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죄 하면 으슥한 곳으로 사람을 끌고 가서 난폭하게 때리고 짓밟는 장면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의 강간죄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지금은 연인 사이, 헤어진 사이, 썸타는 사이, 원나잇으로 만난 사이, 알던 사이에서 많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부부나 연인이라면 원래부터 성관계를 해왔는데, 굳이 폭행·협박을 사용하여 강간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폭행·협박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최근 판례는 폭행·협박에 대해서 최대한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실제로 물리력을 행사해야 했지만, 지금은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강압적 행위가 있었다면 폭행·협박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강간죄의 증거
강간죄가 발생하는 장소는 CCTV나 목격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직접증거가 아니라도 당시의 정황을 추정하게 해주는 카톡 대화, 통화내용, 범행 장소 이외 장소에서 두 사람의 행동, 사건 이후 정황 등 간접증거가 모두 유무죄 판단의 기초가 됩니다. 예를 들어 모텔 객실에서 벌어진 일은 알 수 없지만 체크아웃 당시의 CCTV를 보니 두 사람이 연인처럼 친밀해 보였다면 강간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물증이 없다면 당사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유무죄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자, 피의자의 진술은 직접증거가 되지만 두 사람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서로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 있으므로 진술증거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진술에 신빙성이 있어야 증명력을 갖게 됩니다.
제일 처음 고소인이 성범죄 주장을 하면 수사 재판 기관은 “그 같은 주장을 달리 꾸며서 할 이유가 없다” 면서 주장의 신빙성을 인정합니다. 따라서 고소인 진술이 진실로 추정되는 것이고 이를 반박하는 피의자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야 합니다.
진술의 신빙성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구체성, 일관성, 논리성, 합리성, 객관적으로 밝혀진 사실인데 진술의 논리성이나 합리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법관의 경험칙’입니다. 법관의 경험칙이란 법관이 직업상 보아왔던 동종 사건을 다루면서 갖게 된 확고한 관념으로 자연과학 법칙에 준할 정도로 고도의 개연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2018년 무렵부터 등장한 성인지 감수성은 법관의 경험칙에 제한을 가한 것으로 법관이 보기에 피해자의 진술에 다소 모순점이 있거나 불합리한 점이 있어도 성범죄 피해자로서 처한 특수한 현실 때문에 그럴 수 있으니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의 진술이 모순되고 앞뒤가 안 맞으면 진술의 신빙성이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성인지 감수성에 의하면 “성범죄 피해자가 처한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서 횡설수설할 수도 있으므로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지 말라”고 합니다.
범행 후 정황이 담긴 CCTV를 보니 강간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하지 않고 도리어 화장을 고치고 뒤쫓아 갔다는 것은 법관의 경험칙으로 비추어볼 때 매우 이례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성인지 감수성에 의하면 “피해자가 처한 특수한 상황 때문”이거나, 강간죄 피해자가 “가해자를 두려워하고 피해야 한다는 것은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즉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만으로 범죄자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인지 감수성에 의하면 일관성이 떨어지고 모순된 진술로도 죄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 대로라면 강간죄의 결론은 피하기 어려우므로 피의자에게 대단히 불리한 출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범죄의 수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찰에서의 진술 단계입니다.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진술로 유무죄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고소인 진술에서 논리적으로 모순되고 경험칙에 반하는 부분을 찾아서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고, 피의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되어야 혐의를 벗을 수 있는데, 혼자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므로 성범죄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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