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를 마쳤는데도 원청이 "건축주에게서 아직 못 받았다", "자금 사정이 어렵다"며 하도급 대금을 미루고, 그사이 인건비와 자재 대금 독촉은 하청업체에게만 쏟아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럴 때 많은 분들이 "돈은 결국 건축주에게서 나온 것인데, 건축주에게 직접 달라고 할 수는 없을까" 하고 묻습니다. 계약서상 건축주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여 포기하기 쉽지만, 법에는 일정한 요건에서 건축주가 하청업체에 대금을 직접 지급하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계약 사슬 밖의 건축주에게 대금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하도급 공사는 건축주(발주자)와 원청(수급인), 원청과 하청(하수급인)이라는 두 개의 계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하청업체의 계약 상대방은 어디까지나 원청이므로, 원칙적으로 하청업체는 원청에게만 대금을 청구할 수 있고 건축주와는 직접적인 채권·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원청이 안 주니 건축주가 대신 내라"는 요구는 그 자체로는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다만 하도급법과 건설산업기본법은 하청업체 보호를 위해 이 원칙에 예외를 두고 있고, 그 예외에 해당하면 건축주는 하청업체가 시공한 부분에 상당하는 대금을 하청업체에게 직접 지급해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 계약상 직접 청구권이 없더라도 원청이 건축주에게 갖는 공사대금 채권을 묶어 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직접지급 사유에 해당하는가. 둘째, 건축주가 아직 원청에게 줄 돈이 남아 있는가. 셋째, 해당 사유를 건축주에게 적법하게 알렸는가. 이 세 가지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금액과 속도가 달라집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직접지급 사유 네 가지와 건축주 잔여 공사대금이라는 한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제14조 제1항은 다음 중 하나에 해당하면 발주자가 수급사업자(하청)가 시공한 부분에 상당하는 하도급대금을 하청에게 직접 지급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원청의 지급정지·파산 등 — 원청이 지급정지·파산,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사유가 있거나 허가·등록 등이 취소되어 하도급대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 경우로서 하청이 직접 지급을 요청한 때
3자 합의 — 발주자가 하도급대금을 직접 지급하기로 발주자·원청·하청 사이에 합의한 때
2회분 이상 미지급 — 원청이 하도급법 제13조 제1항 또는 제3항에 따라 지급해야 하는 하도급대금 2회분 이상을 지급하지 않은 경우로서 하청이 직접 지급을 요청한 때
지급보증 의무 불이행 — 원청이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의무(제13조의2)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로서 하청이 직접 지급을 요청한 때
건설공사라면 건설산업기본법 제35조 제2항도 비슷한 사유를 정하고 있습니다. 발주자와 수급인 간 또는 3자 간에 직접 지급을 명백하게 합의한 경우, 하청이 시공한 부분에 대한 하도급대금 지급을 명하는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 수급인이 준공금·기성금을 받은 날부터 15일 이내 지급해야 할 하도급대금을 2회 이상 지체한 경우로서 하청이 직접 지급을 요청한 경우, 수급인이 지급정지·파산 등이나 건설업 등록 취소로 대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 경우 등입니다. 같은 조 제1항에는 발주자가 직접 지급'할 수 있는' 경우도 있는데, 공공기관 발주공사에서 1회 이상 지체한 경우나 수급인의 파산 등 명백한 사유를 발주자가 인정한 경우가 그 예입니다. 이 경우는 발주자의 재량이므로 청구권이 곧바로 생긴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요청의 효력 시점도 중요합니다. 하도급법 시행령 제9조 제1항은 하청의 직접지급 요청은 그 의사표시가 발주자에게 도달한 때부터 효력이 생기고, 도달 사실은 하청이 증명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구두나 전화로 말해 두었다는 주장만으로는 다툼이 생기므로 내용증명 같은 방식이 사실상 필수입니다.
가장 현실적인 한계는 금액입니다. 시행령 제9조 제3항에 따라 발주자는 원청에 대한 대금지급의무의 범위에서만 직접 지급 의무를 집니다. 하도급법 제14조 제4항도 발주자가 원청에게 이미 지급한 하도급금액은 빼고 지급한다고 정합니다. 건축주가 공사대금을 원청에게 이미 다 지급했다면 직접지급 청구는 사실상 막힙니다. 반대로 준공 전이거나 잔금·유보금이 남아 있다면 그 범위 안에서는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지급 사유가 발생하면 하도급법 제14조 제2항에 따라 건축주의 원청에 대한 채무와 원청의 하청에 대한 채무가 그 범위에서 함께 소멸하므로, 건축주는 이중으로 지급할 위험이 없습니다. 이 점이 건축주를 설득할 때 핵심 논거가 됩니다.
원청이 방어 수단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도급법 제14조 제3항은 원청이 하청의 임금·자재대금 지급 지체 사실(원청 귀책 사유로 지체된 경우는 제외)을 입증하는 서류를 붙여 직접 지급 중지를 요청하면 발주자는 직접 지급하지 않아야 한다고 정합니다. 하청이 인부 임금이나 자재 대금을 체납한 상태라면 이 항변이 들어올 수 있으므로 미리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한편 직접지급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도 길이 막힌 것은 아닙니다. 하청은 원청에 대한 하도급대금 채권을 근거로 원청이 건축주에게 갖는 공사대금 채권에 대해 가압류·압류 및 추심명령 또는 전부명령(민사집행법 제229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3채무자인 건축주가 이를 송달받으면 원청에게 임의로 지급할 수 없게 되고, 금전채권 압류가 경합하는 등의 사유가 있으면 민사집행법 제248조에 따라 공탁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또 원청이 무자력이어서 대금을 받아 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면 민법 제404조의 채권자대위권 행사를 검토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건축주는 원청에게 줄 수 있는 모든 항변(하자, 지체상금, 이미 지급한 금액 등)으로 맞설 수 있어서 어디까지나 원청의 채권 범위 안에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건축주가 아니라 공사 목적물 자체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청이 공사 현장을 점유하고 있고 하도급대금 채권이 그 목적물에 관해 생긴 것이라면 민법 제320조의 유치권 주장이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점유를 계속하고 있어야 하고, 원청과의 계약에서 유치권 포기 특약이 있는지 등을 따져야 하며, 건축물의 소유권 귀속과 점유 형태에 따라 결론이 갈립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자료 정리부터 직접지급 요청, 채권 보전, 소송까지
실제로는 다음 순서로 대응합니다.
하도급 관계와 시공 범위 자료 정리 — 하도급계약서, 견적서, 공사 내역, 기성 청구서, 세금계산서, 작업일보, 현장 사진, 원청과 주고받은 문자·카카오톡을 모읍니다. 하청이 어디까지 시공했는지가 곧 건축주에게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의 상한이 되기 때문입니다.
건축주의 원청 대금 지급 현황 파악 — 도급계약서, 기성·준공 정산 내역, 잔금 지급 시기를 확인합니다. 건축주에게 남은 대금이 없다면 직접지급 대신 원청 재산에 대한 보전조치와 소송에 무게를 둬야 합니다.
직접지급 사유 확인 후 내용증명 발송 — 2회분 이상 미지급이나 원청의 파산·지급정지 등 사유를 특정하고, 시공한 부분에 상당하는 금액과 입금 계좌를 적어 건축주에게 내용증명으로 보냅니다. 도달 사실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므로 배달증명을 함께 남깁니다.
채권 보전 — 건축주가 아직 원청에게 지급하지 않은 대금이 있다면 지급되기 전에 원청의 공사대금 채권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합니다. 본안 판결을 받은 뒤에는 압류 및 추심명령·전부명령으로 넘어갑니다. 가압류는 법원이 담보 제공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 부담도 미리 감안합니다.
하도급대금 청구 소송 — 직접지급 사유가 충족되었는데도 건축주가 응하지 않으면 건축주를 상대로 직접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동시에 원청을 상대로 하도급대금 청구 소송을 진행합니다. 원청에 대한 확정판결을 받으면 건설산업기본법 제35조 제2항의 직접지급 사유 중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지연이자 청구 — 하도급법 제13조 제8항에 따라 목적물 수령일부터 60일이 지난 뒤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하는 이율의 이자(연 40% 이내)를 원청에게 청구할 수 있으므로, 원금과 함께 청구합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건축주 손에 남은 잔금이 사라지기 전에 움직여야 합니다
하청이 건축주에게 대금을 받을 수 있는 한도는 결국 건축주가 원청에게 아직 주지 않은 돈입니다. 기다리는 사이 건축주가 잔금을 원청에게 모두 지급해 버리면 직접지급 청구도, 원청 채권에 대한 보전조치도 실익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도급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직접지급 사유에 해당하는지와 건축주에게 남은 대금이 있는지부터 점검하시고, 내용증명과 채권 보전 절차를 서둘러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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