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한 차용증이 있음에도, 채무자를 방어하여 전부 승소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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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한 차용증이 있음에도, 채무자를 방어하여 전부 승소한 사례 

김동훈 변호사

전부승소

의****

■ 사건 개요

의뢰인 A씨는 상대방으로부터 "2,500만 원을 빌려주었으니 갚으라"는 대여금 청구소송을 당했습니다.

상대방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는 강력해 보였습니다. A씨 본인의 지장(무인)이 찍힌 2,500만 원짜리 차용증서, 그리고 돈이 오갔다는 정황이 담긴 카카오톡 대화 내역까지 있었습니다. A씨 역시 차용증에 찍힌 지장이 자신의 것임은 부인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서명·날인된 계약서, 이른바 '처분문서'는 재판에서 매우 강력한 증명력을 가집니다. 문서의 성립이 진정한 것으로 인정되면, 법원은 원칙적으로 그 문서에 적힌 내용대로 법률관계가 있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겉으로만 보면 A씨가 이기기 대단히 어려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A씨는 그 돈을 빌린 사실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장이 찍힌 차용증을 앞에 두고 어떻게 증명하느냐였습니다.

■ 사건의 핵심 쟁점

이 사건의 핵심은 처분문서의 강력한 증명력을 어떻게 뒤집을 것인가였습니다.

차용증에 본인의 지장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이상, 통상적인 방어 논리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저희는 두 가지 축으로 접근했습니다.

첫째, 차용증에 관하여 — A씨가 문서의 내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본문이 가려진 상태에서 지장을 날인하게 된 정황이 있었다는 점. 즉 그런 채무를 부담할 의사 자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자금 이동의 실체에 관하여 — 대여금 청구가 인정되려면 계약 체결 사실뿐 아니라 실제로 돈이 건네졌다는 사실(목적물의 인도)까지 청구하는 측이 증명해야 합니다. 상대방은 2,500만 원 전액을 현금으로 건넸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양측이 처했던 폐쇄적 환경(군 부대내의 계급 관계)과 현금의 보관·전달 경위가 상식적으로 납득되기 어렵다는 점을 파고들었습니다.

■ 당소의 대응

저희는 "차용증이 있다"는 표면적 사실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이면의 자금 흐름 전체를 재구성했습니다.

첫째, 상대방이 주장하는 현금 교부 경위의 비합리성을 집중적으로 짚었습니다. 거액의 현금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떤 경위로 보관·전달되었는지에 대해 상대방이 설득력 있는 설명과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을 부각했습니다.

둘째, 상대방이 제출한 카카오톡 대화 내역이 소장의 주장과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지점들을 정밀하게 분석해 드러냈습니다. 대화의 시점과 자금 교부 경위가 상대방 스스로의 주장과 모순된다는 점을 짚어, 해당 증거의 신빙성을 흔들었습니다.

셋째, 상대방이 자금을 수령한 뒤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에 대한 흔적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종합하여, 실제 자금 이동 자체가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논증했습니다.

이를 통해, 도장이 찍힌 차용증이 있더라도 그 기재 내용을 부인할 만한 분명하고 수긍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법원은 그 문서를 배척할 수 있다는 법리(대법원 2005다34643 판결)에 사건을 정확히 안착시켰습니다.

■ 결과

법원은 저희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차용증의 진정성립을 인정할 수 없거나 그 증명력이 부족하고, 대여금 청구의 핵심인 '현금의 교부'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소송비용 역시 전부 원고가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지장이 찍힌 차용증이라는 가장 불리한 증거를 앞에 두고도, 실체적 진실을 입증해 완전한 승소를 이끌어낸 결과입니다.

■ 형사사건과의 연결 — 민사 승소가 형사 국면까지 바꾸다

이 사건에는 관련 형사사건이 병행되고 있었습니다. 의뢰인 A씨가 상대방을 강요·컴퓨터등사용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하여, 수 년간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이번 민사 전부 승소는 이 형사사건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민사 법원이 '실제로 A씨가 돈을 빌린 사실이 없다', '차용증의 기재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단을 명시적으로 내렸기 때문입니다. 채무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었다는 것은, 그 채무를 근거로 이루어졌다는 상대방의 자금 관련 행위와 문서의 신빙성에 대한 강력한 반증이 됩니다.

즉, 이번 민사 판결은 단순히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넘어, 병행 중인 형사사건에서 의뢰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민사와 형사 양쪽의 큰 그림 속에서 설계했기에 가능한 성과였습니다.

■ 클리어의 한마디

"도장이 찍힌 차용증이 있는데 어떻게 이기느냐"고 많은 분들이 지레 포기하십니다. 물론 처분문서의 증명력은 강력합니다. 그러나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그 문서의 기재 내용을 부인할 만한 분명하고 수긍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법원은 얼마든지 그 문서를 배척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서류가 있느냐"가 아니라 "그 서류가 실제 있었던 일을 담고 있느냐"입니다. 특히 대여금 소송에서는 계약서의 존재만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돈이 오갔다는 사실까지 청구하는 측이 증명해야 합니다. 이 '돈의 흐름'을 상대방 스스로의 진술·증거 안에 있는 모순을 통해 무너뜨리는 것이 승패를 가릅니다.

또한 하나의 분쟁이 민사와 형사로 얽혀 있을 때는, 각 절차를 따로 보지 않고 전체 구도 속에서 전략을 설계해야 합니다. 이번처럼 민사에서의 판단이 형사사건의 향방까지 유리하게 이끄는 경우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억울하게 채무를 떠안게 되셨다면, 차용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하지 마시고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서류의 겉모습 뒤에 있는 진실을 어떻게 증명해낼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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