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음주 후 벌어진 사건에서 “그날 일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는 진술이 수사와 재판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상담한 분들 중에는 “그렇게 많이 마셔서 필름이 끊겼으니, 제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도 몰랐던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조사에 임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사가 진행되면, 기억이 없다는 진술만으로는 책임을 면하기는커녕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알코올 블랙아웃을 형법상 심신상실과 곧바로 동일시하지 않고, 기억의 소실 여부가 아니라 사물을 변별하고 스스로 행동을 통제할 능력이 실제로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알코올 블랙아웃이 의학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형법상 심신상실·심신미약과는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 각각의 입장에서 이 구분이 어떤 법적 의미를 갖는지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알코올 블랙아웃은 의학적 기억장애일 뿐, 법적 심신상실과 곧바로 같지 않습니다
블랙아웃은 ‘기억이 안 난다’는 뜻이지, ‘판단력이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의학적으로 알코올 블랙아웃은 짧은 시간에 혈중알코올농도가 급격히 올라가면서 뇌에서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는 기능이 일시적으로 차단되어, 당시 있었던 일을 나중에 전혀 떠올리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는 의식 자체가 완전히 꺼지는 패싱아웃과는 다른 개념으로, 블랙아웃 상태에서도 걷고 말하고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는 등 겉으로는 평소와 비슷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 두 개념을 혼동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기억이 안 난다”는 진술은 그 사람이 당시 사물을 변별하고 스스로 행동을 통제할 능력이 있었는지를 직접 증명해 주지 않습니다. 형사법정에서는 기억의 유무가 아니라, 행위 당시의 판단능력과 통제능력이 실제로 어느 정도였는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이 구분은 정반대의 두 상황에서 각각 문제됩니다. 하나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줄이기 위해 블랙아웃을 근거로 형법 제10조의 심신상실·심신미약을 주장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가 블랙아웃 상태에서 성적 침해를 당해 그 행위가 형법 제299조의 준강간·준강제추행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는 경우입니다. 같은 ‘심신상실’이라는 표현이 쓰이지만, 적용되는 국면과 판단 기준은 전혀 다릅니다.
블랙아웃은 ‘기억의 문제’이고, 심신상실은 ‘판단·통제능력의 문제’입니다. 두 개념을 같은 것으로 전제하면 법적 결론을 완전히 다르게 짚게 됩니다.
2. 가해자의 “기억이 없다”는 주장은 형법 제10조의 심신상실·심신미약과 다릅니다
스스로 취해 저지른 행위는 오히려 감경이 배제될 수 있습니다.
형법 제10조 제1항은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사람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제2항은 그 능력이 미약한 사람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2018년 법 개정 전에는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반드시 감경해야 했지만, 지금은 법원이 사안에 따라 감경 여부를 판단하는 임의적 감경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형법 제10조 제3항은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법리로, 스스로 술을 마셔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를 만들었다면 그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 심신장애로 인한 감경을 주장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형법 제10조 제3항의 규정은 고의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행위만이 아니라 과실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행위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서 위험의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도 그 적용대상이 된다(대법원 1992. 7. 28. 선고 92도999 판결).
이 법리는 고의로 취한 경우뿐 아니라, 평소 음주 후 통제력을 잃는 경향을 알면서도 위험을 예견하지 못한 과실의 경우까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실무적으로 “그렇게 마시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는 항변은 받아들여지기 어렵고, 오히려 평소 음주 습관과 과거 경험은 위험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정황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 통제력을 잃을 것을 알면서 마신 술이라면, “기억이 없다”는 말은 책임을 줄이는 방패가 아니라 오히려 위험을 예견했다는 정황이 될 수 있습니다.
3. 피해자가 블랙아웃 상태였다면 준강간·준강제추행의 항거불능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았어도 저항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면 항거불능입니다.
형법 제299조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거나 추행한 경우, 강간·유사강간·강제추행과 같은 형으로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도 항거불능 상태를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으로 심리적·물리적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0. 5. 26. 선고 98도3257 판결).
과거에는 피해자가 의식을 완전히 잃은 이른바 패싱아웃 상태였는지가 쟁점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은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은 블랙아웃 상태의 피해자에 대해서도 항거불능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해, 판단 기준을 한층 명확히 했습니다.
피해자가 의식상실 상태에 빠져 있지는 않지만 알코올의 영향으로 의사를 형성할 능력이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행위에 맞서려는 저항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상태였다면 항거불능에 해당한다(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실제 재판에서는 “기억이 안 난다”는 진술 하나만으로 항거불능 여부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당시 음주량과 음주 속도, 경과한 시간, 평소 주량, 평소 음주 후 기억장애를 겪은 적이 있는지, CCTV나 목격자를 통해 확인되는 당시의 언동, 가해자와의 관계와 만나게 된 경위, 성적 접촉의 장소와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판단합니다.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았더라도, 알코올의 영향으로 저항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다면 준강간·준강제추행의 항거불능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4. 심신상실 항변이 받아들여지는지에 따라 처벌 수위가 크게 달라집니다
가해자 쪽 감경 여부와 피해자 쪽 형량, 두 갈래로 갈립니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심신상실이 인정되면 아예 처벌받지 않고,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형이 감경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위험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음주한 경우에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법리에 따라 이러한 감경 자체가 배제되어, 정상적인 책임능력자와 동일하게 처벌받게 됩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준강간이 인정되면 형법 제297조가 준용되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준강제추행이 인정되면 형법 제298조가 준용되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미성년자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거나 특정 가중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형이 더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다만 항거불능 여부를 다투는 사건에서는 진술의 신빙성과 당시 정황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자료의 유무에 따라 결론이 크게 달라집니다. 형사처벌과 별개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함께 문제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5. 블랙아웃이 쟁점이 되면, 수사부터 재판까지 이렇게 진행됩니다
기억을 다투기 전에, 객관적 정황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블랙아웃이 쟁점이 되는 사건은 통상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고소·입건 → ②피의자·피해자 조사(음주량과 경과 시간, 평소 주량 등에 대한 구체적 진술 확보) → ③검찰(수원지방검찰청) 송치 및 처분 → ④기소되면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여부가 쟁점이 되면 CCTV 감정, 진술분석 등 추가 심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억이 온전하지 않은 사건일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워집니다. 아래 순서로 자료부터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건 당일의 음주량·음주 속도·경과 시간을 시간대별로 정리합니다(영수증, 카드 결제내역, 동행자 진술 등).
CCTV 영상이나 목격자 진술 등 객관적 자료를 확보해 당시의 언동과 의사표현 여부를 확인합니다.
평소 음주 후 기억장애를 겪은 적이 있는지, 지병이나 복용 중인 약물 등 개인적인 사정을 함께 정리합니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알코올 블랙아웃·심신상실 쟁점에 전문성 있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형사절차 대응 방향을 초기 단계에서부터 정확하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술자리에서 벌어진 일은 당사자 스스로도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상황을 정리하기 어려워,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임을 추궁받는 쪽 입장에서는 “기억이 없다”는 사정만으로는 방어가 되지 않으며, 스스로 위험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가 오히려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피해를 주장하는 쪽 입장에서도,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이 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당시 정황을 뒷받침할 자료를 얼마나 확보하는지가 결과를 좌우합니다.
저는 알코올이 얽힌 형사사건에서 책임을 추궁받는 쪽과 피해를 주장하는 쪽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같은 “기억이 없다”는 사정이 사안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블랙아웃과 심신상실을 혼동한 채 대응 시점을 놓치면, 되돌리기 어려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애매하다면,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블랙아웃 상태였다는 이유만으로 심신상실이 인정되나요?
A. 아닙니다. 블랙아웃은 기억이 저장되지 않는 현상일 뿐이고, 심신상실은 행위 당시 사물을 변별하고 스스로 행동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는지로 판단합니다. 기억이 없다는 진술만으로는 심신상실이 곧바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Q. 제가 스스로 취해서 저지른 일인데 심신미약으로 감경받을 수 없나요?
A. 위험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자의로 술을 마셔 심신장애를 야기했다면, 형법 제10조 제3항에 따라 감경 규정 자체가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평소 음주 후 통제력을 잃는 경향을 알고 있었는지가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됩니다.
Q. 저는 완전히 의식을 잃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항거불능이 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대법원은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았더라도 알코올의 영향으로 저항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다면 항거불능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의식상실 여부가 아니라 실제 저항이 가능했는지가 기준입니다.
Q. 가해자가 “저도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면 처벌이 약해지나요?
A.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 취한 상태를 만들었다는 사정은 오히려 위험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정황으로 쓰일 수 있어, 심신상실·심신미약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준강간과 준강제추행은 형량이 어떻게 다른가요?
A. 준강간은 형법 제297조가 준용되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준강제추행은 형법 제298조가 준용되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가중 사유가 있으면 특례법에 따라 형이 더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Q. 블랙아웃이 쟁점인 사건에서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할 자료는 무엇인가요?
A. 당일의 음주량과 경과 시간을 뒷받침하는 자료(영수증, 카드내역, 동행자 진술)와 CCTV·목격자 진술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확보하기 어려워지므로 최대한 이른 시점에 정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