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색한 사안입니다.
0. 프롤로그
그룹사 회식 자리였습니다. 1차와 2차를 거쳐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다른 부서 후배 H씨와 단둘이 남게 된 30대 대리 K씨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편의점에서 소주를 더 사서 공원 벤치에서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H씨가 먼저 집에 가기 싫다고 하자 K씨는 근처 모텔로 향했습니다. 로비에서 함께 커피를 뽑아 마신 뒤 방으로 들어갔고, 그날 밤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석 달 뒤 K씨는 경찰서 출석요구서를 받았습니다. H씨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사이에 성폭행을 당했다며 준강간으로 고소한 것이었습니다.
K씨는 술에 취해 보이긴 했지만 대화도 나눴고 눈도 뜨고 있었으며 폭력을 쓰거나 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수사기관은 피해자가 소주를 두 병 넘게 마셨고 모텔 CCTV에 비틀거리는 모습이 찍혔다며 그 상태를 이용한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변호인은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고 의뢰인도 그렇게 인식하지 않았다고 맞섰습니다. 법원은 결국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글은 제가 쓴 책 『형사변호사가 소개하는 성범죄 방어 지침서』에 나온 판결 중 준강간 무죄 판결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1. 준강간죄의 성립 요건
형법 제299조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이나 추행을 한 경우를 강간이나 강제추행에 준해 처벌한다고 정합니다.
여기서 심신상실은 정신장애나 의식장애 때문에 성적 행위에 관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완전히 기절했거나 약물로 의식이 차단됐거나 깊은 수면으로 아무 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고, 단순히 술에 취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항거불능은 심신상실 외의 이유로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한 상태를 뜻합니다. 반항이 어려웠다는 정도가 아니라 몸이 속박됐거나 극도의 공포로 굳어 움직일 수 없는 정도를 말합니다.
대법원은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폭행이나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를 뒤집으면 항거가 불가능하지 않았다면 준강간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검사는 피해자가 실제로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점과 피고인이 그 상태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해 간음했다는 점을 함께 증명해야 합니다.
2. 무죄 판결이 나온 이유
첫 번째 사례는 2021년 모 지방법원 판결입니다. 피고인은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피해자와 술 게임을 하며 입맞춤 등 신체접촉을 했고, 이후 모텔로 자리를 옮겨 다른 일행이 밖에 기다리는 사이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피해자는 술에 취해 잠든 사이에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공소사실 자체가 피해자가 실제로는 반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취하지 않아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는데도 피고인이 오인했다는 취지였습니다.
법원은 CCTV에서 피해자가 피고인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어깨동무를 하거나 팔을 잡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확인했고, 간음 당시 눈을 뜨고 있었으며 자는 척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피고인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다고 인식했거나 그 상태를 이용해 간음할 의사로 행동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앞서 술자리에서 피고인이 스킨십을 해도 되냐고 묻자 피해자가 허락한 대화가 있었던 점도 피고인이 동의를 전제로 인식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했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2012년 모 지방법원 판결입니다. 피해자는 피고인과 단둘이 술을 마신 뒤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성관계를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경찰과 법정에서 사건 일시와 횟수에 대한 진술이 여러 차례 바뀌었고, 사건 당일 혼자 소주 한 병과 맥주 캔을 마셨지만 피고인을 만날 당시에는 취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적도 있었습니다. 사건 이후에도 피고인에게 집 현관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고 출입을 허용한 점이 드러났습니다. 법원은 진술의 일관성이 없고 사건 전후 행동이 피해 주장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3. 방어에서 중점이 되는 것들(논리)
준강간 사건에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중요합니다.
스스로 걷고 대화하고 판단하는 모습이 담긴 CCTV, 사건 전후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드러나는 카카오톡이나 문자, 직접 결제한 카드 내역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
스스로 행동을 주도했는지,
피고인이 괜찮냐고 의사를 확인했는지,
주변이 밝아 상태를 명확히 볼 수 있었는지 같은 정황은 피고인이 항거불능 상태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을 뒷받침합니다.
또한, 사건 이후 피해자가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는지,
피고인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고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지,
그 사이에 금전 문제 등 다른 갈등이 있었는지 같은 전후 사정도 판단 자료가 됩니다.
고소가 늦어진 배경에 관계가 틀어진 데 대한 앙심이나 가족에게 발각된 사실을 합리화하려는 동기, 금전 합의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도 진술 신빙성을 다투는 지점입니다.
형사소송에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습니다. 피해자가 항거불능이었다는 점과 피고인이 그 상태를 이용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으면 법원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4. 술자리 사건의 함정과 대응
무죄 판결이 있다고 해서 술에 취한 사람과의 성관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완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거나 몰래 약물을 탄 경우, 명시적인 거부를 무시하고 관계를 강요한 경우, 피해자가 미성년자이거나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원래 항거가 어려운 경우에는 무죄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법원이 보호하려는 것은 진정한 동의 없이 이루어진 성관계이며 동의 여부는 객관적 증거와 전체 정황으로 판단됩니다.
혐의를 받는 입장이라면 당황하지 말고 사건 당일의 시간대별 행적을 정리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고 누가 이를 목격했는지를 세세히 적어두고, CCTV와 메시지, 카드 사용 내역, 택시나 대리운전 호출 기록 등 함께 있었던 시간의 행적을 보여주는 자료를 확보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스스로 걷고 말하고 판단하고 행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는 항거불능이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핵심이 됩니다.
준강간죄는 피해자 상태와 피고인 인식이라는 복잡한 법률 판단이 얽혀 있어 초기 대응을 혼자 진행하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5. 결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라는 말을 어디서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 가장 힘드실 겁니다.
많은 분들이 같은 두려움으로 연락을 주셨습니다. 저는 무죄, 무혐의 같은 결과보다 먼저 그날의 사실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를 듣는 데 시간을 씁니다.
혼자 결론 내리지 마시고, 편하게 이야기부터 나누어 보시죠.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https://www.mbn.co.kr/news/society/5186554
https://www.kbsm.net/news/view.php?idx=517965
https://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559813
https://www.itbiz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545
https://www.megaeconomy.co.kr/news/newsview.php?ncode=106560428142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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