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쓰였다면, 방조책임의 경계선
사건 개요
"취업하려면 급여 계좌를 새로 만들어 보내라"는 말에 통장과 체크카드를 택배로 부쳤다가, 몇 주 뒤 은행으로부터 계좌 지급정지 통보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은 급전이 필요해 지인의 부탁으로 통장을 잠시 빌려주고 소액의 사례비를 받았을 뿐인데, 어느 날 경찰서에서 "귀하의 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이체에 이용되었다"는 출석요구서가 날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사건으로 상담을 청해 오시는 분들의 사정은 제각각입니다. "정상적인 구인 공고를 보고 절차대로 취업했을 뿐"이라는 분도 있고, "명의만 빌려주는 것인 줄 알았지 사기에 쓰일 줄은 몰랐다"는 분도 있습니다. 공통된 것은 "나는 몰랐다"는 말 한마디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두려움입니다. 실제로 계좌명의인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사기방조범이 되지 않지만, 통장을 넘긴 행위 자체는 전자금융거래법이 금지하는 별개의 범죄이고, 사기방조 성립 여부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갈립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대응 방향도 어긋납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에서 실제로 다투어지는 지점은 크게 세 갈래입니다. 첫째, 통장·카드·비밀번호 같은 접근매체를 남에게 준 행위 자체가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이 금지하는 양도·대여·보관·전달 행위에 해당하는지입니다. 이 부분은 대가를 받았는지, 자신이 계속 쓸 생각이었는지와 무관하게 양도 사실 자체로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같은 법 제49조 제4항 제1호,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
둘째, 그 양도 행위가 형법상 사기방조죄(형법 제32조, 제347조)까지 성립시키는지입니다. 이는 접근매체 양도와는 완전히 별개의 판단으로, 명의인이 "이 통장이 사기 범행에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용인했는지, 즉 미필적 고의의 유무로 갈립니다. 셋째, 그 미필적 고의를 가르는 구체적 정황—채용·대출 절차가 정상적으로 위장되어 있었는지, 받은 대가가 통상적인 수준을 크게 벗어났는지, 통장의 용도를 캐물었는지 여부입니다. 이 세 가지가 순서대로 얽혀 있어, 첫 단계(접근매체 양도)는 대부분 인정되더라도 둘째·셋째 단계에서 사기방조 성립 여부가 갈리고, 그 결과 형량과 전과의 무게가 크게 달라집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고의 없음'을 증명 가능한 사실관계로 재구성하기
사기방조 혐의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지점은 "몰랐다"는 진술이 막연한 주장에 그치는 경우입니다. 법정은 심증이 아니라 정황으로 판단하므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 순서로 고의 없음을 뒷받침하는 사실관계를 세웁니다.
1) 접근매체를 넘기게 된 경위를 시간순 기록으로 재구성합니다.
구인 공고 캡처, 채용 담당자와 주고받은 문자·메신저 대화, 근로계약서나 급여 계좌 개설 안내문 등 제3자가 정상적인 절차로 꾸며 접근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대법원도 정상적인 구인광고를 통해 취업한 뒤 업무 지시에 따라 계좌를 개설·전달한 사정이 있다면, 범행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1. 5. 13. 선고 2021도3320 판결). 이런 정황이 남아 있는지가 방어의 출발점입니다.
2) 받은 대가의 성격과 액수를 통상적인 수준과 대조합니다.
통장 하나를 넘기는 대가로 정상적인 임금이나 소개비 수준을 크게 웃도는 금액을 일시에 받았다면, 법원은 그 자체를 "정상 거래가 아님을 알았다"는 유력한 정황으로 봅니다. 반대로 정식 급여 명목이었거나 소액에 그쳤다면, 그 대가의 성격을 계좌 이체 내역·급여명세·근로계약서와 함께 정리해 고의를 추단할 만한 이상 징후가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지급 시점이 근무 개시나 실적과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었는지도 함께 짚어, 대가 지급 방식 자체가 통상적인 고용·거래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뒷받침합니다.
3) 검사의 입증책임 원칙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미필적 고의를 포함한 범죄 성립 요건은 그것이 주관적 요소라 하더라도 검사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해야 합니다. 수사기관은 흔히 "통상적이지 않은 절차였는데도 별다른 의심 없이 응했다"는 정황만으로 고의를 추정하려 하지만, 그 추정은 앞서 정리한 시간순 기록·대가 내역으로 얼마든지 반박됩니다. 진술서 작성 단계에서부터 "인식하고 용인했다"는 부분이 막연한 정황 나열에 그친 공소사실인지를 짚어, 그 빈틈을 무죄 내지 혐의없음 주장의 근거로 삼습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전자금융거래법위반과 사기방조죄를 분리해 각각 대응하기
두 혐의를 뭉뚱그려 걱정하면 대응도 뭉개집니다. 김강희 변호사는 이 둘을 애초에 분리해, 각 죄의 성립요건에 맞춰 따로 다룹니다.
1) 접근매체 양도(전자금융거래법위반)와 사기방조는 별개 범죄임을 전제로 다툽니다.
접근매체를 넘긴 사실 자체는 사실상 인정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많습니다. 이 경우 전자금융거래법위반만 인정되고 사기방조는 무죄로 갈리는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두 혐의에 대한 변론을 각각 준비합니다. 하나가 인정된다고 다른 하나까지 자동으로 인정되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 방어의 여지입니다.
2) 계좌에 입금된 돈을 인출한 사실이 있다면 횡령죄 성립 여부를 별도로 점검합니다.
만약 사기방조죄가 인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명의인이 자신 계좌에 들어온 피해금을 임의로 인출·사용했다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를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로 봅니다(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반대로 사기방조죄가 인정되는 경우라면, 그 인출은 자신이 방조한 범죄로 생긴 돈을 가져간 것이어서 별도의 장물취득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입니다(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6256 판결). 이 구조를 알아야 인출 사실이 드러났을 때 어떤 죄책이 문제 되는지 정확히 가늠하고, 이중으로 몰리는 주장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형사절차와 별개로 진행되는 전자금융거래 제한에도 함께 대응합니다.
사기이용계좌로 지목되면 형사처벌과 별도로 계좌 지급정지와 전자금융거래 제한이라는 행정적 불이익이 뒤따릅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관련 범죄로 벌금형이 확정되면 그로부터 3년, 집행유예를 포함한 징역형이 확정되면 그로부터 5년간 전자금융거래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는 형사 절차의 결과에 연동되므로, 수사 초기 단계부터 형사 대응과 함께 챙겨야 실질적인 불이익을 줄일 수 있습니다.
결론
계좌명의인이라는 사실 하나로 사기방조범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통장을 넘긴 행위 자체는 전자금융거래법위반으로 별도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고, 사기방조 성립 여부는 오로지 그 순간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용인했는지—즉 고의의 존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 경계는 수사 초기에 어떤 자료를 남기고 어떻게 진술하는지에서 사실상 갈립니다.
지금 계좌 지급정지 통보를 받았거나 사기방조 혐의로 조사를 앞두고 있다면, 접근매체를 넘기게 된 경위와 대가의 성격부터 정리해 어느 지점에서 다툴 수 있는지 점검을 받아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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