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교통사고나 폭행, 추락 사고로 피해자가 의식을 잃은 채 중환자실에 머무는 사이, 가해자 측이 가족에게 먼저 연락해 합의를 요청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제가 상담한 가족분들은 “가족인 내가 대신 합의서에 도장을 찍으면 되는 것 아니냐”, “처벌불원서만 써 주면 사건이 끝난다고 하더라”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반대로 가해자 쪽은 “가족이 합의해 줬으니 이제 괜찮다”고 안심했다가, 재판에서 공소기각이 아니라 유죄 판결을 받고 당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합의금은 이미 오갔는데 효력은 기대와 전혀 다르게 나오는 것입니다.
최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성년후견인조차 의사능력을 잃은 피해자를 대신해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 합의의 효력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다만 합의가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어서, 어떤 합의가 어디에 효력이 있는지를 구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아래에서는 피해자가 의식불명일 때 가족이 할 수 있는 합의와 할 수 없는 합의가 무엇인지, 형사·민사 각각 어떤 효과가 있는지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가족이 써 준 처벌불원서로는 형사 처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처벌불원 의사는 피해자 본인만 표시할 수 있는 일신전속적 의사입니다.
가해자가 합의를 서두르는 이유는 사건이 반의사불벌죄이면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로 공소기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폭행죄(형법 제260조 제3항), 과실치상죄(형법 제266조 제2항), 그리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의 업무상과실치상·중과실치상죄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검사는 기소할 수 없고, 이미 기소됐더라도 법원은 공소를 기각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32조에 따라 이 의사표시는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만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의사표시를 누가 할 수 있느냐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합의금을 받고 처벌불원서를 낸 사안에서, 이를 효력 있는 처벌불원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형법·형사소송법·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어디에도 처벌불원 의사를 대리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고, 처벌불원은 피해자 본인의 진실한 의사여야 한다는 이유입니다.
반의사불벌죄에서 성년후견인은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의사무능력 상태의 피해자를 대리하여 처벌불원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희망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없고, 통상적인 소송행위가 법정대리권에 포함되거나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대법원 2023. 7. 17. 선고 2021도11126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
이 판결에는 가정법원 허가를 받은 성년후견인은 처벌불원을 표시할 수 있다고 보는 반대의견이 5인 있었을 만큼 쟁점이 컸지만, 현재 실무는 다수의견을 따릅니다. 의식불명 피해자의 가족이나 후견인이 서명한 처벌불원서는 공소기각 사유가 되지 못합니다.
가족이 처벌불원서를 써 주더라도 피해자가 의사를 표시할 수 없는 동안에는 반의사불벌죄의 소추 조건이 풀리지 않습니다.
2. 성년 피해자의 가족이라도 당연히 법정대리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관계가 아니라 가정법원의 성년후견 결정이 대리권의 근거입니다.
많은 가족이 부모나 배우자는 당연히 대신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미성년자이면 친권자가 법정대리인이지만, 피해자가 성년이면 의식불명이라는 사정만으로 부모·배우자·자녀가 법정대리인이 되지 않습니다.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2도568 판결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성년 피해자의 아버지가 처벌불원 의사를 밝힌 사안에서, 그 표시는 소송법상 효력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가족이 피해자를 대신해 법적으로 움직이려면, 먼저 민법 제9조에 따라 가정법원에서 성년후견개시 심판을 받아 후견인으로 선임되어야 합니다. 후견인은 민법 제938조에 따라 피후견인의 재산 관련 법률행위를 대리할 법정대리권을 갖고, 가정법원이 정한 범위에서 신상에 관한 결정도 할 수 있습니다. 심판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급박한 치료비 지급이나 보험금 청구가 필요하면 가사소송법 제62조의 사전처분으로 임시 후견인을 선임받는 방법도 검토합니다.
다만 앞서 본 전원합의체 판결 때문에, 후견인으로 선임됐다고 해서 형사 처벌불원까지 대신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후견인의 대리권은 치료비·보험금 수령, 민사 합의 같은 재산 관리의 영역이고, 반의사불벌죄의 소추 조건을 풀어 주는 영역은 아닙니다. 가족은 이 두 영역을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가족이 합의서에 서명할 자격이 있는지와, 그 서명이 형사 절차에서 효력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3. 형사 합의는 공소기각이 아니라 양형 참작 사유로 작용합니다
소추 조건을 풀지 못하는 합의도 형량을 정할 때에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다고 가족과의 합의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형법 제51조가 정한 양형 조건, 즉 범행 후의 정황과 피해 회복 노력 등을 따져 형을 정합니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 역시 성년후견인과의 합의는 소추 조건이 아니라 양형 인자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보았고, 형사공탁 제도와 양형기준이 그 장치로 거론됩니다. 실제로 가족이 합의를 해 주고 선처를 탄원하면 집행유예나 벌금형 판단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짚을 점은 사건의 죄명입니다. 상해죄(형법 제257조)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므로 합의와 무관하게 기소가 가능합니다. 교통사고라도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면 보험 가입이나 합의와 무관하게 공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에게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했거나 불구 또는 불치·난치의 질병이 생긴 경우에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지만, 12대 중과실 등의 사유가 없다면 여전히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해서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의식불명이 장기화된 사안은 이 경우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아, 피해자 본인의 처벌불원 의사가 확인되지 않으면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도 기소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피해자가 의식을 회복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본인이 직접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면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는 효력이 있으므로, 가족 합의와 별도로 본인의 의사 확인을 받아 두는 것이 가해자에게 실질적으로 중요합니다. 다만 한번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하면 철회할 수 없다는 점은 피해자 쪽도 알아 두어야 합니다.
가족 합의는 공소를 막지는 못하지만, 판결의 무게를 줄이는 자료로는 충분히 쓰입니다.
4. 민사 합의는 대리권 문제와 부제소 문구가 가장 위험합니다
피해자 본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가족이 마음대로 정리할 수 없는 본인의 권리입니다.
치료비, 일실수입, 향후 개호비, 위자료 같은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 후견인 선임 전에 가족이 “일체의 민형사상 청구를 포기한다”는 합의서를 쓰더라도, 대리권이 없는 사람이 한 행위이므로 민법 제130조에 따라 본인이 추인하지 않으면 피해자에게 효력이 없습니다. 반대로 가해자 입장에서는 합의금을 지급하고도 나중에 같은 청구를 다시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합의서의 부제소 문구도 신중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합의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후유장해나 후발 손해에까지 부제소 합의의 효력이 미치지는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하고, 이 경우 전체 손해를 다시 산정하되 합의 당시 예견했던 부분은 공제하는 방식으로 정리합니다(대법원 1999. 6. 22. 선고 99다7046 판결 참조). 의식불명 환자는 회복 정도와 후유증이 확정되기 전이므로, 이 시점의 포괄 합의는 어느 쪽에도 불안정합니다.
가족 본인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는 가족이 직접 합의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합의서에는 어떤 자격으로 서명했는지, 가족 고유의 위자료만 정리한 것인지, 피해자 본인의 청구권까지 포함하는지를 구분해 적어야 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민사 합의는 누가, 어떤 권리를, 어디까지 정리했는지가 문서에 드러나야 효력이 분명해집니다.
5. 사고 직후부터 재판까지, 절차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합의 서명 전에 상해 정도와 서명 자격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사건은 통상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 사고라면 수원남부·수원중부경찰서 등) 사건 접수 및 현장·CCTV·블랙박스 확보 → ②피해자 진술이 불가능한 경우 가족·목격자·의무기록에 의존한 조사 → ③공소청(수원 관내 사건은 수원지방공소청) 송치 및 처분 → ④기소 시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피해자가 진술하지 못하는 만큼 의무기록과 진단서가 상해 정도, 곧 중상해 여부를 가르는 핵심 증거가 됩니다.
가족이든 가해자 측이든, 합의서를 쓰기 전에 아래 순서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진단서와 의무기록으로 현재 상해 정도와 의식 상태, 예상 경과를 확인해 사건이 반의사불벌죄인지, 교통사고라면 12대 중과실이나 중상해에 해당하는지부터 가립니다.
가족이 서명할 자격이 있는지 점검하고, 재산 처분이 필요하면 성년후견개시 심판과 임시 후견인 선임 필요성을 검토합니다.
합의서의 서명 주체, 정리하는 권리 범위, 부제소 문구, 후유증에 대한 유보 조항을 점검한 뒤 서명합니다.
이렇게 자료를 정리한 뒤 합의에 나서야 형사 양형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합의와, 민사에서 뒤집히지 않는 합의를 함께 만들 수 있습니다.
마치며
가족이 의식불명 상태일 때는 병원비와 간병 걱정이 앞서기 때문에, 가해자의 합의 제안을 판단할 여유가 없어 서명부터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자 가족 입장에서는 합의금을 받는 것이 곧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어떤 자격으로 서명하는지, 피해자 본인의 청구권을 포기하는 문구가 들어 있지 않은지에 따라 이후 치료비와 개호비 청구가 막힐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해자 입장에서도 가족의 처벌불원서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할 수 없습니다. 반의사불벌죄 여부, 교통사고라면 12대 중과실이나 중상해 해당 여부, 합의의 상대방과 범위에 따라 기대한 공소기각이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피해자 측과 가해자 측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합의서 한 장의 문구와 서명 주체가 결론을 가르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합의서에 서명하기 전이 결론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지점입니다. 상황이 복잡하다면,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피해자가 의식불명인데 배우자인 제가 합의서에 서명하면 효력이 있나요?
A. 형사에서는 처벌불원 효력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민사에서도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본인의 청구권을 처분할 대리권이 생기지 않아,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되는 등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
Q.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되면 처벌불원서를 낼 수 있나요?
A.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성년후견인도 의사무능력 피해자를 대신해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후견인과의 합의는 양형 자료로 고려됩니다.
Q. 교통사고인데 가족과 합의하면 공소기각이 되나요?
A. 어렵습니다. 가족의 처벌불원은 효력이 없고, 12대 중과실이면 합의와 무관하게 기소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 상해가 중상해에 해당하면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도 기소될 수 있습니다.
Q. 합의 후 피해자가 의식을 회복하면 어떻게 되나요?
A. 피해자 본인이 직접 처벌불원 의사를 밝힐 수 있고, 제1심 판결 선고 전이라면 반의사불벌죄에서 효력이 있습니다. 반대로 본인이 합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가족의 대리 합의는 추인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Q. 합의서에 “이후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쓰면 모든 청구가 끝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서명자에게 대리권이 없으면 본인에게 효력이 없고, 합의 당시 예상하지 못한 후유장해에는 부제소 합의가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법리입니다.
Q. 가해자 측은 합의 전에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나요?
A. 사건이 반의사불벌죄인지, 교통사고라면 12대 중과실이나 중상해에 해당하는지, 합의 상대방에게 어떤 자격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이 확인 없이 합의금부터 지급하면 돈은 나가고 효과는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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