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부모님이 치매나 뇌졸중으로 판단 능력을 잃으신 뒤 병원비를 내려고 은행에 갔는데, "본인 의사 확인이 안 되면 처리할 수 없다"는 말만 듣고 돌아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도 소용없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성년후견 제도입니다. 왜 필요한지, 어떤 유형을 고를지, 무엇을 준비할지 결론부터 정리했습니다.
Q. 자녀인데 왜 부모님 예금을 못 찾나요?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법정대리권이 생기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성년인 부모님의 재산은 어디까지나 부모님 본인의 것이고, 본인이 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면 그 재산을 대신 처분할 사람은 가정법원이 선임한 후견인뿐입니다. 대리권 없이 부모님 예금을 옮기거나 인감을 만들어 부동산을 처분하면 병원비에 썼더라도 다른 형제가 문제 삼으면 횡령이나 사문서 위조 같은 형사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민법 제9조는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등이 청구하면 가정법원이 성년후견개시 심판을 하도록 정하고 있고, 후견인은 가족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 직권으로 선임합니다(제936조 제1항). 가족 간 갈등이 우려되면 법원이 변호사 등 전문가를 선임하기도 합니다.
민법 제9조(성년후견개시의 심판) ① 가정법원은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에 대하여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미성년후견인, 미성년후견감독인, 한정후견인, 한정후견감독인, 특정후견인, 특정후견감독인,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청구에 의하여 성년후견개시의 심판을 한다. ② 가정법원은 성년후견개시의 심판을 할 때 본인의 의사를 고려하여야 한다.
Q. 성년후견·한정후견·특정후견, 뭘 신청해야 하나요?
부모님의 판단 능력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에 따라 정해집니다. 성년후견은 사무 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경우(중증 치매 등)로, 후견인이 재산과 신상 전반을 포괄적으로 대리하고 본인의 법률행위는 원칙적으로 취소할 수 있게 됩니다(일용품 구입 등 일상 거래는 제외, 제10조). 한정후견은 능력이 '부족'한 경우(경도 인지장애 등)로, 법원이 정한 범위에서만 후견인의 동의·대리가 필요하고 나머지는 본인이 그대로 합니다. 특정후견은 보험금 수령이나 상속재산 분할처럼 특정 사무에 한해 일시적으로 후원받는 유형으로, 본인의 행위능력은 전혀 제한되지 않고 본인 의사에 반해 개시할 수도 없습니다. "금치산자 취급하느냐"는 반발이 나오곤 하지만, 금치산·한정치산 제도는 2013년 7월 1일 폐지되었고 지금의 후견은 남은 판단 능력을 존중하면서 부족한 부분만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상태가 경미하다면 한정후견·특정후견이 맞을 수 있으니 유형 선택부터 신중해야 합니다.
민법 제14조의2(특정후견의 심판) ② 특정후견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할 수 없다. ③ 특정후견의 심판을 하는 경우에는 특정후견의 기간 또는 사무의 범위를 정하여야 한다.
Q. 신청하면 바로 되나요? 뭘 준비해야 하죠?
아닙니다. 부모님의 정신적 제약을 의학적으로 입증해야 하고, 원칙적으로 의사의 정신감정을 거칩니다. 가사소송법 제45조의2는 성년후견·한정후견 개시 심판 때 의사에게 정신상태 감정을 시키도록 하되, 정신상태를 판단할 다른 충분한 자료가 있으면 감정을 생략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치매 진단서와 소견서, 과거 진료기록, 인지기능 검사(MMSE 등) 결과가 핵심입니다. 청구 전에 모아 두면 별도 감정 없이 심판이 나기도 해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고, 자료가 부실하면 법원이 대학병원 등에 감정을 명해 절차가 길어집니다. 특정후견은 감정 대신 의사 등 전문가의 의견 청취로 갈음할 수 있어 문턱이 낮습니다. 절차는 부모님 주소지 가정법원에 청구서를 내고, 심문·감정을 거쳐 법원이 후견인과 대리권 범위를 정하는 순서입니다.
가사소송법 제45조의2(정신상태의 감정 등) ① 가정법원은 성년후견 개시 또는 한정후견 개시의 심판을 할 경우에는 피성년후견인이 될 사람이나 피한정후견인이 될 사람의 정신상태에 관하여 의사에게 감정을 시켜야 한다. 다만, 피성년후견인이 될 사람이나 피한정후견인이 될 사람의 정신상태를 판단할 만한 다른 충분한 자료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Q. 형제들이 "네가 재산 마음대로 하려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
후견 절차에서 가족이 가장 많이 다투는 지점이고, 법이 마련한 감독 장치를 처음부터 활용하면 막을 수 있습니다. 후견인은 취임 후 지체 없이 재산을 조사해 2개월 내에 재산목록을 작성해야 하고(민법 제941조), 가정법원은 필요하면 후견감독인을 선임해 후견인의 사무를 상시 감독하게 할 수 있습니다(제940조의4). 후견감독인이 있으면 재산조사와 목록작성도 감독인 참여 없이는 효력이 없습니다. 이 장치를 '간섭'이 아니라 '방패'로 쓰십시오. 특정 자녀가 단독 후견인이 되어 의심을 사는 구도보다, 가족 모두가 신뢰하는 변호사 등 제3자를 후견인이나 후견감독인으로 세우고 재산 관리 내역을 정기적으로 법원에 보고하는 구조를 신청 단계에서 설계해 두면 "재산을 빼돌렸다"는 다툼이 발붙일 자리가 없고 훗날 상속분쟁까지 예방됩니다.
민법 제941조(재산조사와 목록작성) ① 후견인은 지체 없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조사하여 2개월 내에 그 목록을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② 후견감독인이 있는 경우 제1항에 따른 재산조사와 목록작성은 후견감독인의 참여가 없으면 효력이 없다.
꼭 기억하세요
가장 흔한 오해는 '가족이니까 당연히 대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리권 없이 부모님 재산에 손대면 효도가 아니라 범죄로 취급될 수 있고, 이미 판단 능력을 잃으신 뒤에는 위임장도 받을 수 없습니다. 상태에 맞는 후견 유형을 고르고, 진단서·진료기록·인지검사 결과를 미리 갖추고, 후견감독인과 정기 보고 구조로 재산 관리를 투명하게 설계해 두는 것이 부모님의 존엄과 가족의 평화를 함께 지키는 길입니다.
이런 분은 상담이 필요합니다
부모님이 치매·뇌졸중 등으로 판단 능력을 잃어 병원비·요양비 마련을 위해 예금 인출이나 부동산 처분이 급한 분
어떤 후견 유형을 청구해야 할지, 어떤 의학 자료를 준비해야 감정 없이 빠르게 심판을 받을 수 있을지 설계가 필요한 분
후견인 선임을 두고 형제 간 갈등이 있어 제3자 후견인·후견감독인 등 분쟁 예방 구조를 검토하는 분
※ 위 내용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로, 구체적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실제 사건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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