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기는 나왔고 투약은 부인한다면 — 국과수 감정과 진술 전략
사건 개요
마약 사건 상담 가운데 상당수가 같은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지인의 차 안이나 모텔 객실, 누군가의 주거지에 있다가 경찰이 들이닥쳤고, 그 현장에서 일회용 주사기가 나왔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함께 경찰서로 갔고, 조사실에서는 "주사기가 나왔으니 다 알고 온 것"이라는 말과 함께 소변과 모발을 달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정작 본인은 주사기가 누구 것인지도 모르고, 투약한 사실도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많은 분들이 두 가지 상반된 실수를 합니다. 하나는 "나는 결백하니 다 협조하면 된다"며 절차를 따지지 않고 시료를 내주고 아는 대로 다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겁에 질려 그 방에 간 적도 없다는 식으로 확인되지 않을 말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두 선택 모두 나중에 되돌리기 어려운 흔적을 남깁니다. 마약 사건의 승패는 법정에서의 항변보다 수사 초기 며칠 동안 무엇이 기록되었는가에서 이미 상당 부분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장에서 주사기가 발견됐다는 사실 자체는 투약죄의 증거가 아닙니다. 필로폰 투약은 마약류관리법 제4조 제1항 위반으로 같은 법 제60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중한 범죄이지만, 유죄가 되려면 누가, 언제 투약했는지가 증거로 특정되어야 합니다. 실제 사건에서 이 두 가지를 채우는 것은 주사기가 아니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 결과이고, 그 감정 결과는 생각보다 자주 '누가'와 '언제'를 다 채우지 못합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에서 실제로 판단이 갈리는 지점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물건과 행위가 분리되는가입니다. 주사기 잔류물에서 메트암페타민이 나온 것은 그 주사기가 마약류였다는 사실을 말할 뿐, 그것을 누가 몸에 넣었는지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둘째, 국과수 감정 결과가 투약 시점을 특정하는가입니다. 소변과 모발은 검출 원리도 시간 범위도 전혀 다른 증거이고, 특히 모발감정은 시기 추정에 구조적인 오차를 안고 있습니다.
셋째, 그 시료가 적법한 절차로 수집되었는가입니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습니다(형사소송법 제308조의2). 넷째, 초기 진술이 뒤에 나올 객관적 자료와 어긋나지 않는가입니다. 감정 결과가 부실한 사건일수록 수사기관은 진술에서 부족분을 메우려 하고, 본인의 어긋난 해명이 유죄의 정황증거로 되돌아옵니다. 이 네 지점은 순서대로 이어져 있어, 앞이 무너지면 뒤를 다툴 기회조차 오지 않습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감정 결과를 '누가·언제'의 틀로 다시 읽기
수사기록을 받아 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감정서를 결론이 아니라 자료로 읽는 것입니다. 감정서에는 대개 "검출됨"이라는 한 줄이 있고, 수사기관은 그 한 줄로 공소사실을 세웁니다. 그러나 그 한 줄이 지탱할 수 있는 사실의 범위는 생각보다 좁습니다.
1) 주사기 감정과 신체 감정을 분리해 다툽니다.
주사기 잔류물 감정에서 메트암페타민이 검출되면 그 주사기는 마약류를 담고 있던 물건이 되고, 이는 소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투약은 별개의 공소사실입니다. 그래서 주사기에 대한 DNA 감정 결과를 반드시 확인합니다. 실제로 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3도8024 판결의 사안에서는 차량 트렁크에서 나온 주사기 여러 개 중 사용 흔적이 있는 것에서 필로폰이 검출됐지만, 피고인의 DNA는 검출되지 않고 다수인의 DNA가 혼합 검출되었습니다. 사용자가 특정되지 않은 주사기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겨눠지는 물건일 뿐, 특정인의 투약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2) 모발감정의 '투약가능기간'을 공소사실 특정 문제로 전환합니다.
모발감정은 모발이 한 달에 약 1센티미터씩 자란다는 전제로 절편을 나누어 시기를 역산합니다. 그러나 성장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도 채취 부위와 건강 상태에 따라 편차가 있으며, 채취된 모발에는 성장기·휴지기·퇴행기가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위 2023도8024 판결은 모발감정 결과만을 토대로 투약기간을 추정해 유죄로 판단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추정 폭이 수십 일에서 수개월에 이르면 피고인은 어느 날의 알리바이를 대야 할지조차 알 수 없어 방어권 행사에 현저한 지장이 생기고, 투약할 때마다 별개의 죄가 성립하는 이 범죄의 성질상 이중기소와 일사부재리의 범위도 흐려집니다. 공소사실은 범죄의 시일·장소·방법을 명시해 특정해야 하므로(형사소송법 제254조 제4항), 이 지점은 증명력 다툼이자 공소사실 특정의 문제로 함께 제기합니다.
3) 소변과 모발의 시간창 차이를 정합성 공격에 씁니다.
국과수는 소변에 대해 면역분석법으로 예비실험을 한 뒤 가스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GC/MS)이나 액체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LC/MS/MS)으로 확인실험을 거쳐 판정합니다. 현장에서 쓰는 간이시약 반응은 예비적 선별검사일 뿐이어서, 양성이 나와도 확인실험에서 뒤집히는 사례가 실제로 있습니다. 또 소변에서 필로폰이 검출되는 기간은 대체로 투약 후 수일 범위에 그치는 반면 모발은 수개월 전 흔적까지 남깁니다. 따라서 소변 음성 · 모발 양성이라는 조합은 적어도 최근 며칠 내 투약은 없었다는 뜻이 되고, 공소사실이 그 기간을 범행 시기로 잡고 있다면 감정 결과 자체가 공소사실과 충돌하게 됩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수집 절차의 적법성과 진술의 설계
감정 결과의 내용을 다투는 것과 별개로, 그 결과가 애초에 증거로 쓰일 수 있는가를 따지는 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축이 무너지면 감정 결과는 아무리 명확해도 유죄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1) 시료와 주사기가 어떤 근거로 확보됐는지부터 특정합니다.
소변·모발이 임의제출(형사소송법 제218조)로 확보된 것인지, 압수·수색영장이나 감정처분허가장에 의한 것인지를 기록에서 먼저 확정합니다. 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8도6219 판결은 동의 없는 채뇨가 압수·수색영장에 의해 가능하고 그 집행을 위해 필요 최소한의 유형력으로 병원 등에 데려가는 것도 허용된다고 보았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영장 없는 강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대법원 2013. 3. 14. 선고 2012도13611 판결은 피의자가 임의동행을 거부하는데도 영장 없이 강제로 연행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채뇨 요구를 위법하다고 보아 그로써 얻은 자료의 증거능력을 부정했습니다. 동의서에 서명이 있어도 그 임의성이 실질적으로 없었다면 다툴 여지가 남는 이유입니다.
2) 주사기 압수의 사후 절차를 점검합니다.
체포 현장에서는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지만(형사소송법 제216조 제1항 제2호), 이는 체포 자체가 적법하고 압수물이 그 범죄와 관련될 것을 전제로 합니다. 나아가 압수를 계속할 필요가 있으면 체포한 때부터 48시간 이내에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해야 하고, 영장을 발부받지 못하면 압수물을 즉시 반환해야 합니다(같은 법 제217조 제2항). 현장이 어수선했던 사건일수록 압수조서의 시각, 압수 장소가 실제 체포 현장인지, 사후영장 청구 시각이 어긋나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압수목록과 영장 기록을 시각 단위로 대조합니다.
3) 진술은 '침묵'이 아니라 '범위 설계'로 관리합니다.
피의자에게는 진술거부권이 있고 수사기관은 신문 전에 이를 고지해야 합니다(형사소송법 제244조의3). 다만 실무에서 위험한 것은 침묵이 아니라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단정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방에 간 적 없다", "그 사람을 모른다"고 했다가 CCTV·차량 블랙박스·통신내역과 어긋나면, 그 불일치 자체가 은폐 정황으로 쓰입니다. 그래서 동선·동석자·주사기의 출처처럼 검증 가능한 사실만 시간순으로 특정해 진술하고, 기억이 불확실한 부분은 단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술 범위를 미리 정합니다.
4) 자백 압박에 대한 판단 기준을 미리 세웁니다.
조사 과정에서 "인정하면 선처받는다"는 취지의 권유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이익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형사소송법 제310조). 감정 결과가 시점을 특정하지 못하는 사건에서 성급한 자백은 없던 유죄의 토대를 만들어 주는 셈이 됩니다. 반대로 투약 사실이 있고 감정 결과도 명확하다면 다투는 대신 방향을 바꾸는 편이 낫습니다. 마약류관리법 제40조의 치료보호 절차나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를 활용하고, 유죄 판결이 선고되는 경우 200시간 범위의 수강명령 또는 재활교육 이수명령이 함께 부과된다는 점(같은 법 제40조의2 제2항)까지 감안해 재활 계획을 미리 준비합니다.
결론
현장에서 주사기가 나왔다는 사실은 수사가 시작된 이유이지, 투약죄의 결론이 아닙니다. 결론을 만드는 것은 국과수 감정 결과가 '누구의' 투약을 '언제'로 특정하는가, 그 시료와 물건이 적법하게 수집되었는가, 그리고 초기 진술이 뒤에 나올 객관적 자료와 어긋나지 않는가입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수사 초기에 결정됩니다. 시료를 내주는 방식, 조사실에서 말한 한 문장, 압수 절차에 이의를 남겼는지 여부가 몇 달 뒤 법정에서 되돌릴 수 없는 조건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현장에서 주사기가 발견된 사건으로 조사를 앞두고 계시다면, 무엇에 응하고 무엇을 유보할지 그 범위부터 한 번 점검을 받아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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