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손해가 발생했을 때, 등기부에 이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의사결정을 내린 사람이 책임에서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이사가 결재했지만 실제로는 대주주나 오너 일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정황이 드러나면, 상법은 그 지시자에게도 이사와 동일한 배상책임을 지웁니다. 등기이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송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고 안심하다가, 실질적 업무집행지시자로 인정되어 이사와 연대해 거액을 배상하게 되는 사례가 드물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상법 제401조의2가 규정한 업무집행지시자 등의 책임이 어떤 요건에서 인정되는지, 법원이 무엇을 근거로 등기 없는 사주를 이사와 같은 책임 주체로 보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상법 제401조의2가 포착하는 세 가지 유형 — 업무집행지시자·무권대행자·표현이사
회사 경영에 실제로 관여하면서도 등기부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는 사람들을 규율하기 위해 상법은 제401조의2(업무집행지시자 등의 책임)를 두고 있습니다. 이 조문은 이사가 아니면서도 이사와 사실상 같은 지위에서 회사 업무에 관여하는 자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포착합니다. 첫째는 회사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이사에게 업무집행을 지시한 자(제1항 제1호, 흔히 업무집행지시자), 둘째는 이사의 이름으로 직접 업무를 집행한 자(제2호, 무권대행자), 셋째는 이사가 아니면서 명예회장·회장·사장·부사장·전무·상무·이사 등 업무집행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해 실제로 업무를 집행한 자(제3호, 표현이사)입니다. 세 유형은 요건이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등기부상 이사 지위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는 책임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무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은 제1호 업무집행지시자입니다. 대주주나 창업자, 계열사 회장 등이 공식 직함 없이도 인사·자금·영업 전반에 관한 실질적 결정권을 쥐고 있으면서, 등기이사에게 특정 업무를 하도록 지시하고 그 지시에 따라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반면 제2호 무권대행자는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이사의 이름을 빌려 직접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이고, 제3호 표현이사는 직함만으로 외부에 업무집행권한이 있는 것처럼 행세하며 실제로 업무를 처리한 경우입니다.
등기 없는 실질 사주가 이사와 함께 책임지는 이유 — 이사로 의제하는 근거
상법 제401조의2 제1항이 정한 위 세 유형에 해당하면, 같은 조 제2항에 따라 그 자는 제399조(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제401조(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제403조(주주의 대표소송)의 적용에 있어 이사로 본다는 효과가 주어집니다. 즉 등기이사가 아니더라도, 그 지시하거나 집행한 업무에 관해서는 법률상 이사와 똑같은 지위에서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 조문이 신설된 배경에는, 기업집단 총수나 대주주가 회사 경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정작 등기이사로는 이름을 올리지 않는 방식으로 손해배상책임을 회피해 온 관행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바지사장을 앞세워 형식상 결재라인을 만들어두고 실질적인 의사결정은 뒤에서 내리는 구조에서는, 회사나 채권자가 손해를 입어도 등기이사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어 정작 실질적 지배자는 책임에서 자유로운 결과가 됐기 때문입니다.
이 규정의 효과는 단순히 함께 책임진다는 선언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시자와 이를 실행한 이사는 그 지시하거나 집행한 업무에 관해 연대하여 회사 또는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집니다(제401조의2 제1항 본문). 이사만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배상능력이 부족해 실익이 없는 경우, 실질적으로 지시를 내린 대주주나 총수를 공동피고로 끌어들여 함께 책임을 묻는 방식이 실무에서 활용되는 이유입니다.
등기이사가 아니라도 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해 업무집행을 지시했다면, 상법은 그 지시자를 이사로 의제해 연대배상책임을 지운다.
법원이 보는 판단기준 — 영향력을 이용한 지시를 어떻게 인정하나
제1호 업무집행지시자로 인정되려면 두 가지가 함께 확인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그 사람이 회사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영향력을 이용하여 이사에게 구체적인 업무집행을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대주주라는 지위나 회장이라는 직함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로 특정 업무에 관해 이사의 판단을 대신하거나 이사의 재량을 사실상 배제할 정도로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됩니다. 지분율, 인사권 행사 이력, 자금집행 결재라인에서의 실질적 관여 정도, 내부 문서나 메신저에 남은 지시 정황 등이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로 활용됩니다.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20다236848 판결은 이와 관련해 업무집행지시자 등의 손해배상책임이 상법에 의해 이사로 의제되는 데 따른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판결은 그 손해배상채권에 일반 불법행위책임의 단기소멸시효를 정한 민법 제766조 제1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데, 그 논거가 바로 업무집행지시자의 책임은 단순 불법행위책임이 아니라 상법상 이사의 책임과 같은 성질을 갖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법원이 이 책임을 사실상의 관여에 그치지 않고 법률상 이사에 준하는 지위로 보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판단입니다.
표현이사 유형의 특칙 — 명칭 사용만으로 책임이 인정되는 이유
제1호와 달리 제3호 표현이사는 영향력을 별도의 요건으로 하지 않습니다. 명예회장·회장·사장·부사장·전무·상무 등 업무집행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 자체가 이미 대외적으로 업무집행권을 표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직함을 사용하면서 실제로 업무를 집행한 사실만 확인되면 책임이 인정됩니다. 대법원 2009. 11. 26. 선고 2009다39240 판결은 그룹 회장이 업무집행지시자에 해당해 이사와 동일한 책임을 진다고 보면서, 회계본부장 등 직함을 사용해 실제 업무를 처리한 임원에 대해서도 법률상 이사가 아니라면 표현이사로서 이사와 같은 책임을 진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례가 실무에 던지는 함의는, 등기이사가 아닌 임원이라도 명함이나 결재란에 회사 업무를 집행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직함을 쓰고 실제로 그 업무를 처리해 왔다면, 나중에 등기이사가 아니었다는 항변만으로는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특히 오너 일가가 은퇴 이후에도 명예회장 명칭을 유지한 채 결재나 지시에 계속 관여하는 경우, 공식적으로 경영에서 물러났다는 사정만으로는 표현이사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 바지사장 뒤의 실질 사주
실무에서 흔히 문제되는 구조는 이렇습니다. 실질적 지배주주나 창업자가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거나 애초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채, 가족이나 측근을 등기이사로 앉혀 형식상 결재 절차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금집행, 신규 계약 체결, 인사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그 실질 사주가 직접 지시하고, 등기이사는 이미 정해진 결정에 서명만 하는 역할에 그칩니다. 이런 구조에서 무리한 자금 대여나 부실한 투자 결정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면, 등기이사만 상대로는 손해 전부를 배상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등기이사가 실제로는 독자적 판단 없이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는 사정이 밝혀지면, 상법 제401조의2에 따라 그 지시를 내린 실질 사주도 이사와 연대하여 배상책임을 지게 됩니다.
반대로 지시를 받은 등기이사 입장에서도 이 조문은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이 실질 사주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는 사정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면, 배상책임의 분담 비율을 다툴 때 그 실질 사주의 관여 정도가 함께 고려될 수 있습니다. 다만 등기이사라는 지위 자체에서 나오는 선관주의의무·감시의무가 지시를 따랐다는 사정만으로 당연히 면제되는 것은 아니므로, 지시에 따랐다는 사실이 곧 이사 자신의 책임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지분율·인사권 행사 이력 — 실질적 영향력을 뒷받침하는 정황
내부 결재문서·메신저 기록 — 구체적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하는 핵심 증거
등기이사의 독자적 판단 여부 — 단순 서명인지 실질적 심의를 거쳤는지
명함·직함 사용 이력 — 표현이사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자료
연대책임의 범위와 소멸시효 — 제399조·제401조·제403조가 함께 적용되는 구조
업무집행지시자 등에게 인정되는 책임은 단일하지 않습니다. 회사 자체가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제399조에 따른 회사에 대한 책임이, 회사 외부의 채권자나 거래상대방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제401조에 따른 제3자에 대한 책임이 각각 적용됩니다. 또한 회사가 스스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때 소수주주가 대신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제403조 대표소송의 피고 적격도 업무집행지시자에게 그대로 미칩니다. 즉 손해를 입은 주체가 회사인지 제3자인지, 소송을 제기하는 주체가 회사인지 주주인지에 따라 적용 조문은 달라지지만, 업무집행지시자는 어느 경우에도 이사와 같은 지위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소멸시효 역시 중요한 쟁점입니다. 앞서 본 대법원 2020다236848 판결처럼, 업무집행지시자의 책임이 이사로 의제되는 데 따른 책임으로 인정되면 일반 불법행위책임에 적용되는 단기소멸시효, 즉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불법행위일로부터 10년을 정한 민법 제766조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손해가 발생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실질 사주의 관여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소멸시효 판단은 뒤늦게 책임을 추궁하려는 회사나 채권자에게 실질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실무에서 책임을 추궁하거나 방어하는 법 — 증거와 절차
업무집행지시자 책임을 추궁하려면 결국 영향력과 구체적 지시라는 두 요건을 뒷받침할 자료를 갖추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사회 의사록이나 품의서에 남은 결재 흔적, 실질 사주 명의로 오간 이메일·메신저 대화, 자금집행 승인 과정에서의 서명이나 구두 지시를 뒷받침하는 관계자 진술 등이 대표적입니다. 소송 초기 단계에서 이런 자료를 확보해 두지 않으면, 실질 사주 측이 경영에 관여한 바 없다고 다투었을 때 입증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실질 사주로 지목된 입장에서 방어하려면, 문제된 의사결정이 등기이사의 독자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고 자신은 자문이나 의견 개진에 그쳤다는 점, 또는 지분 보유나 직함 사용이 있었더라도 그 업무에 관해서는 구체적 지시를 한 사실이 없었다는 점을 자료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단순히 등기이사가 아니었다는 항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등기이사가 아니면 회사 손해배상 소송의 피고가 될 수 없나요?
A. 아닙니다. 상법 제401조의2에 해당하는 업무집행지시자·무권대행자·표현이사는 등기 여부와 관계없이 이사와 같은 지위에서 피고가 될 수 있습니다. 등기부만 확인하고 책임 주체를 판단하면 실질적 지시자를 놓칠 수 있습니다.
Q. 대주주라는 사실만으로 업무집행지시자 책임을 지나요?
A. 아닙니다. 단순한 지분 보유나 대주주 지위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영향력을 이용해 이사에게 구체적인 업무집행을 지시한 사실이 함께 인정되어야 합니다. 지분율이 높다는 사정은 영향력을 뒷받침하는 정황일 뿐, 그 자체가 책임 요건은 아닙니다.
Q. 명예회장 직함만 쓰고 실제 업무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면 책임을 지나요?
A. 표현이사 책임은 명칭 사용에 더해 실제로 업무를 집행한 사실이 함께 확인되어야 인정됩니다. 명함에만 직함을 올려두고 실제 결재나 지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면 책임 요건을 충족하지 않을 수 있으나, 실무에서는 관여 여부 자체가 다투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이사와 업무집행지시자 중 누구에게 먼저 청구해야 하나요?
A. 두 사람은 연대책임을 지므로 회사나 제3자는 둘 중 누구에게든, 또는 둘 모두에게 함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사의 배상자력이 부족한 경우 실질 사주를 공동피고로 삼아 함께 청구하는 방식이 실무에서 흔히 활용됩니다.
Q. 업무집행지시자 책임에도 소멸시효가 짧게 적용되나요?
A. 대법원 2020다236848 판결에 따르면 이 책임은 이사로 의제되는 데 따른 책임이어서 일반 불법행위책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손해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 실질 사주의 관여가 드러난 경우에도 책임 추궁의 여지가 남을 수 있습니다.
Q. 대표소송으로도 업무집행지시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상법 제403조 대표소송의 피고 적격이 업무집행지시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므로, 회사가 스스로 소를 제기하지 않을 때 일정 요건을 갖춘 소수주주가 실질 사주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맺음말
등기이사가 아니라는 사정은 더 이상 손해배상책임을 피하는 안전판이 되지 못합니다. 상법 제401조의2는 실질적으로 회사를 지배하며 업무집행을 지시하거나 그에 준하는 직함을 사용해 온 사람에게 이사와 동일한 연대책임을 지우고, 판례 역시 그 책임을 이사에 준하는 것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결재라인만 보고 등기이사만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면, 정작 실질적인 의사결정자를 놓쳐 손해를 온전히 회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실질 사주의 관여 정도와 지시 여부를 뒷받침하는 자료 확보는 소송에서 책임 소재를 가르는 핵심입니다. 수원지방법원에 접수되는 기업 손해배상 사건에서도 결재문서와 내부 소통기록이 승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은 만큼, 분쟁이 예상되는 단계라면 관련 자료부터 정리해 두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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