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였는데 준강간 피의자 — 블랙아웃은 심신상실이 아닙니다
합의였는데 준강간 피의자 — 블랙아웃은 심신상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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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강제추행 등

합의였는데 준강간 피의자 — 블랙아웃은 심신상실이 아닙니다 

김강희 변호사


합의였는데 준강간 피의자 — 블랙아웃은 심신상실이 아닙니다


사건 개요


술자리에서 만나 서로 호감을 확인하고, 함께 자리를 옮겨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헤어질 때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다음 날 안부를 묻는 연락도 오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경찰서에서 출석 요구가 옵니다. 상대방이 "그날 술에 취해 아무 기억이 없다, 동의한 적 없다"며 준강간으로 고소한 것입니다.

이런 상담이 실제로 적지 않습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분들의 말씀은 대체로 같습니다. "그 사람이 먼저 제안했고, 스스로 걸어 들어갔고, 대화도 멀쩡히 나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사기관 앞에서 이 항변은 생각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상대의 "기억이 없다"는 진술 하나가 곧바로 "항거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듯한 흐름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준강간은 형법 제299조가 정한 범죄로,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경우에 성립하고, 강간죄(제297조)의 예에 따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됩니다. 벌금형이 없어 유죄가 인정되면 집행유예 이상이 불가피하고, 신상정보 등록과 취업제한 같은 부수처분까지 따라붙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의 승부는 "합의였다"는 호소가 아니라, 상대가 기억을 잃은 것인지 의식을 잃은 것인지를 법리로 갈라내는 데서 갈립니다.


핵심 쟁점


이 유형의 사건에서 실제로 판단이 갈리는 지점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상대방이 행위 당시 형법 제299조가 말하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였는지입니다. 대법원은 심신상실을 정신기능의 장애로 성적 행위에 대한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없는 상태로, 항거불능을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으로 심리적·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로 봅니다.

둘째, 상대가 호소하는 것이 알코올 블랙아웃인지 패싱아웃인지입니다. 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은 이 둘을 명확히 구분했습니다. 블랙아웃은 음주로 뇌의 기억 저장 기능이 일시적으로 손상되어 나중에 기억이 남지 않는 현상일 뿐, 그 당시 의식과 판단능력은 유지된 상태입니다. 반면 패싱아웃은 알코올의 진정 작용으로 의식 자체가 꺼진 상태입니다. 기억의 단절과 의식의 상실은 전혀 다른 사실이고, 심신상실에 해당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셋째, 설령 상대가 취해 있었다 해도 피의자에게 그 상태를 '이용'한다는 인식과 의사가 있었는지입니다. 제299조는 단순히 취한 사람과의 관계를 처벌하는 조항이 아니라, 상실된 상태를 이용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입니다. 넷째, 실제로는 항거불능이 아니었더라도 피의자가 그렇게 오인하고 이용할 의사로 행위했다면 준강간의 불능미수가 문제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네 지점을 함께 정리하지 않으면, 한 곳을 이겨도 다른 곳에서 무너집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기억의 단절과 의식의 상실을 사실로 갈라내기


"기억이 없다"는 진술은 그 자체로는 상대방의 내심에 관한 주장일 뿐입니다.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실의 문제로 옮겨 놓는 것이 이 사건 방어의 출발점입니다.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 순서로 그 작업을 합니다.

1) 판례가 요구하는 판단 자료를 빠짐없이 채웁니다.

위 2018도9781 판결은 피고인이 블랙아웃을 주장할 때 법원이 살펴야 할 사정을 구체적으로 열거했습니다. 상대방의 음주량과 음주 속도, 경과한 시간, 평소 주량, 음주 후 기억장애를 겪은 경험이 있었는지, 목격자나 영상에 비친 당시 상태, 두 사람의 관계 등입니다. 이는 곧 변호인이 무엇을 모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목록이기도 합니다. 주점 영수증과 카드 전표로 주종·주량과 체류 시간을 특정하고, 동석자 진술로 헤어질 무렵의 상태를 확보하며, 상대방이 평소에도 술을 마시면 기억이 끊긴다고 말한 적이 있는지 대화 기록에서 확인합니다.

2) '목적지향적 행동'의 흔적을 시각 단위로 복원합니다.

의식이 꺼진 사람은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게 몸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시간대에 상대방이 스스로 수행한 행동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는 강력한 방증이 됩니다. 카드 결제 시 비밀번호 입력, 본인 명의 호출 앱으로 택시를 부른 기록, 도어록이나 잠금 해제 패턴 입력, 통화 발신, 문맥에 맞게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메시지의 내용이 상황에 부합하고 오탈자 없이 이어졌는지는 판단능력의 유지 여부를 가늠하는 실질적 자료가 됩니다. 이 흔적들을 통신사 기록·앱 이용내역·결제 내역으로 확보해 분 단위 시간표로 재구성합니다.

3) '기억 없음'의 범위와 경계를 특정합니다.

기억장애는 전부 아니면 전무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그날의 일부 장면—이동 경로, 나눈 대화, 특정 발언—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 시점에는 의식이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고소인 진술을 받을 때 "언제부터 어디까지 기억이 없는지"를 시각과 장소로 좁혀 확정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술 과정에서 기억의 공백 구간이 조사 회차마다 넓어지거나 줄어든다면, 그 자체가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는 자료가 됩니다. 반대로 이 특정 작업을 하지 않으면, 막연한 "전혀 기억이 없다"가 사건 전체를 덮어 버립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합의의 정황을 복원하고 '이용 의사'까지 차단하기


상대가 의식을 잃지 않았다는 점만 세워도 준강간의 구성요건은 흔들립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8도16002 전원합의체 판결은, 피고인이 상대방이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에 있다고 인식하고 그 상태를 이용해 간음할 의사로 행위했다면 실제로는 그런 상태가 아니었더라도 형법 제27조에 따라 준강간의 불능미수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사실은 멀쩡했다"는 주장만으로는 위험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축이 필요합니다.

1) 관계의 시간축과 상호성을 복원합니다.

동의는 순간의 한 마디가 아니라 그 앞뒤에 놓인 관계의 흐름 속에서 판단됩니다. 만남의 경위, 그날 대화의 결, 자리를 옮기자는 제안을 누가 먼저 했는지, 이동 중 두 사람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메신저 기록과 이동 경로로 되살립니다. 특히 상대방이 스스로 선택하고 주도한 장면—장소를 고르고, 앞서 걷고, 자신의 물건을 챙기는 등—이 확인되면, 이는 동의의 정황인 동시에 의식이 있었다는 사실의 방증으로 이중의 역할을 합니다.

2) 사건 직후의 언행과 고소 경위를 확보합니다.

다음 날 아침의 대화, 헤어진 뒤 오간 연락, 이후 며칠간의 관계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통상의 인사나 다음 만남에 관한 대화가 오갔다면, 그 사실은 상대방의 사후 진술과 정면으로 부딪칩니다. 아울러 고소가 언제, 어떤 계기로 제기되었는지—중간에 금전 요구나 관계 정리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는지—를 시간 순으로 정리합니다. 이때 삭제 위험이 있는 메신저 대화와 통화 내역은 초기에 원본 형태로 보전해 두어야 합니다.

3) 첫 진술에서 '이용 의사'의 부존재를 명확히 세웁니다.

불능미수 법리 때문에, 피의자신문에서 자신이 당시 상대방의 상태를 어떻게 인식했는지가 결정적입니다. "많이 취한 것 같긴 했다"는 식의 무심한 한마디가 조서에 남으면, 그것이 상태를 인식하고 이용했다는 방향으로 읽힐 여지가 생깁니다. 그래서 첫 조사 전에 그날의 인식과 행동을 사실대로, 그러나 정확한 표현으로 정리합니다. 상대방이 대화에 응하고 스스로 움직였기에 취했다고 보지 않았다는 점을 구체적 장면과 함께 진술해 두면, 이후 진술이 흔들릴 여지가 크게 줄어듭니다.


결론


준강간 사건에서 상대방의 "기억이 없다"는 말은 출발점일 뿐 결론이 아닙니다. 법이 처벌하는 것은 의식이 꺼진 상태를 이용한 행위이지, 상대가 나중에 기억하지 못하는 관계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경계를 세워 주는 것이 블랙아웃과 패싱아웃을 구분한 판례의 법리이고, 그 법리는 음주량·경과 시간·당시 언행 같은 구체적 사실로 채워질 때만 힘을 갖습니다.

다만 이 사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집니다. 영상 기록은 지워지고, 대화는 삭제되며, 동석자의 기억은 흐려집니다. 무엇보다 첫 조사에서 한 진술이 이후 절차 전체를 지배합니다. 억울하게 준강간 피의자가 되었다면, 해명을 서두르기 전에 무엇이 남아 있고 무엇을 지금 붙잡아야 하는지부터 점검받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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