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만으로 소멸시효 문제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소송이 각하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재판상 청구로 인정받아 발생했던 시효중단 효력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취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민법은 이런 상황에 대비한 구제조항을 두고 있는데, 그 핵심은 '6개월'이라는 기한입니다. 이 글에서는 재판상 청구가 각하·기각·취하된 뒤에도 시효중단 효력을 지키는 방법과, 그 구제조항을 놓쳤을 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소송이 각하되면 재판상 청구의 시효중단 효력도 함께 사라진다
민법 제168조는 소멸시효를 중단시키는 사유로 재판상 청구, 압류·가압류·가처분, 승인 세 가지를 규정합니다. 그중 재판상 청구는 실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으로, 민사소송법 제265조에 따라 소장을 법원에 제출한 시점에 곧바로 시효중단 효력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한 채권자는 소장 제출 자체로 일단 급한 불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안도감은 소송이 본안 판단에 이르지 못하고 끝나는 순간 흔들립니다. 민법 제170조 제1항은 "재판상의 청구는 소송의 각하, 기각 또는 취하의 경우에는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합니다. 즉 소장을 제출해 일단 발생했던 시효중단 효력이, 그 소송이 각하 판결로 끝나는 순간 소급적으로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다는 뜻입니다. 당사자적격이 잘못됐거나 관할법원을 잘못 골랐거나 소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판결을 받으면, 소장을 제출했던 시점의 노력이 시효 계산에서는 통째로 사라지는 셈입니다.
문제는 이 사실을 소송이 진행되는 중간에는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원고 입장에서는 소를 제기해 두었으니 소멸시효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다른 절차를 미뤄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뒤 소송요건 흠결로 각하판결이 확정되면, 그 사이 소멸시효 기간이 그대로 흘러가 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채권자를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두지 않기 위해 민법이 마련해 둔 것이 바로 다음의 구제조항입니다.
각하판결을 받는 순간, 소장 제출로 얻었던 시효중단 효력은 원칙적으로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취급된다.
구제조항 — 6개월 안에 다시 나서면 최초 청구 시로 돌아간다
민법 제170조 제2항은 "전항의 경우에 6월내에 재판상의 청구, 파산절차참가,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을 한 때에는 시효는 최초의 재판상 청구로 인하여 중단된 것으로 본다"고 정합니다. 이 조항의 핵심은 단순히 시효중단이 '새로' 인정된다는 것이 아니라, 각하로 사라졌던 효력이 처음 소장을 제출했던 그 시점으로 되돌아가 인정된다는 데 있습니다. 6개월 안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만 하면, 각하로 흘러가 버린 것처럼 보였던 기간이 사실은 처음부터 중단되어 있었던 것으로 계산됩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여러 명의 채권자가 순차로 채권자대위소송을 제기한 사안에서도 이 원리를 그대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채권자 갑이 대위소송을 제기했다가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 다른 채권자 을이 같은 취지의 소송을 제기해 조정이 성립되었으며, 또 다른 채권자 병이 그로부터 열흘 남짓 뒤 같은 내용의 소를 제기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채무자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소멸시효가 최초의 재판상 청구로 중단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1. 10. 13. 선고 2010다80930 판결). 반드시 원고 본인이 직접 재소해야만 구제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권리를 두고 이어지는 절차적 조치가 6개월 안에 이어지기만 하면 최초 청구 시점이 지켜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제조항이 지켜주는 것은 '새로운 중단'이 아니라 '최초 소제기 시점으로의 소급'이다 — 6개월을 넘기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재소만이 다가 아니다 — 6개월 안에 할 수 있는 다른 조치들
민법 제170조 제2항이 규정한 조치는 재판상 청구 하나가 아닙니다. 파산절차참가, 압류, 가압류, 가처분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같은 구제 효력이 인정됩니다. 각하판결을 받은 직후 곧바로 본안소송을 다시 준비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우선 가압류로 시간을 확보해 두고 그 사이 본안소송을 다시 준비하는 방법도 실무에서 자주 쓰입니다.
재판상 청구(재소) — 각하된 것과 같은 내용의 소를 다시 제기. 각하 사유(관할·당사자적격 등)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도록 보정 필요.
가압류·압류 — 채무자 재산을 신속히 확보하면서 6개월 기한을 지키는 방법. 본안소송 준비 시간을 벌 수 있음.
가처분 — 다툼 있는 권리관계를 임시로 정하는 절차로, 사안에 따라 재소보다 신속하게 신청 가능.
파산절차참가 — 채무자가 파산절차에 들어간 경우 그 절차에 채권자로 참가하는 방법.
다만 이런 조치들도 형식만 갖춘다고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가압류나 가처분 역시 신청 후 법원의 결정을 받아야 하고, 그 결정이 각하되면 마찬가지로 시효중단 효력을 인정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6개월이라는 기한 안에 서류를 접수하는 것을 넘어, 그 조치 자체가 적법하게 인용되도록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대여금 채권으로 제기한 소송이 관할 위반으로 각하되었다면, 채무자의 예금계좌나 부동산에 대한 가압류를 6개월 안에 먼저 신청해 두고, 그 사이 관할이 맞는 법원에 다시 소장을 준비하는 방식이 실무에서 흔히 쓰입니다. 가압류만으로 채권 자체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효중단 효력을 유지하면서 재소를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6개월을 셀 때는 기산점을 정확히 잡아야 한다
6개월의 기산점은 각하판결이 '선고'된 날이 아니라 그 판결이 더 이상 다툴 수 없는 상태로 '종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잡는 것이 실무의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1심에서 각하판결을 받고 항소하지 않았다면 항소기간이 지나 판결이 확정된 날부터, 항소했다가 항소심에서도 각하가 유지되어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면 그 확정일부터 계산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예를 들어 1심 각하판결의 정본을 송달받았다면, 민사소송법상 항소기간인 2주 안에 항소하지 않으면 그 판결은 그대로 확정됩니다. 이 경우 6개월은 판결 선고일이 아니라 항소기간이 지나 판결이 확정된 그날부터 세어야 합니다. 반대로 항소했다면 항소심 판결이 다시 송달되고 그로부터 2주가 지나 확정되는 시점까지 6개월의 기산이 미뤄지므로, 각하판결을 받았다고 곧바로 시계가 도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실제로 종결되는 시점을 정확히 짚어야 합니다.
이 기산점을 넉넉하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는 것은 위험합니다. 서류 작성이나 법원 접수에 걸리는 시간, 관할 확인, 필요한 증거 정리 등을 고려하면 6개월은 생각보다 짧게 지나갑니다. 각하판결을 받은 즉시 다음 조치의 방향(재소인지 가압류인지)을 정하고 바로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 실무적으로 안전합니다.
각하·기각·취하 — 셋 다 같은 취급을 받지만, 재소 가능성은 다르다
민법 제170조 제1항은 각하·기각·취하를 나란히 규정해 세 경우 모두 시효중단 효력을 잃는다고 정합니다. 그러나 세 경우가 시효중단 계산에서는 같더라도, 실제로 같은 내용의 소를 다시 낼 수 있는지는 사정이 다릅니다. 각하는 관할위반이나 당사자적격 흠결처럼 소송요건에 흠이 있어 본안 판단 자체를 받지 못한 경우이므로, 흠결을 보정해 다시 소를 내는 데 법적인 장애가 없습니다.
반면 기각은 법원이 본안까지 들어가 청구에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경우입니다. 그 기각판결이 확정되면 기판력이 발생해, 같은 당사자 사이의 같은 청구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다시 다툴 수 없게 됩니다. 조문상으로는 기각도 6개월 구제조항의 적용 대상이지만, 실체적 이유로 청구가 배척된 것이라면 애초에 지킬 실체적 권리 자체가 확정판결로 부정된 것이어서 재소가 의미를 갖기 어렵습니다. 겉보기에 기각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소송요건 흠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각하 사유에 해당하는지부터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취하는 원고 스스로 소송을 거두어들이는 경우로, 통상 재소에 법적인 장애가 없습니다. 다만 민사소송법 제267조 제2항은 본안에 대한 종국판결이 있은 뒤에 소를 취하한 경우 같은 소를 다시 제기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1심 판결이 선고된 뒤 항소심에서 취하한 경우처럼 이미 본안판결이 나온 뒤 취하했다면 재소금지 규정에 걸리는지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원고가 아니라 피고로 응소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보호된다
시효를 주장하는 상대방이 먼저 소를 제기하고, 권리자가 피고로서 그 소송에 응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도 재판상 청구에 준하는 것으로 인정됩니다. 대법원은 채무자가 원고가 되어 소를 제기했는데 채권자가 피고로 응소해 채권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그 주장이 받아들여진 경우, 이 응소 행위도 시효중단 사유인 재판상 청구에 포함된다고 봅니다(대법원 2010. 8. 26. 선고 2008다42416, 42423 판결).
그런데 이 응소 행위 역시 본안 판단 없이 소송이 각하되거나 취하로 끝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대법원은 민법 제170조 제2항을 유추적용해, 응소로 권리를 주장했던 시점부터 6개월 안에 다른 시효중단 조치를 취하면 그 응소 시점으로 소급해 시효중단 효력을 인정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원고로서 소를 낸 경우뿐 아니라 피고로서 방어에 나선 경우에도 같은 6개월의 규칙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구제조항을 놓치면 벌어지는 일 — 6개월을 넘긴 실제 사례
구제조항이 있다고 해서 항상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정부지원금 반환을 둘러싼 한 사건에서, 지원금을 지급받은 회사가 반환의무가 없다며 두 차례에 걸쳐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했고, 지원금을 지급한 기관은 두 소송 모두에 피고로 응소해 반환채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소송은 2015년 8월 각하되었고, 두 번째 소송 역시 2017년 8월 각하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응소만으로는 재판 외 최고와 같은 정도의 효력만 인정되고, 그 각하로부터 6개월 안에 재판상 청구 등 별도의 시효중단 조치를 취해야 응소 시점으로 소급하는 효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19. 3. 14. 선고 2018두56435 판결). 그런데 두 번째 소송이 각하된 뒤 6개월 안에 별도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반환채권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소멸한 상태였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응소로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소송이 본안 판단 없이 끝났다면 그 뒤에 반드시 6개월의 시계가 다시 돌아간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응소로 권리를 주장했더라도 본안 판단 없이 소송이 끝났다면, 그 순간부터 새로 6개월의 시계가 돌아간다.
자주 묻는 질문
Q. 소가 각하되면 처음부터 소송을 안 한 것과 같아지나요?
A. 원칙적으로는 재판상 청구로서의 시효중단 효력이 사라지지만(민법 제170조 제1항), 6개월 안에 재판상 청구 등 다른 조치를 취하면 최초 소제기 시점으로 시효중단 효력이 되살아납니다(같은 조 제2항). 완전히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Q. 소취하는 제가 스스로 한 건데도 구제조항이 적용되나요?
A. 네, 민법 제170조 제1항은 각하·기각과 함께 취하도 명시하고 있어 자발적으로 소를 취하한 경우도 6개월 구제조항의 적용대상입니다. 다만 본안 종국판결이 있은 뒤 취하했다면 민사소송법 제267조 제2항의 재소금지 규정이 함께 문제될 수 있어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Q. 6개월 안에 꼭 다시 소를 제기해야 하나요?
A. 아닙니다. 재판상 청구 외에도 파산절차참가, 압류, 가압류, 가처분 중 하나만 해도 같은 구제 효력이 인정됩니다. 즉시 본안소송을 다시 준비하기 어렵다면 가압류 등으로 우선 시간을 버는 방법도 있습니다.
Q. 항소했다가 항소심에서도 각하되면 6개월은 언제부터 계산하나요?
A. 각하판결이 실제로 다툴 수 없는 상태로 확정된 시점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1심 각하에 불복해 항소했다면 항소심 각하판결이 확정된 날부터, 항소하지 않았다면 1심판결이 확정된 날부터 세는 것이 실무의 일반적 설명입니다.
Q. 원고가 아니라 상대방 소송에 피고로 응소했을 때도 이 조항이 적용되나요?
A. 판례는 피고로 응소해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한 경우도 재판상 청구에 준하는 것으로 보고, 그 응소가 본안판단 없이 각하·취하로 끝나더라도 민법 제170조 제2항을 유추적용합니다. 응소 시점부터 6개월 안에 다른 시효중단 조치를 취하면 응소 시로 소급해 효력이 인정됩니다.
Q. 청구가 기각된 경우에도 6개월 안에 재소하면 문제없이 구제받을 수 있나요?
A. 조문상으로는 기각도 각하·취하와 함께 구제 대상이지만, 본안판단까지 마친 기각판결이 확정되면 기판력 때문에 같은 청구를 다시 제기하는 것 자체가 막힐 수 있습니다. 기각의 이유가 절차적 하자인지 실체적 이유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맺음말
재판상 청구가 각하되었다고 해서 소멸시효 문제가 곧바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 제170조 제2항이 마련한 6개월의 구제기간 안에 재소, 가압류, 가처분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최초 소제기 시점으로 시효중단 효력이 되살아납니다. 다만 이 구제조항은 저절로 작동하지 않고, 각하판결이 확정된 시점부터 정확히 6개월 안에 스스로 움직여야만 효력이 유지됩니다.
각하·기각·취하가 조문상으로는 같은 취급을 받지만 실제로 재소가 가능한지는 그 사유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 원고뿐 아니라 피고로 응소한 경우에도 같은 6개월 규칙이 적용된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각하판결을 받았다면 그 이유부터 정확히 확인하고, 남은 시간 안에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서둘러 검토하는 것이 채권을 잃지 않는 길입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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