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채무자가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빚이 늘어나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빠지는 경우 마지막 탈출구로 파산을 고려하는 경우가 있다.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게 되면 채무자는 면책을 신청할 수 있고 면책 허가 결정이 나면 파산 선고 이전의 채무는 모두 탕감 받게 된다.
2.
파산 절차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이라는 법률에 그 근거가 있는데

일반인 기준에서 언뜻 보면 빚을 잔뜩 진 사람을 아무런 대가 없이 구제해주는 아주 나쁜 제도라고 생각될 수 있겠다. 그러나 파산 및 면책 제도는 너무나도 어려운 상황에 빠진 사람에 대해 이쯤에서 리셋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라는 좋은 취지로 있는 절차이니 뭐 꼭 너무 나쁘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3.
파산 선고 이후에는 면책 신청을 통해 기존의 채무를 탕감받게 되는 절차가 있는데

이 때 모든 채무를 면책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채무자회생법 제566조에 따르면 조세, 벌금, 채무자의 고의 중과실 불법행위 등에 대하여는 아무리 파산선고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면책시켜주지 않고 있다.
뭔가 나쁜 짓으로 인해 생긴 채무는 탕감시켜주지 않겠다는 의지라고나 할까.

4.
이번에 살펴볼 판례는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제4호의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가 문제된 사건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채무자가 중앙선을 침범한 교통사고를 내어 피해차량에 타고 있던 1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2명을 중상에 이르게 한 바 이로 인한 손해배상 채무를 지고 있었다. 이후 채무자는 파산 선고를 받은 뒤 위 교통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채무를 포함하여 면책결정을 받았는데 결국 위 손해배상 채무가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제4호(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에 따른 비면책 채무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었던 사건이다.
2023다308270 양수금 (자) 파기환송
[중앙선을 침범한 교통사고로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이 면책결정에 따라 면책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비면책채권의 하나로 규정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제4호에서 정한 ‘중대한 과실’의 의미와 판단기준◇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비면책채권의 하나로 규정한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제4호에서 ‘중대한 과실’이란 채무자가 어떠한 행위를 함에 있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생명 또는 신체 침해의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쉽게 예견할 수 있음에도 그러한 행위를 만연히 계속하거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어떠한 행위를 하였더라면 생명 또는 신체 침해의 결과를 쉽게 회피할 수 있음에도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는 등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에 현저히 위반하는 것을 말한다(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9다91330 판결, 대법원 2010. 5. 13. 선고 2010다3353 판결 참조). 이때 채무자에게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제4호에서 규정한 ‘중대한 과실’이 있는지 여부는 주의의무 위반으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사고가 발생한 경위, 주의의무 위반의 원인 및 내용 등과 같이 주의의무 위반 당시의 구체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24. 5. 17. 선고 2023다308270 판결).
☞ 대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를 설시하면서, 피고가 약간의 주의만으로도 쉽게 피해자들의 생명 또는 신체 침해의 결과를 회피할 수 있는 경우임에도 주의의무에 현저히 위반하여 이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아, 이와 달리 이 사건 채권이 면책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함
5.
위 대법원 판결에서는 1)피고가 다른 차량과의 충돌을 피하려다가 중앙선을 침범하게 된 점, 2) 사고 당시 제한속도를 현저히 초과하여 주행하지 않은 점, 3)그 밖에 다른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가 약간의 주의만으로도 쉽게 피해자들의 생명 또는 신체 침해의 결과를 회피할 수 있는 경우임에도 주의의무에 현저히 위반하여 이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다.
결국 채무자회생법 제556조 제4호의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배상' 에 해당하려면 '중대한 과실' 요건이 채워져야 하는데 제한속도를 조금 초과해서 주행하면서 다른 차량과 충돌을 피하려다가 중앙선을 침범한 사실만으로는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해당 손해배상 채무는 채무자회생법에 따라 면책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판결을 볼 때마다 대법관 할아버지들이 나름대로 관대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채무자에게 파산 선고 후 새로운 삶을 더 잘 살아보라는 취지인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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