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 관계나 채권채무 거래에서 마찰이 생기면 상대방이 "배임으로 고소하겠다"며 압박해 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계약을 어겼다는 이유만으로 형사고소장이 접수되고, 수사기관 출석 통보를 받는 순간부터 당사자는 극심한 불안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배임죄는 단순한 계약 불이행과는 다른 죄입니다 — 성립하려면 피고소인이 애초에 상대방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지위'에 있었어야 합니다. 최근 대법원이 이 지위 판단 기준을 잇달아 좁혀 오면서, 자신의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이 지위 자체를 다투는 방어가 실제로 무죄·불기소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왜 '지위'부터 따져야 하는가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를 배임죄로 처벌합니다. 이 조문을 그대로 풀면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①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일 것 ②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임무위배행위)를 했을 것 ③그로 인해 본인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얻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했을 것 ④이 모두에 대한 고의가 있었을 것, 이 네 가지가 갖춰져야 합니다.
실무에서 고소·고발이 몰리는 지점은 대개 ②·③번, 즉 "계약을 어겼다", "돈을 못 받았다"는 사실관계입니다. 그러나 정작 재판에서 자주 무죄로 갈리는 지점은 ①번, 피고소인이 애당초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입니다. 동업·매매·담보 설정처럼 계약 당사자 사이의 거래에서는, 그 의무가 "자기 계약을 이행할 의무"에 불과한지, 아니면 "상대방 재산을 보호·관리해야 할 의무"까지 포함하는지가 처음부터 모호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지위가 부정되면 나머지 요건을 따질 필요도 없이 배임죄는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습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자기의 사무'와 '타인의 사무'를 가르는 대법원의 기준
대법원은 부동산 이중저당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20. 6. 18. 선고 2019도14340 판결)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려면,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재산상 이익의 보호를 배려할 신의칙상 의무를 부담하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계약의 목적이 된 권리를 상대방의 재산으로서 보호·관리하는 것을 전형적·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신임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명시했습니다. 통상적인 계약관계에서 발생하는 이익대립 관계에 불과하다면, 아무리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자기의 사무를 게을리한 것일 뿐 배임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기준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됐는지는 최근 10여 년 사이 대법원이 뒤집은 판례들을 보면 뚜렷해집니다.
동산 이중매매 — 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 판결은 동산 매매계약에서 매도인이 목적물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해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매도인의 인도채무는 자기의 사무일 뿐, 매수인 재산의 보호·관리에 협력할 의무까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동산 양도담보 — 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은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채무자가 담보물을 제3자에게 처분해도 배임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양도담보설정계약 자체에 채무자가 채권자의 사무를 처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는 취지입니다.
부동산 이중저당 — 앞서 본 대법원 2019도14340 전원합의체 판결은, 채무자가 저당권을 설정해 주기로 약정한 부동산을 저당권 설정 전에 제3자에게 처분해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저당권설정의무 역시 자기의 사무라는 것입니다.
다만 이 흐름에 예외도 있습니다. 부동산 이중매매는 대법원 2018. 5. 17. 선고 2017도4027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종전대로 배임죄 성립이 유지됐습니다 — 매도인이 매수인으로부터 중도금까지 지급받아 계약이 본격적으로 이행 단계에 들어선 이후에는, 매도인에게 매수인 앞으로 소유권을 이전해 줄 협력의무가 생겨 신임관계가 인정된다는 이유입니다. 즉 같은 '이중처분'이라도 목적물이 동산인지 부동산인지, 계약 진행 단계가 어디인지에 따라 결론이 갈립니다 — 이 구분선이 어디에 있는지가 방어 전략의 출발점입니다.
지위가 인정되어 배임죄가 성립할 경우 형량도 가볍지 않습니다. 형법상 배임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이지만, 업무상 배임이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중되고(형법 제356조), 취득한 재산상 이익, 즉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라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습니다. 동업·거래 관계에서 발생한 배임 고소가 유독 무겁게 형량을 예고하며 압박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그럴수록 애초에 지위 자체가 인정되는 사안인지를 먼저 가려내는 것이 방어의 출발점이 됩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사무처리자 지위를 부정하는 구체적 방법
수사·재판 단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지위 부정 방어를 준비합니다.
거래의 법적 성격부터 재구성 — 고소장은 흔히 "믿고 맡겼는데 배신했다"는 서사로 쓰이지만, 실제 계약서·거래 경위를 보면 통상적인 매매·소비대차·담보설정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계약서 문언, 대금 지급 방식, 목적물이 동산인지 부동산인지를 먼저 확인해 위 판례들의 적용 대상인지 가려냅니다.
이행 단계를 특정 — 부동산 매매처럼 예외적으로 신임관계가 인정될 여지가 있는 거래라면, 중도금이 지급됐는지, 계약이 본격적인 이행 단계에 들어섰는지를 시기별로 특정합니다. 계약금만 오간 단계라면 아직 신임관계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가능합니다.
신임관계의 '본질적 내용'을 다툼 — 상대방 재산을 보호·관리하는 것이 계약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었는지를 정면으로 다툽니다. 단순히 "성실히 이행해 달라"는 신뢰가 있었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판례 문언 그대로 적시해 의견서·변론요지서에 반영합니다.
불기소·무죄 판례를 근거자료로 제출 — 동산 이중매매·동산 양도담보·부동산 이중저당 판례처럼 사안이 유사한 선례가 있다면 수사 초기 의견서 단계부터 제출해, 구속영장 청구나 기소 자체를 막는 데 활용합니다. 지위가 부정되면 나머지 임무위배·손해 요건은 심리할 필요조차 없어지므로, 초기에 이 쟁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절차 전체를 단축시킵니다.
민사 채무불이행과의 선을 분명히 — 지위가 부정된다고 해서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형사책임과 별개로 민사상 손해배상·이행청구는 남으므로, 형사 방어와 동시에 민사 대응 방향도 함께 정리해 둡니다.
동업 관계라면 정산 근거까지 함께 확보 — 동업 과정에서 자금을 집행한 것을 두고 배임으로 걸린 경우라면, 동업계약서·정산 내역·의사결정 경위를 함께 확보해 애초에 상대방 재산을 별도로 보호·관리하기로 한 약정이 있었는지, 단순한 동업자 간 손익 분배 문제였는지를 함께 다툽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초기 대응이 결과를 가른다
배임 고소는 초기 대응에 따라 결과가 크게 갈리는 사건입니다. 수사 초기에 지위 부정 주장을 제대로 정리해 제출하지 못하면, 임무위배·손해 액수 같은 뒷단 쟁점만 부각된 채 수사가 진행되고, 일단 기소된 뒤에는 되돌리기가 훨씬 어려워집니다.
거래 상대방과의 마찰이 배임 고소로 번질 조짐이 보인다면, 계약의 성격과 이행 단계부터 짚어 사무처리자 지위를 다툴 여지가 있는지 빠르게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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