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에 휘말리면 가장 먼저 인터넷에서 합의금 시세부터 찾아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폭행은 얼마, 사기는 얼마 하는 식의 표가 떠돌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런 정해진 적정 금액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합의금은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로 이어지면서 형벌의 수위까지 좌우하는 사안이고, 범죄의 종류와 피해 정도, 양측의 형편, 가해자의 전과 같은 여러 사정에 따라 사안마다 전혀 다르게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시세표를 믿고 접근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 쉽습니다.
형사합의금은 위자료일까, 손해배상일까
먼저 합의금의 법적 성격을 짚어야 합니다. 이는 돈을 건넬 당시 어떤 명목으로 주는지를 밝혔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대법원은 형사재판 과정에서 지급한 금액이 위자료 명목임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면 재산상 손해배상금의 일부로 본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대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위자료 조로 받은 것으로 인정되면 위자료를 정할 때 참작 사유가 됩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점이 있습니다. 합의금을 받았다고 해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권이 자동으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돈이 재산상 손해배상의 일부로 지급된 것이라면 나중에 민사소송에서 배상액을 정할 때 공제될 수 있습니다. 한편 가해자로 잘못 지목돼 합의금을 줬는데 이후 무죄가 확정됐다면, 착오에 의한 합의로 보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라미에서는 합의서를 작성할 때 지급 명목과 처벌불원의 조건을 어떻게 적느냐를 특히 꼼꼼히 살피는데, 이 한 줄 차이가 나
중에 민사까지 갔을 때 큰 차이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합의금을 좌우하는 요소들
범죄의 종류와 피해 정도
가장 기본은 어떤 범죄였고 피해가 얼마나 큰지입니다. 재산 손해, 신체 피해, 정신적 고통의 정도에 따라 금액이 달라집니다. 교통사고라면 법원은 치료비와 치료 기간 동안 벌지 못한 수입, 위자료, 간병비 등을 두루 살펴 합의금이 적정한지 판단합니다. 실제로 한 판결은 피해자의 나이와 건강, 일하던 여건 같은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 금액의 적정성을 따지며 산정의 개별성을 강조했습니다.
가해자의 전과 — 합의의 절박함을 키운다
전과가 있는 가해자일수록 합의가 안 되면 실형 가능성이 높아져 합의에 매달리게 되고, 이는 금액에도 영향을 줍니다.
특히 누범이 문제입니다. 형법 제35조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마치거나 면제받은 뒤 3년 안에 다시 금고 이상에 해당하는 죄를 저지르면 누범으로 처벌받고, 그 형은 원래 정해진 형의 장기를 2배까지 늘릴 수 있습니다. 누범 기간에 또 죄를 지은 가해자라면 합의 없이 실형을 피하기 어려워집니다.
집행유예 기간 중의 범행도 비슷합니다. 다만 정확히 알아둘 점이 있습니다. 새 범행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집행유예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형법 제63조에 따라 유예기간 중 고의로 저지른 죄로 금고 이상의 실형이 선고돼 그 판결이 확정되면, 그때 집행유예가 효력을 잃어 종전에 미뤄뒀던 형까지 함께 집행됩니다. 그만큼 처벌 위험이 커지니 가해자로서는 처벌불원 의사를 받아내는 일이 절실해지고, 합의 금액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같은 범죄를 여러 차례 반복한 동종 누범의 경우 법원은 이를 매우 불리한 정상으로 봅니다.
가해자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가해자의 형편과 신분도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연예인이나 공인은 사건이 보도되면 평판과 활동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어, 경미한 사안이라도 빨리 덮으려 고액을 지급하는 일이 실무에서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를 악용하는 경우입니다. 법원은 상대가 연예인이라는 약점을 이용해 공동 폭행으로 추가 제보하겠다고 겁을 주며 거액을 받아내려 한 사안에서 공갈미수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경제력이 넉넉한 가해자에게는 피해자 측이 더 높은 금액을 요구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피해자의 경제력과 처벌 의지
피해자 쪽 사정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피해자는 돈보다 엄벌을 원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아무리 큰 금액을 제시해도 합의가 성사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한 판결은 피해자가 공탁금을 받을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며 엄벌을 탄원하자 그 공탁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돈보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먼저 원하는 피해자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액수만으로는 합의에 이르기 어렵
습니다.
범죄 유형별로 보는 합의금
교통사고나 상해 사건은 실제 치료비와 향후 치료비, 일하지 못해 생긴 손실,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간병이 필요할 때의 간병비를 기준으로 산정합니다. 법원도 피해자별 구체적 상황에 따른 개별 산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성범죄는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크고 회복이 어려워 금액이 높은 편이지만, 합의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법원은 피해자가 용서할 수 있는 금액이나 합의 과정에서의 관여 정도가 피해자마다 다를 수 있다며 개별성을 강조했습니다. 강간죄처럼 중대한 인격 침해를 다루는 사건에서는 금액을 정형화하거나 상한을 일률적으로 정하기 어렵다고도 밝혔습니다.
사기나 횡령, 절도 같은 재산범죄는 피해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갚는 것이 기본입니다. 피해액이 클수록 합의금도 커지고, 얼마나 회복됐는지가 형량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합의금은 형량에 어떻게 작용할까
합의가 이뤄지면 법원은 이를 유리한 정상으로 봅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형을 정할 때 참작됩니다.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하면 법원에 형사공탁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 공탁조차 못 하는 일이 많았는데, 2022년 12월 9일부터 시행된 공탁법 제5조의2 형사공탁 특례 덕분에 이제는 피해자 동의 없이 공소장상의 사건 정보만으로도 공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공탁이 늘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하고 엄벌을 탄원하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피해자와 일부 합의가 이뤄지고 공탁까지 한 경우 유리한 정상으로 인정된 사례도 있습니다. 특히 돈으로 회복되기 어려운 범죄에서 합의 없는 공탁을 어떻게 볼지는 법원도 신중하게 접근하는 지점입니다.
합의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
합의는 잘못 다루면 또 다른 범죄가 됩니다.
먼저 과도한 요구입니다. 처벌을 빌미로 지나친 금액을 요구하면 공갈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법원은 구체적 액수만 말하지 않았을 뿐 피해자 측이 억대 금액을 예상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제시한 사안에서 공갈죄를 인정했습니다.
금액을 부풀리는 것도 위험합니다. 실제로 준 합의금보다 많은 금액을 보험사에 청구하거나 부풀린 합의서를 꾸미면 사기죄가 됩니다. 500만 원을 주기로 해놓고 1,100만 원을 준 것처럼 합의서를 작성한 행위가 사기로 처벌된 예가 있습니다.
합의 권한이 없는 사람과의 합의도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아들을 대신해 합의할 권한이 있는 것처럼 행세해 합의금을 가로챈 행위가 사기로 처벌된 사례가 그렇습니다. 합의 후 분할 지급을 약속해놓고 이행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합의를 깨고 다시 처벌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적정합의금...
모두에게 적용되는 적정 합의금은 없으며, 범죄 종류와 피해 정도, 양측의 형편과 지위, 전과 여부를 함께 따져 개별적으로 정해집니다. 전과나 누범, 집행유예 기간 중 범행처럼 처벌 위험이 큰 상황일수록 합의의 절박함과 금액이 커집니다. 돈보다 처벌을 원하는 피해자에게는 액수가 답이 되지 않고, 합의가 거부되면 형사공탁이 대안이 되지만 늘 유리하게만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과도한 요구는 공갈, 금액 부풀리기는 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형사합의는 피해 회복과 처벌 수위를 함께 좌우하는 중요한 법적 행위입니다. 금액의 적정선은 사건의 모든 사정을 검토한 뒤에야 가늠할 수 있고, 합의서 작성 시에도 법적 효력과 이후 민사소송에 미칠 영향까지 살펴야 합니다. 합의를 앞두고 계신다면 섣불리 금액부터 정하기보다 전문가와 상의해 전략을 세우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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