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재판 성인지적 관점, 피고인 방어권은 어디까지 좁아질까
성범죄 재판 성인지적 관점, 피고인 방어권은 어디까지 좁아질까
법률가이드
성폭력/강제추행 등고소/소송절차

성범죄 재판 성인지적 관점, 피고인 방어권은 어디까지 좁아질까 

강대현 변호사

성범죄 사건을 맡는 변호인들 사이에서 요즘 가장 자주 나오는 하소연이 있습니다. 예전이라면 당연히 다퉜을 방어 논리가 법정에서 힘을 못 쓴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이 성범죄 재판에서 이른바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라고 판시한 뒤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흔드는 전통적인 공격 방식들이 하나둘 배척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피고인의 방어권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무죄추정 원칙과 검사의 증명책임은 형태를 달리해 여전히 살아 있고, 최근 대법원 판례도 이 관점의 한계를 스스로 그은 바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성인지적 관점이 실제로 무엇을 좁히고 무엇은 그대로 두는지, 판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성인지적 관점" 판단기준의 출발점 — 대법원 2018도7709 판결

이 개념이 형사재판의 판단기준으로 자리 잡기 전,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려면 대법원이 요구하는 증명력의 문턱이 매우 높았습니다. 대법원 2012. 5. 10. 선고 2011도16413 판결은 피해자 진술만으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려면 그 진술의 진실성과 정확성에 거의 의심을 품을 여지가 없을 정도의 높은 증명력이 요구되고, 진술 자체의 합리성·일관성·객관적 상당성은 물론 피해자의 인격적 요소까지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문제는 이 기준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법원이 종종 '전형적인 피해자라면 이렇게 행동했을 것'이라는 정형화된 상을 기준 삼아 진술을 배척해 왔다는 점이었습니다.

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은 이 관행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개별·구체적 사건마다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면서, 신고 이후 겪을 수 있는 부정적 반응이나 불리한 처우, 정신적 고통 등 이른바 2차 피해에 대해서도 유의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후 하급심은 물론 대법원 스스로도 이 판결을 반복적으로 인용하면서, 성범죄 사건 심리에서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재판부의 의무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성인지적 관점의 핵심은 '피해자다움'이라는 정형화된 상을 진술 신빙성 판단의 잣대로 쓰지 않는 것이지, 진술을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 아니다.

방어권이 실제로 좁아지는 지점 — "피해자다움" 반박 전략의 무력화

실무에서 방어권이 가장 뚜렷하게 좁아졌다고 느껴지는 지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예전에는 피해자가 사건 직후 곧바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점, 사건 이후에도 가해자와 연락을 계속했다는 점, 뚜렷한 저항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 사건을 겪은 사람치고는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진술 전체의 신빙성을 흔드는 방어 논리가 자주 쓰였습니다. 이런 논리는 '피해자라면 응당 이렇게 반응했을 것'이라는 경험칙에 기댄 것이었고, 그 경험칙 자체가 실제 피해자들의 다양한 반응 양상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성인지적 관점이 적용된 이후로는 이런 사후 행동의 '비전형성'만을 근거로 진술을 배척하는 논리가 단독으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법원은 대신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관계, 위계나 의존관계의 유무, 신고에 따른 보복이나 관계 단절에 대한 우려, 트라우마 반응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 등 구체적 사정을 함께 살핍니다. 즉 방어인이 "왜 곧바로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질문만 던져서 진술의 신빙성을 흔들던 시절은 지나갔고, 그 질문에 대해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 맥락까지 법원이 함께 고려하는 구조로 바뀐 것입니다.

  • 신고 지연 — 즉시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진술의 신빙성을 깎지 못함.

  • 사건 후 접촉 유지 — 가해자와 연락을 계속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동의를 추단하지 못함.

  • 저항 흔적 부재 — 물리적 저항의 흔적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항거불능이나 강제성을 부정하지 못함.

  • 평소와 같은 태도 — 사건 이후에도 일상적으로 행동했다는 사실만으로 진술을 배척하지 못함.

사후 행동이 정형화된 '피해자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논리는 성인지적 관점 아래에서는 단독으로 통하기 어렵다.

좁아지지 않는 것 — 무죄추정과 증명책임, 그리고 대법원이 그은 한계선

성인지적 관점이 방어권을 무력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형사재판을 떠받치는 두 원칙은 이 관점과 무관하게 그대로 유지됩니다. 헌법 제27조 제4항형사소송법 제275조의2가 정한 무죄추정의 원칙, 그리고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이 정한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라는 유죄 인정의 문턱은 성인지적 관점을 이유로 낮아지지 않습니다. 앞서 본 2011도16413 판결이 세운 높은 증명력 기준 역시 폐기된 것이 아니라 2018도7709 판결과 병존합니다. 두 판결을 같이 읽으면, 성인지적 관점은 진술을 배척하는 '태도'에 제동을 거는 것이지 유죄 인정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한계를 대법원 스스로 다시 확인해준 사례가 대법원 2024. 1. 4. 선고 2023도13081 판결입니다. 자폐성 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피고인이 지하철에서 옆자리 피해자에게 신체를 접촉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인데, 원심은 유죄로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추행의 고의가 인정되는지를 다시 심리하라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 이 판결은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과, 그 관점이 구성요건인 고의를 대신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는 한계를 함께 설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성인지적 관점을 지킨다는 것이 곧 유죄를 추정하는 것과 같지 않다는 점을, 이 관점을 처음 세운 대법원 스스로가 재확인한 셈입니다.

성인지적 관점은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하지 말라는 원칙일 뿐, 구성요건 사실에 대한 검사의 증명책임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툴 수 있는 지점 — 진술의 일관성·경험칙·허위 동기를 파고드는 법

2018도7709 판결이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배척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판례가 스스로 제시한 신빙성 판단 요소, 즉 진술 주요 부분의 일관성, 경험칙에 비추어 본 합리성, 진술 자체의 무모순성, 허위로 불리한 진술을 할 동기의 유무는 성인지적 관점 아래에서도 여전히 다퉈지는 지점입니다. 다만 이제는 '피해자다움'이라는 막연한 잣대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로 이 요소들을 파고들어야 실제로 받아들여집니다.

실무에서는 최초 고소장과 수사기관 진술조서, 공판정 진술을 시점별로 나란히 놓고 사건의 시간·장소·행위 태양 같은 핵심 사실이 조금씩 바뀌었는지 대조하는 작업이 기본입니다. 여기에 더해 CCTV, 통신기록, 카드 결제내역, 위치정보처럼 진술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적 정황이 진술 내용과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고,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 금전 관계나 인사상 갈등, 애정 관계의 파탄처럼 허위 진술을 할 만한 동기로 볼 수 있는 정황이 있는지도 함께 살핍니다. 이런 자료는 '전형적이지 않다'는 인상 비판이 아니라 구체적 모순을 드러내는 증거이기 때문에, 성인지적 관점 아래에서도 여전히 무게 있게 다뤄집니다.

  • 시점별 진술 대조 — 최초 신고, 수사기관 진술, 법정 진술 사이 핵심 사실의 변화 여부.

  • 객관적 정황과의 모순 — CCTV·통신기록·카드내역 등 진술과 무관한 자료와의 불일치.

  • 허위 동기 정황 — 금전·인사·애정 관계 갈등처럼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이유의 존재.

  • 경험칙 위반 여부 — 진술 내용이 그 자체로 상식적인 인과관계에 어긋나는지.

예를 들어 피해자가 사건 발생 시각을 수사기관 진술에서는 오후 9시경으로, 법정에서는 오후 11시경으로 진술했다면 그 자체만으로 신빙성이 흔들리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대 피고인의 위치정보나 통신기록, 인근 CCTV 영상이 어느 진술과도 맞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런 식으로 진술 사이의 사소한 차이를 객관적 자료와 겹쳐 놓고 어느 쪽이 사실에 가까운지 검증하는 작업이, 성인지적 관점 아래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통하는 방어 방법입니다.

반대신문권과 2차 피해 방지 사이 — 헌법재판소가 그은 하한선

성폭력처벌법은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여러 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조사와 재판 과정에 신뢰관계인을 동석시키거나 진술조력인을 통해 의사소통을 돕게 하고, 피해자 진술 장면을 영상으로 녹화해 두는 제도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런 장치들이 두터워질수록 피고인 입장에서는 피해자를 직접 마주하고 반대신문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 흐름에 분명한 하한선을 그었습니다. 헌법재판소 2021. 12. 23.자 2018헌바524 결정은 영상물에 담긴 미성년 피해자의 진술에 대해 신뢰관계인 등이 법정에서 그 성립의 진정함만 인정해 주면 별도로 피해자를 반대신문하지 않고도 증거로 쓸 수 있도록 한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했습니다. 신뢰관계인은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이 아니어서, 그에 대한 신문이 원진술자인 피해자에 대한 반대신문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 이유였습니다. 이 결정은 2차 피해 방지라는 목적이 아무리 정당해도 피고인에게서 반대신문 기회 자체를 완전히 박탈할 수는 없다는 헌법적 하한선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다만 실제 신문 방식에서는 질문의 순서와 표현을 사전에 조율하거나 부적절한 질문을 재판부가 즉시 제지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어서, 방어권의 '존재' 자체는 유지되지만 행사되는 '형태'는 예전보다 조심스러워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2차 피해 방지 장치가 아무리 촘촘해져도 원진술자에 대한 반대신문 기회 자체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론이다.

실무에서 방어전략을 다시 짜는 법

결국 성인지적 관점이 자리 잡은 지금의 재판 환경에서 통하는 방어전략은 예전과 방향이 달라야 합니다. 사건 초기 단계부터 통신기록, 위치정보, 카드 결제내역, 목격자 진술처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거나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객관적 자료를 서둘러 정리해 두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진술 분석도 '피해자답지 않다'는 인상 비판이 아니라, 시점별 진술 사이의 구체적 불일치와 객관적 자료와의 모순을 짚는 방식으로 준비해야 법원이 실질적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생깁니다.

신문 단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극적이거나 2차 가해로 비칠 수 있는 질문은 재판부가 먼저 제지하거나 오히려 방어인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으므로, 쟁점이 되는 핵심 사실관계로 질문을 좁혀 사전에 정리해 두는 편이 유리합니다. 법원이 근거 없는 낙인식 공격과 객관적 모순 지적을 구분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진 만큼, 스테레오타입에 기댄 방어를 버리고 사실관계의 정합성을 파고드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는 더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가령 합의 여부가 쟁점인 사건이라면, "피해자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 하나로 승부를 보려 하기보다는 사건 전후의 문자메시지나 대화 내용, 제3자와 나눈 통화 기록처럼 당시 정황을 뒷받침할 자료를 먼저 확보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같은 사실관계라도 '전형적이지 않다'는 인상이 아니라 구체적 자료로 뒷받침될 때 법원이 이를 방어권의 정당한 행사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성인지적 관점이 적용되면 피고인은 사실상 불리하게 시작하는 건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성인지적 관점은 진술을 정형화된 잣대로 함부로 배척하지 말라는 원칙일 뿐, 무죄추정 원칙이나 검사의 증명책임을 바꾸지 않습니다. 2023도13081 판결처럼 구성요건 요소가 증명되지 않으면 여전히 무죄 취지로 판단됩니다.

Q. "피해자가 즉시 신고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아예 쓸 수 없나요?

A. 그 사실 하나만으로 진술 전체의 신빙성을 부정하는 방식은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다만 신고 지연이 다른 객관적 정황과 함께 구체적 모순을 드러내는 맥락이라면 여전히 주장할 수 있습니다.

Q. 진술 신빙성을 다투려면 어떤 자료를 먼저 확보해야 하나요?

A. 통신기록, 위치정보, CCTV, 카드 결제내역처럼 진술과 무관하게 남아 있는 객관적 자료가 우선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삭제되거나 확보가 어려워지는 자료가 많아 사건 초기에 서둘러 정리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반대신문 자체가 아예 제한되는 경우도 있나요?

A. 신뢰관계인 동석이나 영상중계 같은 방식으로 신문 절차의 형태가 조정되는 경우는 있지만,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원진술자에 대한 반대신문 기회 자체를 완전히 박탈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Q. 예전에 쓰던 방어 논리를 그대로 쓰면 오히려 불리해지나요?

A. '피해자답지 않다'는 식의 인상 비판에만 의존하면 법원의 신뢰를 얻기 어렵고 때로는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같은 사실관계라도 객관적 모순을 근거로 구체적으로 짚는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Q. 이런 사건은 변호인 선임 시점이 왜 중요한가요?

A. 통신기록이나 CCTV처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증거가 많고, 신문 전략도 사전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사 초기 단계부터 대응할수록 확보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맺음말

성인지적 관점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없애는 원칙이 아니라, 진술을 함부로 배척하지 말라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좁아진 것은 정형화된 '피해자다움'을 근거로 한 막연한 신빙성 공격이고, 무죄추정 원칙과 증명책임, 원진술자에 대한 반대신문 기회처럼 형사재판의 핵심 골격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대법원 2023도13081 판결과 헌법재판소 2018헌바524 결정이 보여주듯, 이 관점에도 스스로 그은 한계선이 분명히 있습니다.

결국 관건은 어떤 자료로 어떻게 다투느냐입니다. 막연한 인상 비판 대신 시점별 진술 대조와 객관적 정황을 근거로 한 구체적 모순 지적이 지금의 재판 환경에서 더 실질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수원지방법원이나 수원지방검찰청 관할에서 진행되는 사건이라도 이 기본 방향은 다르지 않으니, 사건 초기 단계부터 자료를 정리하고 전략을 세우는 쪽을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강대현 변호사 작성한 다른 포스트
조회수 23
관련 사례를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