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에게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을 빼돌리는 일은 아주 흔히 일어납니다. 그래서 채권자 입장에서는 채무자가 빚을 갚을 재산이 있는지가 아주 중요한 관심거리가 되죠.
만약 어떤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을 빼돌려 채권자에게 돌아가야 할 재산이 줄어들었을 때, 채권자는 이 재산을 빼돌린 행위를 취소하여 원상회복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을 빼돌리는 행위를 '사해행위'라고 하고, 사해행위가 있을 때 이를 취소하는 것을 채권자취소 또는 사해행위취소라고 합니다. 민법 제406조에서 채권자취소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해행위와 채권자취소는 상속절차에서도 단골로 등장합니다. 특히 상속인이 될 사람이 재산보다 빚이 많은 상태에서 상속을 받는다면 채권자에게 분명히 이득이 되겠죠. 그런데 이때 상속인인 채권자가 상속을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행위가 사해행위가 될 수 있을까요?
우선 '상속포기'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상속포기는 피상속인의 사망시점으로 소급하여 상속인의 지위에서 이탈하는 것으로 법원에 신고를 하여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상속포기각서'와는 그 의미가 다르죠.
상속포기각서를 썼다는 말은 상속재산분할과정에서 본인은 재산을 받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상속포기가 아니라 상속재산분할협의의 한 내용에 불과한 것이죠.
그렇다면 재산보다 채무가 많은 상속인이 상속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하면 이것이 채권자와의 관계에서 상속포기가 될 수 있을까요?
답은 '아니오'입니다. 아래 대법원 판례를 보시죠.
(대법원 2011. 6. 9. 선고 2011다29307 판결)
따라서 채무가 많은 상속인이 상속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속포기 신고를 해버리면 그 행위는 사해행위취소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채무가 많은 상속인이 법원에 상속포기를 하지 않고 상속을 받지 않겠다는 상속포기각서를 썼을 때에는 어떻게 될까요. 이때에는 사해행위취소소송의 대상이 됩니다.
(대법원 2001. 2. 9. 선고 2000다51797 판결)
그래서 채무가 많은 상속인들 중에 상속포기를 해야하는 줄 모르고 상속포기각서만 쓰는 바람에 나중에 채권자들이 다른 상속인들을 상대로 채권자취소소송을 걸어오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물론 상속받은 재산으로 기존의 채무를 변제하려는 상속인도 있겠지만, 상속재산이 채권자들에게 변제되는 것을 원치 않는 상속인이라면 상속포기각서가 아니라 반드시 법원에 상속포기신고를 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설령 채무초과 상태의 상속인이 상속포기가 아닌 상속포기각서를 썼다고 하더라도 사해행위취소소송이 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민법 제1008조에서는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의 증여 또는 유증을 받은 자가 있는 경우에 그 수증재산이 자기의 상속분에 달하지 못한 때에는 그 부족한 부분의 한도에서 상속분이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상속인의 법정상속분이 3억 원인데, 피상속인으로부터 4억 원을 증여받은 적이 있었다면 이 사람의 상속재산의 분배비율은 '0'입니다. 이미 자신이 받아갈 재산을 받아갔기 때문이죠. 위 제1008조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상속재산의 분배비율을 정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만약 채무초과인 상속인이 이미 예전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충분한 재산을 증여받은 적이 있어 어차피 남은 재산에서 더 이상 받아갈 재산이 없을 경우(이러한 경우를 구체적 상속분이 0원인 상황이라고 합니다)에는 설령 상속포기각서를 썼다고 하더라도 채권자를 해하는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차피 법률적으로 상속재산에서 받아올 재산이 없었으니까요.
(대법원 2014. 7. 10. 선고 2012다26633 판결)
따라서 상속포기각서를 쓴 상속인의 채권자들이 다른 상속인을 상대로 사해행위취소소송을 했을 때 소송의 피고들이 대응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바로 채무자의 구체적 상속분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다음 경우는 채권자들의 사정으로 채권자취소소송이 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 사해행위취소소송은 법률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 이내에 하여야만 하죠. 만약 채무초과 상태의 상속인의 채권자들이 이 기간 동안 소송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더 이상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대법원 2021. 6. 10. 선고 2020다265808 판결)
지금까지 상속포기, 상속포기각서 및 상속재산분할협의와 사해행위취소 또는 채권자취소소송과의 관계를 알아보았습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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