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인식!
경찰조사를 앞둔 상황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이들 하는 실수가 걱정이나 두려움만 갖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억울한 사정만을 상기하면서 경찰이 공정하게 잘 처리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필자의 경험상 공무원이나 교사, 공공기관 종사자, 전문직, 처음 경찰조사를 받는 사람 등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관공서에 가는 이유는 주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경찰서에서도 각종 민원을 처리해 주고 있습니다만, 범죄혐의사실로 인해 경찰조사를 받으러 간다는 것은 이와는 전혀 의미를 달리합니다. 기본적으로 경찰조사라는 것은 수사기관인 경찰이 조사를 받은 사람에 대한 고소사실 등의 혐의사실을 밝혀내고 입증하는 절차입니다. 조사를 받는 사람은 혐의를 벗거나 선처를 구하려고 하는 입장에 있고, 경찰은 혐의를 적극적으로 확인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혹시 존재할 수 있는 추가 혐의까지 의심해야 하고 중한 처벌이 가능한 여러 가지 양형요소를 체크해야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조사를 받는 사람과 경찰은 대립적인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수사기관은 피의자(피고소인, 피신고인)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는 민원처리기관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말하면 된다?
경찰조사를 받고 나와서 만족스러운 경우가 드물고, 오히려 말을 잘 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일들이 빈번합니다. 인간은 생소한 환경에 두려움을 가집니다. 학교 다닐 때는 몰라도, 성인이 되어서 누군가가 장시간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집요하게 하는 상황은 매우 낯설고, 그 진술로 인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감은 매우 클 수밖에 없습니다. 생소하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수사기관의 짜놓은 질문의 틀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사건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3차원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것입니다만, 수사나 재판은 그것을 2차원적으로 구현하는 것입니다.
수사기관은 그 사건을 실제로 경험하지 못하였지만 조사의 필요에 따라 사건을 2차원적으로 추출하고 재단(裁斷)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결과물이 조서(調書)입니다. 특히 피의자를 신문하여 그 진술을 담은 피의자신문조서는 피의자의 진술을 소재로 한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앞서 수사기관은 피의자와 대립적 관계에 있음을 언급하였는데, 이러한 수사기관이 조사 과정을 주도하면서 절차를 이끌어갈 때 그 2차원적 맥락을 피의자가 빠르게 간파하고 적절히 대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피의자 역시 자신의 경험을 조사자의 요구대로 2차원적으로 구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수사 과정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고민스러운 상황이라면 이러한 과정이 더욱 힘들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Input이 항상 Output을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Output의 오작동은 항상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경찰조사는 프리토킹이 아니라 정해진 틀 속에서 맥락에 맞게 적절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험입니다.
개인차는 있어도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존 본능 때문에 새로운 것을 접할 때 함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긴장하고 경계합니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곧 평정심을 찾고 이내 적응을 하게 됩니다.
경찰조사는 형벌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사실이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야 성립하므로, 공연성이 있었는지,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였는지(허위 사실 적시가 더 중하게 처벌), 명예를 훼손한 것인지 등의 구성요건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조사과정에서는 이러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사실이 있었는지를 묻게 됩니다.
결국 자신의 행위가 어떤 구성요건에 해당할 수 있고, 특히 해당 구성요건 중 어떠한 점이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러한 혐의 인정에 대해 어떤 반박이 가능한지 등을 미리 연구해 두어야 합니다. 형벌구성요건이 행정법규라면 관련 분야의 스터디도 필요합니다. 물론 혐의사실을 모두 인정하는 입장이라면 어떠한 양형요소가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 미리 숙지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Output의 오작동은 많은 경우 Input의 빈약함 때문입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 경찰조사에서 진술할 부분들을 실제로 연습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 경우 법적 쟁점이 어떠한 사실관계와 연계되어 부각될 수 있을지를 잘 생각해 보면서 말로 되뇌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상질문과 답변을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서 적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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