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이 공금을 횡령했다"는 유인물, 그런데 무죄가 나온 이유
"회장이 공금을 횡령했다"는 유인물, 그런데 무죄가 나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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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이 공금을 횡령했다"는 유인물, 그런데 무죄가 나온 이유 

신지수 변호사

아파트 단체 활동을 하다 보면 꼭 한 번은 마주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집행부를 못 믿겠다는 입주민과, 그런 입주민이 괘씸한 집행부. 그 갈등이 유인물이나 단체 채팅방 글로 터져 나오면, 다음 수순은 대개 명예훼손 고소입니다. 오늘 소개할 사건도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다만 결말이 조금 다릅니다.

경남 양산의 한 아파트 옆으로 송전탑이 들어서게 되면서 입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은 초대 위원장인 피해자가 미덥지 않았습니다. 회의록과 변호사 선임 모금 내역, 통장 내역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지만 위원장은 계속 거절했죠. 답답해진 피고인은 A4 용지에 자필로 유인물을 씁니다. "위원장이 변호사 선임 명목으로 1,020만 원을 모금하고도 철탑 소송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다, 보상 자문에 550만 원을 준 것은 공금 횡령에 해당된다고 생각됨, 철탑 공사 기간에 해외여행으로 도피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상가 무인카페에서 뜻을 같이할 만한 입주민 몇 명에게 이 초안을 보여주며 동의를 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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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위원장이 변호사와 550만 원짜리 위임계약을 맺은 사실이 있었고, 해외 체류도 딸이 외국에 살아서였습니다. 검찰은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기소했습니다. 겉보기엔 유죄가 나올 법한 그림인데,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이 먼저 꺼낸 말: 비판은 보호되어야 한다

판결문 첫머리의 일반론이 인상적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지도자와 집행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항상 이루어져야 하고, 구성원들 사이에 자유로운 토론이 있어야 올바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일부 부적절하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 섞이더라도, 매우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부적절하지 않은 이상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 그래서 단체 구성원 내부의 의사소통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의 공연성과 고의를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죄를 만든 디테일들

그 잣대로 사실관계를 뜯어보면 이렇습니다. 문제의 서류는 작성일자도 서명란도 없는 자필 초안이었고, 그날 모인 소수의 입주민에게만 보여졌으며, 피고인은 그 후 누구에게도 다시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이 서류가 위원장 귀에까지 들어간 경위도 피고인 탓이 아니었습니다. 화해를 시켜보려고 참석했던 동대표가 피고인의 동의 없이 휴대전화로 촬영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이었으니까요. 남이 몰래 찍어 퍼뜨린 결과까지 작성자의 고의로 돌릴 수는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내용 면에서도 법원은 결이 다른 독해를 했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다"는 부분은 선임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라, 철탑을 막는 소송이 아닌 보상 자문에 550만 원을 쓴 것이 과하다는 의견의 표명으로 읽었습니다. "해외 도피"라는 표현도 공사 기간 중 해외 체류라는 진실한 사실에 대한 과장된 수사일 뿐이라고 봤고요. 명예훼손죄는 사실의 적시를 처벌하는 것이지, 사실에 대한 거친 평가까지 처벌하는 죄가 아니라는 오래된 구별이 여기서 힘을 발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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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결을 오해하면 안 되는 이유

그렇다고 "아파트 안에서는 뭐라고 써도 괜찮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이 사건의 무죄는 공익 목적, 소수에게만 제한된 공개, 진실한 기초사실이라는 세 기둥 위에 서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단체 카톡방이나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붙였다면 공연성은 손쉽게 인정됐을 것이고, 결론은 달라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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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부를 비판하고 싶은 입주민이라면 순서를 기억하세요. 먼저 자료 열람을 요구해 사실을 확인하고, 단정 대신 자료에 근거한 의견과 질문의 형식을 취하고, 공개 범위는 필요한 만큼만. 그리고 집행부라면, 이 모든 갈등이 회계자료 열람 거절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투명함은 귀찮지만, 고소장보다는 훨씬 쌉니다.

■ 법률 상담 안내

입주민 간 명예훼손·모욕으로 고소를 하셨거나 당하셨다면, 혹은 입주자대표회의·비상대책위원회의 회계와 운영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공동주택 분쟁의 결을 아는 변호사가 확전을 막고 출구를 찾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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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랜드로 | 부동산 전문 변호사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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