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영상녹화 진술은 오랫동안 재판의 핵심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2021년 말 이 영상물의 증거능력 특례 조항에 위헌을 선언하면서, 미성년 피해자가 법정에 서야 하는지, 영상만으로 유죄 증거가 될 수 있는지가 완전히 다시 정리되었습니다. 2023년 개정 성폭력처벌법은 반대신문 기회 보장을 원칙으로 하는 새로운 요건을 만들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위헌결정이 무엇을 바꾸었는지, 현행법에서 영상녹화물이 증거가 되는 요건은 무엇인지, 피고인 측과 피해자 측 각각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변호사
미성년 피해자 영상녹화 진술 제도 —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운영되나
성폭력 사건에서 미성년 피해자가 법정에 직접 나와 피해 경험을 반복해서 진술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심리적 부담이 됩니다. 이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30조는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을 영상녹화 장치로 촬영·보존하도록 하는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현행법은 피해자가 19세 미만이거나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 이들을 19세미만피해자등으로 묶어 진술 영상녹화를 원칙적으로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 피해 아동이 해바라기센터에서 진술하면, 그 과정 전체가 영상으로 남아 이후 재판 자료가 되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촬영된 영상녹화물을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있는지, 즉 증거능력의 요건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조사에 동석했던 신뢰관계인이나 진술조력인이 "영상 속 진술이 진짜 맞다"고 확인만 해 주면, 피해자가 법정에 나오지 않아도 영상물이 증거가 될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 보호에는 효과적이었지만, 피고인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불리한 핵심 진술을 한 사람을 한 번도 직접 신문하지 못한 채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습니다. 이 긴장 관계가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으로 폭발하게 됩니다.
영상녹화 제도의 핵심 쟁점은 "피해자를 법정에 다시 세우지 않으면서도,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입니다.
헌법재판소 2018헌바524 위헌결정 — 무엇이 헌법에 어긋났나
헌법재판소는 2021. 12. 23. 선고 2018헌바524 결정에서, 구 성폭력처벌법 제30조 제6항 중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 부분에 대해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위헌을 선언했습니다. 위헌으로 판단된 부분은, 조사 과정에 동석했던 신뢰관계인 또는 진술조력인의 진술만으로 영상물에 수록된 피해자 진술의 성립의 진정이 인정되면 이를 증거로 할 수 있도록 한 특례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실질적으로 배제하여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보았습니다.
결정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할 필요는 분명하지만, 증거보전절차나 중개 방식의 신문처럼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면서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화로운 수단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반대신문 기회 자체를 봉쇄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지 못해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나고,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유죄의 핵심 증거가 피해자 진술 하나뿐인 사건이 많은 성폭력 재판의 특성상, 이 결정은 실무에 즉각적인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위헌결정 직후의 공백기 — 대법원 2021도14616이 정리한 실무
위헌결정으로 해당 조항은 즉시 효력을 잃었고, 후속 입법이 이루어진 2023. 7. 11.까지 약 1년 6개월의 공백기가 생겼습니다. 이 시기 재판 실무를 정리한 것이 대법원 2022. 4. 14. 선고 2021도14616 판결입니다. 대법원은 위헌결정의 효력이 미치는 사건에서,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은 채 신뢰관계인의 성립 인정만으로 영상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위헌결정 전에 영상물이 이미 증거로 채택되었던 진행 중 사건들도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공백기에는 미성년 피해자가 결국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야 하는 사건이 늘었고, 이는 위헌결정이 의도하지 않은 2차 피해 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피고인 측에서는 영상물의 증거능력을 다투는 것이 핵심 방어 수단이 되었고, 검사 측에서는 증거보전절차나 증인신문 과정의 피해자 보호 조치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이 혼란을 입법적으로 정리한 것이 2023년 개정법입니다.
위헌결정과 2023년 개정 사이의 사건은 "언제 조사가 이루어졌고, 반대신문 기회가 있었는지"에 따라 영상물의 운명이 갈립니다.
2023년 개정 성폭력처벌법 제30조의2 — 영상녹화물이 증거가 되는 두 갈래
2023. 7. 11. 법률 제19517호로 개정된 성폭력처벌법은 제30조를 전면 정비하고 제30조의2(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 특례)를 신설했습니다. 개정법은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반대신문권 문제를 정면으로 반영하여, 영상녹화물이 증거능력을 갖는 경로를 두 갈래로 설계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제30조 제4항부터 제6항이 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적법하게 녹화된 영상물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같습니다.
반대신문 기회가 보장된 경우 — 증거보전기일, 공판준비기일 또는 공판기일에 피의자·피고인 측이 영상녹화물의 내용에 관하여 피해자를 신문할 수 있었던 경우입니다. 피해자를 유죄 인정의 일방적 자료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방어권 행사의 기회를 거치게 하는 것입니다.
증거보전기일 신문의 한정 요건 — 증거보전기일에서의 신문은 법원이 피의자나 피고인의 방어권이 보장된 상태에서 반대신문이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인정하는 경우로 한정됩니다. 형식적으로 기일만 거쳤다고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출석 진술이 불가능한 경우 — 피해자가 사망, 외국 거주, 신체적·정신적 질병이나 장애, 소재불명 등의 사유로 공판준비기일 또는 공판기일에 출석하여 진술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영상녹화된 진술과 녹화 과정이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졌음, 이른바 특신상태가 증명되어야 합니다.
정리하면, 원칙은 피고인에게 어떤 형태로든 피해자를 신문할 기회를 주는 것이고, 예외적으로 출석 자체가 불가능한 사정이 증명될 때에만 특신상태를 조건으로 영상물만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됩니다. 예를 들어 피해 아동이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로 법정 진술이 불가능하다는 전문가 소견이 있는 사건이라면 두 번째 경로가 검토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증거보전절차 등을 통한 신문 기회 부여가 먼저 검토되는 구조입니다.
증거보전절차의 활용 — 법정 증언 없이 반대신문을 거치는 방식
개정법 체계에서 실무의 무게중심은 증거보전절차로 옮겨졌습니다. 증거보전은 공판이 열리기 전 단계에서 판사가 미리 증인신문 등을 해 두는 절차로, 미성년 피해자 사건에서는 기억이 생생한 조기에 한 차례 신문을 마치고 그 결과를 재판에 쓰는 방식으로 활용됩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본 재판 법정에 서지 않아도 되고, 피고인 입장에서는 변호인을 통해 반대신문권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헌법재판소가 요구한 조화점에 가장 가까운 수단입니다.
증거보전기일의 신문은 통상의 법정 증인신문과 분위기가 다릅니다. 피해자의 연령과 심리 상태를 고려한 보호 조치가 병행되고, 신문 방식도 아동의 특성에 맞게 조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앞서 본 것처럼 법원이 방어권이 보장된 상태에서 반대신문이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인정해야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 요건이 충족되므로, 피고인 측 변호인으로서는 이 기일이 사실상 유일한 반대신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준비해야 합니다. 반대로 이 단계에서 신문 사항을 부실하게 준비하면, 이후 본 재판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다툴 실질적 수단을 잃게 될 수 있습니다.
증거보전기일은 피고인 측에게 사실상 단 한 번의 반대신문 기회일 수 있습니다 — 이 기일의 준비 수준이 사건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피의자·피고인 측에서 점검할 지점 — 증거능력을 다투는 순서
미성년 피해자 영상녹화물이 핵심 증거인 사건에서 피의자·피고인 측이 점검할 순서는 비교적 분명합니다. 먼저 영상물이 제30조가 정한 절차와 방식을 지켜 촬영·보존되었는지를 확인합니다. 조사 전 고지, 촬영 범위, 보존 방식 등 절차 요건에 흠이 있으면 그 자체로 증거능력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자신에게 반대신문의 기회가 실질적으로 부여되었는지, 증거보전기일을 거쳤다면 그 신문이 충분했다고 볼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피해자 출석 불가를 이유로 영상물만 제출된 사건이라면, 출석 불가 사유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와 특신상태가 증명되는지가 다툼의 축이 됩니다. 특신상태는 진술 내용뿐 아니라 녹화가 이루어진 환경, 질문 방식이 유도적이지 않았는지, 진술의 임의성이 확보되었는지 등을 종합하여 판단될 수 있습니다. 한편 증거능력이 인정되더라도 진술의 신빙성, 즉 증명력은 별도의 문제이므로, 진술의 일관성이나 진술이 형성된 경위를 다투는 방어는 여전히 가능합니다. 어느 단계에서 무엇을 다툴지는 사건 기록을 본 뒤에야 정할 수 있으므로, 조기에 형사 전문 변호사의 검토를 받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 측이 알아둘 점 — 아이를 법정에 세우지 않기 위한 준비
피해자와 보호자 입장에서 개정법의 의미는, 절차를 제대로 밟으면 아이가 본 재판 법정에 서지 않고도 영상녹화 진술이 증거로 쓰일 길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관건은 초기 대응입니다. 최초 진술 녹화가 법이 정한 절차대로 이루어져야 하고, 이후 증거보전절차가 청구되는 경우 그 기일에서의 신문이 아동 보호 조치와 함께 진행되도록 챙겨야 합니다. 진술조력인, 신뢰관계인 동석 등 피해자 보호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를 통해 절차 전반에서 법률 조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수사 초기부터 피해자 측에도 전문가의 조력이 붙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증거보전기일의 신문이 한 차례로 마무리되면 이후 반복 진술 부담이 크게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이 절차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피해자 보호의 실질을 좌우합니다. 보호자로서는 아이의 심리 치료 기록이나 전문가 소견을 정리해 두는 것이 출석 곤란 사유나 보호 조치 필요성을 소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위헌결정이 났으니 미성년 피해자의 영상녹화 진술은 이제 증거로 못 쓰는 것 아닌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위헌으로 결정된 것은 신뢰관계인의 확인만으로 증거능력을 부여하던 구법 조항이고, 2023. 7. 11. 신설된 성폭력처벌법 제30조의2에 따라 반대신문 기회가 보장되었거나 피해자가 출석 진술할 수 없는 사정과 특신상태가 증명되면 영상녹화물은 여전히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제도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요건이 재설계된 것입니다.
Q. 피고인이 반대신문을 한 번도 못 했는데 영상물이 증거로 채택될 수 있나요?
A. 원칙적으로는 증거보전기일, 공판준비기일, 공판기일 중 어느 단계에서든 피해자를 신문할 기회가 부여되어야 합니다. 다만 피해자가 사망, 질병, 소재불명 등으로 출석하여 진술할 수 없고 녹화 진술의 특신상태가 증명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반대신문 없이도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 예외 요건이 갖춰졌는지는 사건마다 다투어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Q. 증거보전기일에서 반대신문을 했는데, 본 재판에서 피해자를 다시 증인으로 부를 수 있나요?
A. 증거보전기일에서 방어권이 보장된 충분한 반대신문이 이루어졌다고 법원이 인정하면, 영상녹화물이 증거능력을 갖추게 되어 피해자를 본 재판에 다시 세우지 않는 방향으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추가 신문의 필요성이 소명되면 법원이 증인 채택 여부를 다시 판단할 수 있으나, 미성년 피해자의 반복 진술 부담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증거보전기일 단계의 준비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Q. 위헌결정 전에 영상물이 증거로 채택된 진행 중 사건은 어떻게 되나요?
A. 대법원 2022. 4. 14. 선고 2021도14616 판결은 위헌결정의 효력이 미치는 사건에서 반대신문권 보장 없이 영상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를 밝혔습니다. 따라서 위헌결정 당시 재판이 진행 중이던 사건에서는 이미 채택된 영상물의 증거능력이 다시 문제될 수 있었고, 실제로 피해자 증인신문이 새로 이루어진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사건이 어느 국면에 해당하는지는 기록 검토가 필요합니다.
Q. 피해자가 19세 미만이 아니라 성인인데 지적장애가 있는 경우에도 같은 규정이 적용되나요?
A. 적용될 수 있습니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은 19세 미만 피해자뿐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피해자를 19세미만피해자등에 포함시켜, 진술 영상녹화와 증거능력 특례를 같은 틀로 규율합니다. 따라서 장애가 있는 성인 피해자의 영상녹화 진술도 같은 요건 아래에서 증거능력이 판단될 수 있습니다.
Q. 영상녹화 자체를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A. 영상녹화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이므로, 피해자 측의 의사가 절차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녹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는 경우 촬영 여부가 달라질 수 있으며, 이 경우 이후 재판에서 피해자 진술을 어떤 방식으로 현출할지가 함께 검토되어야 합니다. 녹화 여부의 선택이 재판 단계의 진술 부담과 직결되므로, 결정 전에 피해자 국선변호사 등과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맺음말
미성년 피해자 영상녹화 진술의 증거능력은 헌법재판소 2018헌바524 위헌결정과 2023. 7. 11. 개정 성폭력처벌법 제30조의2를 거치며 완전히 새로운 틀로 재편되었습니다. 핵심은 피고인의 반대신문 기회 보장이 원칙이 되었고, 피해자가 출석할 수 없는 예외적 사정과 특신상태가 증명될 때에만 영상물 단독으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건이 위헌결정 전후, 개정법 시행 전후 어느 시점에 걸쳐 있는지에 따라 적용되는 법리가 달라질 수 있어, 시점 확인이 검토의 출발점이 됩니다.
피의자·피고인 측이라면 증거보전기일이 사실상 유일한 반대신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피해자 측이라면 절차를 제대로 설계하면 아이를 법정에 세우지 않을 길이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원과 경기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성범죄 사건을 다뤄 온 변호사의 조력을 초기에 받는다면, 어느 입장에서든 증거보전 단계부터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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