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각서를 쓰면 폭행 책임이 사라질까, 사망 사건의 판단기준
싸움각서를 쓰면 폭행 책임이 사라질까, 사망 사건의 판단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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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각서를 쓰면 폭행 책임이 사라질까, 사망 사건의 판단기준 

박기태 변호사

각서를 써도 폭행죄 책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형법 제24조는 처분할 수 있는 사람의 승낙에 의해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다만 대법원은 조건을 하나 달았습니다. 그 승낙이 윤리적·도덕적으로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폭행으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피해자의 승낙은 범죄 성립에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으며 그러한 승낙은 사회상규에 반한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1985. 12. 10. 선고 85도1892 판결).

내 물건은 내가 처분할 수 있으므로 주인이 허락하고 가져간 물건은 절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과 신체는 다릅니다.

"때려도 좋다"는 동의가 "죽여도 좋다"는 동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정리하면, 이른바 싸움각서는 위법성을 없애는 문서가 아닙니다. 형사처벌도, 민사상 배상책임도 면제되지 않습니다.

폭행치사와 폭행죄를 가르는 기준은 예견가능성입니다

두 죄의 법정형은 크게 다릅니다. 폭행죄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입니다(형법 제260조 제1항). 폭행치사는 형법 제262조에 따라 상해치사의 예에 의하므로 3년 이상의 유기징역입니다.

폭행치사는 결과적 가중범입니다. 성립하려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합니다.

첫째, 폭행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둘째, 사망이라는 결과에 대한 예견가능성, 즉 과실

대법원은 예견가능성의 유무를 폭행의 정도와 피해자의 대응상태 등 구체적 상황을 살펴 엄격하게 가려야 하며, 만연히 그 범위를 확대해석해 형사처벌을 확대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봅니다(대법원 1990. 9. 25. 선고 90도1596 판결).

2026년 수원고법 판결에서 법원이 실제로 본 지점

경기 평택의 한 아파트에서 동대표 회의 중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먼저 싸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 작성을 제안했고, 상대가 이를 수락한 뒤 회의실 밖에서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얼굴을 주먹으로 수차례 맞고 머리 부위를 발로 걷어차인 피해자는 이후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인을 급성심장사로 보면서, 사건 발생부터 사망까지의 경과에 비추어 다툼이 사망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1심과 항소심 모두 폭행치사는 무죄, 폭행죄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얼굴 부위를 발로 찬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당시 다른 사람에게 몸이 붙잡힌 상태여서 온 힘을 다해 가격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고, 국과수 감정을 종합해도 폭행의 정도가 피해자의 생명을 위협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판단입니다.

1심은 여기에 더해 피해자가 먼저 각서 작성을 제안하고 피고인이 수락한 뒤 몸싸움이 시작된 경위, 피해자에게 특별한 기저질환이 없었고 체격도 피고인보다 컸던 점을 함께 고려했습니다.

이 판결을 읽는 법

무죄의 이유는 "때려서 죽은 것이 아니다"가 아니라 "죽을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입니다. 둘은 전혀 다릅니다.

각서 역시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했습니다. 위법성을 없애지는 못해 폭행죄 유죄는 그대로 인정됐고, 대신 예견가능성을 낮추는 정황자료로 쓰여 폭행치사가 폭행죄로 내려앉았습니다.

형사에서 무죄가 나온 뒤 유족이 확인할 것

1. 무죄의 의미를 정확히 확인하십시오

형사재판의 유죄판결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확신을 주는 증명이 있다는 뜻인 반면, 무죄판결은 그러한 증명이 없다는 의미일 뿐 공소사실의 부존재가 증명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대법원 2015. 10. 29. 선고 2012다84479 판결).

2. 민사에서 다투는 쟁점이 다릅니다

민사에서 문제되는 것은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가 아니라, 폭행이라는 가해행위가 있었는지, 그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는지입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폭행 사실과 사망과의 연결고리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3. 감액 사유를 미리 알고 계셔야 합니다

가해행위와 체질적 소인이 경합해 손해가 확대된 경우, 그것이 피해자의 귀책사유와 무관하더라도 가해자에게 전부를 부담시키는 것이 공평의 이념에 반한다면 법원은 과실상계 법리를 유추적용해 참작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00. 1. 21. 선고 98다50586 판결). 각서를 먼저 제안하고 합의해 나간 사정도 피해자 측 과실로 주장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두 가지는 배상액을 조정하는 사유이지, 책임 자체를 없애는 사유가 아닙니다.

4. 유족 고유의 위자료는 별개의 권리입니다


민법 제752조는 타인의 생명을 해한 자는 피해자의 직계존속, 직계비속 및 배우자에 대하여 재산상 손해가 없는 경우에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합니다. 상속받는 권리가 아니라 유족 본인의 권리이므로, 다른 사람이 작성한 각서로 포기될 수 없습니다.

5. 소멸시효를 놓치지 마십시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합니다(민법 제766조).

확보해 두어야 할 자료

  • 목격자 진술조서와 CCTV 영상

  • 부검 감정서 전문 (요약이 아닌 전문을 보셔야 합니다. 하나의 감정서 안에 양쪽에 유리한 내용이 함께 담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 형사 판결문 및 공판기록 열람·등사 신청

형사절차가 끝난 뒤 다시 수집하기 어려운 자료들입니다.

싸움각서는 면죄부가 아닙니다. 작성한 사람도, 받은 사람도 보호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형사에서 가벼운 처벌이 나왔다는 사실이 곧 남은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고 곤란하시다면, 상담을 통해 첫 걸음부터 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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