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실패했을 때 VC가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소송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소송은 할 수 있지만, 언제나 투자금 전액 반환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투자계약의 본질은 주식 취득과 원금 손실 위험을 함께 부담하는 데 있다. 투자자는 회사가 성장하면 지분 가치 상승, 배당, 엑시트 이익을 기대하지만, 회사가 실패하면 투자금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반면 대여는 다르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회사가 잘되든 안 되든 약정한 변제기와 이자에 따라 원금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그래서 투자금 대여금 차이는 계약서 제목이 아니라 돈의 성격에서 갈린다. 주식을 받고 들어간 돈인지, 정해진 기간 뒤 갚아야 하는 돈인지, 손실 위험을 누가 부담하기로 했는지가 핵심이다.
문제는 스타트업 투자계약서에 투자와 대여가 뒤섞인 조항이 들어갈 때다. 겉으로는 투자라고 하면서도, 회사가 작은 의무라도 어기면 투자원금 전부와 이자를 반환해야 한다고 쓰는 경우가 있다. 이때 법원은 그 조항이 진짜 투자자 보호 장치인지, 아니면 실질적으로 원금 보장형 대여로 바꿔놓는 조항인지 살펴본다.
투자계약의 본질은 원금 보장이 아니라 위험 부담
VC 투자계약은 보통 보통주, 우선주, 전환상환우선주, 전환사채, 신주인수계약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중 RCPS는 상환권과 전환권이 붙어 있어 투자자 보호 장치가 강한 편이다. 그러나 보호 장치가 있다는 말과 원금이 무조건 보장된다는 말은 다르다.
투자는 회사의 성장 가능성에 자금을 넣는 행위다. 투자자는 회사가 성공하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실패하면 손실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주식투자에서 투자자가 원금 손실 위험을 전혀 부담하지 않고 회사가 언제나 원금을 돌려줘야 한다면, 그 계약은 투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실질은 대여에 가까워진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이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 투자금이라고 받아 회사를 운영했는데, 나중에 매출 목표 미달, 보고의무 위반, 자료 제출 지연, 약한 계약 위반을 이유로 투자원금 전액 반환 청구가 들어오면 회사는 존속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투자계약서 반환조항 효력은 단순한 문구 문제가 아니라 회사 자본질서와 주주 간 형평성의 문제다.
회사가 원금을 전액 보장하는 조항은 무효가 될 수 있다
대법원은 회사가 신주를 인수해 주주가 된 투자자에게 투자원금 회수를 전액 보전해 주는 약정이나, 다른 주주에게 없는 별도 수익을 지급하는 약정은 주주평등원칙에 위반되어 무효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회사가 특정 투자자에게만 원금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면, 그 투자자는 다른 주주보다 훨씬 유리한 지위를 갖게 된다.
상법상 주식회사는 주주평등원칙과 자본충실 원칙을 전제로 움직인다. 회사 재산은 채권자와 다른 주주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공동의 재산적 기초다. 그런데 특정 투자자에게만 회사가 언제든 투자원금을 돌려주겠다고 약정하면, 사실상 회사 자산을 특정 주주에게 우선적으로 빼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물론 회사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모두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배당권, 전환권, 상환권, 동반매도청구권, 우선매수권 등은 투자계약에서 흔히 사용된다. 문제는 그 권리가 회사의 이익과 자본질서를 넘어 투자자의 원금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수준인지다. 투자자 보호와 원금 보장은 비슷해 보여도 선이 다르다.
RCPS 상환청구권도 배당가능이익 한계를 넘기 어렵다
RCPS 상환청구권 한계도 이 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전환상환우선주는 투자자가 일정한 조건에서 상환을 청구할 수 있는 주식이지만, 회사가 아무 재원 없이 언제나 상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법상 상환주식의 상환은 원칙적으로 회사의 이익으로 이루어지는 구조이고, 배당가능이익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즉 회사에 배당가능이익이 없다면 투자자가 상환청구권을 행사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회사가 곧바로 돈을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계약상 상환권이 있는데 왜 못 돌려받느냐고 볼 수 있지만, 회사법은 특정 주주에게 돈을 돌려주는 문제를 단순 채무 변제처럼 보지 않는다. 회사 재산을 빼내는 행위가 다른 주주와 채권자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RCPS 투자에서는 상환청구권 조항을 읽을 때 상환 사유만 보면 안 된다. 상환 재원, 배당가능이익, 정관 규정, 상환 절차, 이사회 또는 주주총회 절차, 미상환 시 처리 방식까지 함께 봐야 한다. 상환권이 있다는 말과 바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은 다르다. 투자계약서에서 가장 위험한 착각 중 하나다.
의무 위반으로 원금 전액 반환을 요구하는 조항은 다툴 수 있다
투자계약서에서 자주 문제 되는 조항이 있다. 회사가 자료 제출, 보고의무, 사전동의사항, 경영자료 제공, 일정한 사업계획 이행의무를 위반하면 투자자가 투자원금 전액과 이자, 위약벌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회사의 불성실한 경영을 막기 위한 장치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의무 위반의 정도가 매우 약한데도 곧바로 투자원금 전체 반환을 요구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단순 보고 지연, 형식적 자료 누락, 경미한 절차 위반만으로 회사가 받은 투자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면, 이는 투자자가 원금 손실 위험을 사실상 부담하지 않는 구조가 된다. 법원은 이런 조항이 손해배상 예정인지, 위약벌인지, 실질적인 원금보장 약정인지 살펴볼 수 있다.
핵심은 위반행위와 반환의 비례성이다. 회사의 중대한 허위 진술, 재무자료 조작, 투자금 유용, 핵심 자산 처분, 창업자의 배임행위처럼 투자계약의 기초를 무너뜨린 사정이라면 투자자의 반환 청구가 힘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회사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경미한 의무 위반이라면 투자원금 전액 반환은 과도하다고 다툴 수 있다.
대표자 개인의 매수의무는 회사 반환의무와 구별해야
투자계약에서는 회사뿐 아니라 대표자나 기존 주주가 주식매수의무를 부담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회사가 일정한 의무를 위반하면 대표이사가 투자자의 주식을 일정 가격에 사주기로 하는 조항이다. 이런 조항은 회사가 직접 투자금을 반환하는 구조와는 구별된다.
대법원도 주주평등원칙이 회사와 주주 사이의 관계에 직접 적용되는 문제와, 투자자가 대표자나 다른 주주 개인과 별도로 맺은 계약의 효력은 구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따라서 회사가 원금 전액을 보장하는 약정은 무효로 다툴 여지가 크더라도, 대표자 개인이 별도로 매수의무를 부담한 조항은 별도의 기준으로 판단될 수 있다.
다만 대표자 개인 매수의무라고 해서 언제나 유효한 것도 아니다. 투자계약 체결 경위, 대표자의 책임 범위, 의무 위반의 중대성, 매수가격 산정 방식, 위약벌 성격, 공정성 등을 따져야 한다. 특히 스타트업 대표가 투자 유치를 위해 과도하게 개인 보증에 가까운 조항을 떠안은 경우라면, 나중에 분쟁에서 조항의 해석과 적용 범위를 다툴 여지가 있다.
투자금 반환 소송에서는 돈의 이름보다 계약 구조를 본다
VC가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면, 스타트업 측은 먼저 계약 구조를 뜯어봐야 한다. 투자금인지 대여금인지, 투자자가 주식을 취득했는지, 회사가 직접 반환의무를 부담하는지, 대표자 개인이 매수의무를 부담하는지, 반환 사유가 무엇인지, 실제 의무 위반이 중대한지 확인해야 한다.
또 투자 당시 작성된 신주인수계약서, 주주간계약서, 투자계약서, 정관, 이사회 의사록, 주주총회 의사록, 납입자료, 투자금 사용내역, 투자자 보고자료를 모두 봐야 한다. 투자자가 문제 삼는 의무 위반이 실제로 있었는지, 있었다면 투자계약의 목적을 무너뜨릴 정도였는지, 투자자에게 실제 손해가 발생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반대로 투자자 입장에서는 단순히 회사가 망했으니 돈을 돌려달라고 주장해서는 부족하다. 회사의 어떤 진술이 허위였는지, 어떤 약속이 투자 결정의 핵심이었는지, 어떤 의무 위반 때문에 투자계약의 기초가 무너졌는지 설명해야 한다. 투자금 반환 소송은 실패한 투자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계약 위반의 법적 책임을 묻는 절차다.
투자와 대여의 경계는 원금 손실 위험에서 갈린다
투자금 대여금 차이의 핵심은 원금 손실 위험이다. 돈을 준 사람이 회사의 성장 가능성에 베팅하고 주식을 취득했다면 투자에 가깝다. 회사가 성공하면 이익을 얻고 실패하면 손실도 부담하는 구조다. 반대로 회사의 성패와 무관하게 정해진 시점에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기로 했다면 대여에 가깝다.
스타트업 투자계약서상 원금보장 또는 반환조항은 그래서 매우 조심해야 한다.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은 필요하지만, 약소한 의무 위반만으로 투자원금 전체를 돌려주게 하는 조항은 투자계약을 사실상 원금 보장형 대여로 바꿔버릴 수 있다. 특히 회사가 직접 특정 주주에게 투자원금을 전액 보전해 주는 구조라면 주주평등원칙과 상법상 자본질서에 비추어 효력이 문제 될 수 있다.
결국 스타트업이 망했을 때 VC가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는 계약서 한 줄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투자 방식, 주식 취득 여부, 반환의무의 주체, 상환 재원, 의무 위반의 중대성, 대표자 개인 약정 여부를 모두 보아야 한다. 투자계약은 돈을 넣는 문서이지만, 분쟁이 생기면 돈을 빼는 문서가 된다. 그래서 도장 찍기 전, 원금반환 조항이 투자자 보호인지 원금보장 약정인지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주식매매대금 10억 원 반환청구 방어 사례
https://www.lawtalk.co.kr/posts/17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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