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면, 피해자가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피해자가 아니다?
법률가이드
성폭력/강제추행 등

가만히 있으면, 피해자가 아니다? 

한진화 변호사

이번 글에서는

피해자가 범죄 피해 당시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는 동결 반응(Freeze Response)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쉽게 말해서 피해자가 당시 상황에 너무 놀라 얼어버리는 상태인데요.

피해자가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피해 상황에서

공포스럽고 당황하여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가해자측에서 공격하는 논리는,

피해자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것은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피해자의 진술이 허위임을 주장합니다.

가해자의 공격 논리에 의하면,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하거나”,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거나”,

“사건 직후 바로 신고를 하거나”,

“가해자에게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

과 같은 모습, 즉 피해다움을 보여야 했다는 것인데요.

“피해자다움”에 대해 대법원 판례는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 가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경위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저항하지 않았거나 사건 직후 가해자와 연락을 유지하거나

신고가 지연되었다는 사정만으로 그 진술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아니된다”라며,

피해자다움을 인정하지 않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런데 실제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수사기관에서 피해자다움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따라서 사건 당시 피해자가 보인 반응에 대해,

수사기관에서 의구심을 갖고 자세히 물어보시는 편인데요.

왜 그렇게 반응하였는지에 대해 피해자가 설명을 해 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례를 몇 가지 설명드리겠습니다.

1. 첫째로,

즉각적인 저항이나 반항을 하지 못한 경우인데요.

극심한 공포나 충격으로 인해,

몸이 굳어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는 동결 반응은 성범죄 피해자에게 나타나는

매우 전형적인 모습 중 하나입니다.

이처럼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한 경우에 대해서도,

법원은 피해자가 명확한 판단이나 즉각적인 대응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예컨대, 가해자가 직장 상사이거나 의붓 아버지와 같은 관계인 경우

피해 장소가 폐쇄적이거나, 추가 위해를 당해도 도움을 구할 수 없는 상황

가해자의 위력이나 협박으로 극도의 심리적 공포심을 느낀 경우와 같은

특수한 상황들인데요.

당시 상황에서 반응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피해자의 심리적 상태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 주셔야 합니다.

판례 중에는 장애가 있는 피해자가 의료인으로부터 추행을 당한 사건에서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어서 너무 놀라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피해자의 반응에 대해 비상식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

함께 잠을 자던 중 강간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너무 놀라 손을 뺄 생각도 못했다“며

순순히 성관계에 응한 사건에서,

법원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느낀 당혹감과 무력감에 의해

즉각적인 대응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의붓 아버지에 의한 강제추행 사건에서는

갑작스러운 추행으로 인한 당혹감과 어머니가 받게 될 충격을 우려한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고려할 때,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시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2. 둘째로, 피해 발생 후 피해자가 가해자와 일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거나 대화를 나눈 경우입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 상황을 고려하는데요.

예컨대, 가해자와 상하관계이거나 친족 같은 특수한 경우를 중요하게 봅니다.

피해사실이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관계 유지에 대한 걱정 등을 이유로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전략적 행동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판례는 피해자가 상급 장교인 가해자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입고 전과 다름 없이 지낸 사안에서,

“조용히 군 생활을 계속하고 싶은 생각“에서,

가해자와 관계를 유지한 것이라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였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추행을 당한 학생 사건에서도,

사건 직후 피해자가 가해자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카카오톡 대화에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상황은

“일단 집에 빨리 가야된다는 생각 밖에 안 들어 평소처럼 행동했던 것 같다”

고 한 피해자의 진술에 대해 납득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3. 셋째로, 피해자가 사건 발생 후 즉시 신고하지 않고 시간이 지난 후 문제를 제기한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하는 단골 소재이지만,

법원은 신고를 주저하게 되는 여러 현실적 어려움을 넓게 인정하는 편입니다.

피해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부정적 여론이나 2차 피해에 대한 우려, 가해자와의 관계,

소속된 집단(예컨대, 회사, 군대, 학교 등) 내에서의 불이익에 대한 걱정

등으로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고소를 망설인 경우를 무조건 불리한 사유로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획일화된 ‘피해자다움’을 강요하지 않고,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피해자가 보인 반응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해자들께서는 사건 당시의 반응이

결코 이례적이거나 비합리적인 것이 아님을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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