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죄와 법리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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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추행죄와 법리의 이해 

안영진 변호사

프롤로그: 버스에서 일어난 일

2022년 가을, 만원 버스 안. 30대 직장인 L씨는 지하철역에 도착하기 직전,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갑자기 급정거하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앞으로 쏠렸고, 그 과정에서 앞에 서 있던 여성의 엉덩이에 손이 닿았습니다. 순간이었습니다. L씨는 황급히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내렸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 L씨에게 경찰 출석요구서가 날아왔습니다. 그 여성이 “버스 안에서 한 남자가 일부러 제 엉덩이를 만졌다”며 강제추행으로 고소한 것입니다.

L씨는 억울했습니다. “제가 일부러 만진 게 아닙니다. 버스가 급정거해서 넘어지다 보니 손이 닿은 것뿐입니다.”

그러나 경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이 엉덩이에 닿은 건 사실이죠? 버스 CCTV에는 당신이 넘어지면서도 손을 뻗은 것처럼 보이던데요.”

이것은 실제로 흔히 일어나는 상황입니다. 강제추행죄에서 가장 문제 되는 쟁점 중 하나는 ‘고의’입니다. 신체 접촉이 있었는지는 명확해도, 그 접촉이 의도된 것인지, 우연한 것인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L씨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강제추행죄는 고의범입니다. 피고인에게 추행의 고의가 있었다는 점을 검사가 증명해야 합니다. 버스 급정거라는 돌발 상황에서 우연히 발생한 접촉을 두고 피고인에게 추행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요? 『형사변호사가 소개하는 성범죄 방어 지침서』(이하 『방어 지침서』)는 이와 유사한 사건에서 추행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된 판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강제추행죄의 핵심 쟁점인 ‘폭행·협박’의 의미, ‘기습추행’의 법리, 그리고 ‘고의’의 증명 문제를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심층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1. 강제추행죄란 무엇인가? — ‘폭행’의 의미가 당신의 상식과 다를 수 있다

(1) 법조문의 정확한 이해

형법 제298조는 이렇게 규정합니다.

“① 폭행 또는 협박으로 ② 사람에 대하여 ③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정형만 보면 강제추행죄는 최대 징역 10년까지도 가능한 중범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폭행’의 의미가 일반인의 상식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2) ‘폭행’의 두 가지 의미 — 대법원 판례의 변화

과거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의 ‘폭행’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쉽게 말해, 상대방이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물리력이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례를 변경하여 다음과 같은 법리를 확립했습니다.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에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폭행행위 그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된다. 폭행은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

(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2도8767 판결)

이것이 바로 ‘기습추행’의 법리입니다. 이 판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무죄 변론의 출발점이 됩니다.

(3) ‘기습추행’ 법리의 의미 — 폭행과 추행이 하나가 되는 순간

기존에는 “폭행(1단계) → 항거곤란 → 추행(2단계)”이라는 2단계 구조였습니다. 폭행으로 상대방의 저항을 꺾은 뒤에 추행행위를 해야만 강제추행이 성립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기습추행 법리는 “폭행이 곧 추행”인 경우를 인정합니다. 예를 들어, 버스 안에서 상대방의 엉덩이를 갑자기 만지는 행위는 ‘만지는 것(폭행)’과 ‘추행’이 하나로 합쳐진 것입니다. 상대방이 미처 저항할 틈도 없이 추행이 이루어지는 경우, 별도로 강한 폭행이 없더라도 강제추행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 피고인이 “때리거나 밀친 적도 없고, 상대방이 저항할 수 있었는데 왜 강제추행인가”라고 주장하더라도, 기습추행 법리에서는 그 주장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4) 그렇다면 어디서 방어할 것인가? — ‘추행의 고의’와 ‘추행 해당성’

기습추행 법리에서 폭행의 정도는 더 이상 주요 쟁점이 아닙니다. 따라서 방어의 초점은 두 가지로 좁혀집니다.

첫째, ‘추행의 고의’가 있었는가?

형법 제13조는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합니다. 강제추행죄는 고의범이므로, 피고인이 추행의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검사가 증명해야 합니다.

둘째, 그 행위가 객관적으로 ‘추행’에 해당하는가?

단순한 신체 접촉이 모두 추행은 아닙니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여야 합니다.

2. 무죄 판결 사례 분석 — 어디서 승부가 갈렸나?

사례 1: 긴급 상황에서의 신체 접촉 — 추행 고의가 부정된 사례

○○○○법원 2019. X. X. 선고 2018고단XX 판결

사실관계

피고인은 농장에서 일하던 중, 외국인 여성 근로자 피해자와 함께 축사에서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새끼 돼지가 어미 돼지에게 깔리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피고인은 외국인인 피해자에게 이 상황을 빨리 알리기 위해 말로 설명하는 대신 피해자의 어깨를 잡고 엉덩이 부위를 툭 쳤습니다. 피해자는 이를 강제추행으로 고소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이렇게 판시하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피고인은 새끼돼지가 어미돼지에 깔려 소리를 지르는 상황에서 외국인이어서 언어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피해자에게 그곳으로 빨리 가라는 의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것일 뿐 추행의 의도나 고의는 없다. 당시 돼지의 압사를 막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던 긴박한 상황과 신체 접촉의 정도 등에 비추어 볼 때, 검사는 피고인의 행동이 강제추행의 고의에 의한 것임을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하지 못하였다.”

무죄 논리 분석

이 판결의 핵심은 ‘행위의 목적과 상황’입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했습니다.

* 긴박한 상황: 돼지의 생명이 위험한 긴급 상황이었다.

* 의사소통의 어려움: 언어가 통하지 않아 신체 접촉이 불가피했다.

* 접촉 부위와 방식: 엉덩이를 툭 친 것은 ‘빨리 가라’는 신호로 볼 여지가 충분했다.

* 추행 동기나 의도 없음: 성적 의도가 개입될 상황이 아니었다.

핵심 포인트: 같은 신체 접촉이라도, 그 행위의 목적과 상황에 따라 추행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엉덩이를 만졌다”는 결과만 보지 말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반드시 살펴야 합니다.

사례 2: 동료가 지켜보는 자리에서의 행동 — 추행 사실 자체가 의심스러운 사례

○○○○법원 2019. X. X. 선고 2018고단XX 판결

사실관계

피고인과 피해자는 같은 농장에서 일하는 동료였습니다. 피해자는 “2017년 3월 10일 밤 10시경, 숙소 식당에서 피고인이 소파에 앉아 식사 중이던 자신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껴안으려 했다”며 강제추행으로 고소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은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피해자는 농장에서 같이 일한 남자 직원이 추행 사실을 목격했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지목한 목격자로 보이는 E은 이 법원에 증인으로 나와 추행 사실을 목격한 바 없다고 증언하였다. 정황상 다른 동료가 빤히 보고 있는 자리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했다는 것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점, 피해자의 진술 내용이 조사 기관 및 시점에 따라 변경되고 있는 점 등까지 고려할 때 피해자의 진술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무죄 논리 분석

이 판결은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보여줍니다.

* 목격자가 있었음에도 목격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추행이 일어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 부재: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으면, 그 진술의 신빙성이 무너집니다.

핵심 포인트: 검사가 제출한 증거가 피해자 진술 하나뿐이라면, 그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것이 강력한 방어 전략입니다.

3. 강제추행죄의 방어 전략 — 4가지 핵심 쟁점

전략 1: “추행의 고의가 없었다” — 강력한 방어 논리

위에서 분석한 2018고단XX 판결처럼, 신체 접촉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성적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음을 입증하면 무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사정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 행위의 목적: 업무상 지시, 긴급 상황 대처, 실수, 장난 등 비성적 목적이 분명한 경우

* 행위 당시의 상황: 소음, 혼잡, 급정거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한 우발적 접촉

* 접촉 부위와 방법: 성적 부위를 직접 만졌는가, 아니면 단순히 스치거나 툭 친 정도인가

* 행위 전후의 언행: 성적 농담을 하거나 추가적인 신체 접촉을 시도했는가

주의할 점: “고의가 아니었다”는 주장은 변호인을 통해 법리적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수사기관에서 함부로 “실수였다”고 말하면, 행위 자체는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전략 2: “이 행위가 객관적으로 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 — 추행의 해석

모든 신체 접촉이 추행은 아닙니다. 추행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여야 합니다(대법원 2005. 7. 14. 선고 2003도7107 판결).

다음과 같은 행위는 추행으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 공개된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오가는 정도의 신체 접촉

* 업무상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접촉

* 짧은 순간 우연히 스치고 지나간 정도의 접촉

* 상대방이 사전에 허용한 범위 내의 접촉

전략 3: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 — 동의의 존재

피해자가 접촉을 허용했거나, 적어도 묵시적으로 동의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면 방어 논리가 됩니다.

* 피해자가 먼저 신체 접촉을 해온 적이 있는가?

* 평소 두 사람이 스스럼없이 신체 접촉을 주고받는 관계였는가?

* 문제의 행동 당시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표현했는가?

전략 4: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 피해자 진술의 탄핵

강제추행 사건에서도 증명책임의 원칙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 진술의 모순점, 일관성 결여, 사건 전후의 행동 등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합니다.

* 피해자 진술이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달라졌는가?

* 사건 발생 시점과 고소 시점 사이에 시간이 많이 지났는가?

* 그 사이에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가?

* 피해자의 행동이 성범죄 피해자로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없는가?

4.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 — 오해를 부르는 대응

첫째, 피해자에게 “내가 언제 그랬냐”고 따지지 마세요

억울한 마음에 피해자에게 연락해 항의하거나 해명하려는 시도는 위험합니다. 이는 2차 가해로 간주될 수 있으며, 협박이나 보복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모든 의사소통은 변호인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 사건 당일의 상황을 과장해서 진술하지 마세요

“나는 그 시간에 거기에 없었다”는 알리바이 주장이 거짓으로 판명되면, 다른 모든 진술도 신뢰를 잃습니다. 기억나는 사실만 정확히 진술하고,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솔직히 말해야 합니다.

셋째, “그냥 실수였다”고 쉽게 말하지 마세요

‘실수’는 ‘고의가 아니었다’는 의미이지만, 수사관은 “접촉 사실은 인정했다”고 기록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법정에서 “접촉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진술은 변호인과 상의한 후에 해야 합니다.

5. 마치며: 당신의 일상이 범죄가 되는 경계에서

강제추행죄는 그 법정형만 보아도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닙니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누군가의 오해나 실수로 인해 한순간에 강제추행 혐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강제추행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형법은 그 접촉이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추행의 고의가 있어야 하며, 객관적으로 추행에 해당하는 행위여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증명되지 않으면 무죄입니다.

『형사변호사가 소개하는 성범죄 방어 지침서』가 판례를 통해 보여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같은 신체 접촉이라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억울한 강제추행 혐의를 받고 있다면, 다음 세 가지만 기억하세요.

1. 당황하지 말고 사건 당일의 상황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세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 접촉이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세요.

2.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세요. CCTV, 목격자 연락처, 그 시간대에 다른 곳에 있었다는 증거(카드 사용 내역, 교통카드 기록 등) 등 모든 자료를 모으세요.

3.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세요. 피고인에게 증명책임은 없지만, 그 원칙을 법정에서 관철시키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억울한 혐의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혐의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입니다. 침착하게, 그리고 전략적으로 대응하세요. 진실은 법정에서 밝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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