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만난 사람과의 성관계가 성폭행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의사가 없었음에도 분위기에 휩쓸려 성관계를 하게 되고, 이후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형사 고소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준강간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성관계 당시 피해자의 의식 상태를 중심으로 판단됩니다.
피해자가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면 준강간죄가 적용되며,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면 강간죄가 성립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도 서로 호감을 표시하며 모텔에 가는 경우가 있고, 피의자가 피해자의 동의를 받았다고 오인하여 성관계에 이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경우이든 피해자가 전혀 기억을 못하면 준강간 피해를 주장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피해자가 술에 취했더라도 피의자가 보기에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면 심신상실 상태로 보기 어렵다는 판결이 있는 반면, 2021년 대법원 판결은 알코올 블랙아웃 상태처럼 보인다고 하여 심신상실 상태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알코올 블랙아웃과 준강간죄
알코올 블랙아웃이란 음주로 인해 기억 형성 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특정 시점 이후의 기억을 잃는 것이므로, 피해자가 당시 성관계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는 심신상실 상태로 인정되기에 부족합니다.
반면, 의식상실(passing out)은 술로 인해 깊은 수면 상태에 빠지는 현상으로, 이 경우에는 피해자가 명백히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가 단순히 블랙아웃 상태였는지, 아니면 의식상실 상태였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피의자와 모텔에 가 성관계를 했으며, 이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고소하는 일은 빈번합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피해자가 블랙아웃 상태였더라도 성관계 당시에는 의식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피해자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준강간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대법원 판례의 변화
2021년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기존 입장과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해당 사건에서 피해자는 술에 취해 모텔까지 가는 과정이나 이후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모텔에서 한숨 자고 싶다고 말했으며, 자발적으로 키스를 하는 등 동의의 의사를 표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급심에서는 피해자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비틀거리지는 않았으며,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하는 등 어느 정도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단순히 피해자가 블랙아웃 상태처럼 보인다고 하여 심신상실 상태가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결하였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음주량, 음주 속도, 주량, 평소 음주 후 기억장애 여부, 사건 당시 CCTV 영상 및 목격자의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피해자가 의식상실이 아닐지라도 비정상적인 상태였음이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경우, 블랙아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블랙아웃만으로는 준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기본 입장은 그대로입니다. 다만 이 판례는 블랙아웃과 패싱아웃 사이에 무수히 많은 단계가 존재하며 비록 패싱아웃(=심신상실)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항거불능 정도에 이르렀다면 준강간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술 취한 상태를 블랙아웃 아니면 심신상실로 일도양단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이에 항거불능도 있고 무수히 많은 단계가 있습니다. 위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비록 잘 걷고 말도 해서 단순한 블랙아웃으로 보였지만, 제정신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던 것입니다.
노래방에서 화장실에 가던 도중에 생전 처음 보는 남자를 만나서 한 겨울에 외투도 소지품도 모두 버리고 모텔을 따라갔습니다. 객실에 경찰이 들어왔음에도 벌거벗은 채로 옷을 입을 생각도 안 하고 있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법원은 피해자가 술에 만취해서 항거불능 상태라고 본 것입니다.
심신상실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보다 정밀하게 설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 판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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