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돈을 빼돌린 동업자 — 회계장부 열람 가처분과 손해배상
사건 개요
둘이 자본을 모아 법인을 세우고, 한 사람이 대표이사를 맡아 통장과 법인카드를 관리합니다. 처음 몇 해는 별 탈이 없습니다. 그런데 매출은 분명히 늘었는데 배당은커녕 "지금은 여유가 없다"는 말만 돌아오고, 어느 날 결산서를 들여다보니 가지급금이 이유 없이 불어 있고 용도를 알 수 없는 현금 인출과 대표 개인 계좌로의 반복 이체가 눈에 들어옵니다. 물어보면 "회사 돈은 내가 벌어 온 것"이라거나 "장부는 대표가 관리하는 것이니 보여줄 이유가 없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동업 분쟁으로 상담을 오시는 분들이 가장 흔하게 겪는 장면입니다. 억울함의 크기는 분명한데, 정작 손에 쥔 것은 정황뿐이고 숫자가 없습니다. 그 상태에서 곧바로 "횡령했으니 처벌해 달라"고 나서면, 상대는 시간을 벌어 전표를 정리하고 없던 증빙을 만들어 붙입니다. 회사의 자료가 전부 상대의 손안에 있기 때문에, 다툼의 승패는 사실 누가 먼저 장부에 접근했는가에서 상당 부분 갈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주주나 사원은 회사의 회계장부를 열람·등사해 달라고 청구할 권리가 있고, 회사가 이를 거부하면 가처분으로 강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확보한 자료가 있어야 비로소 손해배상과 형사 책임이 구체적인 금액과 항목을 갖춘 주장으로 바뀝니다. 순서를 뒤집으면 같은 사실관계로도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에서 실제로 판단이 갈리는 지점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청구할 자격이 있는가입니다. 주식회사라면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3 이상을 가진 주주가 회계장부 열람·등사를 청구할 수 있고(상법 제466조 제1항), 유한회사라면 자본금 총액의 100분의 3 이상 출자좌수를 가진 사원이 같은 권리를 갖습니다(같은 법 제581조). 법인을 세우지 않고 민법상 조합으로 동업한 경우라면, 각 조합원은 언제든지 조합의 업무와 재산 상태를 검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710조).
둘째, '이유를 붙인 서면'이라는 형식 요건입니다. 법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이유를 기재한 서면을 요구하며, 대법원은 회계장부 열람이 회사 운영상 중대한 일인 만큼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1999. 12. 21. 선고 99다137 판결). 셋째, 회사의 거부가 정당한가입니다. 상법 제466조 제2항은 회사가 그 청구의 부당함을 증명하지 못하면 거부하지 못한다고 정해, 입증의 부담을 회사에 지웁니다. 넷째, 확보한 자료로 유출된 돈을 어떤 경로로 되돌릴 것인가—이사의 손해배상책임, 주주대표소송, 형사 고소 중 무엇을 어떤 순서로 쓸 것인가입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으로 자금 흐름을 먼저 확보하기
이 사건의 실질은 증거 확보 싸움입니다. 상대가 자료를 쥔 채 시간이 흐르면 정황은 남아도 숫자는 사라집니다.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 순서로 장부에 접근하는 길부터 엽니다.
1) 청구 자격과 대상 서류의 범위를 먼저 확정합니다.
3% 요건을 충족하는지는 주주명부와 명의개서 상태로 확인합니다. 동업이라면 대개 이 요건은 넉넉히 넘지만, 명의를 신탁해 두었거나 증자 과정에서 지분이 희석된 경우에는 자격 자체가 첫 다툼이 되므로 미리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의뢰인이 이사 지위를 겸하고 있다면 상법 제393조 제2항·제3항이 정한 이사회의 감독권과 보고요구권이라는 별도 경로도 함께 활용합니다. 대상 서류는 "회계장부 일체" 같은 막연한 표현이 아니라 총계정원장과 계정별원장(특히 가지급금·가수금·미수금), 법인 계좌 거래내역, 전표와 그 증빙, 급여대장, 법인카드 사용내역, 이사회·주주총회 의사록처럼 항목과 기간을 특정해 적습니다.
2) '이유를 붙인 서면'을 다툼을 견디는 수준으로 씁니다.
이유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의심의 근거를 미리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면을 보내기 전에 주주로서 이미 접근할 수 있는 자료부터 확보합니다. 재무제표·영업보고서·감사보고서는 주주와 회사채권자가 영업시간 내에 언제든지 열람하고 등본·초본 교부를 청구할 수 있으므로(상법 제448조 제2항), 이를 통해 매출 추이에 비해 현금이 줄어든 시점, 가지급금이 급증한 사업연도처럼 이상 징후를 연도·계정 단위로 특정합니다. 그런 뒤 "어느 기간 어느 계정에 어떤 이상이 있어 이사의 임무 위반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형태로 이유를 적어, 회사가 "막연한 의심에 불과하다"고 다툴 여지를 좁힙니다.
3) 본안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가처분으로 집행합니다.
서면 청구를 거부당하면 곧바로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을 신청합니다. 이는 다툼이 있는 권리관계에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으로, 본안의 목적을 사실상 달성하는 만족적 가처분이지만 판례상 허용됩니다. 다만 채무자가 참석할 수 있는 심문기일을 거쳐야 하므로(같은 법 제304조) 신청서 단계에서 이유와 대상을 촘촘히 써 두어야 합니다. 결정을 받은 뒤가 더 중요합니다. 이 가처분이 명하는 것은 부대체적 작위채무여서 간접강제로 집행하는데, 대법원은 그 집행기간이 재판을 고지받은 날부터 2주이며(민사집행법 제301조, 제292조 제2항) 이 기간이 지나면 간접강제를 신청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17. 4. 7. 선고 2013다80627 판결). 어렵게 받은 결정을 사문화시키지 않으려면 결정 즉시 열람 일정을 잡고 간접강제까지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정당한 사유 없는 열람 거부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대상이기도 해(상법 제635조 제1항 제4호) 협상 단계의 압박 수단이 됩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확보한 자료로 배상 청구와 형사 책임을 함께 세우기
장부를 손에 넣었다고 돈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유출된 항목마다 성격이 다르고, 청구할 주체와 근거 조문도 달라집니다. 이 단계에서는 다음을 정리합니다.
1) 유출 항목별로 반환 근거를 나누어 세웁니다.
같은 '개인 계좌로 간 돈'이라도 장부상 이름표는 제각각입니다. 가지급금으로 잡혀 있다면 형식상 대여이므로 반환 시기와 이자를 따져 대여금 반환을 구하고, 근무하지 않은 가족에게 지급된 허위 급여나 실체 없는 용역대금이라면 법률상 원인 없는 이득이므로 부당이득 반환(민법 제741조)과 불법행위 손해배상(같은 법 제750조)이 근거가 됩니다. 나아가 상대가 이사라면 상법 제399조 제1항에 따라 법령·정관 위반이나 임무 해태로 회사에 끼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집니다. 여기서 청구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회사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상대가 대표이사라 회사가 스스로 소를 제기할 리 없으므로,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1 이상을 가진 주주가 이유를 적은 서면으로 회사에 제소를 청구하고 30일 안에 회사가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주주가 직접 소를 제기합니다(상법 제403조). 그 기간을 기다리면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는 경우에는 즉시 제소할 수 있습니다.
2) 상대의 지위를 흔들어 추가 유출을 막습니다.
배상 판결을 받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데, 그동안 상대는 여전히 통장을 쥐고 있습니다. 이사는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언제든 해임할 수 있지만(상법 제385조 제1항), 지분이 반씩 나뉜 동업에서는 해임안이 부결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법은 이사에게 직무에 관한 부정행위나 법령·정관 위반의 중대한 사실이 있는데도 주주총회가 해임을 부결한 때, 3% 이상 주주가 결의일부터 1개월 내에 법원에 해임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같은 조 제2항). 이 1개월은 짧아서, 해임 안건을 상정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두지 않으면 그대로 지나갑니다. 해임의 소를 제기하면 법원은 가처분으로 직무집행을 정지하거나 직무대행자를 선임할 수 있고, 급박한 사정이 있으면 본안 제기 전에도 가능합니다(같은 법 제407조). 열람으로 드러난 유출이 소송 중에도 계속되는 상황을 끊는 장치가 이것입니다.
3) 형사 고소는 자료가 정리된 뒤에 냅니다.
법인의 자금을 보관하는 지위에서 개인 용도로 소비했다면 업무상횡령이 문제 되고,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형법 제356조). 이득액이 5억 원 이상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50억 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됩니다(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다만 고소를 먼저 던지는 것은 대개 손해입니다. 이체 내역만으로는 불법영득의사가 잘 인정되지 않아, 상대가 "회사를 위해 쓴 돈"이라며 뒤늦게 증빙을 맞춰 오면 혐의없음으로 끝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부와 계좌를 대조해 변제 흔적이 없고 장부상 은폐가 있었으며 증빙이 사후에 만들어졌다는 점까지 세운 뒤에 고소합니다. 민사에서도 금융거래정보는 법원의 제출명령이나 사실조회를 통해 받을 수 있으므로(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1호, 민사소송법 제294조·제344조), 수사기관의 계좌추적에만 의존하지 않고 두 경로를 함께 씁니다.
결론
동업 자금 분쟁에서 가장 자주 보는 실패는 억울함을 먼저 터뜨리고 자료를 나중에 찾는 것입니다. 상대가 대표 지위를 유지한 채 몇 달이 흐르면 전표는 정리되고 증빙은 갖춰집니다. 반대로 재무제표 열람으로 이상 징후를 특정하고, 이유를 갖춘 서면 청구를 보내고, 거부당하는 즉시 가처분으로 들어가면 상대가 손댈 수 없는 형태로 숫자가 남습니다.
그 자료가 있어야 손해배상도 대표소송도 형사 고소도 구체적인 항목과 금액을 갖춘 주장이 됩니다. 결정을 받은 뒤 2주라는 집행기간, 해임 청구의 1개월처럼 놓치면 되돌릴 수 없는 기간이 곳곳에 있다는 점도 함께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지금 회사 자금의 흐름이 석연치 않다고 느끼신다면, 무엇을 먼저 요구하고 어떤 순서로 움직여야 하는지 대응의 설계를 한 번 점검받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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