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나 물류창고가 있던 부지, 또는 그 인근 토지를 매수한 뒤에야 과거 그 자리에서 가동되던 시설의 폐수·폐기물·유류 저장탱크 누출 등으로 토양이 오염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축 공사를 위해 굴착을 하다가, 또는 인허가 과정에서 환경조사를 받다가 검게 변색된 흙이나 기준치를 넘는 오염물질 수치가 드러나면서 문제가 시작되곤 합니다. 이때는 두 가지 책임이 동시에 얽힙니다. 하나는 관할 행정청이 부과하는 공법상 정화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오염을 유발하거나 숨긴 채 매도한 이전 소유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입니다. 두 트랙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정화 비용은 그대로 떠안으면서 정작 매도인에게는 아무것도 청구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정화책임과 손해배상, 별개로 움직이는 두 트랙
토지를 매수한 뒤 토양오염이 드러났을 때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은, 정화책임과 손해배상책임이 서로 다른 법 영역에서 별개로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정화책임은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라 관할 행정청이 부과하는 공법상 의무로, 현재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책임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오염을 직접 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정, 매수 당시 오염 사실을 몰랐다는 사정은 정화책임 자체를 완전히 벗어나는 사유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예외적으로 면책이 인정되는 요건도 별도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와 별개로, 매도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는 민법상 매매계약의 하자 문제입니다. 정화명령을 이행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해서 매도인에 대한 청구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실제 지출한 정화비용을 손해액으로 산정해 그대로 청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문제는 두 트랙을 혼동해 행정청의 정화명령에만 대응하다가, 매도인에 대한 청구 시기를 놓치는 경우입니다 — 뒤에서 다루듯 하자담보책임에는 짧은 제척기간이 걸려 있어, 대응이 늦어질수록 선택지가 좁아집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무과실 정화책임과 하자담보책임의 경계
토양환경보전법 제10조의3은 토양오염으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 오염을 일으킨 시설의 소유자·점유자·운영자가 무과실책임을 진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10조의4는 정화책임자의 범위를 오염을 직접 발생시킨 자, 오염 당시 시설의 소유자·점유자·운영자, 이들의 지위를 포괄승계한 자에 더해 토양오염이 발생한 토지를 현재 소유하거나 점유하고 있는 자까지 포함시킵니다. 매수인이 오염 사실을 전혀 몰랐더라도, 지금 그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화책임자로 지정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같은 조는 토지를 양수할 당시 오염 사실에 대해 선의이며 과실이 없었던 자는 현재 소유자를 이유로 한 정화책임에서 제외하는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관건은 '과실 없음'을 어떻게 입증하느냐입니다 — 매수 전 토양환경 실태조사를 거쳤는지, 공장 이력이 있는 부지임을 알면서도 통상적인 조사조차 생략했는지가 실무에서 그대로 쟁점이 됩니다. 조사를 전혀 하지 않고 매수한 경우, 나중에 "몰랐다"는 주장만으로는 면책을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무과실 구조가 지나치게 가혹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16. 11. 24. 선고 2016헌바11 결정에서 토지소유자에게 정화책임을 지우더라도 구상권 행사 등으로 불이익을 최소화할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재산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정화책임자가 둘 이상이면 행정청은 각자의 귀책 정도를 따져 정화를 명하고, 비용을 먼저 부담한 정화책임자는 다른 책임자를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매수인이 일단 정화비용을 지출하더라도, 오염을 실제로 일으킨 이전 소유자에게 그 부담을 되돌릴 길이 법 안에 이미 마련되어 있는 셈입니다.
공법상 정화책임과 별개로, 매도인에 대한 손해배상은 민법 제580조의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으로 구성됩니다. 매매 목적물이 거래통념상 기대되는 객관적 성질·상태를 갖추지 못했다면 하자에 해당하는데, 대법원은 2021. 4. 8. 선고 2017다202050 판결에서 매수한 토지 지하에 폐기물이 매립되어 있던 사안에 대해, 이는 매매 목적물이 통상 갖출 것으로 기대되는 상태를 갖추지 못한 하자이므로 매도인이 폐기물 처리비용 상당을 하자담보책임으로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같은 판결은 이 손해가 민법 제390조의 채무불이행 책임으로도 성립해 두 청구권이 경합한다는 점도 함께 확인했습니다.
다만 민법 제580조 단서는 매수인이 하자를 알았거나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에는 매도인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어, 매수인 쪽에서도 오염 발견 경위와 사전 조사 여부를 정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 하자담보책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은 민법 제582조에 따라 매수인이 하자를 안 날로부터 6개월 안에 행사해야 하는 제척기간이 걸려 있습니다. 이에 비해 채무불이행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반채권 소멸시효 10년(민법 제162조 제1항), 상인 사이의 상행위로 인한 채권이면 5년(상법 제64조)이 적용되어 기간이 훨씬 깁니다. 오염을 안 지 6개월이 이미 지났다면 하자담보책임이 아니라 채무불이행 구성으로 청구를 전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오염 확인부터 손해배상 청구까지 다섯 단계
쟁점이 정리됐다면, 실제로는 다음 순서로 대응합니다.
토양정밀조사부터 신속히 — 오염 범위·깊이·오염물질 종류를 전문기관의 토양정밀조사로 먼저 확정해야 합니다. 이 결과가 정화책임 범위를 정하는 기준이자, 손해배상 청구액을 산정하는 근거자료가 됩니다.
정화책임자 지위와 면책 여지를 함께 검토 — 매수 당시 실시했던(또는 하지 않았던) 환경조사 자료, 계약 체결 경위를 정리해 선의·무과실 면책 주장이 가능한지 검토합니다. 행정청의 정화명령에 대해서는 명령 자체를 다투는 것과 별개로, 일단 이행 후 구상·손해배상으로 회수하는 전략도 함께 준비합니다.
매도인에게 내용증명으로 통지 — 오염 사실을 확인한 날짜, 조사 결과, 하자담보책임 및 채무불이행 책임을 함께 묻는다는 취지를 명확히 발송해 두어야 6개월 제척기간의 기산점과 청구 의사를 다툼 없이 남길 수 있습니다.
하자담보책임과 채무불이행책임을 함께 구성 — 6개월이 지나지 않았다면 두 청구를 함께 구성해 두고, 이미 지났거나 애매하다면 소멸시효가 긴 채무불이행 책임을 중심으로 청구취지를 짭니다. 정화비용·조사비용은 물론 정화 기간 동안의 사용수익 지연손해까지 손해 항목을 빠짐없이 산정합니다.
구상권 행사와 강제집행까지 염두 — 정화비용을 먼저 지출했다면 오염을 실제로 일으킨 이전 소유자·운영자에 대한 구상권 행사를 병행하고, 매도인이 임의로 지급하지 않으면 재산 상황을 확인해 가압류·강제집행까지 준비합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6개월 제척기간부터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
토양오염 문제는 정화책임을 이행하느라 시간을 쓰는 사이, 매도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조용히 소멸해 가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하자담보책임은 오염 사실을 안 날로부터 6개월이라는 짧은 제척기간이 걸려 있어, 행정청 대응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작 매도인에게 물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쉽습니다.
공장부지 등을 매수한 뒤 토양오염을 발견하셨다면, 정화책임자 해당 여부와 면책 요건, 그리고 매도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시기를 함께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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