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나 산업재해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책임을 지는 사건에서는, 가해자마다 배상액이 서로 다르게 산정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피해자의 과실을 가해자별로 다르게 평가하면 한쪽은 많이 물어주고(다액채무자) 다른 한쪽은 적게 물어주는(소액채무자) 구도가 생기는데, 이때 다액채무자가 전액이 아니라 일부만 갚으면 어느 채무가 먼저 없어지는지가 소액채무자의 운명을 가릅니다. 단순히 비율대로 나눠 소멸한다고 생각했다가는 실제 부담해야 할 금액을 잘못 계산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부진정연대채무 관계에서 다액채무자의 일부 변제가 어떤 순서로 채무를 소멸시키는지, 대법원이 정리한 기준과 실제 계산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부진정연대채무란 무엇인가 — 연대채무와 다른 이유
여러 명이 채권자에게 같은 내용의 급부를 이행할 의무를 진다는 점에서 부진정연대채무는 민법 제413조 이하가 정한 연대채무와 겉모습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연대채무는 채무자들이 하나의 계약이나 법률관계에서 주관적으로 공동의 의사를 가지고 성립하는 반면, 부진정연대채무는 공동불법행위(민법 제760조)나 사용자책임(민법 제756조)처럼 서로 다른 발생원인에 기해 우연히 같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를 지게 된 경우에 판례가 인정해 온 채무관계입니다.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와 그 운전자를 고용한 회사, 혹은 공사현장에서 함께 사고를 낸 시공사와 감리자가 대표적인 부진정연대채무자 관계입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적용되는 법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연대채무에는 민법이 정한 절대적 효력사유(이행청구·경개·상계·혼동 등)가 폭넓게 인정되어 한 채무자에게 생긴 사유가 다른 채무자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만, 부진정연대채무에는 이런 절대적 효력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립된 판례의 입장입니다. 오직 변제·대물변제·공탁처럼 채권자가 실제로 만족을 얻는 사유만 다른 채무자에게도 효력이 미치고, 그 밖의 사유(소멸시효 완성, 채무면제, 이행청구에 의한 시효중단 등)는 각 채무자에게 개별적으로만 효력이 생깁니다. 다액채무자의 일부 변제가 소액채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피는 이번 논의도, 결국 "변제는 절대적 효력사유"라는 원칙 위에서 출발합니다.
다액채무자와 소액채무자가 갈리는 이유 — 과실상계 비율의 차이
부진정연대채무자들이 부담하는 배상액이 처음부터 다르게 산정되는 가장 흔한 원인은 과실상계입니다. 같은 사고라도 피해자의 과실을 어느 가해자를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상계 비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해자 각자의 주의의무 위반 정도나 피해자와의 관계(예컨대 피해자가 가해자 중 한쪽의 지시를 따르다 사고를 당한 경우)에 따라 법원이 과실상계 비율을 다르게 인정하는 사례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 결과 같은 손해액을 두고도 가해자 A는 배상책임의 90퍼센트를, 가해자 B는 70퍼센트만 지는 식으로 최종 배상액 자체가 달라집니다.
이렇게 배상액이 다른 두 채무가 부진정연대 관계에 놓이면, 그 채무는 완전히 같은 하나의 채무가 아니라 금액이 다른 두 개의 채무가 일정 범위에서 겹쳐 있는 구조가 됩니다. 배상액이 더 큰 쪽을 다액채무자, 더 작은 쪽을 소액채무자라 부릅니다. 소액채무자의 채무 전액은 다액채무자의 채무 안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둘 중 누가 얼마를 변제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채무도 함께 줄어드는 범위가 달라집니다. 이 구조를 정확히 이해해야 다음에 살펴볼 단독부담 부분과 공동부담 부분의 구분이 의미를 가집니다.
단독부담 부분과 공동부담 부분 — 겹치는 채무의 구조
다액채무자의 채무액에서 소액채무자의 채무액을 뺀 차액을, 다액채무자만 홀로 책임지는 부분이라는 뜻에서 단독부담 부분이라 부릅니다. 반대로 두 채무자의 채무액이 서로 겹치는 부분, 즉 소액채무자의 채무 전액에 해당하는 부분은 두 사람이 함께 책임지는 부분이라는 뜻에서 공동부담 부분이라 부릅니다. 예컨대 다액채무자의 채무가 9천만원이고 소액채무자의 채무가 7천만원이라면, 7천만원은 공동부담 부분이고 나머지 2천만원은 다액채무자만의 단독부담 부분이 됩니다.
공동부담 부분은 부진정연대채무의 본질에 따라 누가 변제하든 그 범위에서 상대방의 채무도 함께 소멸합니다. 문제는 단독부담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소액채무자와 무관하게 다액채무자 혼자만 부담하는 채무이므로, 다액채무자가 이 부분을 변제해도 소액채무자의 채무는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다액채무자가 전액이 아니라 일부만 변제했을 때, 그 변제금이 단독부담 부분과 공동부담 부분 중 어느 쪽에 먼저 충당되는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학설과 판례가 나뉘어 있었습니다.
외측설과 과실비율설 — 대법원이 정리한 기준
다액채무자의 일부 변제를 단독부담 부분에 먼저 충당해야 한다는 견해를 외측설이라 부르고, 변제금을 단독부담 부분과 공동부담 부분에 소액채무자의 과실비율에 상응해 안분해야 한다는 견해를 과실비율설이라 부릅니다. 실제로 이전에는 과실비율설에 가까운 입장을 취한 판례도 있었습니다. 대법원 2012. 6. 28. 선고 2010다73765 판결은 공동불법행위 관계에 있는 일방이 변제약정에 따라 일부 금액을 지급한 사안에서, 상대방의 과실비율에 상응하는 만큼 상대방의 손해배상채무도 함께 소멸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8. 3. 22. 선고 2012다74236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 논의를 외측설로 통일했습니다. 대법원은 금액이 다른 채무가 서로 부진정연대 관계에 있을 때 다액채무자가 일부 변제를 하면, 그 변제로 먼저 소멸하는 부분은 당사자의 의사와 채무 전액의 지급을 확실히 확보하려는 부진정연대채무 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다액채무자가 단독으로 부담하는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로써 과실비율설을 취했던 종전 판례들은 이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변경되었습니다.
외측설을 채택한 이유는 채권자, 즉 피해자 보호에 있습니다. 과실비율설에 따르면 다액채무자가 일부 변제를 한 뒤 무자력이 되어 나머지를 갚지 못하는 경우, 소액채무자의 채무도 이미 일부 소멸해 버려 피해자가 손해 전액을 배상받지 못하는 결과가 생깁니다. 또한 다액채무자와 소액채무자 중 누가 먼저 변제하느냐에 따라 피해자가 최종적으로 받을 수 있는 총액이 달라지는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었습니다. 여러 채무자에게 각자 전액에 대한 이행책임을 지워 채권의 만족을 확실히 확보하려는 것이 부진정연대채무 제도 자체의 취지인 만큼, 그 취지에 맞는 결론은 외측설이라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부진정연대 관계에서 다액채무자의 일부 변제로 먼저 소멸하는 부분은 소액채무자와 무관하게 다액채무자만 단독으로 부담하는 부분이다 — 대법원 2018. 3. 22. 선고 2012다74236 전원합의체 판결.
실제 계산으로 보는 적용 예시
구체적인 숫자로 살펴보면 외측설의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손해액이 1억원이고, 가해자 A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과실 10퍼센트가 상계되어 A의 배상채무가 9천만원, 가해자 B에 대해서는 과실 30퍼센트가 상계되어 B의 배상채무가 7천만원으로 확정되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경우 공동부담 부분은 두 채무 중 작은 금액인 7천만원이고, A만의 단독부담 부분은 9천만원에서 7천만원을 뺀 2천만원입니다.
다액채무자 A가 2천만원만 변제했다면, 외측설에 따라 이 금액 전부가 단독부담 부분에 충당되어 소멸합니다. 공동부담 부분 7천만원은 전혀 줄어들지 않으므로, 소액채무자 B의 채무는 여전히 7천만원 그대로입니다. A가 3천만원을 변제했다면 먼저 단독부담 부분 2천만원이 소멸하고, 남은 1천만원이 공동부담 부분에 충당되어 그 부분이 6천만원으로 줄어듭니다. 부진정연대채무의 성질상 이때 B의 채무도 함께 6천만원으로 줄어들고, A의 잔존 채무는 9천만원에서 3천만원을 뺀 6천만원이 되어 두 사람의 채무액이 같아집니다.
변제액이 단독부담 부분(차액)을 넘지 않으면 소액채무자의 채무는 전혀 줄지 않는다.
변제액이 단독부담 부분을 초과하면, 그 초과분만큼 공동부담 부분과 소액채무자의 채무가 함께 줄어든다.
단독부담 부분과 공동부담 부분의 경계는 두 채무자의 확정 배상액 차이(다액채무자 배상액 - 소액채무자 배상액)로 계산한다.
소액채무자 입장에서는 다액채무자가 얼마를 갚았는지가 아니라, 그 변제액이 단독부담 부분을 넘겼는지가 자신의 채무 감소 여부를 가른다.
구상권과의 관계 — 단독부담분 변제는 구상권을 낳지 않는다
다액채무자가 변제한 금액이 자신의 구상권 행사로 이어지는지도 실무에서 자주 다투어지는 부분입니다. 단독부담 부분은 오로지 다액채무자 혼자만 책임지는 채무이므로, 이 범위 안에서 변제한 것은 자신의 채무를 갚은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소액채무자를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할 여지가 없습니다. 앞선 예시에서 A가 2천만원만 변제한 경우, 이는 전부 A의 단독부담 부분에 해당하므로 B에게 구상을 청구할 근거가 생기지 않습니다.
반면 변제액이 단독부담 부분을 넘어 공동부담 부분까지 미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 초과분은 A와 B가 함께 책임지는 부분을 A가 대신 갚은 것이므로, A는 자신이 부담해야 할 비율을 넘는 한도에서 B를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구상 비율은 공동불법행위자 사이의 부담 부분, 즉 각자의 과실 정도와 기여도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실무에서는 이 구상금 액수를 둘러싸고 별도의 소송으로 다투는 경우가 많으므로, 변제 시점에 어느 부분에 충당된 것인지를 명확히 기록해 두는 것이 이후 분쟁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실무에서 주의할 점 — 소멸시효와 절대적 효력사유는 각자 진행
부진정연대채무에서 또 하나 유의할 부분은 소멸시효가 채무자별로 독립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연대채무라면 한 채무자에 대한 시효중단이 다른 채무자에게도 효력이 미칠 여지가 있지만, 부진정연대채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다액채무자를 상대로 소를 제기해 시효를 중단시켰다 하더라도, 소액채무자에 대한 채권의 소멸시효는 별도로 진행되므로 소액채무자에 대해서도 독립적인 시효중단 조치를 취해 두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채무면제나 채무 승인 같은 사유도 그 사유가 발생한 채무자에게만 효력이 미치고 다른 채무자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오직 변제·대물변제·공탁처럼 채권자가 실제로 만족을 얻어 채권 자체가 소멸하는 사유만 다른 채무자에게도 절대적 효력을 미칩니다. 이 원칙과 외측설을 함께 고려하면, 다액채무자의 변제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소액채무자의 채무액을 단순히 비율로 계산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단독부담 부분과 공동부담 부분을 나누어 순서대로 충당해야 정확한 잔존 채무액을 산정할 수 있습니다. 보험자가 먼저 일부 보험금을 지급했거나 공동불법행위자 중 일방이 합의금을 지급한 사안에서 나머지 채무자의 잔존 채무를 계산할 때도 이 순서를 놓치면 과다청구나 과소변제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부진정연대채무와 연대채무는 어떻게 다른가요?
A. 연대채무는 채무자들이 하나의 법률관계에서 주관적으로 공동의 의사를 가지고 성립하며 민법 제413조 이하의 절대적 효력사유가 폭넓게 적용됩니다. 반면 부진정연대채무는 공동불법행위나 사용자책임처럼 서로 다른 원인으로 우연히 같은 내용의 채무를 지게 된 경우로, 변제 등 채권자가 실제 만족을 얻는 사유만 다른 채무자에게 효력이 미칩니다.
Q. 다액채무자와 소액채무자는 어떻게 정해지나요?
A. 같은 손해에 대해 채무자별로 과실상계 비율이 다르게 인정되어 최종 배상액이 서로 달라질 때, 배상액이 더 큰 쪽이 다액채무자, 더 작은 쪽이 소액채무자가 됩니다. 소액채무자의 채무 전액은 다액채무자의 채무 범위 안에 포함되는 구조입니다.
Q. 다액채무자가 일부만 갚으면 소액채무자의 채무도 항상 줄어드나요?
A. 아닙니다. 변제액이 단독부담 부분, 즉 두 채무자의 배상액 차이를 넘지 않는 한 소액채무자의 채무는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변제액이 그 차액을 초과할 때만 초과분만큼 소액채무자의 채무도 함께 소멸합니다.
Q. 외측설과 과실비율설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A. 외측설은 다액채무자의 일부 변제를 단독부담 부분에 먼저 충당하는 견해이고, 과실비율설은 변제금을 소액채무자의 과실비율에 맞춰 두 부분에 나누어 충당하는 견해입니다. 대법원 2018. 3. 22. 선고 2012다74236 전원합의체 판결이 외측설로 입장을 통일했습니다.
Q. 다액채무자가 변제한 만큼 소액채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나요?
A. 단독부담 부분에 대한 변제는 자신의 채무를 갚은 것이어서 구상권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변제액이 단독부담 부분을 넘어 공동부담 부분까지 미쳤을 때만, 그 초과분에 대해 부담 비율을 넘는 한도에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Q. 소액채무자에 대한 소멸시효도 다액채무자와 함께 중단되나요?
A. 아닙니다. 소멸시효는 채무자별로 독립적으로 진행되므로, 다액채무자를 상대로 시효를 중단시켰더라도 소액채무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시효중단 조치가 필요합니다. 채무면제나 채무승인 같은 사유도 그 사유가 발생한 채무자에게만 효력이 미칩니다.
맺음말
부진정연대채무 관계에서 다액채무자가 일부만 변제했을 때 어느 부분이 먼저 소멸하는지는 단순한 이론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얼마를 더 받을 수 있는지 혹은 얼마를 더 갚아야 하는지를 가르는 실무 문제입니다. 대법원이 외측설로 기준을 통일한 뒤로는, 다액채무자의 변제액이 단독부담 부분(두 채무자의 배상액 차이)을 넘지 않는 이상 소액채무자의 채무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공동불법행위나 사용자책임처럼 여러 채무자가 얽힌 사건에서는 각자의 배상액을 먼저 정확히 산정하고, 그 차액이 얼마인지부터 계산해 두는 것이 분쟁을 줄이는 출발점입니다. 보험자의 선지급이나 합의금 지급이 있었던 사안이라면 그 금액이 단독부담 부분과 공동부담 부분 중 어디까지 충당되었는지를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계산은 채무자별 배상액 산정 근거 자료를 함께 검토해야 정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원·경기남부 지역에서 공동불법행위나 구상금 관련 분쟁을 다루다 보면, 이 순서를 놓쳐 잔존 채무액을 잘못 계산한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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