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관리 현장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으면, 수사기관의 시선은 거의 자동으로 관리소장과 위탁관리회사를 향합니다. "안전조치를 했느냐"는 질문과 함께요. 그런데 현장을 아는 분들은 압니다. 관리소장이 소속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동선을 하루 종일 지켜보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오늘 소개할 판결은 바로 그 지점, 형사책임의 경계선을 다룬 사건입니다.
피고인은 아파트 위탁관리회사 소속으로 관리사무소에서 직원들의 안전·보건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2020년 여름, 소속 근로자 한 분이 전기 관련 작업을 하다가 감전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고, 검찰은 "감전 위험이 있는 작업인데 정전 조치, 절연 보호구 착용 같은 안전조치 없이 작업이 이뤄지게 했다"며 피고인을 산업안전보건법위반으로 기소했습니다.
법원이 주목한 네 가지 사정
결론은 무죄였습니다. 법원이 판결문에 눌러 담은 사정들을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돌아가신 근로자는 전기기사 자격을 갖춘, 전기 설비 업무를 담당해 온 숙련 기술자였습니다. 그날의 작업은 피고인이 지시한 것이 아니었고, 근로자가 사전에 보고하지도 않은 채 스스로 판단해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안전모 같은 보호구는 지급되어 있었지만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고요. 결정적으로, 그 작업 장소가 과연 법령이 정한 "정전작업이나 방호조치가 필요한 장소"에 해당하는지조차 검찰 증거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는 막연히 "안전관리가 부실했다"는 인상만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 정한 구체적인 의무 조항이 있고, 그 의무가 발생하는 유형의 작업이었다는 점, 사업주가 그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지시했거나 알면서 방치했다는 점까지 검사가 전부 증명해야 합니다. 이 사건은 그 증명의 사슬이 첫 고리부터 끊어져 있었던 셈입니다.
지시하거나, 알면서 방치했거나
판례가 오래전부터 그어 온 선이 있습니다. 사업주 처벌은 안전조치 없는 작업을 지시했거나, 그런 작업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면서 방치한 경우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자격을 갖춘 근로자가 보고 없이 혼자 시작한 작업까지 관리책임자가 형사책임을 지게 되면, 그것은 사실상 결과책임이 되어버립니다. 이 판결은 아파트 관리처럼 근로자들이 넓은 구역을 각자 이동하며 일하는 업무의 특성을 증거 판단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한 가지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이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 전의 일입니다. 지금은 개별 작업을 지시했는지와 별개로, 회사 차원에서 위험성평가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췄는지가 독립적으로 문제됩니다. 그러니 이 무죄 판결을 "관리회사는 안심해도 된다"는 신호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위험작업 사전보고 절차, 보호구 지급·착용 확인 대장, 전문업체에 맡겨야 할 작업의 범위 기준. 이런 체계를 문서로 갖춰 두는 것이, 사고가 났을 때 "지시도 방치도 없었다"는 점을 입증해 주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됩니다.
거꾸로 유족이나 재해자 측이라면, 그 작업이 정말 근로자 혼자만의 판단이었는지를 파고들어야 합니다. 평소 관행적으로 지시되던 일은 아니었는지, 업무일지나 무전·메신저 기록에 흔적은 없는지. 산재 형사사건의 승부는 사고 직후 몇 주 안의 증거 확보에서 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 법률 상담 안내
아파트·건물 관리 현장의 산업재해로 수사를 받고 계시거나, 반대로 소중한 가족을 잃고 책임을 묻고자 하신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그리고 관리 현장의 실무를 두루 아는 제가 곁에서 돕겠습니다.
법무법인 랜드로 | 부동산 전문 변호사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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