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상속예금 지급을 거절할 때 — 내 법정상속분만 받는 법
사건 개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사망신고를 마친 뒤 은행을 찾아가면, 창구에서 대개 같은 말을 듣습니다. "상속인 전원이 오시거나, 전원의 동의서와 인감증명서를 갖춰 오셔야 지급이 가능합니다." 사망 사실이 금융기관에 통보되면 고인 명의 계좌는 지급정지되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통장과 도장을 들고 있어도 한 푼도 인출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전원 동의'가 현실에서 잘 모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형제 중 한 사람이 연락을 끊었거나, 분할 방식을 두고 다투는 중이거나, 누군가 "협의가 끝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못 준다"며 도장을 쥐고 버팁니다. 그 사이 상속세 신고 기한은 다가오고, 고인이 남긴 병원비·장례비·대출 이자는 계속 나갑니다. 상속인들은 예금이 눈앞에 있는데도 분할협의가 끝날 때까지 손대지 못한다고 체념하곤 합니다.
그러나 예금은 상속재산분할을 기다려야 하는 재산이 아닙니다. 금전채권처럼 급부의 내용을 나눌 수 있는 채권은 상속개시와 동시에 당연히 법정상속분에 따라 공동상속인들에게 분할되어 귀속되므로, 각 상속인은 자기 지분에 해당하는 금액만큼은 다른 상속인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은행에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은행이 내세우는 '전원 동의' 요구는 이중지급을 피하려는 내부 업무지침일 뿐, 그 자체가 상속인의 청구권을 막는 법적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에서 실제로 결과를 가르는 지점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예금채권이 분할 대상 재산인지 아니면 사망과 동시에 쪼개지는 가분채권인지입니다. 민법 제1006조는 상속재산을 공동상속인의 공유로 정하지만, 대법원은 금전채권과 같은 가분채권은 상속개시와 동시에 법정상속분에 따라 당연히 분할·귀속되어 원칙적으로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대법원 2016. 5. 4.자 2014스122 결정). 같은 법리는 예금뿐 아니라 MMF 수익증권에도 적용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23다221144 판결).
둘째, 내 법정상속분이 정확히 몇 분의 몇인가입니다. 동순위 상속인은 균분이되 배우자는 5할이 가산되고(민법 제1009조), 누가 상속을 포기했는지에 따라 남은 사람의 지분이 달라집니다. 셋째, 은행이 든 거절 사유가 법적 항변인지 내부 지침인지입니다. 넷째, 예외 사유가 있는지입니다. 공동상속인 중 초과특별수익자가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가분채권도 예외적으로 분할 대상이 될 수 있어(위 2014스122 결정), 그때는 은행을 상대로 한 단독 청구가 아니라 분할심판 쪽으로 전략을 옮겨야 합니다.
이 네 지점은 순서대로 이어집니다. 지분을 잘못 잡으면 청구액 자체가 틀리고, 잔액과 계좌를 특정하지 못하면 청구취지를 쓸 수조차 없습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창구 단계에서 '내 몫'을 특정해 청구를 성립시키기
소송은 마지막 수단입니다. 실제로는 청구의 형태만 제대로 갖춰도 은행이 지급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은행이 두려워하는 것은 상속인의 항의가 아니라 이중지급 책임이므로, 그 위험이 없다는 점을 서면으로 보여 주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런 사건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 순서로 청구를 구성합니다.
1) 상속인 범위와 법정상속분을 서류로 확정합니다.
먼저 고인의 기본증명서·가족관계증명서(상세)·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와, 2008년 이전 신분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제적등본을 시간 순서대로 모아 상속인을 빠짐없이 확정합니다. 여기서 배우자와 자녀 2명이 상속인이라면 배우자 3/7, 자녀 각 2/7이 되고, 자녀 중 한 명이 상속을 포기했다면 그 심판문을 함께 제출해 남은 사람의 지분을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지분을 넉넉히 잡아 청구하면 초과분은 근거 없는 청구가 되어 그만큼 패소하고 소송비용까지 나눠 부담하게 되므로, 청구액은 '잔액 × 내 법정상속분'을 넘지 않도록 처음부터 정확히 맞춥니다.
2) 예금의 존재와 잔액을 공적 조회로 확보합니다.
고인이 어느 은행에 얼마를 남겼는지 모르면 청구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시·구청이나 읍면동 주민센터, 정부24에서 신청하는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를 이용하면 금융거래·토지·자동차·세금·연금 내역을 한 번에 조회할 수 있고, 금융감독원의 상속인 금융거래조회로 금융기관별 채권·채무와 잔액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안심상속 서비스는 사망일이 속한 달의 말일부터 6개월 이내에 신청해야 하므로, 상속인들끼리 감정 다툼을 하는 사이 이 기간을 넘겨 조회 자체가 번거로워지는 일이 없도록 사망 직후 가장 먼저 처리합니다.
3) 내용증명으로 '법정상속분 한도의 단독 지급'을 특정해 요구합니다.
이때 전액 지급을 요구하면 은행은 당연히 거절합니다. 요구해야 할 것은 예금 전액이 아니라 내 지분에 해당하는 금액이며, 그 근거가 가분채권의 당연분할 귀속이라는 점을 내용증명에 명시합니다. 아울러 은행이 요구하는 서류를 모두 갖춰 제출해 "서류 미비" 항변의 여지를 없애고, 그럼에도 지급을 거절한다면 거절 사유를 서면으로 회신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 왕복 서면은 나중에 은행이 어떤 근거로 버텼는지를 특정하는 자료이자, 지급을 지체한 시점을 확정하는 자료가 됩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은행을 피고로 한 예금반환청구 소송 설계하기
은행이 끝내 내규를 이유로 버티면, 상대는 형제가 아니라 은행입니다. 상속재산분할심판은 상속인들 사이의 절차라 은행에게 지급을 명할 수 없으므로, 이때 필요한 것은 은행을 피고로 한 민사 예금반환청구입니다. 이 단계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을 챙깁니다.
1) 청구취지를 '내 지분'과 지연손해금까지 정밀하게 씁니다.
피고를 해당 은행으로 특정하고, 계좌별 잔액에 법정상속분을 곱한 금액을 청구합니다. 여기에 소장 부본이 송달된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에 따른 연 12%의 지연손해금을 함께 구합니다. 이 이율은 예금 이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어서, 버티는 것이 은행에 불리하다는 점을 수치로 보여 주는 압박 수단이 됩니다. 반대로 지분을 넘겨 전액을 청구하면 그 부분은 기각되고 소송비용이 분담되므로, 계산의 정확성이 곧 실익입니다.
2) 은행이 실제로 쓸 수 있는 항변을 미리 봉쇄합니다.
법원은 유언·상속포기·분할협의 유무 같은 사정은 은행 내부의 업무지침 내지 처리절차에 불과해 공동상속인의 예금 지급청구권 행사를 저지할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해 왔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10. 22. 선고 2015가합524348 판결). 은행에게 남는 진짜 방어는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이미 유효하게 변제했다는 주장으로, 민법 제470조는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를 변제자가 선의이고 과실이 없는 때에 한해 유효로 봅니다. 다른 하나는 채권자를 알 수 없다는 이유의 변제공탁입니다. 그래서 소 제기 전에 이미 인출·지급된 내역이 있는지 확인하고, 가족관계 서류만으로 상속인 범위와 지분이 서면상 확정된다는 점을 소장 단계에서 못 박아 "누구에게 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여지를 좁혀 둡니다.
3) 거래내역은 법원을 통해 확보하고, 상대가 바뀌는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은행이 사망 전후의 입출금 내역 제공에 소극적이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제4조가 법원의 제출명령을 비밀보장의 예외로 정하고 있으므로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이나 사실조회를 신청해 확보합니다. 여기서 잔액이 이미 비어 있다면 사건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다른 공동상속인이 예금을 임의로 인출해 갔다면 상대는 은행이 아니라 그 상속인이 되고, 대법원은 그러한 무단 인출자를 상대로 한 부당이득반환·손해배상 청구를 상속회복청구로 보아 인출한 상속인을 참칭상속인으로 판단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5. 12. 11. 선고 2025다212863 판결). 상속회복청구권은 민법 제999조 제2항에 따라 침해를 안 날부터 3년, 침해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하므로, 이 경우 지체는 이자 손해가 아니라 권리 자체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결론
상속예금은 형제들의 합의가 끝나야 비로소 만질 수 있는 재산이 아닙니다. 협의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어도, 법이 정한 내 몫만큼은 오늘도 청구할 수 있는 별개의 채권입니다. 은행 창구에서 "전원 동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면, 그것은 법이 아니라 그 은행의 처리 지침을 들은 것입니다.
다만 이 방법은 예금이 아직 남아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잔액은 줄고, 다투어야 할 상대는 지급 능력이 확실한 은행에서 이미 돈을 써 버린 다른 상속인으로 바뀌며, 그 청구에는 제척기간이라는 시계까지 붙습니다. 지금 은행이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면, 내 법정상속분이 얼마이고 어떤 서면으로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대응의 순서와 시점을 한 번 점검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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