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채팅창에서 벌어진 일
2023년 겨울, 20대 대학생 M씨는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팀에 배정된 누군가가 게임 내내 실수를 연발했고, 결국 팀은 허무하게 패배했습니다. 화가 난 M씨는 게임 내 채팅창에 이렇게 입력했습니다.
(입력한 내용 생략)
상대방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고, M씨는 곧 게임을 종료했습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게임하면서 욕 한 번 못 할 거면 뭐하러 게임을 하겠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로 고소되었습니다. 출석해 주세요.”
M씨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욕한 게 범죄라고요? 그것도 성범죄요?”
그렇습니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는 일명 ‘통매음’으로 불리며, M씨처럼 가볍게 내뱉은 말 한마디로도 성립할 수 있는 범죄입니다. 이 범죄의 법정형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런데 M씨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고인에게는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이 없었습니다. 피고인은 게임 패배에 대한 분노를 거칠게 표출했을 뿐입니다. 법원은 이런 경우 통매음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요? 통신매체이용음란죄는 어떤 범죄이며, 왜 M씨 같은 사람들이 이 죄로 고소당하는 걸까요? 제가 집필한 『형사변호사가 소개하는 성범죄 방어 지침서』(이하 『방어 지침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 생소하지만 점점 더 빈번해지는 범죄의 실체를 분석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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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신매체이용음란죄란 무엇인가? — 채팅이 범죄가 되는 기준
(1) 법조문의 정확한 이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3조는 이렇게 규정합니다.
“①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②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하여 ③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④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 조문을 읽으면 누구나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이게 너무 모호한 거 아닌가?”
이 조문은 넓게 해석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성적 수치심을 느꼈는지 여부는 피해자의 주관적 감정에 달려 있고, ‘성적 욕망 목적’이라는 내면의 의도는 외부에서 쉽게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억울한 피의자들에게는 함정이 되고, 동시에 방어의 실마리가 됩니다.
(2) 네 가지 구성요건의 분석
『방어 지침서』는 이 조문의 구성요건을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①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
이것이 바로 통매음이 ‘목적범’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단순히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준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키려는 의도”가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이 ‘목적’을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이 있었는지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행위의 동기와 경위, 행위의 수단과 방법, 행위의 내용과 태양, 상대방의 성격과 범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도21389 판결)
핵심은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보낸 메시지에 성적 표현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성적 목적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②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하여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게임 채팅, 인스타그램 DM, 디스코드, Zoom 화상회의, 일반 전화 통화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형태의 의사소통이 해당합니다.
③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
이에 대한 대법원의 기준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은 피해자에게 단순한 부끄러움이나 불쾌감을 넘어 인격적 존재로서의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끼게 하거나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서 사회 평균인의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성적 수치심 또는 혐오감의 유발 여부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함이 타당하고, 특히 성적 수치심의 경우 피해자와 같은 성별과 연령대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여 그 유발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도21389 판결)
핵심 포인트: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객관적이고 평균적인 기준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④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상대방이 그 내용을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놓이게 하면 충분합니다. 상대방이 읽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으며,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도달’이 완성됩니다.
2. 무죄 판결 사례 분석 — 승부가 갈린 지점
사례 1: 게임 채팅창에 욕설을 한 경우 — 무죄
○○○○법원 2023. X. X. 선고 2023고정XX 판결
사실관계
앞서 소개한 M씨의 사례와 거의 같은 사안입니다. 피고인은 온라인 게임 중 같은 팀원이었던 피해자에게 게임 내 채팅창을 통해 “니 애미 OO이요”, “OO OO ㅋㅋ, 싫은데 OOO아”, “그대로 안방에 있는 니네 OOOOOㅋㅋ” 등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피해자는 이를 통신매체이용음란죄로 고소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이렇게 판시하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피고인과 피해자는 서로 일면식이 없고 서로의 성별도 모르는 사이로서, 이 사건 당일 처음으로 함께 팀을 이뤄 게임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게임 플레이 방식이나 태도에 불만을 느끼고 피해자의 모욕감, 분노감 등을 유발하여 통쾌감, 만족감 등을 느끼고자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글을 채팅창에 게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이 게시한 글의 정도가 피해자가 게시한 글의 정도보다 더 심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욕설이나 비속어에도 성과 관련된 표현이 포함된 경우가 적지 않고,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거나 상대방을 모욕, 조롱함으로써 통쾌함, 만족감 등을 느끼기 위해 성과 관련된 욕설이나 비속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다수 있는바, 성과 관련된 욕설이나 비속어를 사용하였다는 이유로 그러한 표현이 곧바로 발화자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이었다고 추단하기는 어렵다.”
무죄 논리 분석
이 판결이 무죄의 근거로 삼은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사자의 관계: 서로 일면식도 없고, 성별도 모르는 사이였다.
행위의 동기와 경위: 게임 패배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감정적 표출이었다.
맥락의 중요성: 성적 표현이 포함된 욕설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적 목적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분노 표출의 도구로 사용된 것일 뿐이다.
핵심 포인트: 같은 성적 욕설이라도 분노와 모욕의 의도로 한 것인지, 성적 만족을 위한 것인지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이 구분이 바로 유죄와 무죄를 가릅니다.
사례 2: 불쾌감을 주었지만 성적 수치심은 아닌 경우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보아 그 메시지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정도가 아니라면 무죄가 선고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못생겼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거나 “바보”라고 조롱하는 것은 불쾌감을 주지만 성적 수치심과는 무관합니다. 마찬가지로 게임 중 “못한다”라는 비난의 맥락에서 성적 단어가 포함된 욕설을 한 것이라면, 이것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기 위한 의도나 효과를 가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3. 통매음 사건의 방어 전략 — 3가지 핵심 쟁점
전략 1: “성적 욕망 목적이 없었다” — 가장 강력한 방어 논리
통매음은 목적범입니다. 검사는 피고인이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 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어 전략입니다.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다면 성적 목적이 없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과의 관계: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면 성적 목적을 추단하기 어렵습니다.
표현의 동기와 경위: 분노, 모욕, 비난, 항의 등 다른 주된 동기가 분명했다면 성적 목적을 부정할 근거가 됩니다.
메시지의 전체 맥락: 대화의 전체 흐름 속에서 해당 표현이 단순한 욕설이나 감정 표출의 일환으로 사용된 것이라면 유리합니다.
발언 이후의 행동: 추가로 성적 메시지를 보내거나 음란물을 전송하지 않았다면 단발적인 감정적 표현으로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략 2: “객관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정도가 아니다” — 수치심의 객관적 판단
메시지가 다소 저속하고 불쾌하더라도, 그것이 객관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이 제시한 “같은 성별과 연령대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을 기준으로 판단”하라는 기준은 이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예를 들어 게임 커뮤니티에서 흔히 오가는 욕설 수준이라면, 같은 연령대의 평균적인 게이머가 보았을 때 성적 수치심보다는 단순한 불쾌감을 느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핵심 포인트: “피해자가 그렇게 느꼈다”는 주관적 감정만으로 범죄가 성립하지 않으며, 객관적 기준에서 판단되어야 합니다.
전략 3: “대화의 전체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 단어 하나만 떼어내지 마라
검찰은 종종 문제가 된 특정 단어나 문장만을 떼어내어 “이것이 성적 표현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법원은 전체 대화의 맥락을 살펴야 합니다.
상대방과 주고받은 전체 메시지를 제출하여 그것이 서로 욕설을 주고받는 말다툼의 일부였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해자가 먼저 성적 욕설을 했거나, 피고인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했던 기록이 있다면 더욱 유리합니다.
4. 왜 통매음 고소가 늘어나고 있는가?
최근 몇 년 사이 통신매체이용음란죄 고소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방어 지침서』는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1) 디지털 증거의 특성
카카오톡, 문자, 게임 채팅 등은 모두 기록이 남습니다. 상대방은 스크린샷 하나로 쉽게 증거를 확보할 수 있고 경찰서에 제출하기도 용이합니다. 과거라면 말다툼으로 끝날 일이 이제는 증거로 남아 고소로 이어집니다.
(2) ‘성범죄’라는 프레임의 확장
통매음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규정된 성범죄입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단순히 욕을 한 사람이 아니라 성범죄 피의자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이 점을 이용한 악의적 고소도 드물지 않습니다.
(3) 합의금을 노린 고소
실무에서는 통매음 고소 사건 중 상당수가 금전적 합의를 목적으로 한 경우라고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피고소인 입장에서는 성범죄 전과를 피하기 위해 다소 억울하더라도 합의금을 지급하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5. 마치며: 당신의 말 한마디가 범죄가 되는 시대
기술이 발전하고 소통 방식이 바뀌면서 법도 함께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단순한 욕설이나 감정적 표현으로 넘어갔을 말들이 이제는 성범죄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습니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억울한 혐의를 받고 계신다면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하세요.
1. 대화의 전체 맥락을 증거로 확보하세요. 문제가 된 메시지 앞뒤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전체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단어 하나만 떼어내어 판단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2.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명확히 설명하세요. 분노, 항의, 모욕, 비난 등 다른 동기가 있었다면 그것을 분명히 주장하세요. “성적 목적이 아니었다”는 점을 관철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3.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세요. 목적범의 법리는 복잡하고 대화의 해석은 미묘합니다. 전문가와 함께 대응 전략을 수립하세요.
말 한마디가 범죄가 될 수 있는 시대이지만, 그 말의 진짜 의미는 법정에서 밝혀질 수 있습니다. 성적 욕망이 아닌 단지 감정의 표출이었다면 그것을 제대로 증명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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