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강하게 잡거나 위협한 것도 아닌데 강제추행이 되나요”라는 질문이 반복적으로 제기됩니다.
특히 회식 자리나 술자리에서 발생한 신체 접촉은 당사자 간 인식이 크게 엇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강제추행죄는 반드시 강한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만 성립하는 범죄가 아닙니다.
대법원은 이른바 ‘기습추행’의 경우,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 행사만으로도 충분히 처벌 가능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을 명확히 보여주는 판례가
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9도15994 판결입니다.
1. 먼저 사실관계부터 간단히 정리합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회사 대표였고, 피해자는 해당 회사 가맹점 직원이었습니다.
회식 후 노래방 자리에서 피고인은 피해자를 옆자리에 앉힌 뒤
갑자기 볼에 입을 맞추었고, 피해자가 “하지 마세요”라고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계속해서 말을 걸며
피해자의 허벅지를 손으로 쓰다듬는 행위를 하였습니다.
원심은 이 사건을 무죄로 판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강하게 항의하지 않았고,
현장 분위기상 폭행이라고 볼 정도의 유형력은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그리고 기습추행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다고 명확히 지적하였습니다.
2. 강제추행죄에서 ‘기습추행’이란 무엇인가
강제추행죄는 일반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으로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 이루어지는 추행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여기에 더해
폭행행위 자체가 곧 추행인 경우, 즉
이른바 ‘기습추행’도 강제추행죄에 포함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중요한 점은 다음입니다.
추행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유형력은 강도가 크지 않아도 된다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폭행까지 요구되지 않는다
단지 의사에 반하는 신체 접촉이 있으면 족하다
즉 강간죄와 달리
강제추행죄에서는 ‘항거 곤란’ 수준의 강한 폭행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실무 판단에서 큰 오류가 발생합니다.
3. ‘가볍게 만졌을 뿐’이라는 주장이 통하지 않는 이유
이 판결에서 대법원이 가장 명확히 한 부분은 바로 이것입니다.
“유형력의 강약은 문제되지 않는다”
즉 다음과 같은 행위들도 충분히 강제추행이 될 수 있습니다.
옷 위로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는 행위
어깨나 허벅지를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행위
얼굴을 들이밀거나 신체를 밀착하는 행위
이 사건에서도 피고인은 단순히 손으로 허벅지를 쓰다듬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허벅지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부위이고,
그 부위를 의사에 반하여 접촉한 이상 성적 자유 침해가 인정된다
따라서 행위의 강도가 아니라
행위의 성적 성격과 의사 반하는 접촉 여부가 핵심입니다.
4. 피해자가 바로 항의하지 않으면 무죄일까
실무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장 중 하나가
“피해자가 가만히 있었으니 동의한 것 아니냐”는 주장입니다.
원심도 바로 이 점을 근거로 무죄를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명확히 배척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의 대응 방식은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즉시 항의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동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특히 이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회사 대표였고 피해자는 직원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관계를 고려하여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강하게 대응하지 못한 사정을 충분히 인정하였습니다.
또한 피해자는
수치심과 당혹감 때문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였고,
이 진술의 신빙성도 인정되었습니다.
결국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명시적 동의가 없는 이상,
단순한 소극적 반응만으로는 동의를 인정할 수 없다
5. ‘추행’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대법원은 추행 여부를 판단할 때 다음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피해자의 의사
피해자의 성별과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
행위가 이루어진 경위
구체적인 신체 접촉 방식
당시의 장소와 분위기
사회 일반의 성적 도덕관념
즉 단순히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접촉이 일반인의 기준에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유발하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회식 자리, 상하관계, 갑작스러운 접촉, 반복된 신체 접촉이라는 요소들이 결합되어
강제추행으로 평가되었습니다.
6. 이 판결이 실무에 주는 의미
이 판결은 강제추행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강제추행은 반드시 강한 폭행이 있어야 하는 범죄가 아니다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신체 접촉도 충분히 처벌될 수 있다
피해자가 즉시 저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무죄가 되지 않는다
동의 여부는 명확하게 입증되어야 한다
특히 직장, 회식, 지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에서는
이 판례가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가볍게 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법원은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7. 정리
강제추행죄에서 기습추행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폭행의 강도는 중요하지 않다
의사에 반하는 신체 접촉이면 충분하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부위와 방식이면 추행이 인정된다
피해자의 소극적 반응은 동의로 해석되지 않는다
결국 핵심은 단 하나입니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접촉이 이루어졌는지 여부입니다.
이 기준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단순한 신체 접촉으로 생각했던 행위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