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임대차 기간이 끝났는데 임대인이 “지금은 이만큼밖에 못 드리니, 나머지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며 보증금을 두 번에 나눠 주겠다고 하는 상담이 최근 부쩍 늘었습니다.
제가 상담한 임차인분들 중 상당수는 “그래도 일부라도 준다니 다행이다”, “집주인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조치 없이 이사부터 진행하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짐을 빼고 전입신고까지 옮기고 나면, “나중에 준다”던 임대인의 태도가 돌변해 연락이 뜸해지거나 “지금은 여력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임대차 종료 후 보증금 반환을 둘러싼 분쟁에서 임차인이 목적물을 넘겨줄 의무와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할 의무가 서로 동시이행관계에 있다는 법리를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고, 나머지 보증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임차인이 스스로 대항력·우선변제권을 포기하지 않도록 임차권등기명령 같은 보전 절차의 활용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보증금을 일부만 받고 나머지를 나중에 받기로 한 경우 임차인이 지금 무엇을 확인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최근 판례와 실무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보증금 전액을 받을 때까지 집을 비워줄 의무가 없습니다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의무와 임차인의 목적물 인도의무는 동시이행관계에 있어, 나머지를 받지 못했다면 이사할 의무도 없습니다.
임대차 기간이 끝나면 임차인은 집을 비워주고, 임대인은 연체차임 등을 공제한 보증금을 돌려줘야 합니다. 이 두 의무는 어느 한쪽이 먼저 이행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동시에 이행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즉 임대인이 보증금 전액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임차인도 굳이 먼저 집을 비워줄 필요가 없습니다.
실무에서는 “일단 일부라도 받았으니 절반은 이행된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동시이행관계는 채무 전부가 이행되어야 소멸합니다. 나머지 금액이 한 푼이라도 남아 있다면, 임차인은 그 나머지에 대해 여전히 목적물 인도를 거절할 수 있는 지위에 있습니다.
이 법리는 오래전부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확립해온 원칙입니다.
임대차계약의 기간이 만료된 경우에 임차인이 임차목적물을 명도할 의무와 임대인이 보증금 중 연체차임 등 당해 임대차에 관하여 명도시까지 생긴 모든 채무를 청산한 나머지를 반환할 의무는 모두 이행기에 도달하고 이들 의무 상호간에는 동시이행의 관계가 있다(대법원 1977. 9. 28. 선고 77다1241, 1242 전원합의체 판결).
따라서 “나머지는 나중에 준다”는 말은 임대인의 일방적인 제안일 뿐, 임차인이 그 조건을 받아들여야 할 법적 의무는 없습니다. 나머지 보증금을 받기 전까지는 집 열쇠를 넘기거나 관리비 정산을 마무리하지 않아도 채무불이행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보증금 전액을 받기 전까지는, 나머지를 이유로 집을 비워주지 않아도 임차인에게 불이익이 없습니다.
2. ‘나중에 준다’는 말만 믿고 먼저 나가면 우선변제권을 잃을 수 있습니다
전입신고와 점유를 먼저 풀어버리면, 받지 못한 나머지 보증금에 대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도 함께 사라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실제로는 회사 발령, 자녀 학교 문제, 다음 집 계약 등으로 임차인이 정말로 이사를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이때 “각서를 받았으니 됐다”며 아무런 보전 조치 없이 짐부터 빼고 전입신고까지 새 주소로 옮기면, 나머지 보증금에 대한 법적 지위가 크게 약해집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은 주택의 인도(점유)와 전입신고라는 두 요건을 계속 갖추고 있어야 유지됩니다. 이사를 나가면서 점유를 넘기고 전입신고까지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 시점부터 대항력이 사라집니다. 그 집이 경매·공매에 넘어가더라도 나머지 보증금에 대해 다른 채권자보다 먼저 배당받을 권리, 즉 우선변제권을 주장할 근거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각서에 서명까지 받았는데 무슨 문제냐”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사문서인 각서만으로는 등기부에 공시되는 권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임대인이 그 사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더 받거나 제3자에게 처분해버리면, 임차인은 순위에서 밀려 나머지 보증금을 온전히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커집니다.
3. 이사를 가야 한다면 임차권등기명령부터 마쳐야 안전합니다
보증금을 일부만 받았더라도 임차권등기를 먼저 마치면, 이사한 뒤에도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은 임대차가 끝났는데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이 임차주택 소재지 관할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보증금 전액이 아니라 일부라도 반환받지 못한 상태라면 신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반이라도 받았으니 신청 자격이 없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임차권등기명령이 등기부에 기입되면, 그 이후 임차인이 실제로 이사를 나가고 전입신고를 다른 곳으로 옮기더라도 종전 주택에 대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즉 점유·전입이라는 물리적 요건이 등기라는 법적 공시로 대체되는 것입니다. 신청부터 등기 완료까지는 통상 2주에서 한 달 가량 걸리므로, 이사 일정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최소한 그만큼의 시간을 두고 미리 신청해두어야 합니다.
신청서에는 임대차계약서, 나머지 보증금이 아직 미반환 상태임을 보여주는 통장 거래내역, 계약 종료 사실을 증명할 자료 등을 첨부합니다. 등기가 완료된 뒤에는 안심하고 이사를 진행하면서도, 그 집에 대한 경매·공매 절차가 진행될 경우 배당 요구 없이도 우선변제권을 주장할 수 있는 지위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사가 불가피하다면, 이사 날짜를 잡기 전에 임차권등기명령부터 신청해 대항력을 등기로 옮겨두어야 합니다.
4. ‘나중에’가 계속 미뤄지면 지연손해금과 강제집행까지 검토해야 합니다
내용증명으로 이행을 요구했는데도 미루기만 한다면, 지연손해금을 더해 지급명령이나 소송, 강제집행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나중에 준다”던 기한이 지나도록 지급이 계속 미뤄진다면, 더 이상 구두 약속에만 기대서는 안 됩니다. 우선 나머지 보증금의 액수와 지급 기한을 특정한 내용증명을 발송해, 임대인이 이행을 거절 또는 지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이 내용증명은 이후 소송이나 지급명령에서 이행지체를 입증하는 기초 자료가 됩니다.
내용증명을 보내도 반응이 없다면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별도 약정이 없다면 나머지 보증금에는 민법 제379조에 따른 연 5%의 법정이율이 지연손해금으로 붙고, 소장 부본이 송달된 다음 날부터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연 12%의 이율이 적용됩니다. 시간을 끌수록 임대인이 부담할 금액이 커지는 구조입니다.
지급명령이 확정되거나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는데도 임대인이 임의로 지급하지 않는다면, 그 집이나 임대인 명의의 다른 재산에 대해 강제경매·채권압류 등 강제집행 절차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앞서 임차권등기를 마쳐두었다면 이 단계에서도 별도 배당 요구 없이 우선변제권을 주장할 수 있어 회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내용증명으로 기록을 남기고, 이행이 계속 미뤄지면 지연손해금을 더해 지급명령·소송·강제집행 순으로 단계를 밟아야 합니다.
5. 처음부터 갚을 능력이나 의사가 없었다면 형사 고소도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각서에 서명을 받았더라도, 계약 당시 임대인에게 갚을 능력과 의사가 없었다면 단순 채무불이행이 아니라 사기죄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보증금을 나눠 주겠다고 한 뒤 계속 미루기만 하는 임대인 중에는, 애초에 임대차보증금을 다른 용도로 이미 써버렸거나 여러 세입자를 상대로 같은 방식의 지연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단순한 민사상 지급 지연을 넘어 형법 제347조 사기죄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사기죄 성립 여부는 “결국 못 갚았다”는 결과가 아니라 계약이나 각서 작성 당시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대법원은 차용금 편취 사안에서 차용 당시 변제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이후 사정 변화로 갚지 못하게 되었더라도 이는 단순한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할 뿐이라고 보면서도, 반대로 처음부터 갚을 능력이나 의사가 없었다면 사기죄가 성립한다는 취지를 밝혀왔습니다(대법원 2016. 4. 28. 선고 2012도14516 판결). 임대인의 재력, 다른 세입자들에 대한 지급 이행 여부, “나중에 준다”는 말을 반복해온 경위 등이 판단 자료가 됩니다.
형사 고소를 검토한다면 절차는 통상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고소장 접수 → ②고소인·피고소인 조사 → ③검찰(수원 관내 사건은 수원지방검찰청) 송치 및 처분 → ④기소 시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형사 고소와 별개로 민사상 보증금반환청구는 그대로 진행할 수 있고, 오히려 수사 과정에서 확보되는 자료가 민사 소송의 증거로 함께 활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소 여부를 판단하기 전, 아래 순서로 자료부터 정리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임대차계약서와 그동안 주고받은 문자·카카오톡 등에서 나머지 보증금 지급 약속과 그 지연 경위를 정리합니다.
일부 지급받은 금액과 나머지 미지급 금액을 통장 거래내역으로 특정합니다.
임대인의 다른 세입자 상대 지급 이행 여부, 등기부상 근저당·가압류 등 재산 상태 변동을 확인합니다.
이렇게 정리한 자료를 바탕으로 민사상 회수 절차와 형사 고소 가능성을 함께 검토하면, 어느 쪽이 더 실질적인 회수로 이어질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마치며
보증금을 일부라도 먼저 받으면 “그래도 진행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머지 보증금을 기다리는 임차인 입장에서는 “언제까지 얼마를 주겠다”는 약속을 구두가 아니라 문서와 통장 기록으로 남기고, 이사가 필요하다면 임차권등기명령부터 마쳐두는 것이 먼저입니다. 반대로 자금 사정상 분할 지급을 제안한 임대인 입장에서도, 지급 계획을 명확히 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지연손해금은 물론 형사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저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과, 사정상 분할 지급을 제안했다가 분쟁에 놓인 임대인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초기에 어떤 자료를 남기고 어떤 절차를 먼저 밟는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나중에 준다”는 말만 믿고 시간을 흘려보내기 전에,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보증금 일부만 받고 각서를 썼는데, 이 각서에 법적 효력이 있나요?
A. 각서 자체도 사문서로서 지급 약속의 증거가 되지만, 등기부에 공시되는 권리는 아닙니다. 임대인이 집을 처분하거나 추가 대출을 받으면 순위에서 밀릴 수 있으므로, 각서만 믿지 말고 임차권등기명령 등 별도 보전 조치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Q. 나머지 보증금을 받기 전에 이사부터 나가도 되나요?
A. 법적으로는 나머지를 받을 때까지 집을 비워주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사정상 이사가 불가피하다면, 이사 전에 반드시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등기로 옮겨두어야 안전합니다.
Q.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면 임대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을까요?
A. 임차권등기명령은 임차인의 권리를 보전하기 위한 정당한 법적 절차입니다. 오히려 등기 사실 자체가 임대인에게 신속한 지급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지연손해금은 언제부터 계산되나요?
A. 임대차 종료 후 임차인이 목적물 인도의 이행제공을 하고 임대인이 이행하지 않은 때부터 지체책임이 발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소송을 제기하면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부터는 연 12%의 이율이 적용됩니다.
Q. 임대인이 “곧 준다”는 말만 반복하며 몇 달째 미루면 사기로 고소할 수 있나요?
A. 단순히 늦어졌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애초 지급 약속 당시 변제 능력과 의사가 있었는지가 관건입니다. 다른 세입자에 대한 지급 이행 여부, 재산 상태 변동 등 정황 자료를 갖췄다면 고소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Q. 민사소송과 형사 고소를 동시에 진행해도 되나요?
A. 가능합니다. 실무적으로는 형사 고소 과정에서 확보되는 자료가 민사상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의 증거로 함께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 상황에 따라 병행하는 것이 회수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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