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 동네가 재개발 정비구역이 되고, 조합설립인가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정작 나는 동의한 적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동의율이 실제로 채워진 것인지, 채워지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다툴 수 있는지 막막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조합설립인가가 왜 '처분'인지, 동의율 하자를 어떤 소송으로 다투는지, 그리고 취소 90일과 무효확인 사이에서 시점이 결론을 어떻게 가르는지를 정리합니다. 서두르면 되돌릴 수 있는 문제도, 기한을 넘기면 손을 쓰기 어려워지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조합설립인가는 '설권적 처분' — 왜 이 성격이 결론을 가르나
재개발 조합에 반대하는 주민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벽은 "조합을 무엇으로,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입니다. 관할 행정청의 조합설립인가는 단순히 주민들끼리 한 조합설립결의에 도장을 찍어주는 보충행위가 아니라, 조합에 정비사업을 시행할 공법상 지위(행정주체)를 부여하는 설권적 처분입니다. 대법원도 이 점을 분명히 하여, 인가가 있은 뒤에는 다툼의 무대가 민사법정에서 행정법정으로 옮겨간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성격 규정은 추상적인 법리 논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처분이 되는 순간 다투는 소송의 종류, 피고, 제소기간, 요구되는 하자의 수준이 모두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인가라는 '처분'을 다투므로 피고는 조합이 아니라 인가를 내준 시장·군수·구청장이 되고, 소송은 행정법원의 항고소송으로 진행됩니다. 무효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도 민사상 결의무효 기준이 아니라 행정처분의 무효 기준으로 바뀝니다.
인가는 조합에 사업시행 권한을 주는 설권적 처분이다. 그래서 인가 후 동의율을 다투려면 '결의무효'가 아니라 '인가처분의 위법'을 항고소송으로 겨눠야 한다.
인가가 나면 '조합설립결의 무효' 민사소송은 막힌다 — 대법원 2008다60568
과거에는 조합설립에 동의하지 않은 주민이 민사소송으로 조합설립결의 자체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방식이 흔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2009. 9. 24. 선고 2008다60568 판결은 조합설립인가가 있은 후에는 조합설립결의의 하자를 이유로 곧바로 민사상 결의무효확인을 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정리했습니다. 결의는 인가처분의 여러 요건 중 하나에 불과하므로, 결의의 흠은 결국 인가처분의 위법사유로 흡수되어 판단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실무상 이 판례의 함의는 큽니다. 인가 전이라면 조합설립결의 효력을 당사자소송이나 총회결의 다툼으로 문제 삼을 여지가 있지만, 일단 인가가 떨어지면 그 통로는 닫히고 인가처분 취소 또는 무효확인의 항고소송 한 갈래로 수렴합니다. 소송 유형을 잘못 골라 민사법정에 소를 냈다가 각하되고, 그 사이 항고소송 제소기간까지 지나버리는 것이 가장 뼈아픈 실패입니다.
가령 동의서 상당수가 법정 기재사항을 빠뜨린 채 징구되었다고 판단해 조합을 상대로 민사 결의무효 소송을 냈다면, 법원은 "인가처분을 다투라"며 소를 받아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피고를 행정청으로, 청구를 인가처분 위법으로 구성했어야 하는 사안인 것입니다.
동의율 하자, 구체적으로 무엇을 다투나 — 재개발 4분의 3의 벽
재개발사업에서 조합을 설립하려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35조 제2항에 따라 토지등소유자의 4분의 3 이상 및 토지면적의 2분의 1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두 요건은 '그리고(and)'의 관계라, 사람 수 기준은 채웠어도 토지면적 기준을 못 채우면 정족수 미달입니다. 동의율은 통상 조합설립인가 신청 시를 기준으로 산정하므로, 신청 시점에 유효한 동의가 몇 건인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겉으로는 동의율을 채운 것처럼 보여도, 개별 동의서의 효력을 하나씩 따지면 정족수가 무너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다투어 볼 수 있는 대표적 하자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법정 기재사항 누락 — 건설되는 건축물의 설계 개요, 공사비 등 정비사업비, 분담금 산출 근거, 소유권 귀속에 관한 사항 등 법이 정한 내용이 동의서에 빠졌다면 그 동의는 무효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철회된 동의의 산입 — 동의는 창립총회 전, 그리고 최초 동의일부터 일정 기간 내에는 철회가 가능합니다. 적법하게 철회된 동의를 그대로 정족수에 넣었다면 동의율이 과대 계산된 것입니다.
중복·허위·무자격 동의 — 한 사람 명의가 이중으로 계산되거나, 토지등소유자가 아닌 사람의 동의, 실제 의사와 다른 대리 동의가 섞인 경우입니다.
토지면적 산정 오류 — 국공유지나 도로 등의 처리, 공유 지분의 합산 방식이 잘못되어 '토지면적 2분의 1' 요건이 실제로는 미달인 경우입니다.
동의 대상·구역의 변경 — 정비구역이나 사업 내용이 바뀌었는데 그에 맞는 새 동의를 받지 않고 종전 동의를 유용한 경우입니다.
이런 흠은 개별적으로는 소수라도, 합산하면 4분의 3 또는 토지면적 2분의 1 선을 넘나드는 결과를 만들 수 있어 정족수 다툼의 실익이 생깁니다.
취소소송 90일 vs 무효확인 — 기한이 결론을 바꾼다
같은 동의율 하자라도 어떤 소송을 언제 내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립니다. 인가처분 취소소송은 행정소송법 제20조에 따라 처분이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있은 날부터 1년 안에 제기해야 합니다. 이 기간을 하루라도 넘기면 하자가 아무리 있어도 취소소송으로는 다툴 수 없게 됩니다.
반면 무효확인소송은 사정이 다릅니다. 행정소송법 제38조가 제소기간 규정(제20조)을 준용하지 않으므로, 무효확인의 소에는 제소기간 제한이 없습니다. 즉 90일이 지난 뒤에도 하자가 무효사유에 해당한다면 여전히 인가의 효력을 다툴 수 있습니다. 다만 뒤에서 보듯 무효는 문턱이 훨씬 높습니다.
실무에서는 이 둘을 나눠서, 제소기간이 남아 있다면 취소를 주위적으로 구하면서 무효확인을 예비적으로 함께 구하는 구성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취소소송을 냈다가 무효사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무효확인 취지의 항고소송으로 청구를 변경·정리하는 길도 열려 있습니다. 관건은 90일이라는 짧은 창을 놓치기 전에 소송 유형을 정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무효로 인정되려면 — '중대·명백'의 높은 문턱
제소기간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효확인이 늘 유리한 것은 아닙니다. 행정처분이 당연무효가 되려면 하자가 중대하고 동시에 외관상 명백해야 한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이기 때문입니다. 정족수를 살짝 밑도는 정도이거나, 서류를 면밀히 대조해야 비로소 드러나는 흠은 '중대·명백'까지는 아니라고 보아 취소사유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90일이 지난 뒤 무효확인만 남은 사건은, 단순히 "동의율이 조금 부족했다"는 주장만으로는 이기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동의 정족수가 애초에 현저히 미달인데도 인가가 났다거나, 법정 기재사항이 전면적으로 빠진 동의서가 대량으로 산입되는 등 누가 보아도 흠이 드러나는 사정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제소기간 안이라면 '취소사유' 수준의 하자만으로도 인가를 뒤집을 수 있으므로, 기한을 지키는 것 자체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결국 전략은 시점에 따라 갈립니다. 인가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취소소송으로 폭넓게 다투고, 이미 오래 지난 뒤라면 무효에 이를 만큼 중대·명백한 하자에 집중해 입증을 설계해야 합니다.
90일 안이면 '취소사유'로도 인가를 깰 수 있지만, 90일이 지나면 '중대·명백한 무효사유'가 있어야 한다. 같은 하자라도 기한이 승패를 가른다.
실무 유의점 — 통로를 고르고 증거를 확보하는 순서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인가 시점과 그 사실을 안 날입니다. 이 두 날짜가 취소소송 90일과 1년 기간의 기산점을 정하고, 어떤 소송이 남아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인가 고시나 통지 자료, 조합의 안내문 등으로 시점을 객관적으로 특정해 두어야 나중에 제소기간 다툼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동의서 원본과 산정 내역의 확보가 승패를 좌우합니다. 동의율 하자는 결국 개별 동의서를 하나씩 검증해 정족수를 재계산하는 작업이라, 조합이 인가 신청 시 제출한 동의서, 철회서, 토지·소유 현황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정보공개청구나 소송상 문서제출을 통해 근거 자료를 모으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업이 진행될수록 사업시행계획인가·관리처분계획인가 등 후속 처분이 쌓이면서 앞선 하자를 다투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다툴 뜻이 있다면 인가 직후 이른 시점에 통로를 정해 착수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조합설립인가가 난 뒤에도 동의율을 문제 삼을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다만 '조합설립결의 무효'를 민사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가처분의 위법을 다투는 항고소송(취소 또는 무효확인)으로 제기해야 합니다. 대법원 2008다60568 판결이 이 통로를 분명히 했습니다.
Q. 취소소송 90일이 지났는데 방법이 있을까요?
A. 무효확인소송은 제소기간 제한이 없어 90일 이후에도 낼 수 있습니다. 다만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해 당연무효에 이르러야 인용되므로, 단순 정족수 부족을 넘는 중대한 흠을 입증해야 합니다.
Q. 재개발 조합설립 동의율 요건은 어떻게 되나요?
A. 도시정비법 제35조 제2항상 재개발은 토지등소유자의 4분의 3 이상 및 토지면적의 2분의 1 이상 동의가 필요합니다. 두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하며, 통상 인가 신청 시를 기준으로 산정합니다.
Q. 소송의 피고는 조합인가요?
A. 인가처분을 다투는 항고소송이므로 피고는 인가를 내준 행정청(시장·군수·구청장)입니다. 조합은 소송 결과에 이해관계가 있어 보조참가 등으로 관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Q. 한 번 동의했으면 철회는 불가능한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동의는 창립총회 전이거나 최초 동의일부터 일정 기간 내라면 철회할 수 있고, 적법하게 철회된 동의가 정족수에 잘못 산입되었다면 그 자체가 동의율 하자의 근거가 됩니다.
Q. 동의서 서류만 잘못돼도 인가가 무효가 되나요?
A. 서류상 흠이 곧바로 무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법정 기재사항 누락처럼 동의 자체를 무효로 볼 흠이 정족수를 무너뜨릴 정도로 쌓여야 하고, 90일이 지난 뒤라면 그 흠이 중대·명백해야 무효로 인정됩니다.
맺음말
재개발 조합설립인가를 둘러싼 다툼의 핵심은 '무엇을, 어느 법정에서, 언제까지' 다투느냐입니다. 인가는 조합에 사업권을 부여하는 설권적 처분이므로, 동의율에 흠이 있다고 보이면 민사 결의무효가 아니라 인가처분을 겨눈 항고소송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고 취소소송 90일과 무효확인의 갈림길에서 시점이 곧 전략을 결정합니다.
동의율 하자는 개별 동의서를 하나씩 검증해 정족수를 재계산하는, 증거와 시점 관리가 촘촘히 요구되는 영역입니다. 인가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제소기간이 지나기 전에 통로를 정하고 자료 확보에 착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수원·경기남부 지역에서 재개발 조합설립 인가나 동의율 문제로 고민이 있으시다면, 사안의 시점과 하자 유형을 함께 점검해 대응 방향을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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