의미를 몰라 그렇게 답했다”, “자료를 확인해 보니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고 말하며 변호인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잘못된 진술을 바로잡기 위한 변론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정확하고 신중하게 진술하는 것과 이미 기록된 진술을 사후에 설명하고 정정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경찰의 출석요구를 받았다면 “변호사를 선임할 정도로 큰 사건인가”를 먼저 고민하기보다, 자신이 어떤 혐의를 받고 있으며 첫 조사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사건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형사사건의 대응은 첫 조사가 끝난 뒤가 아니라 경찰로부터 첫 출석요구를 받은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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