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사회에서 물러난 지 얼마 안 된 이사가 밀린 보수와 퇴직위로금을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다가, 정작 소장에 회사를 대표할 사람으로 누구를 적어야 하는지부터 막힙니다. 대표이사 이름을 적으면 될 것 같지만, 상대가 다름 아닌 회사의 이사, 그것도 자신이 몸담았던 이사회의 동료라는 이유로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 반대로 회사 쪽에서 임무를 소홀히 한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 할 때도 똑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이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소장에 대표자를 잘못 적었다는 이유만으로 소송 자체가 통째로 각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당황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이사와 회사 간 소송에서 대표자가 갈리는 이유
평소 회사를 대표해 계약을 맺고 소송을 수행하는 사람은 대표이사입니다. 그런데 회사와 그 이사 본인이 소송의 양쪽 당사자가 되는 순간, 이 원칙이 뒤집힙니다. 상법은 이런 경우 대표이사가 아니라 감사가 회사를 대표하도록 정해 두고 있습니다(상법 제394조 제1항).
범위도 한쪽 방향에 그치지 않습니다. 회사가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경우뿐 아니라, 거꾸로 이사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경우에도 감사가 회사를 대표한다는 점은 똑같이 적용됩니다. "회사가 소를 거는 쪽이니 감사가 나서고, 이사가 소를 거는 쪽이면 평소처럼 대표이사가 응소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상법은 방향을 따지지 않습니다. 소송의 당사자가 이사 본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대표자가 바뀝니다.
퇴직위로금·보수 청구, 해임무효 확인,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임무해태에 따른 손해배상 등 다툼의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이사와 회사가 소송의 양쪽에 서는 구도라면 이 규정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상법 394조의 적용 범위와 감사가 대표해야 하는 이유
상법 제394조 제1항은 "회사가 이사에 대하여 또는 이사가 회사에 대하여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 감사는 그 소에 관하여 회사를 대표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회사가 제403조제1항 또는 제406조의2제1항의 청구를 받은 경우에도 또한 같다"고 덧붙이는데, 이는 주주가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대표소송·다중대표소송의 제소청구를 회사가 받은 경우에도 감사가 대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이 조문이 적용되는 경우는 다음 네 가지입니다.
회사가 이사를 상대로 직접 소를 제기하는 경우
이사가 회사를 상대로 직접 소를 제기하는 경우
주주가 상법 제403조 제1항에 따라 이사 책임 추궁 소 제기를 회사에 청구한 경우
모회사 주주가 상법 제406조의2 제1항에 따라 다중대표소송 제소를 자회사에 청구한 경우
이렇게 대표자를 바꾸는 이유는 이해상충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대표이사와 소송의 상대방이 되는 이사는 대개 같은 이사회를 구성해 온 동료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에서 대표이사가 회사를 대표해 소송을 수행하면, 회사와 주주 전체의 이익보다 동료 이사 개인의 체면이나 이해관계를 배려해 소송을 부실하게 끌고 갈 위험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법은 이 위험을 애초에 차단하기 위해, 이사와 별도로 회사의 업무·회계를 감사할 권한을 가진 감사에게 소송 수행권까지 맡긴 것입니다.
이 원칙을 어기면 소송 자체가 무너집니다. 대법원 1990. 5. 11. 선고 89다카15199 판결은, 이사가 회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면서 감사가 아닌 대표이사를 회사의 대표자로 표시한 사안에서, 대표이사에게는 애초 그 소송에 관해 회사를 대표할 권한이 없으므로 소장이 피고 회사에 적법·유효하게 송달되었다고 볼 수 없고, 대표이사가 그 소송에서 한 소송행위는 모두 무효라고 판시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2021. 5. 13. 선고 2020나2020645 판결도 원고가 피고 회사의 이사인 사건에서 대표이사를 회사의 대표자로 표시한 소장은 대표권 없는 자를 대표자로 기재한 것이어서 부적법하다고 같은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대표자 표시 하나를 잘못 잡으면, 실체 다툼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각하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감사가 아예 없는 회사도 있습니다. 상법 제409조 제4항에 따라 자본금 총액이 10억 원 미만인 회사는 감사를 선임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런 소규모회사가 이사와 소송을 벌이게 되면 상법 제409조 제5항에 따라 회사·이사·이해관계인 중 누구든 법원에 "회사를 대표할 자"를 선임해 달라고 신청해야 합니다. 감사위원회를 둔 회사에서 감사위원회 위원 본인이 소송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상법 제394조 제2항에 따라 감사위원회 또는 이사가 법원에 대표할 자의 선임을 신청해야 합니다. 감사, 소규모회사, 감사위원회 설치회사 중 어디에 해당하든 대표이사가 임의로 나설 수 있는 경우는 없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2020년 12월 개정상법으로 다중대표소송(상법 제406조의2)이 신설되면서 적용 범위는 한 번 더 넓어졌습니다. 모회사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1 이상을 가진 주주는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소 제기를 자회사에 청구할 수 있고, 자회사가 청구를 받은 날부터 30일 안에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주주가 직접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습니다. 이때도 상법 제394조가 그대로 적용되어, 자회사의 감사가 그 소송에서 자회사를 대표합니다. 대표자를 잘못 세운 채 시간을 흘려보내면, 시효가 임박한 사건일수록 다시 소를 내는 사이 청구권 자체가 흔들릴 위험도 커집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소장 표시부터 대표자 선임 신청까지
법리를 확인했다면, 실제로는 다음 순서로 점검하고 대응합니다.
회사 등기부와 정관부터 확인 — 소를 제기하기 전에 법인등기부를 발급해 감사가 등기돼 있는지, 감사위원회를 둔 회사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감사가 있는 통상의 회사라면 그 감사가, 감사위원회 설치회사이고 위원 본인이 당사자가 아니라면 감사위원회가 회사를 대표합니다.
소장 당사자표시를 정확히 — 원고든 피고든 회사 쪽 당사자표시는 "피고(원고) ○○○ 주식회사, 대표자 감사 □□□"로 적어야 합니다. 대표이사 이름을 적으면 대표권 없는 자를 대표자로 기재한 것이 되어 각하 사유가 됩니다.
이미 잘못 진행된 소송이라면 당사자표시정정 — 대표이사 명의로 소장을 이미 접수했다면, 각하 결정이 나기 전에 감사를 대표자로 하는 당사자표시정정신청을 서둘러 내야 합니다. 각하까지 가면 처음부터 다시 소를 제기해야 해서 시간과 비용이 이중으로 듭니다.
감사가 없는 소규모회사라면 법원에 대표할 자 선임부터 — 자본금 10억 원 미만이라 감사를 두지 않은 회사라면, 소송에 앞서 법원에 회사를 대표할 자의 선임을 신청해 그 결정을 받은 뒤 소송을 진행해야 절차 하자를 피할 수 있습니다.
감사위원이 당사자라면 별도 선임 신청 — 감사위원회 위원 본인이 소송당사자가 되는 사안에서는 감사위원회나 이사가 법원에 대표할 자의 선임을 신청해, 감사위원회 자체가 대표하는 구조의 이해상충을 다시 한번 차단해야 합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회사 등기부터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
이사와 회사 간 소송에서 가장 위험한 실수는 "대표이사니까 당연히 회사를 대표하겠지"라고 넘겨짚고 소장부터 접수하는 것입니다. 회사가 이사를 상대로 걸든 이사가 회사를 상대로 걸든, 대표자를 잘못 세우면 실체 다툼은 시작도 못 해보고 각하로 끝날 수 있습니다.
이사와 회사 사이에 소송을 준비하고 계시다면, 감사 선임 여부와 소장 대표자 표시부터 먼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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