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승인이 나고 치료비와 휴업급여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이제 보상 문제는 정리됐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통장을 들여다보면 쉬던 기간의 임금은 일부만 채워져 있고, 몸이 예전 같지 않은 데 대한 보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친 사람이 겪은 고통과 앞으로 줄어들 소득은 산재보험이 처음부터 다 메우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지켜야 할 안전조치를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났다면, 산재 승인과는 별개로 회사를 상대로 남은 손해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산재보험급여로 메워지지 않는 손해가 남는 이유
산재보험은 사업주에게 잘못이 있었는지를 따지지 않고 업무상 재해라는 사실만 확인되면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잘못을 다투느라 시간을 끌지 않고 우선 치료와 생계를 받쳐주자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 대가로 급여 항목과 금액이 법에 정해진 범위로 묶여 있습니다. 빠르게 받는 대신 정해진 만큼만 받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실제 손해와 받은 급여 사이에 구멍이 생깁니다. 대표적인 것이 휴업급여입니다. 휴업급여는 요양으로 일하지 못한 기간에 대해 1일당 평균임금의 100분의 70을 지급하므로, 원래 받던 임금의 나머지 30%는 처음부터 보전 대상이 아닙니다. 요양이 반년, 1년으로 길어질수록 이 차액은 그대로 쌓입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위자료입니다. 산재보험급여는 요양급여·휴업급여·장해급여·간병급여·유족급여·상병보상연금·장례비·직업재활급여로 구성되는데, 이 중 어느 것도 정신적 고통을 보상하는 항목이 아닙니다. 즉 산재를 승인받아 급여를 다 받았더라도 위자료는 단 한 푼도 지급된 적이 없는 상태입니다. 재해로 몸에 장해가 남았다면 이 부분만 따로 떼어도 적지 않은 금액이 됩니다.
남은 손해를 회사에 청구하는 근거는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근로계약에 따라 사용자가 부담하는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채무불이행으로 구성하는 방법입니다. 두 청구권은 성립요건과 소멸시효가 다르므로, 사안에 따라 유리한 쪽을 고르거나 함께 주장하게 됩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산재보험법 제80조 제2항의 공제 범위와 계산 순서
회사에 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먼저 회사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있어야 하고, 그 잘못과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이때 과실을 인정받는 가장 실질적인 통로가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안전조치)·제39조(보건조치) 위반입니다. 추락 위험 장소의 안전난간·작업발판, 기계의 방호장치, 유해물질 취급 시의 환기와 보호구 지급처럼 법이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조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가 났다면, 회사가 "예측할 수 없었다"고 방어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이 조항 위반은 형사처벌 대상이기도 합니다. 안전조치·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그 위반으로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이 무거워집니다. 실무에서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처벌 자체보다도, 수사기관이 사고 원인과 미이행 조치를 이미 특정해 놓은 기록이 민사소송의 증거로 곧바로 쓰인다는 데 있습니다.
책임이 인정되면 다음 쟁점은 "이미 받은 산재보험급여를 얼마나 빼는가"입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80조 제2항은 수급권자가 동일한 사유에 대하여 보험급여를 받으면 보험가입자인 사업주는 그 금액의 한도 안에서 민법이나 그 밖의 법령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면제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동일한 사유"의 뜻입니다. 이는 산재보험급여가 전보하는 손해와 민사상 배상되는 손해가 같은 성질을 띠어 서로 보완관계에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따라서 공제는 항목을 넘나들지 않고 같은 성질끼리만 일어납니다. 요양급여는 치료비 같은 적극적 손해에서, 휴업급여와 장해급여는 일실수입 같은 소극적 손해에서 각각 공제됩니다. 그리고 위자료에 대응하는 산재보험급여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위자료는 공제 대상이 아닙니다. 산재급여를 아무리 많이 받았어도 위자료는 그만큼 깎이지 않고 온전히 남는다는 뜻이며, 이것이 산재 승인 이후에도 회사를 상대로 청구할 실익이 남는 가장 확실한 근거입니다.
여기에 최근 실무를 크게 바꾼 쟁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근로자에게도 과실이 있을 때 과실상계와 공제 중 무엇을 먼저 하느냐입니다. 대법원은 2022. 3. 24. 선고 2021다241618 전원합의체 판결로 종전의 '과실상계 후 공제' 방식을 버리고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으로 판례를 변경했고, 이어 2025. 6. 26. 선고 2023다297141 판결에서는 제3자의 개입 없이 산재보험 가입 사업주의 불법행위만으로 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같은 방식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공단이 지급한 보험급여 중 근로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부분은 공단이 근로자를 위해 종국적으로 부담하는 것이므로, 사업주의 책임이 보험급여 전액만큼 당연히 면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순서를 바꾸면 금액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는 숫자로 보는 편이 빠릅니다. 일실수입 손해가 1억 원이고, 휴업급여와 장해급여로 4,000만 원을 이미 받았으며, 근로자 과실이 30%로 인정된 사안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과실상계 후 공제(종전 방식) — 1억 원 × 70% = 7,000만 원에서 4,000만 원을 빼 3,000만 원
공제 후 과실상계(현재 방식) — (1억 원 − 4,000만 원) = 6,000만 원 × 70% = 4,200만 원
같은 사실관계인데 계산 순서만으로 1,200만 원 차이
회사나 그 배상책임보험사가 제시하는 합의금이 유난히 낮다면, 계산서를 열어 이 순서부터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실비율이 높게 잡힌 사안일수록 두 방식의 격차는 더 벌어집니다.
공제되지 않는 위자료는 별도의 기준으로 산정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교통·산재 손해배상 전담재판부의 실무 기준은 사망이나 노동능력을 100% 상실한 경우의 기준금액을 1억 원으로 잡고, 상해 사안은 여기에 노동능력상실률을 곱하며,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으면 [1 − (과실비율 × 6/10)]을 다시 곱합니다. 노동능력상실률 40%에 과실 30%인 사안이라면 1억 원 × 40% × [1 − (0.3 × 0.6)] = 3,280만 원이 기준선이 되고, 이 금액은 산재보험급여로 공제되지 않습니다. 다만 위자료 액수는 최종적으로 법원의 재량 판단 영역이므로, 이 산정식은 협상과 소송의 출발점으로 쓰는 기준이지 확정된 정답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시간 제한을 봐야 합니다.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청구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시효로 소멸합니다(민법 제766조).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채무불이행으로 구성하면 일반채권의 소멸시효인 10년이 적용되지만, 사안에 따라 구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으므로 실무적으로는 3년 안에 절차를 시작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공단 기록 확보부터 계산 순서 다툼까지
산재 승인이 이미 났다면, 회사 상대 청구는 다음 순서로 준비합니다.
근로복지공단 기록부터 확보 — 재해조사 관련 자료, 보험급여 지급 내역, 장해등급 결정 자료를 정보공개청구와 본인 정보 열람으로 받아 둡니다. 이 서류 한 묶음에서 사고 경위와 회사의 조치 미이행 정황, 그리고 나중에 공제될 급여 금액이 한꺼번에 확인됩니다. 승인 과정에서 이미 정리된 사실관계라 회사가 뒤늦게 사고 경위를 뒤집기 어렵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형사 기록을 민사 증거로 끌어오기 —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나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거나 기소됐다면, 공판기록 열람·등사 또는 불기소 사건의 수사기록 열람을 신청합니다. 어떤 안전조치가 빠졌는지 수사기관이 특정해 둔 문서는 민사에서 과실을 입증하는 부담을 크게 덜어 주고, 유죄가 확정된 사안이라면 회사가 과실 자체를 다투기는 사실상 어려워집니다.
손해를 세 항목으로 갈라서 청구 — 치료비 등 적극적 손해, 일실수입 등 소극적 손해, 위자료를 처음부터 나눠서 산정합니다. 공제는 같은 성질의 항목 안에서만 일어나므로, 손해를 뭉뚱그려 총액으로만 적으면 공제 대상이 아닌 위자료까지 산재급여로 상계되는 것처럼 계산될 위험이 있습니다. 위자료는 반드시 독립 항목으로 명시해 두어야 합니다.
계산 순서를 명시적으로 다투기 — 상대방이 제시한 계산서가 과실상계를 먼저 하고 급여를 뺀 것이라면, '공제 후 과실상계'로 다시 계산해 차액을 주장합니다. 앞의 예시처럼 사실관계가 같아도 순서 하나로 1,000만 원대 차이가 나므로, 합의 단계에서 그냥 넘어가면 그대로 손해로 굳습니다.
합의서 문구와 시효를 함께 점검 — 사고 직후 회사가 위로금을 주며 "민형사상 일체의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서면을 받아 둔 경우가 많은데, 이 문구가 어디까지 효력을 갖는지는 당시 근로자가 손해 규모를 알 수 있었는지 등에 따라 달라지므로 먼저 검토해야 합니다. 동시에 신체감정으로 노동능력상실률을 확정하고, 회사의 재산 처분이 우려된다면 가압류로 책임재산을 묶어 두면서 3년 시효 안에 청구를 진행합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3년 시효와 증거가 함께 사라지는 이유
산재 승인은 보상의 끝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휴업급여로 채워지지 않은 임금 차액, 장해로 줄어들 앞으로의 소득, 그리고 산재보험이 애초에 다루지 않는 위자료가 그대로 남아 있고, 계산 순서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받을 금액이 다시 크게 달라집니다.
문제는 "치료부터 끝내고 나중에 생각하자"고 미루는 사이 조건이 나빠진다는 점입니다. 3년이라는 시간은 요양이 길어지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고, 그사이 사고 현장은 정리되어 원래 상태를 확인할 수 없게 되며, 상황을 아는 동료는 퇴사하고 영상 기록은 덮어써집니다. 회사가 먼저 합의를 제안해 오는 시점이 대개 근로자가 아직 자기 손해의 크기를 모르는 때라는 점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재 승인을 받으셨다면 받은 급여 내역과 실제 손해를 항목별로 맞춰 보시고, 회사에 청구할 부분이 남아 있는지 시효가 지나기 전에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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