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의 주상복합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2020년 12월 어느 저녁, 한 호실 천장의 스프링클러 배관 연결소켓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습니다. 관리업체 방재팀이 출동해 응급조치를 했고, 며칠 뒤 한 시설물유지관리업체가 그 호실의 보수공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던 사건은 넉 달 뒤 폭발합니다. 2021년 4월, 같은 호실 스프링클러 배관의 이음부 연결재가 통째로 빠지면서 소방수가 쏟아졌고, 아래층 10개 호실과 승강기까지 물에 잠겼습니다.
보험사는 피해자들에게 5억 1,059만 원의 보험금을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넉 달 전 보수공사를 했던 그 업체 사장님을 상대로 구상금 소송을 걸었습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그 배관을 만졌으니, 사고는 당신 공사의 하자 때문"이라는 논리였죠. 직관적으로는 그럴듯합니다. 그런데 법원은 청구를 전부 기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만진 사람"이라는 착시
판결문을 따라가 보면 보험사의 논리가 어디서 무너졌는지 보입니다. 첫째, 피고 업체는 소방시설공사업 면허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법적으로 스프링클러 배관 공사를 할 수 없는 업체라는 뜻입니다. 둘째, 견적서에 적힌 공사 내용은 배관이 아니라 누수로 오염된 천장 석고보드 교체와 도배였습니다. 셋째, 정작 사고의 원인이 된 배관 이음부를 만진 것으로 확인되는 이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선행 누수 당일 출동해 배관 조치를 했던 관리업체 방재팀입니다.
민사소송에서 불법행위 책임을 묻는 쪽은 가해행위의 존재와 인과관계를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 무렵 그 현장에 있었던 업체"라는 정황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사건에서 보험사는 피고가 배관 이음부 작업을 실제로 했다는 사실 자체를 증명하지 못했고, 법원은 방재팀의 응급조치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 나아가 아무도 배관을 제대로 고치지 않은 채 방치했을 가능성까지 열어두었습니다.
판결 행간에 숨은 진짜 책임자
흥미로운 건 법원이 각론으로 남긴 지적입니다. 스프링클러는 아파트가 법령상 의무적으로 설치·관리해야 하는 소방시설이고 공용부분이라서, 그 유지관리는 관리주체의 몫입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서는 누수 후 전문 소방시설공사업체에 보수를 맡긴 흔적이 없고, 무면허 업체의 석고보드·도배 작업만 이뤄졌습니다.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수리되지 않은 채 넉 달간 방치되었다가 사고가 재발했을 가능성. 법원은 그 화살표가 어디를 향하는지 굳이 명시하지 않았지만, 읽는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구상 상대를 잘못 골랐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얻을 교훈
시설물업체를 운영하신다면, 면허 범위 밖의 작업 의뢰는 명확히 거절하고 그 기록을 견적서와 문자에 남기세요. 이 사건 피고를 지켜준 건 결국 "스프링클러는 견적에 없다"는 종이 한 장이었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업체라면, 소방시설 하자는 반드시 등록된 전문업체에 맡기고 시공확인서를 받아두셔야 합니다. 임시조치 후 방치는 그 자체로 배상책임의 씨앗입니다. 그리고 대형 누수 사고의 책임을 물으려는 쪽이라면, 소송을 걸기 전에 감정과 증거보전으로 사고 원인부터 과학적으로 특정하는 것이 5억짜리 헛발질을 막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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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랜드로 | 부동산 전문 변호사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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