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나 동업자, 심지어 회사를 이끌던 대표이사가 회사 돈을 빼돌렸거나 임무를 저버려 회사에 손해를 끼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 피해 회사는 대개 형사 고소부터 서두릅니다. 문제는 형사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별도로, 그것도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횡령·배임을 저지른 사람이 회사의 대표이사나 임원 본인인 경우 "회사가 언제 알았다고 볼 것인가"를 둘러싸고 다툼이 생기기 쉽고, 이 기산점을 잘못 짚었다가는 형사 고소는 성공해도 정작 손해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횡령이 이루어진 경우라면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집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업무상횡령·배임 손해배상, 형사와 민사가 따로 도는 이유
업무상횡령죄(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1항)나 업무상배임죄(형법 제356조, 제355조 제2항)로 형사처벌을 받는 절차와, 그로 인한 손해를 민사상 배상받는 절차는 완전히 별개로 진행됩니다. 형사 고소·수사·재판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그 기간 동안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저절로 멈춰 서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형사사건 결과만 기다리다가 소멸시효가 지나버려 배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횡령·배임을 저지른 사람이 회사의 대표이사이거나 이를 지시할 수 있는 임원인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통상의 불법행위처럼 "피해자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가해자 자신이 회사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었다면, 그 사람이 스스로 잘못을 알고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회사가 손해를 알았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횡령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수개월, 길게는 수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라면 소멸시효를 하나의 시점으로 뭉뚱그려 계산할 수 없습니다. 각 횡령 행위, 각 손해 발생 시점마다 시효가 따로 진행되기 때문에 오래된 인출분과 최근 인출분의 운명이 갈릴 수 있습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민법 제766조 3년·10년, 그리고 회사의 인식 시점을 가르는 법리
횡령·배임으로 회사가 입은 손해를 배상받는 법적 근거는 크게 두 가지가 경합합니다. 하나는 민법 제750조에 따른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이고, 다른 하나는 가해자가 이사·감사 등 회사의 기관이었던 경우 상법 제399조·제414조에 따른 임무해태 손해배상책임, 즉 위임관계 채무불이행에 기한 청구권입니다. 두 청구권은 요건과 소멸시효가 전혀 다르게 취급되므로, 어느 쪽으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습니다.
불법행위로 구성할 경우 민법 제766조가 정한 소멸시효가 적용됩니다. 제1항은 피해자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단기소멸시효), 제2항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장기소멸시효)입니다. 여기서 "안 날"의 의미가 실무에서 가장 자주 다투어지는 지점입니다. 대법원은 손해가 발생했다는 추정이나 막연한 의문만으로는 부족하고,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행위와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라는 불법행위의 요건사실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한 시점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입장을 반복해 확인해 왔습니다(대법원 1999. 3. 23. 선고 98다30285 판결 등). 단순히 "돈이 좀 빈다"는 의심 수준이 아니라, 누가 어떤 방법으로 얼마를 빼돌렸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한 시점이 기준이 된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가해자가 대표이사 등 회사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던 경우입니다. 이때는 가해자 본인이 자신의 횡령·배임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회사가 손해를 안 것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회사의 이익을 정당하게 보전할 권한을 가진 다른 임원이나 사원, 새로 선임된 대표이사 등이 그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다만 이 법리를 뒤집어 보면, 감사나 다른 이사가 이미 오래전부터 횡령 정황을 파악하고도 방치했던 사정이 있다면 오히려 회사 측에 불리하게, 그 시점부터 3년의 시효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횡령이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장기간 반복된 경우라면 소멸시효도 반복해서 진행됩니다. 대법원은 불법행위가 계속적으로 행해지고 손해도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경우, 그 손해는 날마다 새로운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로서 각 손해를 안 때로부터 각별로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위 98다30285 판결 등). 즉 3년보다 훨씬 전에 발생한 횡령분은 이미 단기시효가 지났더라도, 최근 3년 이내에 발생한 인출·유용분은 별도로 살아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5년에 걸쳐 매달 소액씩 빼돌린 사안이라면, 전체 금액을 하나로 묶어 시효 완성 여부를 따질 것이 아니라 인출 건별로 시기를 특정해야 손해액을 최대한 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실무에서는 가해자가 이사·감사 등 회사 기관이었던 사안일수록 상법 제399조에 기한 채무불이행 구성을 함께 검토합니다. 이사·감사의 회사에 대한 임무해태 손해배상책임은 불법행위가 아니라 위임관계로 인한 채무불이행책임으로 성질이 분류되므로, 민법 제766조 제1항의 3년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고 일반 채권과 같은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됩니다. 불법행위 구성으로는 3년의 벽에 걸리는 사안도, 채무불이행 구성으로 다시 세우면 10년 안에서 다툴 여지가 생기는 셈입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기산점 다툼에 대비한 증거 확보와 청구권 구성 다섯 단계
쟁점이 정리됐다면, 실제로는 다음 순서로 대응합니다.
인식 시점을 못박는 자료부터 확보 — 회사가 언제, 어떤 경위로 횡령·배임 사실을 구체적으로 인식했는지 보여주는 감사보고서, 이사회 의사록, 내부 조사 결과, 인수인계 문서 등의 날짜를 명확히 정리해 둡니다. 상대방이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할 때 기산점을 다투는 핵심 근거가 됩니다.
불법행위·채무불이행 이중 구성 — 가해자가 이사·감사 등 회사 기관이었다면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과 상법 제399조에 기한 채무불이행 손해배상청구권을 함께 주장합니다. 불법행위 구성이 3년 단기시효에 걸리더라도, 채무불이행 구성으로 10년 안에서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
계속적 횡령분의 개별 특정 —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횡령이라면 인출·유용 건별로 시기와 금액을 특정해, 적어도 최근 3년 이내에 발생한 부분은 별도로 시효가 살아 있음을 명확히 주장합니다.
소멸시효 중단 조치 — 시효 완성이 임박했다면 우선 내용증명으로 최고한 뒤 6개월 안에 소를 제기하거나, 재산 은닉이 우려되면 가압류를 신청해 시효를 중단시킵니다. 형사 고소 자체는 민사 소멸시효를 중단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형사 절차와 민사 절차 병행 — 형사 수사·재판 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이나 재산 보전 조치를 별도로 서둘러 진행합니다. 형사 확정판결의 사실인정은 민사소송에서 유력한 증거가 되지만, 그 확정을 기다리다 시효가 지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형사 고소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굳어지는 소멸시효
업무상횡령·배임 사건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는 "형사 판결이 나오면 그때 가서 민사도 진행하겠다"며 손을 놓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사이 손해를 구체적으로 인식한 시점은 이미 지나가고 있고, 반복된 횡령분 중 앞선 부분부터 차례로 시효의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회사 자금 횡령이나 임무 배반으로 인한 손해가 의심된다면, 형사 고소 여부와 별개로 소멸시효 기산점부터 먼저 점검하고 청구권 구성과 증거 확보 순서를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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