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학교폭력 사건에서 ‘합의’는 단순히 사과 한마디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반성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며, 동시에 학교, 교육청, 법적 절차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실제 학부모나 학생이 ‘합의’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는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합의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학교폭력 사건에서의 합의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피해자와 가해자 양측이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1. 학교폭력에서의 합의란 무엇인가?
학교폭력에서 ‘합의’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에게 사과를 하거나, 양측 간에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 또는 금전적 배상이 수반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피해 회복이 일정 부분 이루어졌다고 평가되는 상황까지도 ‘합의’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사과나 배상이 아닌, 피해자가 실제로 회복될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과정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2. 합의의 타이밍과 방식은 사건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
학교폭력 사건이 신고되면, 학교와 교육청은 각자의 절차에 따라 사안을 조사하고 처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 간에 자율적으로 합의를 시도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학교 차원에서는 관계회복 프로그램이나 화해 권유 절차가 운영되기도 하며, 교육청 차원에서는 분쟁조정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다. 이와 별개로, 당사자 또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개별적으로 합의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합의의 시기와 소통 방식이다. 단순히 ‘얼마를 줄 테니 합의해달라’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피해자 측이 무엇을 원하는지 충분히 듣고, 가해자 측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중립적인 중재가 필요하다.
3. 학교와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합의 절차, 무조건 거부하지 마라
관계회복 프로그램이나 분쟁조정제도는 사건을 단순히 끝내는 수단이 아니라, 학생들이 일상으로 복귀하고 사회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과정이다.
피해자 측에서는 ‘가해자 얼굴도 보기 싫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을 거부하고, 가해자 측에서는 ‘이미 사과했는데 왜 또 만나야 하느냐’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단계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들어보고 합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사실 파악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초기부터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4. 교육청 분쟁조정제도, 활용해 볼 가치가 있다
학교 단계를 넘어선 후, 교육청에서는 심의위원회를 통해 분쟁조정을 시도할 수 있다.
이 제도는 피해자 또는 가해자 측의 요청으로 개시되며, 위자료나 치료비 등 금전적 손해배상에 대한 합의가 주된 논의 대상이 된다.
아직까지 활용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일반 민사소송보다 신속하고 절차가 간소화되어 있어 실무적으로는 매우 유용하다. 특히 학교폭력으로 인해 법적 분쟁까지 번질 가능성이 높은 사안이라면 이 조정 제도를 적극 활용해 보는 것이 좋다.
5. 사적인 접촉은 신중하게, 대리인을 통한 접근이 바람직하다
학교나 교육청의 공식 절차 외에 당사자 간 개별적으로 합의를 시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반드시 주의가 필요하다.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부모가 일방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2차 가해로 오해받을 수 있다.
실제 학교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가해 학생에게 피해자와 접촉하지 말 것을 지시하기도 한다.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법률대리인을 통한 합의다. 만약 변호인을 선임하기 어렵다면, 학교 선생님이나 제3자의 도움을 받아 중립적인 환경에서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6. 진정성 있는 사과와 실질적인 회복을 전제로 한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가해자 측에서는 사건이 장기화되면 부모가 지친 나머지 ‘100만 원 드릴 테니 합의해달라’는 식으로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피해자는 금전적인 문제 이전에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 있는 태도를 원한다.
합의가 단지 형식적인 절차로 끝나지 않도록, 가해자 측은 반드시 자녀에게 반성과 책임을 가르치고, 피해자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회복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7. 피해자 입장에서도 합의 조건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사과를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는 것은 전적으로 피해자의 권한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조건을 내세우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합의를 지연시키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의 회복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학폭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일상 회복이다. 합의는 이 회복을 돕기 위한 수단이며, 상대방을 통제하거나 보복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결론: 합의는 절차가 아니라 과정이다
학교폭력 사건에서의 합의는 단순히 사안을 마무리 짓는 도장이 아니다.
합의 과정 자체가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반성이라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그 과정 속에서 학생과 보호자 모두가 한 걸음 더 성숙해질 수 있다. 학교폭력 사건에서 ‘합의’에 대해 고민 중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신중하게 접근하길 권한다.
허소현 / 학교폭력 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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