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거래처와 물품계약을 했는데 상대방이 물건을 받지 않거나 대금을 주지 않아, 손해를 전부 물어내라는 소송과 함께 "왜 손해를 줄이려는 노력은 안 했느냐"는 반박을 동시에 받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수출입 계약에는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유엔협약(CISG)이 별도 합의 없이도 적용되는 경우가 많고, 이 협약은 계약을 어긴 상대방이 아니라 피해를 입은 쪽에게도 손해를 줄일 의무를 지웁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의무가 손해액의 몇 퍼센트를 깎는 식의 정액 공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CISG 제77조의 손해경감의무가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 법원이 무엇을 보고 '줄일 수 있었던 손해'를 가려내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CISG 적용 여부 — 수출입 물품계약에 자동으로 깔리는 협약
CISG는 서로 다른 국가에 영업소를 둔 당사자 사이의 물품매매계약에 적용되는 협약입니다. 제1조 제1항은 두 당사자의 영업소가 각각 협약 가입국에 있는 경우(가호), 또는 국제사법 규칙에 따라 가입국 법이 준거법이 되는 경우(나호)에 협약이 적용된다고 정합니다. 우리나라는 2005년 3월 1일부터 협약의 당사국이어서, 한국 업체가 미국·중국·독일·일본 등 다른 가입국 업체와 물품을 사고팔면 계약서에 한 줄도 쓰지 않았더라도 한국법 중 민법·상법의 매매 규정보다 CISG가 먼저 적용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계약서에 "대한민국법에 따른다"고만 적었다면 한국이 가입국이므로 오히려 CISG가 그 한국법의 일부로 적용됩니다.
반대로 당사자는 제6조에 따라 협약의 적용을 전부 배제하거나 일부 규정만 달리 정할 수 있습니다. 계약서에 "CISG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는지, 준거법을 제3국 법이나 가입 전의 특정 주법으로 정했는지에 따라 이 글의 논의 자체가 달라집니다. 또 협약은 소비자용 물품, 경매, 서비스 제공이 중심인 계약, 계약의 유효성이나 소유권 이전의 문제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손해경감의무를 따지기 전에 먼저 계약서의 준거법 조항과 당사자 영업소 소재지를 확인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적용되는 경우 — 양 당사자 영업소가 서로 다른 가입국에 있고 물품매매일 때.
배제되는 경우 — 계약서에 CISG 적용 배제 문구가 있거나 비가입국 법을 준거법으로 정한 경우.
확인할 자료 — 계약서 준거법 조항, 인보이스상 영업소 주소, 협상 과정의 이메일.
수출입 물품계약은 합의로 배제하지 않는 한 CISG가 우선 적용되므로, 손해배상 다툼의 출발점은 민법이 아니라 협약 조문이다.
제77조의 구조 — 합리적 조치를 하지 않으면 줄일 수 있었던 만큼 감액
손해경감의무를 정한 CISG 제77조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계약 위반을 주장하는 당사자는 이익의 상실을 포함해 그 위반으로 생기는 손해를 줄이기 위해 상황에 비추어 합리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고, 이를 게을리하면 위반한 당사자는 줄였어야 했던 손해액만큼 손해배상액의 감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즉 효과가 '감액'이며, 그 감액의 크기는 "합리적인 조치를 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손해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정해집니다. 피해자의 과실이 10%라서 10%를 깎는 민법 제396조의 과실상계와는 계산 방식이 다릅니다.
이 차이가 실무에서는 결정적입니다. 과실상계는 쌍방의 과실 비중을 법원이 재량으로 비율화하지만, 제77조는 비율을 먼저 정하지 않습니다. 줄일 수 있었던 손해가 전체 손해의 5분의 1이면 그만큼만, 전부였다면 사실상 전액이 감액됩니다. 예를 들어 계약대금 10만 달러의 부품을 매수인이 수령 거절하고 계약이 해제되었는데, 해제 직후 시장에서는 9만 달러에 팔 수 있었다고 해보겠습니다. 매도인이 아무 조치 없이 6개월을 방치하다 시황이 나빠져 7만 달러에 처분했다면 실제 손해는 3만 달러지만, 합리적 조치로 줄일 수 있었던 부분인 2만 달러는 감액 대상이 되어 청구액은 1만 달러가 되는 식입니다.
또 하나 짚어야 할 점은 이 조문이 위반한 당사자의 책임을 면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경감의무 위반의 효과는 어디까지나 배상액 감액이고, 손해배상 책임 자체(제74조)나 해제권(제49조, 제64조)은 그대로 남습니다. 또한 경감을 위해 쓴 합리적인 비용(재판매 수수료, 보관료, 운송비 등)은 손해의 일부로 청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제77조는 비율 공제가 아니라 '합리적 조치로 막을 수 있었던 금액'만큼만 감액한다 — 같은 과실이라도 막을 수 있었던 손해가 작으면 감액도 작다.
대체거래와 시가 — 제75조·제76조가 경감의무의 계산 틀이 되는 방식
제77조는 단독으로 쓰이기보다 손해액 산정 조문과 맞물려 작동합니다. 계약이 해제되고 매수인이 합리적인 방법으로, 합리적인 기간 안에 대체물을 구입했거나 매도인이 물품을 재판매했다면, 제75조에 따라 계약대금과 대체거래 대금의 차액을 손해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대체거래가 없었더라도 물품에 시가가 있다면 제76조에 따라 계약대금과 해제 시점의 시가(물품을 이미 수령한 뒤 해제했다면 수령 시점의 시가)의 차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추가 손해는 제74조에 따라 별도로 청구합니다.
여기서 경감의무가 개입하는 방식이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대체거래를 했다면 그 거래가 합리적이었는지의 문제입니다. 시장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에 급하게 팔아 치웠거나, 오히려 지나치게 높은 대체품을 구입해 놓고 그 차액을 청구했다면 법원은 합리적인 대체가 아니라고 보아 시가 기준(제76조)으로 손해를 다시 계산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대체거래를 전혀 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시장이 있어 대체가 쉬웠는데도 방치한 채 시황 하락분까지 전부 청구하면, 위반 측은 "제76조의 시가 기준으로 계산한 금액을 넘는 부분은 줄일 수 있었던 손해"라고 항변하게 됩니다.
제75조 — 해제 후 합리적 시기·방법의 대체거래가 있으면 계약가와 대체거래가의 차액.
제76조 — 대체거래가 없고 시가가 있으면 계약가와 해제 시점 시가의 차액.
제74조 — 이익상실 포함 손해배상의 원칙. 위반 당사자가 계약 체결 시 예견했거나 예견할 수 있었던 손해가 상한.
제77조 — 위 어느 방법으로 계산해도, 합리적 조치로 막을 수 있었던 부분은 감액.
'합리적 조치'의 기준 — 법원이 보는 시점, 비용, 시장 사정
조문의 핵심 표현은 "상황에 비추어 합리적인 조치"입니다. 합리성은 결과가 아니라 조치를 해야 했던 당시의 정보와 사정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나중에 시황이 반등해 대체거래가 손해였다고 밝혀져도, 해제 당시 팔 수 있는 시장이 있었다면 팔지 않은 선택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해제 당시에는 합리적이던 조치가 사후에 더 큰 손해로 이어졌더라도 그것만으로 의무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이 실제로 따지는 것은 대체로 다음 네 가지입니다. 첫째, 조치를 취할 시장이나 대체 거래선이 실제로 있었는가. 둘째, 조치에 드는 비용이 기대되는 손해 경감 효과에 비해 과도하지 않은가. 셋째, 피해자에게 과도한 위험이나 부담을 지우지 않는가. 넷째, 조치를 취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가. 위반한 상대방이 신용이 확실치 않아 같은 상대와 재협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합리적 조치로 요구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특수 규격으로 주문 제작된 설비는 다른 구매자를 찾기 어려워 재판매 노력을 오래 해도 성과가 없을 수 있는데, 이 경우 재판매가 불가능했다는 사정과 그동안의 시도(구매처 문의 기록, 광고 내역)가 합리적 조치를 다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또한 경감의무는 손해가 이미 발생한 뒤에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위반이 예상되는 시점부터 작동합니다. 상대방이 선적을 거절하겠다고 통보했는데도 이미 제작에 착수한 물량을 계속 생산해 비용을 키웠다면, 통보 이후에 추가로 투입한 비용은 줄일 수 있었던 손해로 평가받기 쉽습니다.
합리성은 사후의 결과가 아니라 조치가 필요했던 당시의 시장·비용·시간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물품을 떠안은 쪽의 보관·처분 의무 — 제85조부터 제88조
수출입 분쟁에서는 상대방이 물품 수령을 거절하거나 대금을 주지 않아 물품이 항구나 창고에 쌓이는 일이 흔합니다. 협약은 이때를 위해 별도로 보관·처분 조문을 두고 있습니다. 매수인이 인수를 지체하거나 대금 지급과 인도가 동시이행인데 대금을 주지 않는 경우 매도인이 물품을 점유하고 있다면 제85조에 따라 물품을 보존하기 위해 합리적인 조치를 해야 합니다. 거절 의사를 가진 매수인이 이미 물품을 수령했다면 제86조가 같은 취지로 그 매수인에게 보존 조치를 요구합니다.
제88조는 이 의무와 처분권을 연결합니다. 상대방이 보관된 물품의 점유 인수나 대금 지급, 보관비용 지급을 불합리하게 지체하면 보존 의무자는 상대방에게 매각 의사를 통지한 뒤 적절한 방법으로 물품을 팔 수 있습니다(제1항). 특히 물품이 급속히 변질될 우려가 있거나 보존에 불합리한 비용이 드는 경우에는 물품을 매각하기 위해 합리적인 조치를 해야 하고, 가능하면 상대방에게 매각 의사를 통지해야 합니다(제2항). 매각한 사람은 보존·매각에 든 합리적 비용을 매각대금에서 공제할 수 있고 잔액은 상대방에게 반환해야 합니다(제3항).
이 조문들은 제77조의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냉장·냉동이 필요한 식품, 유행을 타는 의류, 시황에 민감한 원자재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떨어지는 물품을 컨테이너째 방치해 보관료와 가치 하락이 눈덩이처럼 커졌다면, 그 증가분은 전형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손해'로 감액됩니다. 따라서 거절 사실을 알게 된 직후 매각 의사를 서면으로 통지하고, 매각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이 감액 공방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 수단입니다.
입증과 실무 — 누가 무엇을 증명하고 어떤 기록을 남겨야 하는가
제77조에 따른 감액을 주장하는 쪽은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쪽이 아니라 계약을 위반한 쪽입니다. 국제적인 해석에서는 경감 가능성에 대한 입증 부담이 위반한 쪽에 있다고 보는 흐름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어, 피해자는 손해 발생과 그 액수를, 위반 측은 "합리적인 조치를 했다면 이만큼 줄었다"는 구체적 내용을 증명해야 하는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막연히 "더 노력했어야 한다"는 주장만으로는 감액 범위가 특정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피해자가 입증에서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반 측이 구체적인 대체거래 가능성(해당 시점의 시세 자료, 다른 구매자의 존재)을 제시하면, 피해자는 그 조치가 불가능했거나 불합리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무에서 준비해 둘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위반 사실을 안 시점과 상대방에게 보낸 통지(이메일, 내용증명) — 제26조, 제27조에 따른 해제 통지의 발송 방법과 일자도 함께 확인.
재판매·대체 구매를 위해 접촉한 업체 목록, 견적서, 거절 사유 기록.
해제 시점과 처분 시점의 시세 자료(거래소 가격, 업계 가격표, 유사 거래 인보이스).
보관료·운송비·보험료·검사비 등 경감을 위해 지출한 비용의 영수증.
주문 제작품이나 특수 규격이라 재판매가 어렵다는 점을 보여 주는 규격서와 구매자 풀 자료.
한편 계약서에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나 책임 제한 조항이 있으면 협약보다 그 조항이 먼저 적용될 수 있고(제6조), 중재 조항이 있다면 소송이 아니라 대한상사중재원이나 ICC 같은 중재에서 판단받게 됩니다. 절차가 어디서 열리는지에 따라 증거 제출 방식도 달라지므로, 분쟁 초기부터 준거법·분쟁해결 조항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손해경감의무를 어기면 손해배상 청구권이 아예 사라지나요?
A. 아닙니다. 제77조의 효과는 줄일 수 있었던 손해액만큼의 감액이며, 청구권 자체가 소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줄일 수 있었던 손해가 전부였다면 결과적으로 배상액이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Q. 상대방이 계약을 어긴 것인데 왜 제가 먼저 움직여야 하나요?
A. 협약은 위반 당사자의 책임을 면해 주는 대신, 위반을 주장하는 쪽에도 손해 확대를 막는 합리적 조치를 요구합니다. 위반 사실을 안 시점부터 재판매나 대체 구매 같은 현실적인 방법을 검토하고 그 과정을 기록해 두어야 감액 주장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Q. 경감을 위해 쓴 비용은 누가 부담하나요?
A. 보관료, 재판매 수수료, 운송비처럼 합리적인 범위에서 지출한 경감 비용은 손해의 일부로 위반한 상대방에게 청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제88조 제3항도 보존·매각에 든 합리적 비용을 매각대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다만 과도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길게 든 비용은 합리성이 부정될 수 있습니다.
Q. 시세가 오를 것 같아 일부러 처분을 미룬 것도 문제가 되나요?
A. 합리성은 조치가 필요했던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므로, 해제 당시 팔 수 있는 시장이 있었는데도 투자 목적으로 보유를 지속했다면 그 기간의 시세 하락분은 감액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시세가 올랐다면 그 이익은 손해액 계산에서 따져볼 문제로 남습니다.
Q. 계약서에 한국법을 준거법으로 적었는데도 CISG가 적용되나요?
A. 예, 한국이 협약 가입국이므로 준거법을 한국법으로 정했다면 특별히 배제하지 않는 한 CISG가 적용됩니다. 협약을 배제하려면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적용 배제 문구를 넣어야 합니다.
Q. 소송 전에 상대방에게 어떤 통지를 해두는 게 좋은가요?
A. 위반 사실의 구체적 내용, 이행 요구 또는 해제 의사, 물품의 보관·매각 의사를 서면으로 남기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제88조에 따라 매각하려면 상대방에게 매각 의사를 통지하는 절차가 필요하므로 이메일과 발송 기록을 함께 보관해야 합니다.
맺음말
CISG 제77조의 손해경감의무는 손해액에서 일정 비율을 일괄 공제하는 규정이 아니라, 합리적인 조치를 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손해가 얼마인지를 따져 그만큼만 감액하는 규정입니다. 그래서 감액의 폭은 해제 당시 시장이 있었는지, 대체거래가 가능했는지, 물품이 변질되기 쉬운지 같은 개별 사정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거래 상대방이 계약을 어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대체거래나 재판매를 검토하고 그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 손해를 지키는 첫걸음입니다. 반대로 청구를 받는 입장이라면 막연한 비난이 아니라 줄일 수 있었던 구체적 방법과 금액을 특정해 주장해야 합니다. 분쟁이 커지기 전에 계약서의 준거법과 분쟁해결 조항, 그리고 증거 자료부터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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