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로 경찰조사를 앞두고 있다면 가장 먼저 드는 고민 중 하나가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입니다. 그런데 막상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려니, 나중에 재판에서 판사가 그 침묵을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보고 형을 더 무겁게 매기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실제로 인터넷에는 "묵비권을 쓰면 괘씸죄가 붙는다"는 말이 떠돌지만, 이는 법리적으로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는 진술거부권이 무엇을 보장하는 권리인지, 침묵 자체가 양형에서 불리한 사정으로 쓰일 수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불리해지는 지점은 어디인지를 판례와 양형기준을 근거로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진술거부권이란 —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침묵할 권리
진술거부권은 헌법 제12조 제2항이 정한 기본권으로, 누구든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원칙에서 나옵니다. 이 권리는 수사기관의 신문 단계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보장됩니다. 경찰·검찰 단계에서는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에 따라 피의자신문을 시작하기 전에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 개개의 질문에 대해서도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 진술을 거부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것,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고지해야 합니다. 공판 단계에서도 형사소송법 제283조의2가 피고인에게 같은 권리를 보장합니다.
이 고지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진술의 효력을 좌우하는 요건입니다. 고지 없이 이뤄진 신문에서 얻은 진술은 임의성이 있어 보여도 절차 위반으로 증거능력이 부정됩니다. 성범죄 사건은 특히 초기 진술이 이후 재판 전체의 방향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아, 조사를 받기 전에 이 권리의 존재와 범위부터 정확히 이해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진술거부권은 "말하지 않을 자유"이지 "말해서는 안 되는 의무"가 아니라는 점, 즉 질문마다 답할지 거부할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는 점이 다음 항목들을 이해하는 전제가 됩니다.
이 권리는 실제로 범행을 저질렀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피의자·피고인에게 동일하게 보장됩니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것이 곧 혐의를 인정한다는 신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헌법이 이 권리를 둔 취지입니다. 수사기관이 진술거부권을 고지하는 이유도, 조사받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지 말지를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선택하도록 하기 위함이지, 침묵을 선택하면 불이익이 뒤따른다는 암시를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침묵은 유죄의 정황이 될 수 없다 — 원칙의 근거
진술거부권이 실제로 보호받는지는 결국 "침묵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줄 수 있는가"에서 갈립니다. 이에 대한 핵심 판례가 대법원 2001. 3. 9. 선고 2001도192 판결입니다. 이 판결은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단순히 부인하고 있는 것을 두고 죄를 반성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는 인격적 비난요소로 보아 가중적 양형의 조건으로 삼는 것은, 결과적으로 피고인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어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방어권 행사의 범위 안에 있는 부인이나 침묵을 이유로 형을 더 무겁게 매긴다면, 진술거부권이라는 헌법상 권리 자체가 형해화되기 때문입니다.
이 법리는 완전한 침묵, 즉 진술거부권 행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부인보다 더 소극적인 형태의 방어권 행사인 침묵을 두고 "반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중양형 사유를 판결문에 적는다면 이는 위법하며, 상급심에서 양형부당 내지 법리오해로 다퉈질 수 있는 사유가 됩니다. 즉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사실 자체는 법적으로 유죄를 뒷받침하는 정황도, 형을 가중하는 사유도 될 수 없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범죄사실을 부인하거나 진술을 거부하는 것을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보아 가중양형 사유로 삼는 것은 자백을 강요하는 것과 같아 허용되지 않는다 — 대법원 2001도192 판결의 핵심 법리다.
그런데 왜 '불리하다'는 인식이 생기나 — 반성 감경을 받지 못하는 구조
원칙이 이런데도 "침묵하면 불리하다"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양형기준의 구조에 있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성범죄 양형기준은 형을 낮추는 감경요소로 진지한 반성, 피해 회복 노력, 피해자의 처벌불원, 자수, 초범 등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양형기준이 정의하는 "반성이 없는 경우"는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아무런 후회나 죄책감을 표시하지 않고 오히려 범행을 정당화하는 경우를 뜻하며, 단순한 범행 부인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진술거부나 부인 자체가 "반성 없음"으로 곧바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실무의 흐름입니다. "진지한 반성"이라는 감경요소를 법원이 인정하려면 통상 범행 사실을 인정하고 후회를 표시하는 과정이 뒤따르는데, 진술을 거부하면 이 감경요소를 인정받을 계기 자체가 없어집니다. 그 결과 자백하고 반성한 피고인은 감경적 형량범위로, 침묵한 피고인은 기본 형량범위로 판단받는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침묵에 가중 사유가 붙는 것이 아니라 감경 사유 하나를 얻지 못한 것일 뿐이지만, 최종 선고형만 놓고 보면 "침묵해서 더 나온 형량"처럼 체감되는 것이 이 인식의 실체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혐의사실로 기소된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한 사람은 수사 단계부터 진술을 거부하다 공판에서도 침묵을 유지했고, 다른 한 사람은 범행을 인정하며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습니다. 두 사람의 죄질과 범행 경위가 같더라도, 양형기준상 후자는 진지한 반성·피해 회복 노력이라는 감경요소가 인정되어 감경적 형량범위에서 선고형이 정해질 가능성이 높은 반면, 전자는 그런 감경요소 없이 기본 형량범위에서 판단받게 됩니다. 판사가 침묵을 이유로 형을 올린 것이 아니라, 감경요소를 인정할 자료가 애초에 없었던 것뿐이라는 점이 이 차이의 정확한 성격입니다.
예외 — 방어권 남용이 가중 양형 사유가 되는 경우
대법원 2001도192 판결에는 중요한 단서가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피고인의 태도나 행위가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진실의 발견을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법원을 오도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가중적 양형의 조건으로 참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침묵"과 "적극적 오도 행위"를 구분하는 데 있습니다. 순수하게 답변을 거부하는 것은 이 예외에 해당하지 않지만, 증거를 인멸하거나 참고인·피해자에게 허위 진술을 종용하는 등의 적극적 행위가 결합되면 이는 진술거부권의 보호범위 밖에 있는 별개의 행위로 취급되어 가중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성범죄 수사에서 실제로 문제 되는 사례는 대체로 이 지점입니다. 단순히 묵비하는 것과, 피해자에게 연락해 진술을 바꾸도록 압박하거나 통신·영상 기록을 지우는 것은 전혀 다른 층위의 행위입니다. 전자는 헌법상 권리이고, 후자는 타인을 시켜 증거를 인멸·은닉하게 하면 형법 제155조 증거인멸죄의 교사범(형법 제31조)으로, 겁을 주어 진술 변경을 강요하면 형법 제324조 강요죄로 별도 처벌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진술거부권을 방패로 삼되, 그 이상의 적극적 개입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순수한 진술거부 — 방어권 행사 범위 안, 가중양형 사유 아님.
명백한 증거와 배치되는 적극적 허위 진술로 법원을 오도하려는 시도 — 가중양형 사유 가능.
피해자·참고인에 대한 진술 회유, 증거인멸 시도 — 진술거부권과 무관한 별개 행위로 가중 사유이자 별도 범죄 성립 가능.
구속 여부 판단에서 진술거부가 미치는 실질적 영향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형사소송법 제201조가 정한 도주 우려, 증거인멸 우려, 주거부정 등을 기준으로 판단되고, 피의자는 구속영장실질심사(같은 법 제201조의2)에서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판단 이유에 "진술을 거부해서 구속한다"고 명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진술거부로 피의자 측 소명자료가 전혀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 진술과 물적 증거만 두드러지게 남으면, 상대적으로 혐의 소명이 강해 보이는 구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즉 진술거부 자체가 구속사유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침묵으로 인해 알리바이나 정당한 사정 등 피의자에게 유리한 사실관계가 심사 단계에서 드러나지 않은 채 넘어가면 결과적으로 불리한 심증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무조건적인 침묵보다, 변호인과 함께 어느 부분을 소명하고 어느 부분을 거부할지 사전에 판단해 두는 것이 구속 여부를 다투는 단계에서는 특히 중요합니다.
이 구도는 구속 이후 보석이나 구속적부심을 다투는 단계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됩니다.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 우려가 소멸했다는 점을 소명해야 하는데, 그동안 아무런 진술 자료를 남기지 않았다면 법원이 참고할 만한 자료 자체가 부족해집니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기로 했더라도 주거 관계, 가족관계, 출석 이행 등 구속사유와 직접 관련된 사정만큼은 서면으로 별도 소명하는 방안을 변호인과 함께 준비해 두는 것이 실무상 도움이 됩니다.
성범죄 사건에서 진술거부권 행사 시 실무적 유의점
진술거부권은 신문 전체를 거부하는 것뿐 아니라 개별 질문 단위로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이 보장하는 범위가 그렇습니다. 성범죄 사건은 유·무죄를 가르는 지점이 대개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동의가 있었는지, 고의가 있었는지"처럼 진술의 뉘앙스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아, 전면적인 묵비보다 유리하거나 명확한 사실관계는 진술하고 불확실하거나 불리하게 왜곡될 소지가 있는 부분만 선택적으로 거부하는 전략이 실무상 자주 쓰입니다.
다만 이 선택은 사전에 증거관계를 파악한 뒤에 이뤄져야 안전합니다. 무엇을 진술하고 무엇을 거부할지를 조사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정하면, 뒤이은 질문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을 하게 될 위험이 있고 이는 앞서 본 "적극적 오도"로 오인될 여지를 만듭니다. 조사 전 변호인과 함께 예상 질문과 증거관계를 검토해 진술 범위를 미리 정해 두는 준비가, 침묵이냐 진술이냐를 그날 그 자리에서 판단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합니다.
예컨대 만남 자체나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은 통신 기록·목격자 진술 등으로 이미 명백한데 그 상황에서의 동의 여부만 다투는 사안이라면, 접촉이 있었다는 객관적 사실은 인정하되 동의 여부에 관한 평가나 당시 정황에 대해서만 신중하게 답변 범위를 좁히는 방식이 유효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접촉 자체의 존재나 특정 여부부터 다투어야 하는 사안이라면, 섣부른 부분 진술이 오히려 스스로 불리한 사실관계를 확정 짓는 결과가 될 수 있어 전면적인 진술거부가 더 안전한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때와 진술이 필요한 때 — 전략적 판단 기준
증거관계를 파악하기 전에 서둘러 진술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수사기관이 어떤 자료를 확보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술하면, 나중에 확보된 증거와 어긋나는 진술을 한 셈이 되어 오히려 신빙성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앞서 본 가중양형 사유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국면에서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해 시간을 벌고, 확보된 증거의 범위를 파악한 뒤 대응하는 것이 안전한 선택입니다.
반대로 알리바이나 정당한 사유가 객관적 자료(통신기록·카드내역·CCTV 등)로 뒷받침될 수 있다면, 이를 조기에 진술하고 자료를 제출하는 쪽이 혐의를 신속히 해소하는 데 유리합니다. 진술거부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방어 전략의 한 수단이며, 일률적으로 침묵하는 것도 일률적으로 자백하는 것도 정답이 아닙니다. 사안별로 확보된 증거와 사실관계를 함께 검토해 언제 말하고 언제 거부할지를 정하는 것이 진술거부권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 판사가 괘씸죄로 형을 더 준다는 게 사실인가요?
A. 대법원 2001도192 판결에 따라 단순 부인이나 진술거부 자체를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보아 가중양형 사유로 삼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자백에 따르는 반성 감경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해 결과적으로 상대적으로 불리해 보일 수는 있습니다.
Q. 경찰조사에서 일부 질문만 답하고 나머지는 거부해도 되나요?
A. 가능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은 신문 전체는 물론 개별 질문 단위로도 진술거부를 허용하므로, 유리하거나 확실한 사실은 진술하고 불리하거나 불확실한 부분만 거부하는 방식도 실무에서 쓰입니다.
Q.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 구속영장이 더 쉽게 발부되나요?
A. 진술거부 자체가 구속사유로 명시되지는 않지만, 소명자료 없이 피해자 진술과 물적 증거만 남는 상태가 되면 상대적으로 혐의 소명이 강해 보여 결과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는 있습니다.
Q. 진술거부권 고지를 받지 못한 채 조사받았다면 어떻게 되나요?
A.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에 따른 고지 없이 이뤄진 신문에서 얻은 진술은 절차 위반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이는 이후 재판에서 다툴 수 있는 중요한 절차적 하자입니다.
Q. 거짓말을 하는 것과 진술거부, 어느 쪽이 안전한가요?
A. 명백한 증거와 배치되는 거짓 진술로 법원을 적극적으로 오도하려 한 정황이 인정되면 대법원 2001도192 판결의 예외에 따라 오히려 가중양형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확신이 없다면 거짓 진술보다 진술거부가 안전합니다.
Q. 변호인 없이 진술거부권만 행사하면 충분한가요?
A. 진술거부는 방어권의 한 축일 뿐입니다. 어느 질문에 답하고 어느 질문을 거부할지, 언제 진술로 전환할지는 확보된 증거관계에 따라 달라지므로 변호인 조력을 받아 사안별로 판단하는 쪽이 실질적 방어에 유리합니다.
맺음말
진술거부권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방어권이고, 이를 행사했다는 사실 자체를 반성 없음으로 보아 형을 가중하는 것은 판례상 허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반성이라는 감경요소를 얻을 기회를 놓친다는 점에서, 그리고 소명자료 없이 조사가 마무리되면 구속 판단 등 절차 곳곳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구조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무관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침묵이냐 진술이냐를 이분법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확보된 증거관계를 먼저 파악하고 어느 부분을 진술하고 어느 부분을 거부할지 판단하는 일입니다.
수원·경기남부 지역에서 성범죄 혐의로 경찰조사를 앞두고 있다면, 조사 전 단계에서부터 진술 범위와 전략을 함께 검토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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