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무의식적으로 성범죄 피해자에 대하여 피해자스러움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상황에 따라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이러한 생각의 연장으로 보입니다. 언론에서 비치는 성범죄 사건의 진행과정을 보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쉽게 유죄판결이 선고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사-재판 단계에서 진술의 신빙성에 대하여 치열한 다툼이 있습니다. 물론 피해자의 연령, 성관계 유무, 장애 여부 등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집니다.
성범죄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전 남자친구여서, 술집에서 일하다가 만난 손님이어서, 직장 상사여서라는 이유로 혼자 고통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동성간 성폭력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는 남성 피해자들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성범죄는 범죄 성질상 피해자 진술 외 범죄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피해자의 진술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는 당시 충격 때문에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시간상 모순된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소간 모순되거나 불분명한 진술이 있다고 하여 그 신빙성을 바로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피해자는 경찰단계에서 첫 진술을 하고, 재판에서 증인으로 진술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수사단계에서 대질조사를 할 수 있습니다. 범죄 상황에 대한 진술이 큰 틀에서 모순되지 않으면 사소한 내용이 불분명하더라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합니다.
성범죄를 당했다면 바로 신고를 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고 하여 고소가 불가능한 것도, 가해자가 처벌을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전 남자친구, 직장 상사로부터 성범죄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소를 하지 않는 경우 반복적인 피해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가해자가 가족 중에 법조인이 있고, 누구와 친하다는 말로 피해자를 억압하여 반복적으로 성범죄를 가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범죄자의 지위가 어떻든 처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하여 진술하는 것은 경찰조사 때 진술하는 것과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경찰조사시에는 범죄피해자로 최대한 도움을 받으며 조사가 진행됩니다. 그러나 재판단계에서는 범죄사실을 부인하는 피고인의 방어권도 보장해야 하므로 피해자가 느끼는 압박감이 상당합니다. 더욱이 피고인의 변호인이 피해자에게 반대신문을 하므로 분노, 억울함, 수치심 등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준비해서 차분히 진술을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너무 흥분하여 당시의 사정을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거나 수사기관에서 했던 진술을 스스로 번복하여 사건을 미궁속에 빠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법정에서 있는 그대로 사실만 말하면 된다고 조언하지만 일반인이 법정에 출석하여 1-2시간 정도 차분하게 진술을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성범죄 피해자가 범죄 당시 상황을 진술하는 것은 배로 어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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