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사건에서 합의까지 마쳤다고 안심하고 있다가, 몇 달 뒤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낯선 우편물을 받는 가해자들이 있습니다. 피해자가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건강보험을 적용받았다면, 공단이 그 치료비 중 자신이 부담한 금액을 가해자에게 별도로 청구하는 구상금 절차가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와 나눈 형사합의는 어디까지나 피해자 개인과의 관계일 뿐, 공단이 갖는 구상권까지 소멸시키지는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건강보험공단이 어떤 근거로 구상금을 청구하는지, 금액은 어떻게 정해지는지, 청구서를 받았을 때 무엇을 다툴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폭행 치료비에 건강보험을 쓰면 공단이 끼어드는 이유 — 구상권의 근거
건강보험은 원칙적으로 가입자나 피부양자가 질병·부상으로 진료를 받으면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해 주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그 부상이 순수한 질병이 아니라 폭행처럼 다른 사람의 불법행위로 생긴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8조 제1항은 제3자의 행위로 보험급여사유가 발생해 공단이 가입자에게 보험급여를 한 경우, 그 급여에 들어간 비용 한도에서 공단이 그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얻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폭행은 민법 제750조가 정한 전형적인 고의의 불법행위이므로, 피해자를 때려 다치게 한 가해자는 원래대로라면 치료비 전액을 스스로 배상해야 할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다만 피해자가 병원비를 낼 때는 우선 건강보험을 적용받아 부담을 던 것이고, 공단은 그렇게 자신이 대신 내준 비용을 나중에 실제 책임자인 가해자에게 되받아 오는 절차를 밟는 것입니다.
이 구조를 이해하면 왜 공단이 뒤늦게 개입하는지가 명확해집니다. 건강보험 재정은 가입자 전체가 낸 보험료로 운영되는데, 애초에 가해자가 부담했어야 할 치료비를 보험 재정이 대신 메워준 셈이라면 그 부담을 다시 가해자에게 돌려놓지 않는 한 결과적으로 다른 가입자들의 보험료로 가해자의 책임을 대신 갚아주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국민건강보험법은 공단에 이 비용을 회수할 권리, 즉 구상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교통사고에서 보험사가 상대 가해차량 보험사에 구상하는 구조와 원리는 비슷하지만, 여기서는 공단이 직접 가해자 개인을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피해자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았다는 사실은 가해자의 배상책임을 없애주지 않는다 — 공단이 대신 낸 비용은 국민건강보험법 제58조에 따라 그대로 가해자에게 되돌아온다.
합의했는데 왜 또 청구서가 오나 — 형사합의와 공단 구상금은 별개의 채권
가해자 입장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지점은 이미 피해자와 합의를 마쳤는데도 공단에서 별도로 청구서가 온다는 사실입니다. 형사합의는 피해자에게 위자료·치료비 등 명목으로 합의금을 지급하고 처벌불원 의사를 받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제출하는 절차로, 어디까지나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 사이의 사적인 채권관계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반면 공단의 구상권은 국민건강보험법이라는 별개의 법률에 근거해 공단이 직접 취득하는 권리이므로, 피해자와의 합의서에 서명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소멸하지 않습니다. 합의서에 "치료비를 포함한 일체의 손해를 배상한다"는 문구를 넣었더라도, 그 합의는 피해자가 가진 손해배상채권을 정리한 것이지 공단이 가진 구상채권까지 대신 처분할 권한은 피해자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피해자 쪽에도 유의할 지점이 있습니다. 합의금에 치료비 상당액이 이미 포함되어 있었는데도 그 이후 계속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는다면, 이는 같은 손해를 두 번 보전받는 이중수급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8조 제2항은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이 제3자로부터 이미 손해배상을 받은 경우 공단은 그 배상액 한도에서 보험급여를 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어, 이런 경우 공단이 피해자를 상대로 별도의 부당이득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로서는 합의서에 치료비 항목을 명확히 구분해 기재해 두는 것이, 나중에 공단의 구상금 산정 단계에서 이미 지급한 부분을 소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구상금은 얼마나 청구되나 — 공단부담금 전액이 아니라 책임비율만큼
구상금 액수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 대법원 2021. 3. 18. 선고 2018다287935 전원합의체 판결입니다. 이 판결 전에는 피해자의 과실이 있는 사건에서 전체 치료비 손해액에 먼저 과실상계를 적용한 다음 그 나머지에서 공단부담금을 공제하는 방식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전원합의체는 이 방식을 뒤집어, 전체 치료비 손해액에서 먼저 공단부담금 전액을 공제하고 그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만 과실상계를 적용하는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그 결과 공단이 가해자에게 실제로 청구할 수 있는 구상금은 공단이 부담한 치료비 전액이 아니라, 그중 가해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제한됩니다.
이 판결이 가해자에게 갖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예전 방식보다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는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실제로 물어야 할 구상금 액수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계산 구조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구상금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공단이 실제로 지출한 급여비용, 즉 공단부담금에 한정됩니다. 피해자가 병원에서 직접 낸 본인부담금이나, 치료비와 무관한 위자료·휴업손해 같은 항목은 애초에 공단이 지급한 보험급여가 아니므로 구상금 청구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쌍방폭행이라면 달라지는 계산 — 과실비율을 다투는 법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이 실제로 힘을 발휘하는 대표적인 상황이 쌍방폭행입니다. 가령 시비 끝에 서로 주먹을 주고받아 양쪽 모두 상해를 입었고, 형사절차에서 피해자에게도 상당한 과실이 있다고 평가된 사안이라면, 공단이 가해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구상금도 그 과실비율만큼 줄어듭니다. 일방적으로 맞기만 한 사건과 서로 다툰 사건은 구상금 산정에서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공단이 처음 제시하는 과실비율이 수사기관의 판단이나 실제 정황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이고, 이 비율은 가해자가 적극적으로 다퉈야 조정될 여지가 생깁니다.
과실비율을 다투려면 근거자료가 필요합니다. 형사사건이 이미 종결됐다면 판결문이나 불기소이유서에 적힌 양형·처분 이유가 가장 직접적인 근거가 되고, 쌍방의 상해진단서 내용, 사건 현장의 CCTV 영상, 목격자 진술 등도 실제 과실 정도를 보여주는 자료가 됩니다. 공단이 제시한 과실비율의 산정 근거가 불분명하다면 그 근거 자료부터 요청하고, 형사사건 기록과 비교해 불합리한 부분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지적해야 합니다.
형사사건 판결문 또는 불기소이유서 — 과실비율 판단의 핵심 근거.
쌍방 상해진단서 — 누가 얼마나 다쳤는지 객관적으로 뒷받침.
사건 현장 CCTV·목격자 진술 — 다툼의 경위와 선후관계 확인.
공단이 제시한 과실비율 산정 근거자료 — 불분명하면 직접 요청.
치료비 상당액을 이미 합의금으로 줬다면 — 공제를 주장하는 법
합의금 안에 치료비 명목이 명확히 포함되어 있었다면, 그 부분은 공단의 구상금 채권과 관계에서 이미 변제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실무에서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은 합의서를 작성할 때 항목을 나누지 않고 '일체의 손해를 배상한다'는 식으로 뭉뚱그려 적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합의금 중 치료비 상당액이 얼마였는지를 특정하기 어려워, 공단의 구상금 청구에 대응할 때 공제를 주장할 근거가 약해집니다. 합의 단계에서부터 치료비·위자료·기타 손해를 항목별로 구분해 합의서에 명시해 두는 것이 나중을 위해 유리합니다.
이미 지급한 합의금과 공단의 구상금이 같은 치료비 항목을 중복해서 배상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이는 가해자에게 이중의 부담을 지우는 것이어서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구상금 청구에 대응할 때는 합의서 원본, 합의금 지급 내역(계좌이체 내역이나 영수증), 그리고 그 합의금이 치료비 명목으로 지급됐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함께 제시해 공제를 주장하는 것이 실무적인 대응 방법입니다.
구상금 청구서를 받았을 때 확인해야 할 것들
공단은 진료기록에 남은 상병기호나 진료 내용을 통해 그 부상이 외부 요인, 즉 제3자의 행위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례를 선별해 조사합니다. 사고 경위가 확인되면 공단은 가해자에게 구상금 청구를 예정하고 있다는 사전 통지를 보내 의견을 제출할 기회를 준 뒤, 최종적으로 구상금액을 확정해 납부고지서를 발송하는 절차를 거칩니다. 이 청구서에는 공단이 부담한 급여내역과 산정에 적용한 과실비율 등 근거가 담겨 있어야 하고, 그 내역이 불명확하다면 산정근거 자료를 구체적으로 요청할 수 있습니다.
청구서를 받았다고 곧바로 전액을 납부하기보다는, 의견제출 기한 안에 과실비율이나 이미 지급한 합의금의 공제 여부처럼 다툴 부분이 있는지부터 점검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제출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액수에 여전히 다툼이 남는다면, 공단의 구상금 채권은 사법상 채권의 성격을 가지므로 민사 절차를 통해 그 존부나 액수를 다툴 수 있습니다. 청구서를 방치해 지급명령이나 소송으로 넘어가면 대응 기회 자체가 줄어들 수 있어, 통지를 받은 초기 단계에서 자료부터 정리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구상금 청구권의 소멸시효
공단이 대위해서 행사하는 구상금 채권은 원래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손해배상채권과 성질이 같습니다. 민법 제766조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시효로 소멸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공단이 실제로 보험급여를 지급한 시점이 아니라 애초 손해배상청구권의 기산점을 기준으로 이 기간이 진행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이므로, 사고가 오래전에 일어났다면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됐는지부터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시효는 자동으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최고나 소송 제기 등으로 중단될 수 있습니다. 공단이 그 사이에 내용증명을 보내거나 지급명령을 신청한 사실이 있다면 시효가 중단돼 새로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청구서를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시효가 완성됐다거나, 반대로 무조건 유효하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사고 발생 시점과 그 사이의 절차 진행 경과를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합의서에 "치료비 포함 일체의 손해를 배상한다"고 썼는데도 공단이 구상금을 청구할 수 있나요?
A. 예. 형사합의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사적 채권관계를 정리하는 것일 뿐,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한 공단의 구상권을 당연히 소멸시키지는 않습니다. 다만 합의금에 치료비 상당액이 명확히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구상금액을 다툴 때 참고자료로 쓸 수 있습니다.
Q. 쌍방폭행으로 둘 다 상해를 입었는데 저만 구상금을 청구받았습니다.
A. 공단은 각자 자신이 부담한 상대방의 진료비에 대해 각각 구상권을 행사하므로, 상대방도 자신의 건강보험 사용분에 대해 별도로 구상금을 청구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청구서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상대방이 청구받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Q. 청구금액이 너무 큰데 줄일 방법이 있나요?
A. 쌍방과실이 있다면 그 비율만큼 구상금이 제한되므로, 형사사건 자료나 목격자 진술 등으로 피해자의 과실을 입증하면 금액을 낮출 수 있습니다. 이미 치료비 명목으로 합의금을 지급했다면 그 부분의 공제도 함께 주장할 수 있습니다.
Q. 오래전 사건인데 지금 와서 구상금을 청구받았습니다. 시효가 지나지 않았나요?
A. 손해배상채권은 원칙적으로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일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시효로 소멸합니다. 다만 공단의 최고나 소송 등으로 시효가 중단됐을 가능성도 있어 사건 경과를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Q. 구상금 청구서를 무시하면 어떻게 되나요?
A. 대응하지 않으면 공단이 지급명령이나 소송 등 법적 절차로 넘어갈 수 있고, 그 경우 이의를 다툴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의견제출기한 안에 산정근거 자료를 요청하고 필요한 자료로 다투는 것이 원칙입니다.
Q. 위자료나 휴업손해도 공단이 구상금으로 청구할 수 있나요?
A. 아니요. 공단의 구상권은 자신이 실제로 부담한 진료비, 즉 공단부담금 범위로 한정되고, 위자료나 휴업손해처럼 건강보험 급여와 무관한 손해 항목은 구상금 청구 대상이 아닙니다.
맺음말
폭행 사건에서 피해자와 합의를 마쳤다고 해서 모든 절차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았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별도의 법률상 근거로 가해자에게 구상금을 청구할 수 있고, 그 금액은 쌍방과실 유무와 이미 지급한 합의금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합의했으니 다 끝났다'고 단정하기보다, 청구서를 받으면 그 산정 근거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특히 경기남부, 그중에서도 인계동 일대처럼 쌍방폭행 시비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서는 과실비율을 둘러싼 다툼의 여지가 큰 경우가 많습니다. 구상금 청구서를 받았다면 형사사건 기록과 합의 내용을 먼저 정리해 산정 근거를 검토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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